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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이야기

[논술] 현장보고-학교 통합교과논술만이 길이다

 

2008학년도 대학입시 정시모집 전형을 앞두고 고교와 학원마다 논술 교육이 한창이다. 이번 입시에서는 학생부와 수능이 등급제로 시행됨에 따라 논술의 비중이 커졌다. 합격자 선발에 어려움을 느낀 대학들이 논술을 도입하고 비중을 강화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형태 역시 통합교과형으로 대부분 수렴되면서 교과와 논술의 경계가 사라지고 학교 교육의 역할이 많아졌다. 그러나 현장 교사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을 호소한다. 학생들을 위해 묵묵히 논술교육에 힘을 쏟고 있는 교사의 목소리를 그대로 싣는다.(편집자 주)

◆ 언론 보도와 냄비 근성

온 나라가 논술로 떠들썩하다. 무능한 학교 교육 사교육 논술 열풍, 유명강사 찾아 삼만 리가 주된 표제다. 요즘 언론의 보도를 보면 마치 돌발적 자연재해를 보도하듯이 논술열풍을 다룸으로써 학부모들의 불안과 근심을 가중시킨다.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못할 논술을 왜 시험을 치는 거야? 학교 선생이 그걸 못 가르치니까 학원에라도 보내야지.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논술을 준비하지 않으면 대학을 갈 수 없고, 논술을 배우려면 사교육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자연스런 공식을 심어주기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 요즘 언론 보도들이다.

2008학년도 대학입시 세부안이 발표된 작년 이맘때 전국은 논술 광풍이 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올해 3월이 넘어서면서 대부분의 매스컴은 논술에 대해 침묵했다. 당연히 국민들의 관심에서도 일정 부분 멀어졌다. 그러나 언론의 침묵과는 달리 학교의 논술 열기는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대부분의 시·도 교육청이 주관하여 교사들을 위한 다양한 논술직무연수가 실시되었고 각 학교에서는 논술교육 동아리를 만들어 학교 논술교육을 위한 바람직한 방법에 대해 고민하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논술교육을 실시했다. 나아가 논술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교수방법과 다른 교사의 방법을 비교 검토하여 더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학교가 논술교육을 일정 부분 담당하면서 사교육 시장은 주춤했다. 타산을 맞추지 못한 논술 관련 사교육 시장은 언어영역을 비롯한 다른 부분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몇몇 일간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매스컴은 그러한 상황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제와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이 여기도 논술 저기도 논술, 전국이 논술로 떠들썩합니다.라고 외친다. 그 부채질에 살찌는 것은 사교육이다.

◆ 사교육 시장의 모순

강남의 유명 논술학원을 운영하는 학원장이 한 일간지에 쓴 글이다.

사교육은 된다 안 된다가 초점이 아니다. 솔직히 누가 더 잘 가르치겠는가. 우리는 일 년 내내 대학 논술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정작 출제하는 대학교수들도 우리만큼 고민 안 한다. 예시 문항을 철저히 분석하고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하는 게 사교육이다.

일 년 내내 논술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는 말. 학교 교사들이 볼 때 무척 부러운 진술이다. 교사들은 그렇게 고민할 시간이 없다. 담당 교과를 가르쳐야 하고 학생들의 학교생활, 심지어 학교 너머의 생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진학지도, 각종 보고와 같은 잡무와도 싸워야 한다.

물론 시간이 없다는 것은 단지 핑계일 수 있다. 문제는 더 본질적인 지점에 존재한다. 사교육 종사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논술문제이지 논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진정 필요한 교육은 단지 대학입시와 직접 관련된 논술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과정을 배우는 논술교육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예시 문항을 철저히 분석하고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하는 게 사교육이다.는 진술에도 엄청난 문제점이 숨겨져 있다. 예시 문항을 철저히 분석하여 다음해에 출제될 문제를 예상하고 답을 작성하는 방법을 기르는 것이 과연 논술의 전부인가? 이는 대학 논술고사를 위한 마지막 점검일 뿐이다. 그것이 전부거나 그것부터 시작한다면 결코 논술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가장 큰 오류는 그 다음 진술에 있다. 정말로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한다면 그 교육이 비록 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정말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정말 그것이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사교육이 알고 있다면 몇 백만 원의 수강료를 받으면서 단기 논술 완성이란 강좌 개설은 하지 말아야 한다.

◆ 학생, 학부모 의식도 문제

사실 사교육의 문제는 정체된 채로 이루어져 온 학교교육의 탓이 크다. 굳이 재론하지 않더라도 학교교육은 뼈를 깎는 각성과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학부모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에서 가장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집단이 수험생을 둔 엄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평상시 무척 합리적이고 사리분별력이 있는 사람조차도 내 자식만 통과하면 그만이라면서 무모하고 저돌적인 모습을 보인다. 학부모들에게 이런 글을 보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까? 사교육 시장 한 유명 강사의 자기반성이다.

보통 학원에서 8주간 이어지는 논술 수업에서는 매주 논술문을 내고, 강사로부터 첨삭을 받는다. 이와 관련, 학원가에서 통용되는 논술 첨삭의 불문율이 있다. 무조건 첫 주에 점수를 박하게 준다는 것. 1주차 첨삭에서 50점을 받으면 학생들은 그래, 내가 원래 논술 못하잖아라고 스스로 자신의 점수를 인정한다. 2주차에서 강사는 살짝 점수를 올린다. 55점. 어? 내가 일주일 만에 실력이 늘었네? 학생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수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3주차에 60점, 4주차에 70점을 받으면 학생들은 진짜 자신의 논술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며 자신감을 갖는다. 이때 5주차에서 선생은 슬쩍 점수를 내린다. 다시 60점. 학생들은 수업 중반에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시 추스르며 긴장감을 갖는다. 6주차에 70점으로 올리고, 7주차에 80점, 마지막 주에 90점으로 마무리하면 학생들은 8주간 논술 수업을 통해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하고 강사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 내린다. 이런 행태는 논술 과목이기에 가능하다. 정답과 오답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점수를 이용해 학생들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 왜 논술인가?

문제의 본질은 사교육이 나으냐? 학교교육이 나으냐?하는 것이 아니다. 논술을 왜 가르쳐야 하는가? 논술 교육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냐? 그것에 대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논술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는 길을 알려주기 위한 교육이다. 논술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하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 대화가 가능한 사회 혹은 토론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인터넷의 확대로 걸러지지 않은 입말을 그대로 활자화하는 것에 익숙해진 현재의 아이들에게 논술은 분명 어려운 과제이다. 더구나 다양한 교과목의 내용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어려운 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방치할 수는 없다. 어려워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사교육을 이기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것이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교교육이 바로 서는 길이고 아이들이 바로 서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정제된 글은 단순히 형식을 다듬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화제를 깊이 있게 통찰하고 다양하게 사고하는 과정을 통해서 완성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양성된 인재가 이 시대에 필요한 인재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논술은 21C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첩경이다.

◆ 학교 논술교육은 가능한가?

통합교과논술은 다음의 이유로 학교 교육에서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고, 당연히 달성 가능한 목표가 된다. 첫째, 모든 교과수업이 통합교과논술 수업이 될 수 있다. 둘째, 모든 교과의 교사가 통합교과논술 교사가 될 수 있다. 셋째, 모든 교과의 교과서가 통합교과논술의 교과서가 될 수 있다. 논술의 본래 취지를 교사들이 공감하고, 나아가 학부모들이 공감하고, 그 다양한 시도와 노력에 대해 언론이 바르게 보도해 준다면 우리는 호들갑스러운 논술고사대신 꾸준히 다져가는 사고를 살찌우는 논술교육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단기 속성으로, 주입식 암기로, 번지르르한 글 짜깁기 훈련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타인과 의사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사고의 틀을 지닌 학생들을 양성해 낼 수 있다. 시간이 필요하고, 교사들의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고, 학부모의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