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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체험학습

“빨리 내 꿈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힘들게 해요

“빨리 내 꿈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힘들게 해요”

등록 : 2013.11.25 19:35수정 : 2013.11.25 19:35

 

홍성옥군이 11월16일 집에서 가까운 서울 혜화동 공원에서 어머니 최성순씨와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평소 말이 없던 아들이 최근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지현

[사교육 탈출] 고1년생 홍성옥군의 꿈 찾기

고교 1학년 홍성옥군의 꿈은 사진작가 김영갑처럼 사는 거다. 가난과 고독 속에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면서도 제주도의 평화를 사진으로 담아내다 세상을 떠난 김영갑의 자서전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은 다음부터다. 세상과 떨어져 있어도 크게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의 작업에 꿋꿋이 몰입하다 떠난 삶에 감동받았다고 한다. 평범해 보이지만 심해 같은 내면을 지닌 성옥이와 어머니 최성순씨를 16일 서울 혜화동에서 만났다.

아들이 논리적이고 사고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동네 논술학원에 보냈다. 글도 쓰고 생각하는 법도 배울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곳이 글쓰기를 명문대라는 입시 목표에 맞춰 전략적으로 가르치는 곳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시작한 튼튼영어도 일주일에 두어 번 했어요. 또 엄마들은 자식에게 악기 하나쯤은 다루게 하고 싶은 로망이 있잖아요. 그래서 2학년 때부터 몇 년간 대금을 배우기도 했고요. 유치원 때부터 친한 친구 따라 태권도장에도 2, 3년간 다니게 했죠. 이 모든 것들이 엄마가 계획을 세우고, 아이에게 권유하면서 하게 된 거죠. 아이가 굉장히 내향적이라 뭔가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어요. 아들은 스스로 먼저 뭘 하고 싶다거나 배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모두 다 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잔소리, 강요라고 생각한 듯 ‘엄마는 이렇게 말할 거잖아’ 하고 귀를 닫아버렸어요. 힘없는 아이가 엄마에게 맞서는 방법을 취한 거겠죠.”

성옥이는 어렸을 때부터 질문을 많이 하고, 뭔가를 가르치면 빠르게 습득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만 집중하고 공부를 안 하는데도 성적이 좋은 애들 있잖아요. 중학교 2학년 때는 전교 5등을 한 적도 있어요. 시험 때도 하고 싶은 것은 하는 아이예요. 그래도 성적이 잘 나오니까 아빠가 기대를 한 거죠. 그런데 어느 날엔가 내일 무슨 과목 시험을 보는지도 모르더라고요.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놓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점점 자기 방문을 닫는 횟수만 늘어났어요.”

성옥이는 학교에 갔다 오면 신문을 오래 읽는 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도 몇 시간씩 들여다본다.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듣기도 하고, 웹툰도 많이 본다. 얼마 전 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가 스마트폰을 내던져서 액정이 깨지고 고장이 나 버렸다. 컴퓨터 게임도 하지만 몇 달 하다 쉽게 질리는 편이다. 질리지 않고 꾸준히 좋아하는 게 있는지 물어보니 성옥이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취미랄까, 그런 거는… 책 읽기 같은 거, 뭔가를 읽는 거는 장르 가리지 않고 재밌게 읽는 편이에요. 최근에 읽은 책은 <나의 서양음악 순례기>인가? 서경식 선생님이 쓴 글인데 그분이 쓴 신문 칼럼도 재밌었고 책도 재밌었어요. 서양음악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었는데 그거 읽다 음악을 찾아 듣게 되고 이렇게 사는 음악가도 있구나 해서 흥미로웠어요. 좋아하는 게임은… ‘레이더즈’라는 게임을 1년 정도 했는데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게 아니라 컴퓨터 인공지능과 싸워요. 아, 그런데 이 게임이 다른 게임과 달리 독특하다고 하는 신문기사를 보고 끌려서 시작했어요.”

성옥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인가 독특한 것에 끌리기 시작했다.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독특한 것에 먼저 시선이 가고 자신은 오히려 그게 좋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남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내가 좋아한다면 남을 기준으로 하는 거니까,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한다면 남들이 좋아하는 것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게 진짜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여전히 독특한 게 좋다고 한다. 그런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는 수없이 좌충우돌했다.

세상을 관찰하며 작업한 그림이나 사진에 관심이 많은 홍성옥군이 24일 어머니와 함께 서울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전 ‘로버트 프랭크’를 관람하고 있다.

내향적이고 사색적인 성옥이
초등3년부터 독특한 것에 끌렸다
대금 연주자 되겠다고 하자

엄마가 기겁을 하고 말렸다
그 뒤론 아예 꿈 이야길 안한다

그러다 한 사진작가 자서전 읽고
그런 삶에 생각이 꽂혀 있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버거워하는 성옥을 기다려주자

“성옥이가 한참 자동차를 좋아했을 때니까, 초등 저학년 때였어요. 할머니네 집에 갈 때면 늘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데, 승객들이 낸 요금을 운전사가 다 갖는 줄 알고, 어느 날 마을버스 운전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어이가 없어서 비웃었죠. 또 한번은 초등학교 때 배우던 대금으로 전국 어린이 국악 경연대회 나가서도 상을 탔어요. 얘는 어디에 꽂히면 굉장히 몰입을 하는 편인데, 대금이 너무 좋으니까 잘 때도 껴안고 잤거든요. 어느 날 학교에서 장래희망에 대해 써 오라고 해서 대금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썼어요. 선생님이 그걸 보시고 잘 썼다고 칭찬을 하셨나 봐요. 근데 제가 그걸 보고 대금 연주자가 되면 가족들과 여유있게 살기 어렵다고 정색을 한 거죠. 아이들 꿈은 자주 바뀐다는 걸, 그러나 그때만큼은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알면 됐는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 엄마는 그걸 평생 하겠다는 건 줄 알고 기겁을 한 거예요.”

아이의 꿈이 바뀐다는 걸 몰랐더라도 늘 우리가 육아서에서 배운 대로 부모교육 강연장에서 들은 대로,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공감하고 존중해줬다면, 아니, 진심으로 존중해주기 어렵다면 공감하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우리는 아이 마음에 상처를 덜 주었을까. 아이는 그 일을 잊어버렸다 해도 부모의 마음속에는 그런 일들이 낙인처럼 남아 있다.

“그 뒤로는 저에게 꿈에 대한 얘길 안 했어요. 아이와의 관계가 힘들어지니까 그제야 저도 교육운동 하는 시민단체에서 부모교육을 받으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아이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냐, 뭘 하고 싶으냐,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도 네가 생각하는 걸 얘기해봐라. 그런 질문을 하다가 얼마 전에 제가 읽던 김영갑 선생의 자서전을 가져다 읽더니, 이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웃사이더처럼 살고 싶다면서요. 제가 권하는 모든 교육을 거부하고 나를 밀어내던 애가 자기 내면의 말을 엄마에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 너무 감사했어요.”

엄마는 아이에 대해 이전보다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현실적인 성공과 부를 이루지는 못해도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행복해하고 , 자기만의 정신적인 부분을 충족시켜야 살 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대안학교를 알아보다 김제에 있는 지평선고등학교가 좋아 보여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고 간곡하게 권했다.

“그런데 씨알도 안 먹히더라고요. 중3 내내 컴퓨터로 딴 데만 들여다보면서 보낸 거죠. 반항도 아니고 자포자기까지는 아니고 ‘개긴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고입 원서 쓸 때가 오니까, 자기가 어딜 가야 한다는 목표가 없잖아요. 애 아빠는 저보고 엄마가 되어 가지고 애 원서 쓰는 시기도 모른다고 성화였고요. 근데 아이는 그때야 자기 속마음을 조금 얘기하더라고요. 중학교 3년 생활이 힘들었다고요.”

아버지는 학교생활이 힘들었다면 분위기를 바꿔보는 게 어떠냐며 집에서 멀지 않은 자사고를 권했다. 다행히, 자사고든 일반 학교든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며칠 남아 있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자사고를 거부했다. 집에서 가까운 일반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동시에 일반고를 1년 정도 다니다가 맞지 않으면 자퇴를 하고 싶다고 했다. 부모는 충격에 빠졌다.

“저는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을 정말 싫어하는 거 같아요. 자퇴할 거면 거길 뭐 하러 다니느냐, 제도권 교육이 싫으면 대안학교 알아보라고 말할 때 꿈쩍도 안 하더니, 그때는 대안학교 전형도 다 끝났을 때거든요. 근데 그때 역시 제가 아이의 생각을 공감해주지 못했던 거예요. 아이한테 대안학교는 너무 낯설고 인문계 고등학교는 그 학교가 그 학교인 거죠. 갑자기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중학교 생활이 힘들었다. 학교가 싫어졌다’는 말을 해서 아이가 많이 힘들었다는 걸 알았어요.”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자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본인에게 직접 물었다. “제 꿈을 잘 모르겠어요. 지금 나에게 대학교 가서 무슨 공부를 할지 학과를 고르라고 해도 저는 대답을 못할 것 같거든요.” 부끄러운 듯이 멋쩍은 웃음을 웃는 성옥이는 지금 다니는 고등학교가 좋지는 않다고 했다. 학교 시험을 보면 ‘이게 가치가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고, 친구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보면 다를지 모르지만 주변의 아이들과 자신의 관심사가 다른 것 같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배정받은 350명이 입학 전 시험을 쳐서 100등까지 뽑아요. 그리고 그 100명에게만 방과후학교를 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방과후학교를 해야 야간자율학습 공부방에 들어갈 수 있게 운영하더라고요.” 350명 중에 100명을 제외한 나머지 250명은 내버려두고 가는 시스템. 배제와 경쟁의 논리, 될 놈만 키우겠다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땅의 고등학교. 이곳은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일까.

느릿느릿 말하던 성옥이는 부모님이 제안하시는 것들은 논쟁하기가 피곤해져서 수긍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는 웃기도 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저를 눌렀던 고민이 있는데, 빨리 내 꿈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었어요. 그게 제일 힘들었는데 아직은 찾지 못했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어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공부 못하는 애들이 갑자기 열심히 해서 잘됐다는 성공담 같은 얘기 하잖아요. 빨리 꿈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내향적이지만 사색적이고 자기만의 생각이 성숙한 열여섯 살의 이 아이를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는 감당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흘러 성옥이의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차올랐을 때, 그 남다른 생각과 마음이 자기만의 발걸음으로 이어지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채송아/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 ddalkibu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