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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잘난 놈은 특목고, 못난 놈은 대안학교 가라고?"

"잘난 놈은 특목고, 못난 놈은 대안학교 가라고?"

[인터뷰] 경남 첫 '대안교육특성화중학교' 남해상주중 여태전 교장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잘난 놈들은 '특목고' 보내고 못난 놈들은 '특성화고'나 '대안학교'로 보내야 한다는 발상에서부터 우리 교육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자는 의식을 넘어서 이제는 정말이지 학교 교육에서부터 '함께 가자 우리'를 외칠 수 있도록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대안교육 전문가로 알려진 여태전 남해상주중학교 교장이 한 말이다. 여 교장은 대안 교육의 경험과 교육 철학을 담은 책 <간디학교 행복찾기>와 <공립대안 태봉고 이야기> 등을 펴냈고, 경남 첫 공립대안기숙형고등학교인 태봉고 교장에 이어 지금은 상주중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태전 남해 상주중학교 교장.
ⓒ 윤성효
최근 상주중은 교육부로부터 경남 첫 대안교육 특성화중학교로 지정 받았다. 상주중은 지난 5일 '2016학년도 신입생을 위한 입학설명회'를 열었고, 오는 10월 입학원서 교부와 접수를 한다.
여태전 교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대안학교는 행복 학교, 꿈의 학교, 삶의 학교를 지향한다"며 "앞으로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가진 상주중이 중심이 되어 '돌아오는 농촌 다시 사는 마을학교'의 이상을 실현하고, 교육의 3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다 함께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또 그는 "그 어떤 교육 과정이나 프로그램보다 소중한 것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라며 "단 한 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사랑과 배움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호소했다.

이 학교는 상주해수욕장과 바로 붙어 있다. 교실에서 창문을 열면 해수욕장 파도 소리가 들릴 정도다. 상주중학교 교장실은 복도 쪽 창문이 낮고 밖에서도 훤히 보이도록 해놓았다. 그만큼 교장실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경남 첫 대안교육 특성화중학교인 상주중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교육계 안팎에서 관심이 높다. 다음은 11일 여태전 교장과 나눈 대화다.

"결국은 대안학교가 사라지고..."

- 대안교육 특성화중학교는 어떤 학교인지?
"특성화중학교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 근거해서 운영되는 학교다. 체육 분야, 국제 분야, 예술 분야, 대안교육 분야 등으로 나누어 현재 전국적으로 30여 개 특성화중학교가 지정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상주중은 대안 교육 특성화 중학교로 전환되었다."

- 이렇게 전환되는 사례는 많은지?
"대안교육 특성화 중학교는 경남에서는 상주중이 처음이지만, 전국적으로는 13번째다. 이렇게 일반 중학교가 대안학교로 전환되는 사례는 전국에서 3번 째다. 앞으로 농산어촌의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들이 이렇게 대안학교로 전환하는 경우가 하나 둘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 아직도 대안교육이나 대안학교를 많이 오해하고, 편견도 많다. 이 점을 평소에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그렇다. 대안교육 운동이 펼쳐진 지 20여 년 되었는데 아직도 오해와 편견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흔히, 좁은 의미로 보면 대안학교는 문제아나 학교 부적응 학생들만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물론 그런 친구들을 돌보고 챙기는 기능을 하는 게 대안학교의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넓은 의미로 대안학교를 이해해야 한다. 대안학교는 오늘의 교육 문제를 아이들 탓이나 부모들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오히려 기존의 학교와 공교육의 모순을 먼저 성찰하면서 아이들의 몸과 정서에 맞는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일종의 대안교육 운동이요, 교육 본질 회복 운동으로 바라봐야 한다.

지난해 소위 말하는 진보 교육감이 많이 당선되면서 지금 전국적으로 '혁신 학교' 바람이 불고 있는데, 대안학교는 어쩌면 혁신학교보다도 더 과감하게 '미래형 교육 과정'을 도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학교가 대안학교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대안학교라는 말이 없어지고 그냥 행복 학교, 꿈의 학교, 삶의 학교만 있으면 된다."

 남해 상주중학교 교장실.
ⓒ 윤성효

- 선생님이 꿈꾸는 대안교육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간단하다. 사회의 축소판을 학교에 그대로 옮겨놓고 서로를 용납하고 인정하면서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가 내가 꿈꾸는 대안교육이다. 부잣집 아이, 가난한 집 아이도 함께 어울려야 한다. 소위 말하는 '문제아'와 '날라리'들에게도 범생이 친구가 꼭 필요하다.

오늘의 교육이 자꾸만 불행해지는 것은 학교가 친구들끼리 사랑과 우정을 싹트게 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음을 망각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잘난 놈들은 '특목고' 보내고 못난 놈들은 '특성화고'나 '대안학교'로 보내야 한다는 발상에서부터 우리교육은 뒤틀리기 시작했다고 본다.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자는 의식을 넘어서 이제는 정말이지 학교 교육에서부터 '함께 가지 우리'를 외칠 수 있도록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이 내가 꿈꾸는 대안교육이다."

"선생님들부터 자존감이 높아야 행복한 학교 가능"

- 앞서 공립 대안학교인 태봉고 교장을 지냈고, 이제는 대안교육 특성화 중학교를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는데 각오는?
"지난 4년 동안 태봉고에서 '공교육을 살리는 희망의 징검돌'을 놓았다면, 이제 상주중에서는 '돌아오는 농촌, 다시 사는 마을학교라'는 그런 구호를 내걸고 교육 마을 하나를 만들어보고 싶은 큰 꿈을 꾸고 있다. 이름 하여 '남해금산 교육마을'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행복한 마을학교 살리기'로 거듭나야 한다. 농촌 지역 마을 학교를 되살리고 도회지 큰 학교의 학급 수를 줄여야 한다. 그러면 도시와 농촌이 동시에 행복해지는 상생 효과를 올릴 수 있다. '마을 학교 살리기'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면, 오늘날 사회적으로 심각한 학교 폭력 문제, 학교 중단 문제, 학교 부적응 문제 등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이 길이 한국 교육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대책이다.

아이들은 유년 시절에 흙을 밟고 비바람 소리 들으면서, 때로는 그 비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뛰어놀아야 한다. 회색빛 도회지의 닭장 같은 아파트를 떠나 산으로, 들로, 바다로 마음껏 뛰어다니면서 건강한 '야성'을 길러야 한다. 그 '야성'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갈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보물섬 남해는 이런 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다. 섬이라는 상징성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남해대교와 창선대교만 건너면 남해의 그 어떤 학교에서든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행복한 교육 공화국 남해'를 상상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소도(蘇塗), 교육해방구를 여기 보물섬 남해에서 이루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

 남해 상주중학교는 상주해수욕장과 바로 붙어 있다.
ⓒ 윤성효

- '남해 금산 교육 마을'이란 말이 생소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단순히 상주중 하나 되살리자는 꿈만으로는 내 가슴은 뛰지 않는다. 내가 꿈꾸는 '남해금산 교육 마을'의 요약서는 이렇다. 우선 상주초교가 '행복 학교'로 거듭나서 학생들이 몰려오기를 기원하며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 초등학교가 살아야 상주중도 함께 살 수 있다. 상주중에 상주초교 미리 전학을 오면 우선 선발하기 때문에 서로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함께 지혜를 모아 폐교된 상주초교 양아분교장을 우리 학교가 임대하여 상주중 부설 보물섬바다학교를 열 계획이다. 일종의 주말 학교, 계절 학교로 되살리는 꿈을 꾼다. 더 나아가 2018년 이후에는 여기 상주 땅에 태봉고와 같은 대안교육 특성화고등학교까지 신설하자는 꿈을 꾼다. 여기에 덧붙여 금산 보리암 아래 '생태 교육 마을'을 새롭게 조성하여 항구적인 교육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다."

- 그렇다면 상주중은 어떤 교육 과정을 편성하고 있는지?
"특성화중학교는 태봉고와 같은 특성화고등학교의 교육 과정을 앞 당겨서 배운다고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중학생들의 신체적, 정서적 발달 과정에 따라 운영 방법은 조금 차이가 날 것이다.

국영수사과음미체 등 60% 정도의 기본 필수 교과는 최소한의 시수를 확보하여 모두 이수하게 하고, 40% 정도의 특성화 교과를 보다 알차게 운영한다. 상주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천혜의 자연 자원을 이용한 해양 스포츠도 중요한 교육 과정으로 편성되었다.

사실 오늘의 아이들이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도록 넘쳐나는 좋은 교육 프로그램들이 아이들의 바람직한 성장과 발달을 가로막아왔다는 '큰 성찰' 속에서 새롭게 생겨난 것이 대안교육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번에 한 아이씩' 바라보면서 아주 유연하고 탄력적인 교육 과정을 운영하려고 한다. 자연보다 더 좋은 교육과정은 없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자연이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울 것이다."

- 일반 학교에서 대안학교로 전환되면 무엇보다 교사들의 새로운 교육관이 요구될 것 같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물론이다. 아무리 좋은 시설과 교육 과정을 마련해도 학생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의 변화가 없으면 새로운 교육을 할 수 없다. 우리 선생님들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반복적으로 연수연찬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선생님들부터 자존감이 높아야 하고 행복 지수가 높아야 한다.

흔히 대안학교 교사는 대안학교 현장에서 길러진다고 말한다. 아무리 탄탄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실제 아이들과 함께 뒹굴면서 한 3년은 살아봐야 비로소 대안학교 교사로 거듭날 수가 있다. 아이들을 비난하거나 함부로 꾸짖지 않고 사랑으로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대안학교 교사로서 첫걸음이 시작된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열정과 변화의지는 아주 높다. 오히려 신설 학교보다 더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중학생을 어리다고 보지 마라"

- 지금 기숙사와 특별 교실을 증축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난 8월 기공식을 하고, 지금은 주말도 없이 기초 공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능하면 공정을 앞당겨 내년 2월 말까지는 완공해 3월 입학생들의 이용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기숙사 학생 수용 인원은 총 72명이다. 전교생 90명 중에서 마을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는다."

 

 남해 상주중학교 학생들이 상주해수욕장에서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 상주중학교

- 중학생들이 기숙사에 생활하는 것은 너무 일찍부터 부모를 떠나기 때문에 여러 면으로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찍부터 부모 품을 떠나야 한다는 게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가능하다면 부모가 품에 끼고 따뜻한 밥 해먹이면서 집 앞에 있는 학교를 보내는 게 좋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형편에 놓인 가정도 많다.

사랑은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오늘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면서 자녀들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못할 정도로 바쁘기만 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각종 학원 다니기에 바쁘다. 이러니 가정이 아이들을 온전히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약화된 가정의 기능을 보완하고 채워주는 역할과 기능을 하자는 게 기숙형 학교다.

기숙사 생활은 물론 많이 불편하고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 불편과 힘듦을 잘 견디고 이겨내는 것이 바로 훌륭한 인성 교육이다. 아이들이 한 방에서 4명이 함께 부대끼면서 서로 다름을 용납하고 인정해주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고 함께 사는 '공동체성'도 길러진다.

오늘날은 가정에서 거의 다 한 두 자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함께 사는 법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기숙사생활은 교과서로도 배울 수 없는 인성교육을 위한 탁월한 잠재적 교육 과정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중학생을 너무 어리다고만 볼 것이 아니다. 자녀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이가 세상에서 홀로 살아갈 수 있는 독립성을 길러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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