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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공부는 어떻게?

대학 교재로 자습하는 수학 영재도 시험 공부는 교과서부터

대학 교재로 자습하는 수학 영재도 시험 공부는 교과서부터

한성과학고 2학년 김건우군


김군의 책상에는 고등학생용 교재보다 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보는 전문 서적이 더 많다. 대학 교재를 펼쳐놓고 읽으며 주요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는 게 자습 시간에 하는 일이다.


“어떤 교재보다 체계적…문제 다 풀어”
교과서에 필기하고 따로 공책에 요약
수업 시간 안 졸려고 6시간 이상 숙면



한성과학고 자습실에 유난히 눈에 띄는 책상이 있다. 눈에 익은 수학 교과서와 『수학의 정석』 사이에, 전화번호부 두께만 한 영어 원서가 줄줄이 꽂혀 있다. 『해석기하학』 『선형대수학』 등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볼 법한 두꺼운 이론서들이다.

책상의 주인은 이 학교 전교 1등 김건우(2학년)군이다. 김군은 여러 과목을 두루 좋아하는 팔방미인형 모범생이 아니다. “가끔 다른 과목은 다 손 놓고, 수학만 하고 싶은 게 고민”이라며, 스스로를 “공부 편식이 심한 편”이라고 평했다. 수학만 좋아하는 김군이 국어나 영어 등 전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며 전교 1등을 유지하는 비결이 뭘까. ‘편식’ 심한 공부로도 전 과목에서 고득점을 올리는 김군의 공부법을 알아봤다.

시험 한 달 전부터 교과서 읽고 문제 풀이

김군의 자습 시간은 온통 수학 공부로 채워진다. 시험 기간이 아니면 영어로 쓰인 대학 교재를 꺼내 읽으며 노트 정리를 하는 게 일과다. 백과사전만 한 책 한 권이 ‘집합’이나 ‘통계’ 등 고교 수학 교과서의 한 단원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것들이다. 김군은 “이런 책들을 열 권 정도 쌓아두고 수시로 번갈아가며 읽는다”고 말했다.

 고교 수학 수준을 훨씬 웃도는 대학 전공 책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부터다. 김군은 “관심 분야가 수학이다 보니 이런 개념서들이 소설책처럼 재미있게 읽힌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과 직접 연관된 내용은 아니지만, 김군의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시간을 내서 탐독한다는 얘기다. 그는 “교과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며 “고교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는 맥락이 잘 안 잡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생기는데, 대학 수준의 교재를 읽다 보면 개념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 문제를 풀 때도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소에는 대학 교재를 읽으며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 내신 시험을 한 달 앞둔 시점부터는 수학 교과서를 읽기 시작한다. 김군은 “시험 보기 전에 교과서는 최소한 2번 이상 읽는다”고 말했다. 교과서에 수록된 예제나 연습문제, 심화문제 등도 빠짐없이 풀어본다. 쉬운 문제는 눈으로 보면서 암산으로 답을 구하고, 심화문제는 노트에 적어가며 푼다. 교과서 읽기가 끝나면 『수학의 정석』을 펼친다. 이 교재 역시 개념 설명부터 꼼꼼하게 읽은 뒤, 모든 문제를 꼼꼼하게 풀어본다. 김군은 “처음 풀 때는 3분의 1 정도 틀리고, 두 번째 풀 때는 서너 문제 틀리는 정도”라고 말했다.

 틀린 문제는 해설지를 보고 효과적인 풀이법을 확인한다. “혼자 고민해 풀이법을 찾는 것도 좋지만 시험 범위를 다 끝내려면 몇몇 문제에만 시간을 많이 허비할 수는 없다”는 게 이유다. “『수학의 정석』처럼 좋은 문제집에 수록된 풀이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이론적이라 내가 시도한 풀이보다 훨씬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과학고에서 전교 1등을 하고, 대학생이 보는 원서를 재미있게 읽는 수학 영재인데도 주교재는 교과서와 기본서에 해당하는 『수학의 정석』이다. 김군은 “어떤 문제집보다도 교과서의 내용이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잘 정리돼 있다”며 “평소에 아무리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해도 교과서를 읽을 때마다 내가 놓치고 있던 내용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영어 단어 매일 10개씩 암기

김군이 가장 힘들어하는 과목은 영어다. 김군은 “관심이 온통 수학에 쏠려 있어 영어 공부는 뒷전이었다”고 얘기했다. 중학교 때도 수학 공부에 집중하느라 영어는 사교육도 받지 않고 소홀히 했다. 특히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즐겨 읽는 수학 원서가 전부 영어로 쓰인 책이긴 하지만, 수학에 자주 나오는 단어는 therefore(그러므로), hence(이런 이유로) 같은 게 전부”라며 “수학 관련된 어휘가 특수해 다른 분야의 제시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부족한 어휘력을 보충하고 있다. 영어 단어장 앱인 ‘비스킷’(Biscuit)을 활용해 매일 같은 시간에 영어 단어 10개씩을 푸시 알림으로 받아 그 자리에서 외운다. “영어는 수학과 달리 눈으로 보는 거로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아 꼭 손으로 네댓 번씩 써보며 외운다”고 설명했다.

 부족한 어휘력에 비해 독해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 김군은 “수학 원서를 하도 많이 읽어 영어 문맥을 파악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원서 읽기를 시작하면서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가며 혼자 힘으로 영어 문장을 해석했던 것이 영어 지문 읽기를 익숙하게 만들었다. 김군은 “영어 자체는 좋아하지 않지만, 관심 있는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노력했던 게 영어 학습에까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수학·과학은 좋아하고 영어·한국사 등 문과 계열 과목은 힘들어하는 등 과목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한 편이지만, 수업 시간에는 어떤 과목이든 절대 졸지 않고 집중한다. 필기도 다른 학생에 비해 많이 하는 편이다. 김군은 “선생님이 설명하는 내용은 일단 다 적는다”고 말했다. 중요 내용만 간추려 적지 않고 되도록 설명 내용 전체를 받아 적는 것도 이유가 있다. 김군은 “선생님의 얘기를 자세히 써 놓으면, 한참 뒤에 들춰봐도 수업 내용이 귀에 들리는 것처럼 재현되는 효과가 있다”며 “중요한 게 아니더라도 많이 적어놓을수록 자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습 마칠 땐 노트에 핵심 내용 정리

자습 시간에 꼭 챙기는 김군의 필수품이 있다. 노트 한 권과 볼펜 두 자루다. 김군은 “수업 시간에는 모든 필기를 교과서에 하고, 자습을 마칠 때는 노트 한 권에 요약 정리하는 게 습관”이라고 말했다. 자습할 때 연습장은 따로 쓰지 않는다. 교재를 반복해 읽고 중요한 내용은 검정·빨강 볼펜만 이용해 표시해 놓는다. 그리고 자습이 끝나면 공부한 내용을 과목에 관계없이 노트 한 권에 일목요연하게 핵심 정리를 해보는 식이다. “노트 정리할 때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부분은 교재를 다시 펼쳐서 읽어보고, 교과서 외의 다른 교재에서 중요한 내용이 발견되면 노트에 보충해서 정리한다”고 알려줬다.

 연습장을 쓰지 않는 건 “두서없이 적어봤자 머릿속에 남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한 단원 안에서 핵심 내용을 유기적으로 죽 이어서 적을 수 있어야 제대로 공부한 것이지, 맥락 없이 핵심어 몇 개만 적어가며 외우는 건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기다.

 컨디션 조절에 철저한 것도 김군의 성적 관리 비결 중 하나다. 김군은 “친구들보다 많이 자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성과학고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취침과 기상 시간이 일정하다. 평소에는 자정에 일제히 소등하고 잠자리에 들지만 내신 시험 2주 전부터는 새벽 2~3시까지 자습을 허용한다. 김군은 이때도 사흘 정도만 새벽 자습을 할 뿐, 밤 12시 취침을 지키는 편이다. “운동도 좋아하지 않고 특별한 건강식도 챙겨 먹지 않는 편이라 수면으로 피로를 푼다”며 “잠을 잘 자야 다음 날 공부에 지장이 없다”고 얘기했다.

김군은 “관심사가 수학에 한정된 것이 성적 관리에 도움이 되는 면도 있다”며 “TV나 인터넷에도 별 관심이 없고, 자신 없는 과목인 영어 역시 수학 공부를 하다 실력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과목을 동시에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좋아하는 데 집중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겨, 다른 과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책상 위 교재

국어: 교과서, 학교 프린트물
영어: 교과서, 학교 프린트물
수학: 교과서, 수학의정석 실력편(성지출판), 블랙라벨 확률과 통계(진학사), Set Theory and the Continuum Hypothesis(Dover publication), Set Theory: An Intuitive Approach(경문사), Introduction to Set Theory(Marcel dekker inc.), Set Theory: An Introduction to Independence Proofs(North holland), 위상수학(경문사), Principles of Mathematical Analysis(McGraw hill), Real and Complex Analysis(McGraw hill), Advanced Engineering Mathematics 9th Ed.(Wiley, 범한서적주식회사), 수리통계학(민영사), Probability Theory: An Analytic View_2nd Ed.(Cambridge univ press), Principles and Techniques in Combinatorics(도서출판 도비), 해석기하학과 사영기하학(교우사), 선형대수학_제5판(경문사), 학부 대수학 강의 I: 선형대수와 군(SNU press), 학부 대수학 강의 II: 대수학(SNU press), Galois Theory(Docer publication), Fundamentals of Physics
extended(Wiley)
과학: 교과서, 학교 프린트물, 하이탑(동아출판), 할리데이(범한서적)

글=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