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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경기 ‘9시 등교’ 1년… ”학생들 활기 찾고 학업성취도↑“

경기 ‘9시 등교’ 1년… ”학생들 활기 찾고 학업성취도↑“

-지역 학교현장 가봤더니…학생ㆍ교사 모두 ”긍정적“
-“맞벌이가정 배려ㆍ수험생 우려…해결해야 될 과제”



[헤럴드경제(수원ㆍ화성)=박정규 기자] 오전 8시40분이 지났지만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다급함이 없었다. 친구와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고 교문 앞에 나와 있는 선생님과도 여유로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등굣길을 지켜보던 김대원 화성 향남고 교장은 ”9시 등교 이후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라면 아이들 표정과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향남고는 지난해 8월 말 학생, 학부모, 교사 대표 17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토론회를 열고 의견 조사를 거쳐 등교시간을 종전 8시20분에서 9시로 40분 늦췄다.

처음엔 버스 시간 때문에 오전 8시20분까지는 학교에 도착할 수밖에 없는 장거리 통학 학생들과 3학년 수험생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착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오전 9시 이전에 등교하는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독서)과 다목적 강당(스포츠)을 개방했으나 이마저 이용하는 학생이 초기의 절반으로 줄었다. 일찍 등교하는 3학년 정진반(특별반) 학생도 27명에 불과하다.

그 대신 종종 새로운 아침 풍경을 볼 수 있게 됐다. 오전 8시20분 등교시간이 임박해 학교 앞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아찔한 광경이 사라졌다. 대신 봄과 가을엔 음악 동아리 학생들이 연주와 노래로 ‘음악이 있는 등굣길’을 연출한다. ‘친구사랑 주간’에는 학생들끼리 교문 안팎에서 사탕을 주고 받는다.

학업성취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지역적 한계를 딛고 올 대학 입시에서 졸업생 97%가 대학에 진학했다. 김 교장은 ”2∼3년 전에는 (1교시부터)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한 반에 10명 안팎이었는데 요즘은 1∼2명 정도“라며 ”졸음 극복용으로 한 반에 2∼4개씩 비치한 입식 책상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남 서현고는 ‘9시 등교’를 ‘일반고 살리기’에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이 학교는 아침·저녁 시간을 활용해 2∼6명이 자기주도학습 활동을 하는 스터디 그룹이 155개에서 197개로 42개가 늘어났다. 가장 많이 활동하는 시간은 오전 8∼9시이다. 이 때문에 활동 공간이 부족해 교장실과 행정실까지 내 줬다. 신도시 고교생들의 성적 향상 욕구를 ‘9시 등교’ 정책에 접목한 셈이다.

이 학교의 허왕봉 교장은 “‘9시 등교’ 이후 쉬고 싶은 학생은 쉬게 하고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공부하면서 자율권, 휴식권, 학습권이 동시에 보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취임 이후 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 9월 1일부터 ‘9시 등교’를 전면 시행한 지 1년이 됐다. ‘건강한 성장과 활기찬 학습’을 모토로 출발했으나 전격 시행한 탓에 초기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초ㆍ중등교육법’상 학교장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교원단체의 반발과 자녀 돌봄을 걱정하는 맞벌이 가정의 반대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 같은 반대를 딛고 이제 도내 초ㆍ중ㆍ고교 2283곳 중 ‘9시 등교’ 참여 학교는 2229곳(97.6%)이나 된다. 미시행 학교는 중학교 3곳, 고교 51곳 등 54곳(2.4%)에 불과하다.

경기도에서 시작한 9시 등교는 강원, 서울, 인천 등으로 확대되면서 사실상 대세로 자리 잡았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지난해 11월∼올해 1월 수행한 ‘9시 등교 효과 분석’ 정책 연구를 보면 신체ㆍ정신 건강적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평균 수면시간은 7분(초등학생)∼31분(고교생), 아침식사 비율은 8%포인트 안팎으로 늘었다.

그럼에도 중ㆍ고교생의 수면시간은 설문조사 기준 7시간54분과 6시간47분으로 미국 국립수면재단의 권고 기준(8.5∼9.5시간)에는 미치지 못한다.

고교생 자녀 둘을 둔 학부모 김모(50ㆍ수원시) 씨는 ”여전히 수면은 부족하고 등교 시간을 맞추느라 허덕이는 광경이 매일 아침 반복된다“며 ”9시 등교로 크게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변화는 수업 분위기와 행복감이다. ‘수업분위기가 활기차졌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워졌다’는 반응이 늘었다.

설문조사에서 학생 71.6%, 학부모 65.1%, 교사 71%가 ‘9시 등교’에 찬성했고 시행초기에는 반대했다가 현재는 찬성으로 돌아선 비율이 학생 22.6%, 학부모 21.9%, 교사 35.9%로 조사됐다.

‘9시 등교’를 도입하지 않은 학교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대체로 학생과 학부모의 반대 의견 우세, 점심시간 지연, 대중교통 이용 불편, 통학길 혼잡 등이 그것이다.

고양 백석고와 대화고는 오전 8시 10분 등교를 고수하고 있다. 백석고 이철훈 교장은”민주적인 의견 수렴(학교 구성원 반대 68%)과 교육적 측면(오전과 오후 수업시간 불균형), 지역 여건(인근 초ㆍ중학교 등교시간 중복 혼잡) 등을 고려했다“며 ”교육 문화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시간(오전 8시10분 입실ㆍ8시40분 시험 시작)과 불일치로 인한 수험생들의 생체 리듬 불균형을 걱정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겉으로 보기엔 수면권과 조식권이 보장됐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현실적인 측면을 보면 후유증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학생들만의 문제를 떠나 학부모의 생활시간표, 교통문제, 지역상황 등을 고려해 학교나 학부모에게 진정한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 관계자는 “‘비정상의 정상화’의 기조 아래 ‘9시 등교’를 수업 혁신과 연계하는 동시에 수능과 모의고사 시간 조정을 포함한 대입 제도 개선 건의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파행 운영ㆍ미시행 학교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컨설팅과 함께 지역 간담회, 학부모 연수로 인식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학생 참여 수업 활성화, ‘더 좋은 일반고’ 정책과 연계해 교육 본질에 입각한 학교현장의 변화를 유도할 방침이다”고 덧붙였다.

fob14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