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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만남

공지영 “나는 약간 엉뚱한 일개 작가, 권력이 되는 게 싫어요”

공지영 “나는 약간 엉뚱한 일개 작가, 권력이 되는 게 싫어요”

강준만 교수는 <멘토의 시대>에서 공지영 작가를 열정형 멘토로 규정했다.

“공지영이 온몸으로 체현하는 열정의 본질은 ‘정치적 올바름’이다. 미국에서 유행한 개념이지만, 미국과는 별도로 한국에서 독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공지영”이라는 것이다. 그 열정이 너무 뜨거워 다른 사람을 데게 할 때도 있고, 스스로 델 때도 있다. 하지만 공지영 작가는 놀라운 복원력으로 돌아오곤 한다. 공지영 작가는 쌍용차 사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쌍용차 사람들이 무척 사랑스러워요. 특별히 누구랄 것도 없이 구성원 모두 사랑스러운 경험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답한다. 인세를 전액 기부하고, 조금이라도 더 팔아서 도움이 돼주려고 수시로 대한문 앞에 가서 사인회를 개최하고, 거기 있는 사람들 고기 좀 먹여야 된다고 주머니 털어 삼겹살 사주는 건 본인이 즐거우니까 할 수 있는 일일 게다.

백기완 선생의 딸로, 공지영 작가와 친한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공지영을 수십 년 만났지만 요즘처럼 예쁠 때가 없어요. 처음에는 무서워서 텐트에도 못 들어갔어요. ‘언니 같이 가’ 하던 친구가 요즘은 ‘먼저 가 있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백 교수는 이전의 공지영에게 없었던 것이 생긴 것인데, 그게 쌍차의 힘, 노동의 힘이라고 말했다.

 

 


지승호(이하 지) 데뷔 25주년 앤솔러지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번에 오디오북 녹음도 했어요. 365개의 문장을 뽑을 때도 감개무량했는데, 한 번씩 내 입을 통해서 읽잖아요. 그 당시 생각이 나서 가슴이 뭉클하더라구요. 그 글을 쓸 때의 배경, 내 처지 다 떠올랐거든요. 상처를 받고 어찌됐든 그걸 치유하기 위한 것이 내 문학의 고군분투였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문장을 고른 기준들은 있나요?

독자들 편지, 블로그, 리뷰 등을 통해서 가장 많은 반향을 받았다고 느꼈던 것들, 내가 생각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을 골랐죠. 짤막하지만 어디 잠깐 붙여 놓고 있어도 손색이 없겠다는 것, 트위터로 치면 공지영 봇에서 뽑을 만한 글귀 같은 글들을 골랐어요.

쌍용차 얘기를 하자면 10월 8일 23번째 희생자가 나왔지 않습니까?

그나마 자살은 아니라서 일말의 위안은 되지만, 그분이 정말 돈도 없고, 절망적인 상황이었구요. 사회적 살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눈물이 막 나구요. 조금의 안전장치도 없는 곳에서 이렇게 내쫓으면….

쌍용차 청문회 봤나요?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서는 조현오 전 청장이 적극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문제를 불러일으킨 사안이잖아요.

그것도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전격적 의지, 전폭적 의지의 발현이었죠. 국정조사해서 과도한 과잉진압이라든가 이런 것을 형사법으로 처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에 대해서 준엄하게 전국민적으로 도덕적 죄를 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쌍용차 사태를 보면서 다른 노사분규와 좀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했는데요. <의자놀이>를 쓸 때도 고스트와 의자놀이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다고 했잖아요.

주인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실체가 모호합니다. 그게 앞으로 우리가 싸워야 될 최근 자본들의 형태 같습니다. 거기에 상류층의 모든 카르텔들이 동원된다는 것인데요. 산업은행, 검찰, 법원, 대형 회계법인, 이 정도면 대형 도가니예요. 이런 사람들이 침묵하면서 담합하는 형태로 이런 일들을 단행했고, 경찰이 마지막에 꽃을 피웠죠.

모범생으로 살아온 분들이라 더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고 했는데요.

특히 금속 이런 것을 다루는 남성 노동자들의 성향이 좀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이 굉장히 굵직굵직해요. 그동안 내 곁에는 주로 머리 굴려서 사는 남자들이 많다보니까 처음에는 문화적 충격도 느꼈는데요. 굉장히 남성적이고, 좋은 의미로 남자다운 사람들이에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소설이라면, <도가니>는 팩션 쪽에 좀 더 가깝고, <의자놀이>는 아예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썼는데요.

소설로 이보다 더 잔인하게 쓸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내 상상력이 거기까지 못가.(웃음)

<의자놀이> 집필하면서 사흘 동안 한숨도 못자는 등 각성상태에 있기도 했다면서요.

쓰는 내내 거의 그랬어요. 집필에 들어가면 잠을 못잤어요. 밤이 이슥하도록 시작을 못하는 거예요. 집에는 있는데. 밤이 되니까 더욱 무서워지고, 신경도 곤두서고, 아무튼 25년간 썼던 작품 중에서 최고로 고생한 작품이에요.

<도가니> 때도 공포감을 많이 느꼈잖아요.

<도가니> 때는 공포감까지는 아니고 계속 아팠어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쓸 때는 자꾸 살인현장 같은 것이 떠올라서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이건 그것의 100배 정도였어요. 우리 아이들까지 다 아프고, 난리가 아니었어요.

 무당이 신기(神氣)가 들린다는 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런 걸 텐데요.

내가 일부러 그 사람의 정황과 이런 것을 상상력을 동원해서 생각하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려고 하면 빙의가 되는데요. 전에는 합리적으로 이끌어내면서 추론하는 빙의에 가까웠는데, 이번에는 홀딱 빙의가 된 거예요. 제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거죠.

어떤 이유였다고 생각하세요?

어쨌든 자꾸 상상하게 되잖아요. 예를 들면 떨어지는 순간이라든가. 그때 심정 같은 것들, 22번째 희생자였던 분 같은 경우도 아무리 떨어져서 즉사한다고 하지만, 정말 그대로 숨이 끊어졌을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자꾸 그리로 들어가잖아요. 영감이라는 것이 발달한 편이라 쉽게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본인 스스로 말하기를 몇 년 전부터 명랑해지고 있었지 않습니까? <지리산 행복 학교>나 한겨레에 연재했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같은 칼럼들이 그랬는데요.

작가의 운명이 그 나라의 운명과 같이 하는 거죠. 처음에는 빨리 이런 시대가 지나서 인간 본연의 재미있고, 폭넓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불의라는 것이 이명박 정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런 불의한 시대에 인간들이 어떻게 각개행진을 하는지, 이런 것을 파악하는 것도 인간의 본질에 대한 굉장히 중요한 접근이구나, 이것이 소설가로서 꼭 불행한 시대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12명이 자살했는데, 왜 한 명의 유서도 없었던 걸까요? 유서를 남긴다는 것은 ‘내 얘기를 좀 들어줘’ 하는 의미도 있을 텐데요. 그런 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정서적인 여유가 없었다는 얘기일 텐데요.

제가 죽은 사람 얘기를 먼저 썼잖아요. 어떤 느낌이 저한테 왔냐 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눈 떴는데, 정말 일어나기도 싫고, 먹기도 싫고, 하다못해 게임이라도 해야 되는데, 게임도 하기 싫은 거예요. 내가 게으르긴 해도 재미있게 노는 사람인데 싶어서 굉장히 이상했는데요. 그게 일종의 빙의였던 거예요. 돌아가신 분들이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상황에서 유서를 쓰거나 이러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의자놀이> 논란이 있은 후 20일 정도 트위터도 끊고, 공식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잖아요.

저술로 인해서 몸이 쇠약해져 있으니까 마음이 통제가 안 되더라구요. 우리끼리 치고 박고 미움이 전도되는 것이 힘들었어요. 여기서 일단 어떤 방식이든 내가 중단하자, 그런 생각을 하고 그 다음에 다 끊어버렸죠. 한 20일쯤 됐을 때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의자놀이> 판매가 하강곡선을 긋는 거야, 그래서 추석 전에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보너스 같은 것을 가져갈 수 있게 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용감하게 나갔죠. 뭐라고 하든 간에. 딱 그 생각만 했어요.


계속 그런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건데, 그런 동력이 뭔가요?

내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단식하는 중에 성당에 가서 이사야 51장을 읽었어요. 엄청 울었죠. 내가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내 마음 속에 명예욕과 알아줬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구요. ‘저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사랑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일인데, 저 사람들이 나를 안 좋아하고,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멈춘다면 이게 거래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쌍용차 분들도 20일 동안 상당히 마음고생을 한 모양이더라구요. 다시 갔을 때 굉장히 기쁘게 맞아줬는데요. 몰라, 어느 순간 짝사랑이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웃음)

종교적인 부분이 크다? 마더 데레사 같은.(웃음)

무슨 마더 데레사야? 말도 안돼. 난 그런 거 못해. 누나 같고, 엄마 같은 마음이 더 크겠죠.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노무현 정권 때와 다를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제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방치하고 가는 정부는 어떤 발전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구요. 다음 정부는 ‘할 정부다’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 정부’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후보가 되더라도.

여전히 노동운동이 참 어렵지 않습니까?

자꾸 노동계급과 소시민을 가르는 것, 이런 것들이 안 좋은 것 같아요. 노동계들이 생각을 좀 전향적으로 오픈했으면 좋겠구요. 해고 문제가 단순히 노동계의 문제만은 아니거든요. 비정규직 문제도 그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니까, 연대를 해야 되는데, 연대에 대한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에는 그냥 일반 시민인 내가 펑 뛰어들어가서 그쪽에 들어가서 호스를 연결한 거라면, 이제는 보다 체계적이고 전향적인 홍보 같은 것, 당신들과 우리가 같은 노동자라는 인식이나 홍보 같은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를테면 희망버스 운동이나 이런 것들이 기존의 운동과 연대한 것 같지만, 유기적인 결합이 된 것같지는 않거든요.

희망버스 탄 사람들은 다 노동자잖아요. 그 사람들도 함께 하는 지속적인 연대의 모임이라든가 조직화, 이런 것들에 너무 신경을 안 쓰고, 너무 노동자의 개념을 블루칼라 개념에 한정시키는 것이 안타까워요. 쌍용차의 두 지부장님은 아주 귀여우신데, 김정우 지부장님은 처음에 저한테 문자를 보내는데, 앞에 ‘투쟁’ 하고, ‘공 작가 오늘 몇 시에 오세요?’ 하고 뒤에 ‘투쟁’이라고 써요.(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없어지더라구요. 책 나오고 대한문 앞에서 콘서트하는데, ‘감옥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한상균 지부장이 ‘투쟁’ 하면서 얘기를 시작하는 거예요.(웃음) 그런데 옆에서 김정우 지부장은 노련하게 쉬운 말로 하고 있구요. 얼마 전에 한상균 지부장이랑 대구·경북 지역에 의자놀이 북 콘서트를 갔는데요. 자기 아이가 이번에 대학 새내기인데, ‘아빠가 처음으로 대학생 앞에서 얘기해야 되는데, 너희는 노동자 하면 무엇이 떠오르니?’ 하고 물어봤더니, 딸이 ‘아빠 제발 고리타분한 얘기 좀 하지 마’, 그러더래요. 충격을 너무 심하게 받고,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되겠다 싶은 마음에 수염도 깎고 양복을 입고 오셨다는데, 저는 그게 참 좋았어요. 사실 천막 안의 농성장, 빨간 띠, 구호 이런 것이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낯설기도 하지만, 인간을 생각하고 다가간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 것처럼 그 사람들도 한 걸음씩 다가와줘야 해요. 서로 서로.

‘공지영은 자기가 가진 힘을 간과하는 것 같다’는 평을 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반성을 하는 부분도 있는데요. 믿거나 말거나 하는 거지만, 내가 그런 권력이 되는 것이 싫어서 그런 걸 거예요. 저를 일개 작가로 봐줬으면 좋겠는 거예요. 약간 엉뚱할 수 있는. 모든 창작자나 예술가들은 엉뚱하고 기괴한 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를 무슨 활동가, 정치가로 봐요. 제가 트위터에 ‘쓩~~’ 이러는 것도 경멸의 어투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딴따라, 예술가라구요. 소설가는 정말 잡스러운 사람이야, 가장 민중적인 언어로 얘기하는 사람이고, 놀아야 되는 왈패들인데요. 말투가 이상하다는 둥, 이런 잣대를 가져다 대면 도대체 어쩌란 말이에요.(웃음)

요즘 언론에서 성범죄나 강력범죄 얘기가 많이 나오면서 사형제도가 거론되는데요.

어떤 의미에서 정치적인 사안, 사회적인 면, 가부장적인 사고라든가, 생명경시, 어린 아이들과 약한 것들에 대한 경시의 총체적인 문제인 성범죄를 잠시 호도하려는 황색 언론들의 말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저 사람도 너무 고유하고 존중해야 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만연할 때 성범죄도 줄어들겠죠. 죽이면 더 기승을 부려요. 왜냐하면 생명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니까. 사람이 잘못하면 생명을 없애버려야 하는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만 보면 ‘저런 놈들 살려두란 말이냐? 니 가족이 당했다면?’이라는 질문에 참 답을 하기 힘들 거든요. 노르웨이의 블레이비크 같은 경우 70여명을 넘게 죽였는데, 20여년 정도밖에 안 사는데, 저런 놈을 세금으로 먹여야 되나, 이런 얘기도 나오구요.

노르웨이 총리가 나와서 그랬잖아요. “우리는 더 큰 민주주의와 더 큰 사랑으로 이런 것들을 방어할 것이다. 당신이 원하듯 증오로 막지 않을 것”이라고. 이런 정도의 말을 하는 인간이 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설사 반대의견이 있더라도.

지금 다섯 권의 작품을 구상하고 계시다면서요.

여기서 처음 얘기할까요?(웃음) 오래 전부터 구상해온 것들이 많아요. 수도원+한국전쟁 얘기, 그 제목이 <푸른 사다리>예요. 두 번째가 <저 꽃들이 지기 전에>, 그건 고등학생들 문제에 대한 얘기예요. 그 다음에 <데레사>. 가톨릭 산문인데, 스페인 아빌라의 데레사, 프랑스와 소화 데레사, 인도의 마더 데레사, 이 세 사람이 다 수녀인데, 각기 다른 시대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시대를 뒤흔들면서 살았어요. 이 세 사람의 이름이 모두 데레사예요. <지리산 행복 학교 시즌 2>, 그건 픽션으로 재밌게 시트콤처럼 하고 싶은 거고, 그 다음에 사랑 얘기인 <벼랑길>, 이렇게 다섯 개예요.


<글·지승호 인터뷰 전문작가 sibidori@paran.com>
<사진·김석구 선임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