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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고교 다양성 인정하되, 서열화는 벗어나자

“고교 다양성 인정하되, 서열화는 벗어나자”
한겨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014년 7월30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에서 지정이 취소된 자사고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광복 1945, 희망 2045] 다시, 교육부터
교육갈등 접점 찾기 ④

고교체제, 서열화도 평준화도 넘어서야

지난해 12월 교육부가 현 중3이 치르는 2018학년도 수능에서 영어과목 성적을 ‘등급’만 제공하는 절대평가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수능을 아예 절대평가 체제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고교 서열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수능 비중 축소가 학생부 비중 강화로 귀결될 경우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 내신 우대 등 고교등급제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때문에 수능 절대평가의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현재의 고교 ‘서열화’ 체제를 ‘수평적 다양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수능 절대평가 전환, 진보-보수 이견 없어

수능 절대평가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방안이라는 데 진보, 보수는 거의 합의를 이룬 상태다. 실제 각각을 대표하는 단체가 내놓은 개선안에는 모두 절대평가가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보수적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기초·기본학습능력을 절대평가로 측정하는 ‘국가기초학력평가’를 제안했고, 진보 진영에서도 지난 2월 2019학년도부터 수능 전 과목에 절대평가를 도입하자는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의 ‘대입제도 3단계 개선방안’이 나왔다. 이어 새정치연합 수능대책위도 대학별 고사 시행 우려 등에 대한 보완책을 전제로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도입에 찬성 뜻을 밝혔다.

주목할 만한 점은 진보·보수 모두 절대평가 시행 이후 대학이 변별력 확보를 명분으로 실시할 수 있는 본고사 형태의 대학별 고사를 반대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대학별 고사 없이 수능이 절대평가 체제로 전환될 경우 향후 대학입시는 학생부 중심으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수능 절대평가’ 사회 공감대
입시 수능 →학생부 중심 가려면
차이 있지만 차별은 없는
고교 수평적 다양화 이뤄져야

■ 현행 고교 서열화 체제, 수평적 다양화로 가야

장기적으로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해 변별력을 잃고 학생부 중심 전형이 이뤄지면, 지금처럼 고교가 학력 또는 입시 실적 기준으로 서열화해 있을 경우 고교등급제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최근 입학사정관이 참여하는 학생부 종합 전형에선 고교 유형을 막론하고 학교 간 학력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해당 학교 출신자들이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많이 오는지, 수능이나 논술로 많이 오는지를 보는 식이다. 논술 응시가 많으면, 내신은 낮지만 학력은 높은 학교라고 본다.

전문가들은 학생부가 대학 입시에 가장 중요한 전형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고교 서열화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병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대변인은 “내신도 사실 성취목표제라는 이름으로 절대평가로 가고 있다. 특목고·자사고로 서열화한 고교 체제를 개편하지 않으면 대학이 결국 고교 유형으로 학생을 변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유성룡 입시분석가(1318대학진학연구소장)는 “한국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객관성과 공정성이다. 학생부가 공신력을 얻으려면 모든 고교의 학생부 성적이 객관적으로 동등해야 하는데, 현재 고교는 수준별로 서열화돼 있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학생부를 활용한 전형은 수능보다 신뢰도가 낮다. 지난해 한양대 대입전형아르앤디(R&D)센터의 ‘대입전형 수시전형 인식조사’를 보면, 교사(73%)·학생(69%)·학부모(77%)가 가장 공정한 전형방법으로 ‘수능’을 꼽았다. 반면 비교과에 대한 정성평가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학생부 종합 전형’은 가장 많은 학생(44%)들이 불공정하다고 꼽았다.

특목·자사고 성적위주 전형 고치면
폐지-유지 대립 반복 안해도 돼
‘보편·형평·다양·수월·자율성’
고교교육 이념 서로 양립 가능
문과는 인문·사회·경상·국제
이과는 자연·의학·공학 세부화를

결국 학생부 중심 입시로 가려면 학교 간 격차를 최소화하는 고교 체제가 선행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고교 다양화 정책이 학력에 의한 서열화로 변질되고 일반고 황폐화를 초래했다는 점은 보수도 인정하고 보완·개선을 요구한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성적 위주로 선발하면서 우수 학생을 싹쓸이하는 문제는 개선돼야 한다. 고교 교육이 상향 평준화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수는 “다양화한다면서 일반고 위에다 특목고, 자율형사립고, 자율형공립고를 올려놓고 특성화고 위에다가 마이스터고를 올려놓는 수직적 다양화는 교육적으로도 나쁘고 진짜 다양화도 아니다. 차이는 있지만 차별은 없는 수평적 다양화로 가야 한다”고 했다.

■ 진보는 다양성 인정, 보수는 학력 위주 선발 포기해야

수평적 다양화 체제는 특목고·자사고의 설립 취지를 인정하는 선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성적 우수 학생을 독점하고 교육과정이 입시 위주로 운영되는 현재의 특목고·자사고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정을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하고, 현행 입학전형 방식을 개선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렇게 되면 특목고·자사고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진보 진영이 동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보수 진영은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과 고교 다양성 확보라는 실리를 챙길 수 있다.

이미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서울권 자사고에 한해 실시한 입학전형은 특목고·자사고를 수용하는 수평적 다양화 체제 도입의 단초를 마련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일반고살리기 티에프(TF)팀에서 일했던 한만중 개포중 교사는 “지난해부터 서울권 자사고가 1단계 추첨을 할 때 성적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올해 자사고 학생 인적 구성에 큰 변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선발방식의 변화만으로 서열화에 따른 부작용을 개선할 수 있다면, 기존에 폐지냐 아니냐의 대립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고교 체제 개편을 고교 교육의 질을 높이는 ‘공교육 정상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승현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 정책실장은 “고교 체제를 전통적인 형평성-수월성의 대립으로 보지 말고 제3의 관점에서 미래 사회에 걸맞은 인재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로 접근하면 진보, 보수가 충분히 합의할 수 있다”고 했다.

<고교체제 개편 정책의 이념과 방향>(교육문화연구, 2014)을 쓴 이차영 한서대 교수는 “역대 정부에서 고교 체제 개편은 보편성, 형평성, 다양성, 수월성, 자율성이라는 5가지 이념으로 이뤄져 왔다. 5가지 이념은 서로 양립할 수 있으며 향후 고교 체제는 이를 모두 실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홍후조 교수는 “기존 평준화-서열화 논쟁은 아이들을 문과 아니면 이과로 나눈다는 점에서 다양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고교 체제는 진로·진학 중심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목표 아래 문과의 경우 인문·사회·경상·국제 등으로, 이과는 자연·의학·공학 등으로 다양화해야 한다. 단위 학교에서 이를 달성할 수 없으니 학교 간에 역할분담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수평적 다양화가 달성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도 특목고·자사고의 선발 방식 개선을 장기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오승걸 교육부 학교정책관은 “선발권을 아예 주지 않는 게 좋은지, 아니면 지금의 자기주도학습전형처럼 일정 부분 선발권을 허용하는 게 좋을지는 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할 과제다. 사학의 건학 이념에 따른 자율성과 교육의 다양성도 인정하면서 공교육에 부합하는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수평적 다양화

고교 체제 개편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수평적 다양화’는 기존의 ‘평준화 체제’와 ‘수직적 다양화 체제’와 대비된다. 쉽게 말해 평준화와 다양화의 장점만을 취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고교를 성적에 따른 상하우열이 없도록 하면서 고교 유형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수평적 다양화는 고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되, 이들이 성적 우수 학생을 독점할 수 없도록 선발권을 제한해 학교 간 학력 격차가 발생하는 일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는 ‘평준화’의 기본 철학을 수용한다. 1974년 도입된 평준화 체제는 ‘보편성’과 ‘형평성’을 강조했으나 학교교육을 획일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직적 다양화’ 또는 ‘서열화 체제’는 학교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취지 아래 다양한 유형의 고교 설립을 허용한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체제를 일컫는다. 외국어고·과학고·자립형사립고 등은 지필고사 등을 통해 학생을 따로 뽑을 수 있는 선발권을 행사했고 성적우수 학생들이 몰리면서 이들 학교를 정점으로 고교체제가 서열화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입시 실적을 기준으로 학교들을 한 줄로 세운다는 점에서 수평적 다양화와 구분해 ‘수직적 다양화 체제’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