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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공부는 어떻게?

서울 단대부고 2학년 류현호군

서울 단대부고 2학년 류현호군

김자영(52·서울 대치동)씨는 10여 년 전 여섯 살 된 아들을 거실에 앉혀놓고 화이트보드에 1부터 9까지 숫자를 하나씩 써 내려갔다. “1, 2, 3…7, 8, 9…. 9 다음은 뭘까? 다시 1이랑 0이 합쳐져서 10이 되고, 그다음은 11, 12, 13의 순서로 나가면 돼.” 아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2년 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배우는 내용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미리 가르쳤을 뿐이다. 하지만 오전 근무 후 돌아간 집에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이는 칠판에 4300, 4301, 4302 등 1000 단위를 훌쩍 넘어가는 숫자를 쓰고 있었다. 스스로 수 개념을 깨우친 거다. 서울 단대부고 2학년 전교 1등 류현호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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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 교재

국어: 자습서(지학사), EBS 인터넷수능 국어영역 화법과 작문&독서와 문법 A형(EBS)
수학: 블랙라벨 미적분II, 확률과 통계(진학사) 일등급수학 미적분II (수경출판사), 일품 미적분II 545제, 확률과 통계 415제, 수능다큐 적분과 통계 502Q(좋은책신사고)
영어: EBS인터넷수능 영어독해연습1·2·영문법특강(EBS), EBS수능특강(EBS)
과학: 자이스토리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I·II (수경출판사), EBS수능특강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I·II (EBS)

엄마의 즐겨찾기

-학교설명회와 대치동 학원설명회 연 5~6회 참석
-파파안달부루스(cafe.daum.net/papa.com)

‘수학은 내 친구’ 개념 정리부터

그는 어려서부터 수학 감각이 남달랐다. 타고났다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수학을 좋아했고, 또 잘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엄마 김씨가 한 학기 동안 풀라고 사준 문제집을 3일 만에 다 끝내고 “또 사다 달라”고 졸랐다. 초등학교 교사인 김씨가 조기교육에 크게 신경 쓴 것도 아니었다. 학원도 초등학교 5학년이 돼서야 보냈고, 공부 한 번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었다. 평소에 “좋은 습관 길러야 한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만 강조했을 뿐이다.

 류군은 수학을 잘하는 이유에 대해 “좋아하는 게 비결”이라고 말했다.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축구를 하는 것처럼 수학 문제 푸는 게 재밌다는 얘기다. 그는 국어·영어 공부하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수학 문제를 푼다. 수학 공부 하는 게 그에게는 휴식이다. 류군은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를 제대로 풀어보지도 않고 ‘어렵다’ ‘재미없다’고 한다”며 “수학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게 실력을 키우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수학 개념 정확히 파악하기다. 류군은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 평균값의 정리 등의 공식을 무작정 외우지 않고 웬만하면 증명을 꼭 해본다. 증명을 해보면 그 공식이 나온 원리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어 암기도 잘되고 왜 그 공식을 배워야 하는지도 깨닫는다.

 문제가 풀릴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도 수학 실력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리면 해답을 보지 않고 적어도 세 가지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해 본다. 그래도 안 풀리면 끼니를 거르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전날 못 푼 문제와 씨름한 적도 많다. 류군은 “수학 과목은 출제자가 정해놓은 길을 제대로 가면 오답이 나올 수가 없는 명확하고 논리적인 과목”이라며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았을 때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온 뒤에는 수학 문제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취미가 ‘수학 문제 만들기’라고 말할 정도다. ‘다항함수의 미분’ 단원에서 만든 문제는 기말고사 후 자습시간에 만들었다. 대부분 학생이 노는 시간에 그는 수학 문제를 만든 거다. 이렇게 완성된 문제는 유인물로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문제 질을 확인하고 오류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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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내용도 여러 번 보면 알게 돼”

다른 우수한 학생들처럼 어려서부터 꾸준히 독서를 한 것도 좋은 성적받는 비결이다. 독서는 배경 지식을 쌓는 것 외에 집중력을 키우는 데도 효과가 있었다. 책이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으며 끈기를 길렀다. 류군은 “학년 초 이뤄진 적성검사에서 ‘수 이해력’ 외에 ‘언어 이해력’이 상위 0.1%가 나온 것도 독서의 힘”이라고 말했다. 보통 자연계열 학생들은 언어 감각이 부족하기 마련인데 류군은 독서를 통해 이를 극복했고,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을 기른 덕분에 지금도 TV 보는 걸 즐기지 않는다.

 독서는 지적 호기심도 채워줬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정규 교육과정을 넘어선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탐구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하지만 수학학원을 다녀도 대부분 판에 박힌 듯 똑같은 내용을 가르쳤고,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건 배울 수 없었다.

 그때부터 수학 도서를 찾았다. 대학에서 배우는 ‘대수학’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이때다. 이후 『오일러 상수, 감마』 『수학사』 『리만 가설』 등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읽은 게 6~7권이 넘는다. 대부분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나 관심 두는 책이다. 예컨대 『오일러 상수, 감마』는 수학에 나오는 상수 중 하나인 감마(γ)에 대한 책으로 조화급수·부조화급수·차도표기법·복수함수론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처음부터 술술 읽어나간 건 아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를 때도 잦았지만 포기한 적은 없다. 어려운 내용은 인터넷이나 또 다른 책을 찾아가며 최소한 세 번 이상 읽었다. 그는 “처음에는 몰랐던 내용도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됐다”며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안 나오고 수능 점수 올리는 데 도움이 안 되지만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더 알게 된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깊게 공부한 덕분에 고등학교에 올라온 후 수학 과목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한다. 모의평가는 물론,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도 만점을 받았다. 학교 내신시험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치러진 여섯 번의 수학시험에서 객관식 문제는 다 맞히고 서술형 문제에서 1.5점 감점된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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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찾은 후에도 두 번씩 점검

하지만 수학 외에 국어·영어 과목에는 시간 투자를 많이 한다. 최근에 영어 성적 올리면서 “성적은 노력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실 영어는 그가 자신 없는 과목 중 하나였다. 보통 2~3등급을 왔다 갔다 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는 전교 39등을 해 턱걸이로 2등급에 들었다. 43등까지가 2등급이었다.

 기말고사 때는 제대로 대비할 마음을 먹고 공부시간부터 늘렸다. 원래 시험 준비기간 한 달 중 일주일을 영어 공부에 투자했으면 기말고사 때는 2주 동안 영어 과목에만 매달렸다. 교재·부교재를 암기한 후 제대로 외웠는지 손으로 써보고, 틀린 내용 확인하고 부족한 내용만 다시 또 봤다. 교재 한 부분을 가리고 알맞은 문장을 쓰라고 하면 바로 쓸 수 있을 정도였다. 1학기 중간·기말고사를 합한 영어 성적은 전교 3등이었다. 노력이 결실을 본 거다.

 국어 과목도 마찬가지다. 내신시험 공부할 때는 똑같은 내용을 적어도 6~7번은 읽는다. 교과서·자습서·문제집을 순서대로 보면서 모든 내용을 통째로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시험을 치를 때는 쉽게 답을 찾은 문제도 나머지 보기가 왜 답이 아닌지 논리적으로 이유를 찾은 후에야 넘어간다. 이렇게 두 번씩 점검하면서 푸는데도 시간은 늘 여유가 있다.

 꼼꼼하게 지문을 읽는 게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이다. 특히 모의평가에서 대부분 학생은 시간 절약을 위해 문제부터 보고 지문의 핵심 내용만 대충 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류군은 어렵고 난해한 지문도 완벽하게 알 때까지 보고 또 본다. 도중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두세 번 정도 더 읽는다. 이렇게 내용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면 지문을 가리고도 막힘 없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여기에는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으로 내용을 정리하며 책을 읽는 습관이 도움이 됐다. 김씨는 “조선왕조실록을 읽을 때는 인물 관계도를 머릿속으로 만들어 가면 읽더라”며 “습득한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하지만 류군은 타고난 능력보다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IQ가 높고 집중력이 좋아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뛰어난 성적을 받을 수가 없다는 논리다. 그는 “공부에는 왕도(王道)가 없다”며 “성적이 안 오르는 사람은 스스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전민희.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