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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체험학습

워킹홀리데이 이렇게 했더니…성공 vs 실패

워킹홀리데이 이렇게 했더니…성공 vs 실패



[서울신문]

어떻게 하면 워킹홀리데이를 성공적으로 다녀올까. 한국의 지원자 중 대부분은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외국어 능력을 키우면서 돈을 벌고, 여행도 하고, 취업에 필요한 ‘스펙’까지 쌓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거머쥐기에 1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다. 오히려 영어에 대한 두려움과 수많은 유혹에 자칫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만 낭비한 채 귀국할 수도 있다. 세계 각지에서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경험했거나 현재 경험 중인 ‘워홀러’(워킹홀리데이 참가자) 7명과의 인터뷰에서 성공담과 실패담을 들어 봤다.


이렇게 하니 성공

#성공 1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의 1차 목적은 ‘홀리데이’여야 해요. 여행이죠. 그 앞에 붙는 ‘워킹’은 여행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수단이죠. 그 이상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직업과 아내, 생활 터전까지 모두 얻은 배성환(31)씨. 그는 호주 워홀러들로부터 ‘조상’이라고 불릴 만큼 성공 사례의 대표자다. 2005년 처음 호주 시드니에 발을 들인 그는 그곳에서 만난 최혜진(33)씨와 함께 귀국해 2007년 결혼한 뒤 다시 호주로 갔다. 배씨는 멜버른에 있는 윌리엄 앵글리스 요리학교를 졸업해 지금은 이 도시에 있는 200석 규모의 레스토랑에서 부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호주에서 마음껏 여행을 다니다 요리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했다. 배씨는 “멜버른에는 전 세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수백 개의 식당이 있다”며 “이곳을 여행했던 3개월 동안 평생 먹어 보지 못했던 음식들을 맛보면서 요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호주에서 번 돈은 호주에서 쓰자고 마음먹었다”며 “1달러라도 한국에 남겨 가는 순간 여행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호주에 온 것이 돼 버린다고 생각했다”고 되돌아봤다.

여행비 마련을 위해 각지의 농장에서 땀 흘려 일했고, 일이 끝난 뒤 백패커(배낭여행자 숙소)에 모인 세계 각국 출신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어가 늘고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배우는 재미에 빠졌죠.” 2006년 귀국한 뒤 배씨는 국제공인영어시험인 IELTS에서 요리학교가 요구하는 점수를 훌쩍 넘겨 입학 허가를 받았다.


배씨는 요즘 워홀러들이 처음부터 너무 많은 정보를 갖고 시작해 오히려 기회를 놓친다며 안타까워했다. “제가 워홀을 할 때는 트램(노면전차)에서 맞은편에 앉은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보는 등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해야 생활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다 찾아볼 수 있어서 오히려 입을 열지 않아요.”

#성공 2 A(여)씨는 대학 시절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다녀와 공인일본어시험인 JLPT와 JPT에서 모두 최고 등급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 연예인을 좋아해 일본어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서울지역 대학에 다니던 중 전공인 경영학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 일본어에 매진했다. 그래서 일본 방송을 봐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일본어 실력으로 출국했다.

그는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의 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설거지 일을 하며 만난 일본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일본어 실력을 키웠다. A씨는 번 돈을 다시 일본어 과외에 투자했다. 귀국해서는 한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하러 오는 일본인들과 함께 살며 일본어 실력을 더 늘렸다.


#성공 3 B(여)씨는 아직도 타이완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전 지역을 여행한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여행하다 보니 중국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돼 중국어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중국에 가서 어학을 더 공부하고 싶었던 B씨는 중국에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을 알고 타이완을 선택했다. 그는 중국어가 워낙 어려워 현지에서 일자리를 찾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신 오전엔 어학원을 다니고 오후에는 한국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며 돈을 벌었다. B씨는 한국에 돌아와 중국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성공 4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으로 2012년 1월까지 캐나다에 다녀온 구병윤(26)씨는 그때의 경험을 살려 캐나다 전문 유학원에 취직해 부산 지사장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외교부에서 운영한 워킹홀리데이 홍보대사 ‘워홀프렌즈’ 2기 부산팀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캐나다에서 3개월간 현지 초등학생의 여름 캠프 도우미로 봉사 활동을 하고 5개월 동안 피자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근무했다.

구씨는 “한국인을 멀리하고 외국 친구들과 활발히 교류해 일본, 중국, 터키, 스위스, 브라질 등 거의 모든 대륙에 수십 명의 친구를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이어 “캐나다에서 영어를 잘하기 위해 컴퓨터 운영 체제까지 영문판으로 교체할 만큼 노력했다”며 “소중한 내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고 싶어 유학원을 진로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니 실패

#실패 1 C(28·여)씨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참가자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한국인 중개인에게 속아 하마터면 빈털터리가 될 뻔했다. 그는 2011년 9월 ‘퀸즐랜드주 보엔지역에서 망고 수확철을 맞아 워홀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중개인에게 연락했다. 망고 수확철이 아직 3개월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중개인이 운영하는 백패커에서 숙박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 실수였다. 그는 “농장에 일이 전혀 없어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했다”면서 “그렇다고 그 먼 곳에서 달리 갈 곳도 없어, 주당 110달러(당시 약 13만원)의 적지 않은 숙박비와 식비를 쓰며 3개월 이상을 버텨야 했다”고 말했다.

#실패 2 2008년 호주 케언스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D(여)씨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국인끼리만 지내다 돌아왔다. D씨는 “학점은 엉망이고 딱히 꿈도 없어 워킹홀리데이만 다녀오면 영어가 늘고 여행도 하며 경험을 쌓아 좋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만 갖고 떠났다”면서 씁쓸해했다. 그는 자금을 모으기 위해 한 학기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영어 공부를 하지 못했다. 케언스에서 한 달 동안 홈스테이를 하며 집주인에게 말도 못 붙였다. 그는 살 집도 현지에서 알게 된 한국인에게 부탁해 구했다. D씨는 “‘초기 자금이 3개월 만에 동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압박감도 심하게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에 결국 한국인들만 모여 사는 집을 구했다.

#실패 3 2012년 호주 시드니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F씨는 한인이 운영하는 업체에서만 일하다 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 한국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한인 사이트에서 집과 일자리를 구했다. F씨는 “그래픽 디자이너 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슈퍼마켓 점원이었다”면서 “숙소를 제공한다는 말에 덜컥 수락한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주급 500달러라고 적혀 있던 급여도 가서 보니 300달러에 불과했다. 한 달 만에 슈퍼마켓을 나온 그는 그래픽 디자인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대부분의 업체가 영주권자나 현지 대학을 나온 사람을 원했다. F씨는 결국 한인 슈퍼마켓과 식당을 전전했다. 그는 “당시 육체노동이 싫다고 한인 가게에만 취업했던 것이 제일 후회된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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