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누워 책 읽고, 깔깔거려도 된대요 | |
[함께하는 교육] 이색 도서관 탐방 삭막한 열람실, 획일적 콘크리트벽에 기침 소리도 조심스런 곳. ‘도서관’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다. 어린이, 청소년들한테 책 읽기만을 강요하는 구조다. 이런 틀에 박힌 도서관과 다른 형식의 도서관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 |
[함께하는 교육] 이색 도서관 탐방초등 여학생 셋이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숙제를 하고 있었다. 슬슬 잠이 밀려오는지 여학생 둘이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이들 눈에는 천장의 서까래가 보였다.
지난달 24일 오후 4시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길에 위치한 ‘도담도담한옥도서관’의 오후 풍경이다. 이 도서관은 2월13일에 개관했다. 한식당으로 쓰이던 한옥을 서울 종로구가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해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종로구청 교육체육과 도서관담당주사 강호성씨는 “서울 동부 지역에는 도서관이 거의 없다. 교육적으로 낙후 지역인데 아이들에게 한옥체험 기회도 제공하고, 지역 간 도서관 불균형 문제도 해소하자는 뜻에서 건립했다”고 설명했다.
서까래 아래서 책 읽어봤니?
약 33평 규모. 아담한 마을 사랑방형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 이름에 붙은 ‘도담도담’은 ‘어린이가 탈 없이 잘 놀며 자라는 모양’을 뜻하는 순 우리말. 지역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내 붙인 이름이다.
도서관 개관 초기지만 하루 70여명이 들른다. 이용자는 손자·손녀를 데리고 온 노인, 초등학생, 학부모, 직장인까지 다양하다. 숭인동을 넘어 성북동 주민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한옥도서관 이름에 걸맞게 보유도서 2889권 가운데 20%는 전통문화 관련 어린이책이다. 한옥이라는 특성에 맞게 한문교실(명심보감·사자성어), 전통공예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고, 지역 특성을 반영해 다문화 가족 어린이 대상 한글 수업 등도 마련할 예정이다. 김영자 관장은 “공간이 한옥인 만큼 꽃, 나무 등 자연이 함께하는 친환경 도서관, 예의범절 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도서관으로 꾸리고 싶다. 이용자들이 이곳에 들어올 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하도록 권유한다”고 했다.
지난달 22일.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에 위치한 ‘글마루한옥어린이도서관’ 별동(성학당)에서는 15명의 어린이가 모여 한식요리 소고기모듬버섯떡찜을 만들고 있었다. 한식요리 체험은 2011년에 개관한 이 도서관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윷놀이, 볏짚공예, 전통음식 만들기 등 한국식 체험놀이는 초등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많다. 미리 예약해야 참여할 수 있다.
도서관은 자료실 및 도서 열람 공간 주동(향서관 1, 2층), 한옥에서 전통문화 등을 접할 수 있는 공간 별동(성학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봄가을에는 주동과 별동 사이 마당에서 야외 활동도 할 수 있다. 신태희 관장은 “한옥이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어 여름철에는 송진이 떨어지는데 향이 좋다”고 소개했다. 신 관장은 초등 1학년생을 대상으로 ‘훈장님 천자문’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기도 한다.
이 도서관 주동에 꽂혀 있는 책은 모두 2만426권. 다른 도서관에 비해 전통문화, 역사 관련 책이 많다. 다섯살 딸과 함께 이날 도서관을 처음 방문한 아빠 박희연씨는 “보통 아이 데리고 ‘키즈카페’를 많이 가는데 도서관 건물 자체가 한옥식 창문, 온돌로 되어서인지 서구식 카페에서보다 책 읽어주는 맛이 다르다. 마음부터 편안해진다”고 했다.
주민 대상 전통문화 프로 운영 지하철역 출구옆 만화도서관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옹기종기 청소년에게만 책 대출·무료쿠폰 어른들은 대접 못받는 특별공간 “규모 작지만 있을 건 다 있어요 딱딱하고 엄숙한 도서관은 안녕” 순수만화 2000권 모았습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사는 주부 권민서씨는 7살 아들을 학원에 보낸 뒤 세살 딸과 함께 커피숍을 찾았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지난 21일 오후 4시. 권씨는 둘째를 등에 업고 ‘녹번만화도서관’ 온돌바닥 카펫 위에 편안히 앉아 만화를 봤다. 도서관에서는 7살 어린이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만화를 읽고 있었다. 서울지하철 3호선 녹번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오른쪽 벽에는 순정만화 주인공 그림을 붙여둔 게 보인다. 이 벽 안쪽에 있는 앙증맞은 건물이 녹번만화도서관이다. 면적 5.4평. 원룸 수준이지만 꽂혀 있는 만화책은 약 2000권이다. 보통 도서관에는 학습만화가 주를 이루지만 이 도서관에는 <원피스>, <드래곤 볼>, <궁> 등 어린이·청소년이 좋아하는 만화부터 <미생>, <식객> 등 어른들이 좋아하는 만화, 웹툰 등 다양한 순수만화가 꽂혀 있다. 만화광인 김우중(고려대 세종캠퍼스 사학과)씨는 “규모는 작지만 일본 시리즈 만화부터 우리나라 웹툰까지 있어야 할 건 다 있다”고 했다. 이 만화들은 대출이 안 된다. 김채원 사서는 “만화는 대개 시리즈물이 많은데 누군가 대출을 하면 내용 연결이 안 되니까 이곳에 와서 보는 방식으로 했다. 책 파손 등을 염려한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대출이 안 된다는 점을 오히려 반긴다. 자녀가 학원 가기 전, 잠깐 머리를 식히는 수준에서 만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이 작은 도서관은 만화를 좋아하는 아빠들로 북적인다. 이날 도서관 한쪽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애니메이션 <보노보노>가 상영 중이었다. 학부모 권달선씨가 만화를 보는 동안 7살, 9살 두 아들은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있었다. 보통 큰 도서관에 가면 엄마는 책을, 아이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해서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 공간에서는 양쪽 요구를 충족한다. 김 사서는 “앞으로 멀티미디어 자료 등은 은평구립도서관에서 인계받아 대출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할 예정”이라며 “각 가정에 처리하기 어려운 만화책 등이 있다면 기증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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