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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체험학습

학생 가까이 다가가니 감사할 거리 생겨요”

학생 가까이 다가가니 감사할 거리 생겨요”

등록 : 2013.12.30 19:37수정 : 2013.12.30 19:37

 

 

12월30일 경기도 시흥의 응곡중학교 이애영 교장이 방학식을 맞아 공개한 ‘학생들에게 쓴 100가지 감사의 글’ 앞에서 학생들과 함께 웃고 있다. 응곡중학교 제공

[함께하는 교육] 교육 정보

경기 응곡중 이애영 교장의 교육법

“1학년 수련활동 장기자랑 시간에 갑자기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오지 않자, 공연하던 친구들이 끝까지 춤을 추고 내려올 수 있도록 노래를 불러주며 관람했던 학생들에게 감사합니다.” “어느 날 교장실에 들어와 자전거 보관대에 방치된 자전거가 세 대 있다며 임자가 없다면 정리해주면 좋겠다고 건의한 학생, 감사합니다.” “‘나는 응곡중 가수다’를 줄여 제목을 붙인 ‘나는 응가다’ 행사에서 트로트를 멋지게 불렀던 학생 감사합니다.”

경기도 시흥의 응곡중학교 이애영(58) 교장이 학생들을 떠올리며 써내려간 감사의 글 중 일부다. 이 교장은 2011년 3월 부임 이후 직접 겪고 들었던 응곡중 학생들의 일화들을 바탕으로 감사의 글 100가지를 완성했다. 지난봄 학부모 교육을 위해 학교를 찾은 한 강사가 감사의 글을 적어보라고 권한 것이 계기였다. “평소에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글로 옮겨 적어보니 누구에게 어떤 점이 고마운지 훨씬 구체화되는 느낌이었다.”

학생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사연이 모두 100가지다. 평소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교내외 행사에 부지런히 참석하면서 학생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뒷짐지고’ 걷는 모습은 여느 학교의 교장들과 다르지 않지만, 이 교장의 발걸음은 북카페와 도서실, 강당 등 학생들이 즐겨 찾는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만나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에 ‘책 읽어주는 교장 선생님’이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학생들은 교장실 문에 붙은 신청 게시판에 이름을 적기만 하면 교장실 소파에 앉아 이 교장이 직접 들려주는 좋은 글과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교사들은 아무래도 자신이 맡은 학급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서 다른 반 학생이나 다른 학년의 행사에 관심을 기울이기 쉽지 않다. 반면 교장은 마음만 먹으면 학교 안팎 모두가 활동 무대가 될 수 있다.”

학생 향한 ‘감사의 글’ 100가지 완성
글로 적으니 고마운 점 훨씬 구체화
‘책 읽어주는 교장’ 프로그램도 운영
60여 교사들한테도 일일이 감사글

이 교장의 관심이 학급 단위가 아닌 전교생 모두에게 쏠려 있다 보니 그가 쓴 감사 글의 대상 역시 응곡중 1학년부터 3학년 학생 전체를 아우른다. 그 덕분에 이 교장의 감사 글을 읽어보면 응곡중 학생들이 어떤 환경에서 무슨 활동을 하며 지내는지가 환히 보인다. 응곡중에 배정받은 신입생들은 입학 전에 상담을 겸한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중학교 진학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하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은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네며, 학교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로 전교생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는 사실들이 그의 감사 글에 오롯이 담겨 있다.

“감사의 글을 적어보니 힘든 일이 닥쳐도 해결 과정에서 뭔가 배우는 게 있을 것이란 긍정의 마음이 커져갔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실수가 보여도 질책하는 마음보다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가 먼저 떠올랐다.”

감사의 글을 적는 일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 교장이다. 무엇보다 100가지 감사의 글도 ‘솔선수범’해서 먼저 적어봤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참 좋은 일’이라며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권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감사의 글을 적었다는 사실조차 학교 구성권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었다. ‘사적인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만날 때만 교사들에게 감사의 글 쓰기를 넌지시 권해봤을 뿐, 교장의 권위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다.

30일 이 교장은 겨울방학식에 맞춰 교내 북카페에서 열린 동아리 활동 전시 행사의 한편에 100가지 감사의 글을 전지 4장에 출력해 깜짝 공개했다. 60여명의 교사 모두에게 일일이 쓴 다섯 가지 감사의 글들도 함께 붙였다. 학생들이 즉석에서 부모님과 선생님께 감사엽서를 적어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했다. 부모님께 쓴 감사엽서는 집으로 우편발송할 계획이다.

응곡중 2학년 송서율양은 “학생들이 쉴 수 있도록 놓아준 소파가 망가졌는데, 교장 선생님이 소파를 함부로 다룬 것을 질책하기보다 학생회에서 대책회의까지 열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셨다는 사실을 100가지 감사 글에서 처음 알게 됐다”며 “늘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