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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의 만남

"내 정체성은 철학자, 연예인이 결코 아니다"

"내 정체성은 철학자, 연예인이 결코 아니다"


강신주씨는 <철학VS철학>(2010)<김수영을 위하여>(2012)를 자신의 주조가 담긴 저서로 꼽는다. 인문학적계보를 시인 김수영과 연결 짓는 강씨는 "나를 비판하고 싶다면 <김수영을 위하여>를 먼저 읽고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인문학의 아이돌' 강신주 박사

책 쓰며 하루 평균 2.4개 강의… '힐링캠프' 출연하며 인기 절정

"내게 중요한 인문학 가치는 깊이… 타인 만나 이해하면서 깊이 확장

카페 벙커원 '다상담' 내용 정리하면 논어처럼 훌륭한 철학서 가능"

인터뷰 제안의 답신이 온 것은 새벽 4시경이었다. '아이돌 철학자'의 별칭을 얻을 만큼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철학자 강신주(47)씨에게 몇 차례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취해 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메일로 인터뷰를 요청하자 가능한 시간대만 간략히 적은 짤막한 답장이 돌아왔다. 지난달 초 SBS TV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로 유명세의 정점을 찍은 후 일정이 바빠졌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했지만 그의 설명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가 공부하고 음악 들으며 집필하는 온전한 내 시간이기 때문"이라며 "요즘은 불교 철학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최근 인문학을 사회 주요 키워드로 끌어올리며 화제의 중심에 선 강씨는 그 반향이 인문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 대신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돌아오는 게 불만스럽다고 했다. 최근 그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만나 대중적으로 주목 받는 소감과 인문학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인터뷰 중 "내 정체성은 저자이자 철학자이지 연예인이 아니다"는 말을 수 차례 반복했다.

-'힐링캠프'출연 이후 지지보다 비난을 더 많이 받은 듯하다.

"당혹스럽다. 지난 8년 간 하루 평균 2.4개의 강의를 소화하고 26권의 단행본을 쓰며 바쁘게 사느라 위경련까지 앓았다. 그 노력의 피드백이 지금 큰 관심으로 오는 것 같다. 특히 서울 대학로에 있는 카페 벙커원에서 2012, 2013년에 진행한 상담프로그램 '다상담'은 애정을 기울인 소중한 경험이다. 어떤 철학자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버티며 사람들의 고민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겠나. 나는 소크라테스, 공자와 제자들이 그랬듯 사람들과 같이하며 산파 같은 역할을 하는 거다. 그들을 스스로 아프게 해 자신의 자리를 명료하게 발견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철학의 본령이라고 본다."

-출연을 결정한 이유가 뭔가.

"SBS가 제안을 했을 때 유명인의 성공 스토리를 다루는 기존 진행 방식이 아닌 다상담 형식이면 출연하겠다고 했다. 벙커원에서 사람들과 함께 고민한 정치, 경제, 가족관계, 폭력, 내면 문제 등이 진정성이 있다고 봤다. 사실 벙커원을 찾아오는 이들은 그래도 독서량도 많고 진보적인 사람들이다. TV 출연을 만류하는 제자들도 있었지만 TV와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고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이득을 고려했다면 '힐림캠프' 출연 이후 들어 온 고정 프로그램 제안을 거절했겠나."

­-특유의 직설화법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다. 확신에 찬 말투 때문에 상담 모습이 종교 부흥회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단 인문학자가 아니더라도 고민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듣는 사람이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전문지식을 동원해 점잖게 이야기하면 상담자가 자신의 고민을 비천하게 느끼지 않겠나. 인문학자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상담자가 스스로 아파하며 자신과 직면하도록 빙판에서 버텨 주는 게 내 역할이다. 종교 부흥회처럼 보였다면 그건 선생의 권위를 지키려는 내 강연의 방법적인 부분에 대한 인상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칼럼에 쓴 '냉장고를 없애라'와 같은 표현은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삶의 많은 부분이 자본주의에 종속돼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냉장고를 사적 탐욕의 상징으로 썼다. 앞뒤 맥락 없는 '냉장고를 없애라니!'와 같은 반응은 답답하다. 나는 글은 읽히게 써야 한다고 믿는다. 강력한 은유로 글을 써야 영향력이 있지 않겠나. 냉장고가 아닌 다른 소재를 활용하면 비난은 피했을지 몰라도 글은 밋밋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런 글을 쓴다고 진짜 냉장고를 버리는 사람은 없다."(웃음)

-고전 해석 학술서 등 초기 저작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근간이 자기계발서처럼 변했다고도 한다.

"초기라고 하면 고전 텍스트를 지금 시대 흐름에 적용되게 풀어낸 저작들을 말할 텐데,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이제 철학자의 이름과 개념을 빼고 이야기하니까 사람들이 착시를 일으키는 거다. 당연히 내 주장을 뒷받침할 철학자와 인문론을 그때그때 다 제시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전문지식이 많은 박사학위 소지자로서 그게 내게는 더 유리한 게임이다. 특히 무명 강사였던 초기에는 특정 지식을 가르쳐야 강의가 열리지 않았겠나. 하지만 내가 떠드는 몇몇 이야기가 정보가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장식품이 되는 게 싫다. 벙커원 다상담을 잘 정리하면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논어처럼 훌륭한 철학 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들이 학회지에 논문 쓰는 것만 철학으로 봐야 한다는 건가."

-상담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

"인문학은 고유명사의 학문이다. 사람마다 자기 이름에 걸맞은 가치가 있다. 내 스타일이 묻어나면서도 사람들을 깨우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쓴다. 따라서 내게 중요한 인문학의 가치는 깊이다. 그 깊이의 확장은 타인을 만나 이해하는 데서 온다. 그래서 지난 2년 간 이웃과 아프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 거다. 대학 강단에 서는 일부 학자들이 현재를 잘 모른 채 특정 시대의 독법으로 고전을 해석하는 것과 달리 강신주의 시간은 다상담을 통해 2013년의 대한민국으로 업데이트됐다."

-<감정수업> <다상담> 등을 예로 들어 쉬운 인문학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

"그 책들이 쉬운 게 아니다. 반복해 읽어 보면 만만치 않다. 내게는 오히려 내 초기작이 미성숙해 보인다. 깊이 있는 철학이라는 것은 내 당고모가 하는 한 마디 같은 것이다. 내가 철학을 강의한다니까 10년 이상 자라야 수확할 수 있는 감나무에 비유해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감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시더라. 이런 게 깊이다."

-고유명사로서 강신주의 철학은 무엇인가.

"삶도 죽음도, 글도 모두 '강신주적'이 되는 것이다. 오독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을 부정하는 오만함의 표현이 아니라 권력에 굴하지 않고 계속 지금처럼 글을 쓰는 것이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