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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의 만남

우리 동네에서 '인문학'이란… 이웃집 놀러가는 것

우리 동네에서 '인문학'이란… 이웃집 놀러가는 것


 

'마을배움@네트워크 판' 창간호를 들고 있는 운영위원들. /이덕훈 기자

[文化力, 그 현장] ②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

배움네트워크 '판'을 펼치다 - 독서·예술강좌 많은 마포구

홍보 부족으로 참여는 미미… 주민이 교육 소식紙 '판' 발간

동네 평생배움터 '판'이 커진다 - 창간호 나간 후 강좌생 늘고

참여기관도 마포 전역 확대… 거대한 지식네트워크 형성돼


"좋은 인문학 강연이 많으면 뭐합니까. 언제 어디에서 뭐가 열리는지 모르는데…." "강연을 기획해도 '알릴 창구'가 없어서 사람 모으기가 힘들어요."

지난해 여름,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 주민 모임에서 이런 불만이 쏟아졌다. 출판사 500여곳이 밀집한 마포구는 인문학 특강, 북 콘서트가 수시로 열리는 동네다. 아이들이나 은퇴자를 위한 요리·농사·건강 강좌도 많다. 홍대 앞 공방에서는 목공·사진·북아트 등 다양한 취미·예술 강좌가 열린다. 그런데 이 강좌의 '수요-공급'이 맞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가고 싶어도 알지 못해 못 가고, 알릴 도리가 없어 사람이 차지 않는 강연도 많았다. 보다 못한 김장환(46·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부 콘텐츠전략위원장)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마포 지역 곳곳에서 열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한데 모아보자!"

주민이 만드는 '배움 벼룩시장'

이름 짓기를 '마을배움@네트워크 판'(cafe.daum.net/networkpan). 일종의 '배움 벼룩시장'이다. 운영위원회에는 김씨를 비롯해 '우리마을꿈터' 이홍표(39) 대표, '토끼똥 공부방' 김명수(38)씨 등 6명이 모였다.

운영위원들은 마을 도서관과 책방 등에 일일이 전화를 돌려 참여 의사를 타진했다.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 '씨앗들협동조합' '시몽 사진학당' '마포 FM' 등 아홉 곳이 동참했다. 수차례 편집 회의를 거쳐 지난 2월 말 '마을배움@네트워크 판' 창간호가 발간됐다. 위원들은 각자 맡은 기관 관련 '팩트'를 확인했고, 표지 디자인도 마을 주민이 맡았다. 순수 제작비 80만원. 참여 기관이 기본 5만원에 강좌 하나당 1만원씩(최대 5만원) 냈다. 주민들은 창간호 1만부를 마을 카페와 빵집, 도서관 등 곳곳에 비치했다.

그래픽=김현국 기자

마포 전역으로 점차 확산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기관마다 '판'을 보고 찾아왔다는 신청자가 늘기 시작했다. 서교동에 사는 소수영(37·초등학교 보건 교사 휴직 중)씨는 창간호 귀퉁이에서 '엄마들 책모임'을 발견하고 석 달째 '동네책방'에 나간다. 소씨는 "마을의 또래 엄마들과 교류하면서 나 자신도 채울 수 있는 배울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바로 이거다 싶었다"며 "그동안 혼자 여행서나 자기 계발서만 읽다가 소설·동화·인문학 등 안 읽던 장르의 책을 두루 읽으니 소양이 넓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 4월 말 발간된 '2호'는 참여 기관이 20곳으로 늘었다. '와글와글 작은도서관' '청소년 휴카페 두더지 실험실' '나무벌레공방' '작은책'…. 김장환씨는 "성미산마을을 중심으로 점차 마포 전역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했다.

휴머니스트 출판사와 창비 세교연구소도 합류했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6월 말 발간되는 '3호'에는 우리 출판사의 7월 정기 강좌, 8월 '여름 인문학 페스티벌'이 실릴 예정"이라며 "홍대 근처의 출판사들이 더 합류하면 지식·문화 정보를 공유하는 거대한 지식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이라고 했다.

강의실 밖으로 나온 '마을인문학'

이번 프로젝트는 연세대 국학연구원(원장 백영서) HK사업단이 주도하는 '마을인문학 네트워크'가 동참했다. 주민들이 시도하는 '배움 네트워크'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해 기록하자는 취지.

성미산마을 주민이자 HK사업단 담당자인 이경란(50)씨는 "이전까지는 인문학이 공급자 중심이었다면 다음 단계는 공급자이자 수요자인 지역 단체들을 네트워킹하는 것, 마지막 단계는 공부하는 주민 스스로 자기 배움의 과정을 세팅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마을을 평생 교육의 장으로 만드는 인문학 실험"이다. 성미산학교에서는 28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마을인문학' 특강이 총 4회 열린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은 늦어도 내년 3월까지 '마을배움@네트워크 판'의 과정과 성과를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허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