본문 바로가기

진로체험학습

선생님과 함께 떠납니다, 학교밖 세상 여행

선생님과 함께 떠납니다, 학교밖 세상 여행

등록 : 2014.01.27 19:31수정 : 2014.01.27 19:33

 

 

지난 18일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국립4ㆍ19민주묘지 기념탑 앞에서 티처투어에 참가한 교사와 학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함께하는 교육] ‘티처투어’ 현장을 가다

소풍이나 수학여행 정도가 고작인 학교의 체험학습. 아이들에게 좀더 생생하고 내실있는 체험학습을 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교사들이 재능기부에 나섰다.

“이곳은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을 모신 곳입니다. 민주주의를 이뤄낸 분들이 상을 받기보다 오히려 죽임을 당한 겁니다. 오늘은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볼게요. 일단 그분들께 묵념하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자, 묵념!”

지난 18일 오전 10시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국립4·19민주묘지. 아이들 42명과 교사 7명이 기념탑 앞에 섰다. 경기도 수원의 산의초등학교 학생들과 현직 교사들이다. 교사들은 서울·경기지역 학교에 근무 중인데 이날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장재호(39) 대표강사는 아이들에게 “여기 안치된 분들이 왜 목숨을 걸면서까지 나섰는지,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지 한번씩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 추운 날씨에도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날 행사는 ‘티처투어’(www.teachertour.com) 역사 전문 과정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열렸다.

60여명 현직교사 재능기부 참여

티처투어의 원래 이름은 ‘창의적체험활동 교사연구회’로 장 강사를 주축으로 뜻이 맞는 교사들이 꾸린 교육기부 모임이다. 직접 여행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교재를 만들어 매주 토요일 학생들과 여행을 다닌다.

“처음에는 대학 선후배 관계로 시작해 알음알음 모였어요. 이 교육기부 활동에 현재 60여명의 현직 교사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념관에 들어선 아이들은 먼저 4·19혁명에 관한 영상을 본 뒤 교사들과 본격적인 탐방에 나섰다. 전시실 입구에는 벽면 가득 희생자들의 흑백사진이 붙어 있었다.

“여기 사진을 보자. 너네와 비슷한 나이대의 학생들이 있나 찾아볼까? 예전 학생들은 교모를 썼어.”

아이들은 저마다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어요”, “저기도 있어요.”

“그래, 민주주의와 자유를 억압당한 이들이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지. 그중에는 너희 또래의 초등학생들도 있었어.”

“불쌍하네요.”

한쪽에서는 경기도 성남 안말초등학교에 근무하는 마리아 교사가 아이들에게 3·15 부정선거에 대해 설명했다.

“애들아, 우리 조에서 대통령을 한번 뽑아보자. 각자 자기가 뽑고 싶은 사람을 나에게만 살짝 얘기해줘.”

아이들은 교사에게 돌아가며 귓속말을 했다. 잠시 뒤 마 교사는 “자, 다 됐지? 결과를 얘기해줄게. 대통령은 바로 나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전 석우를 뽑았는데요.” “난 나를 선택했는데.”

마 교사는 아이들을 보며 “선생님이 사전에 투표함에 내 이름을 잔뜩 넣어놨어요. 여러분이 아무리 다른 사람을 선택해도 내가 대통령이 돼. 그리고 다른 사람을 뽑으면 내가 따로 불러서 혼낼 거야. 그럼 어떡할래?”

그러자 바로 학생들이 나섰다.

“반대해야죠. 시위를 벌여야죠”, “에이, 물러가라! 물러가라!”

“그래, 그때도 마찬가지야. 이승만 대통령 집권 당시 부정선거가 벌어졌어. 당연히 굴복하지 못한 이들이 너희처럼 시위에 나섰지. 4·19혁명은 그렇게 시작된 거야.”

아이들과 교사들은 조별로 전시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관련 글과 영상, 사진 등을 둘러봤다. 교사들은 자신들이 아는 내용과 덧붙여 4·19혁명이 왜 일어나게 됐는지, 당시 상황과 결과는 어땠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마 교사가 “마산에서 일어난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갔고,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자진 사퇴하고 하와이로 도망을 갔어요. 여러분이 그 시대 태어났다면 어땠을 거 같아요?”라고 묻자 아이들은 대부분 “나 같아도 충분히 시위에 나섰을 거 같은데”, “저도요”라고 말했다.

장 강사는 “초등학교 5학년 역사교과서에 실린 4·19혁명에 대한 설명은 단 석 줄”이라며 “‘3·15─4·19─5·16’ 숫자만 알고 지나간다. 이 모든 게 40분 수업의 절반 정도면 끝난다”고 했다.

이날 투어에 참가한 한 교사는 “학교에서는 제약이 많아 외부활동은 엄두를 못 낸다”며 “학교장 허가를 받고 나갈 수 있는데 눈치도 보이고 ‘사고 나면 네가 책임질 거냐, 그럼 나 승진 못한다’고 막는 관리자도 있다”고 귀띔했다.

4학년 김종민군은 “여기 쌤들은 재밌고 친절하게 대해주고 물어봐도 계속 설명해준다”며 “1년 정도 참여했는데 오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4·19혁명은 책으로만 배웠는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열사들의 위대한 희생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얘기했다.

사실 장 강사가 티처투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학교 현장의 주먹구구식 체험학습 때문이었다. “보통 초등학생의 경우 한 학기 한 번 소풍이 고작이고, 수학여행은 경주로 갑니다. 일반 여행업체에 맡기면 불국사에 도착해 알아서 둘러보고 보고서 써오라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인솔자는 있지만 체계적이지도 않고 교육적 전문성도 떨어지죠.”

그는 “외부업체에 맡기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현장에서 교사들이 개입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사들은 업체에 맡긴 채 자기들끼리 모여서 차 마시고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잘못됐다고 느낀 장 강사는 2001년부터 교사모임을 꾸려 학생 맞춤형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마음이 맞는 교사들과 자비를 들여 직접 답사도 다니고 교재도 만들었다. 디자인 작업이나 그림은 직접 하거나 재능기부를 받았다.

2014년 1학기 티처투어 사회-과학 통합 프로그램
2014년 1학기 티처투어 역사전문 프로그램

“겉핥기 체험학습 이대론 안돼”
교사들 교육기부 활동 나서
직접 여행일정 짜고 교재 제작
매주 토요일 4·19묘지 등 찾아
교사와 학생 사이 벽 사라지고
아이들 현장학습 재미 푹 빠져

사회·역사 등 110개 프로그램 운영

현재 투어 프로그램은 학년별 교육과정에 따라 ‘사회-과학 통합과정’과 ‘역사 전문 과정’으로 나누어 110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과학 통합과정은 소래습지공원, 로봇박물관, 당진화력발전소, 농촌진흥청, 몽골 문화촌 등 각종 박물관과 관공서를 견학한다. 역사 전문 과정은 고궁과 암사동 선사유적지, 서울역사박물관, 정약용 생가, 부여 백제문화단지 등을 방문한다.

4·19민주묘지를 나와 점심식사 장소로 가는 길. 버스에서도 교사와 학생들은 막간퀴즈 형식으로 오전에 살펴본 내용을 함께 이야기했다. 점심은 교사와 학생이 조별로 어울려 함께 먹었다. 4학년 윤서영양은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가면 선생님이랑 밥을 따로 먹는데 여기는 선생님들이랑 얘기하면서 같이 먹는 게 다르다. 또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어서 좋다”고 했다.

교사들은 틈틈이 아이들의 오전 활동 모습과 밥 먹는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어서 부모들에게 보냈다. 황규진 교사는 “스마트폰 메신저 앱을 이용해 투어 내내 학부모님들과 그룹채팅을 한다.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웠는지, 밥은 맛있게 먹는지 모든 과정을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황 교사가 짧은 메시지와 사진을 전송하자 학부모들은 곧바로 감사 인사와 사진에 대한 감상평을 올렸다.

오후에는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방문했다. 이곳은 개항기부터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공간이다. 아이들은 상설전시실을 돌며 광복에서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제발전 계획은 물론 서울올림픽, 한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알아갔다.

아이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해주며 열심히 설명을 이어나가던 박재홍 교사(경기도 포천 내촌초등학교)는 1년차 교사다. 지난해부터 동료교사의 권유로 참여하고 있다.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나가면 보통 한 반에 30명 정도 되다 보니 애들 챙기기도 벅차요. 반면, 티처투어는 한 교사가 학생 6~7명을 맡아 소그룹으로 진행하니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게 가능하죠. 쉬는 시간에 스스럼없이 장난도 치고 교사와 친밀하게 지내다 보니 학생과 상호작용도 훨씬 잘 이루어지고요. 투어를 준비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저에게도 도움이 많이 돼요.(웃음)”

5학년 하은채양도 티처투어에 여러 번 참가했다. “전에 갔던 서대문형무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고문하는 장소를 직접 보고 체험도 했거든요. 일본인들이 만든 나무상자인데 바깥에서 안쪽으로 못이 튀어나오도록 박아놓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둬서 발로 차거나 흔들면 몸에 찔리는 거죠. 직접 들어가 보니 못이 나온 자리는 유리로 막아둬서 아프지 않았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옆에 있던 5학년 이해인양은 인상에 남았던 장소를 묻자 백범 김구 기념관을 꼽았다. “이전까지 책으로만 알던 분인데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예요. 기념관에 가보니 ‘나의 소원은 첫째도 독립, 둘째도 독립, 셋째도 자주독립’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인상적이었어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에 대해 감사한 마음도 들었고요.”

같은 날 오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방문한 아이들이 전시실 내부를 돌아다니며 기념사진을 찍거나(왼쪽) 교사들에게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최초의 지프형 자동차인 시발자동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같은 날 오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방문한 아이들이 전시실 내부를 돌아다니며 기념사진을 찍거나(왼쪽) 교사들에게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최초의 지프형 자동차인 시발자동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쓰고 남은 행사비용은 유니세프 기부

티처투어는 아이들에게 입장료와 식비, 버스비 등 실비에 10%를 더해서 받는다. 프로그램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5만~6만원대다. 행사를 진행하고 남은 10%를 모아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는 무료로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고 나서도 돈이 남으면 전액 유니세프에 기부한다. 장 강사는 “티처투어를 운영하며 남는 이익은 없다. 오히려 서울시 창업지원금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 한달 평균 400명이 넘는 학생이 참가한다. 사실 더 많은 학생들을 데려가고 싶지만 참여교사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주변 교사들에게 티처투어를 돈 벌 목적이 아니라 재밌어서 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믿질 않아요. 오히려 말이 안 된다면서 미쳤다는 말까지 들었어요. 학교 밖에서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교사와 학생 사이의 담을 허무는 동시에 아이들이 사회를 올바르게 바라보고 소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현재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주로 서울·경기지역만 돌아다니고, 중학생은 방학 때만 운영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과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하는 게 목표입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