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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만남

[주목, 이사람] 뉴욕패션시장 도전장 낸 디자이너 손정완

[주목, 이사람] 뉴욕패션시장 도전장 낸 디자이너 손정완

[세계일보]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는 입혀 주는 대로 옷 입기가 싫어 매번 엄마와 다퉜다. 아이 고집에 지친 엄마는 아이를 명동의 한 양장점에 데려갔다. 아이는 커다란 링 모양의 고리가 달린 소매 없는 집업 셔츠에 당시로는 드물었던 핫팬츠를 종이에 그려 양장점 주인에게 내밀었다. 대학에 가서는 아버지 옷을 잘라 입거나, 재킷 밑단을 뜯어 올을 풀고, 옷에 글씨를 쓰기도 했다. 1980년대 초 대학캠퍼스에서 보기 힘든 ‘실험적인’ 패션으로 튀던 여학생이 바로 전국 백화점 38개 매장을 운영하며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대명사가 된 디자이너 브랜드 ‘손정완’의 주인이다. 수입 브랜드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20년 동안 자리를 지킨 유일한 브랜드로 국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힌 그가 53세라는 나이에 뉴욕 패션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달 초 네 번째 뉴욕 컬렉션을 마치고 돌아온 손정완 디자이너를 18일 서울 논현동 쇼룸에서 만났다.

브랜드 런칭 24년 만에 뉴욕에 진출한 손정완은 “K-팝과 한류, 싸이의 ‘강남스타일’ 인기가 뜨거워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이 해외시장 진출에 적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지난해 처음 뉴욕 패션위크에 참여할 때는 너무 동양적인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컬러나 디테일을 자제했어요. 노골적으로 동양미를 드러내기보다는 뉴욕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면서도 동양적인 매력을 드러내려 노력했고, 그게 통했던 것 같아요.”

너무 동양적인 것만 강조하면 자칫 거부감을 주거나 단순히 전시, 관람용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4대 컬렉션 중 가장 상업적인 뉴욕 컬렉션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교훈이기도 하다. 이번 2013 S/S(봄여름)컬렉션에서 그는 스페인 작가 후안 미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몽환적이면서 신비스러운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또 한국의 전통 머리장식과 상류사회 여성이 사용한 떨잠과 첩지를 사용해 귀족적인 우아함을 더했다. 특히 몸을 타고 흐르는 듯한 실루엣과 모델이 워킹할 때마다 만개한 꽃이 바람에 흔들리듯 물결치는 실루엣으로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표현, “완벽하고 매혹적인 실루엣”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매장 38개를 운영하며 안정적으로 브랜드를 키워온 그가 나이 오십 줄에 갑자기 해외시장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고개를 갸웃했다. 

이달 초 뉴욕 패션위크에서 2013 S/S컬렉션을 선보인 손정완은 스페인 작가 후안 미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몽황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 찬사를 받았다. 
손정완 제공
“뉴욕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늘 꿈꿔 왔던 일입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고요. 다만 섣불리 나서면 안 된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준비했습니다.”

사실 2006년 이미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후즈 넥스트(WHO’S NEXT)’에 초청돼 좀 더 빨리 해외에 진출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국내 명성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신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무명 디자이너의 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톱모델을 섭외하는 일도, 셀러브리티를 초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후 5년은 그에게 와신상담의 시간이었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미국 인기드라마 ‘가십걸’의 출연배우 켈리 러더퍼드가 손정완의 팬임을 자처하며 그의 옷을 입고 나와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손정완 제공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난해 2월 뉴욕컬렉션으로 첫발을 내디딘 후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미국 인기드라마 ‘가십걸(Gossip Girl)’에 출연했던 켈리 러더퍼드가 유명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손정완 브랜드를 언급해 입소문을 낸 데 이어 올해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그의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손정완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워졌다. 이번 컬렉션에도 브룩 쉴즈를 비롯해 세계적인 패션사진작가 부르스 웨버,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출연한 체스크 스펜서, 올해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받은 미국 수영선수 리아 닐 등 각계 유명인사들이 프런트 로(관람석 맨 앞줄)를 메웠다.

숙명여대에서 산업공예를 전공한 그는 자신이 이렇게 패션디자이너로 성공할 줄 몰랐다.

“대학 때 내 멋대로 옷을 입고 다녔더니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전공자들보다 더 잘 입는다’며 패션디자이너를 해보라고 권한 것이 계기가 됐어요.”

친구 따라 오디션 갔다가 덜컥 배우가 됐다는 요즘 연예인들의 데뷔 동기와 비슷하다. 그래서 그는 졸업 후 당시 ‘논노’와 여성복시장 양대 산맥이던 ‘뼝뼝’이라는 의류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에 심취했던 그에게 개성 없는 기성복을 만드는 작업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1년여 만에 회사를 박차고 나온 그는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 1987년 강남구 압구정동에 첫 매장을 열었다. 여성스럽고 우아한 현재의 스타일과 달리 초창기 손정완의 옷은 전위적이었다. 수입 브랜드도 드물었던 당시 독특한 디자인과 색감은 강남 멋쟁이들의 눈길을 붙들었고, 3년 만에 갤러리아를 시작으로 삼풍·롯데 등 백화점들로부터 입점 요청을 받았다. 갓 서른이 넘었을 때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어렸기 때문에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을 좋아해 매장도 온통 검정색으로 만들었어요. 하지만 저도 나이를 먹으며 성숙해지고 고객의 욕구를 반영하면서 점차 여성스럽고 우아한 스타일로 바뀌게 된 거죠.”

요즘은 ‘청담동 며느리 룩’이라는 말이 생겼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강남 며느리룩=손정완’이라고 할 정도로 여성들이 결혼할 때 꼭 한번 입어보고 싶은 브랜드였다. 부피감 때문에 중후한 부의 상징이었던 모피코트에 파격적으로 주름과 라인을 넣어 패션으로 승화시키는 데 그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같은 다양한 시도와 꾸준한 노력 덕분에 수입 브랜드의 공세에 밀려 국내 디자이너 부티크들이 백화점에서 하나 둘 자취를 감추는 동안에도 손정완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대 흐름과 고객의 욕구를 따라가지 않으면 상업 디자이너로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것만 좇아가면 국내 브랜드로만 머물기 때문에 디자이너 고유의 아이덴티티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단골 고객을 위해 예전 스타일의 비중을 5% 정도로만 유지하고 항상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가 옷을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럭셔리·여성스러움·섹시함 등 세 요소를 조화시키는 것이다. 섹시하기만 하면 천박해 보이고, 아무리 멋있어도 섹시하지 않으면 여성 고유의 멋이 없기 때문이다.

“럭셔리한 것에 대한 욕망은 언제나 있었지만 요즘 럭셔리의 개념은 과거처럼 중후하고 부유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젊고 가볍고 활동적이에요. 전에는 20, 30대 여성들이 주고객이었는데 요즘에는 자기관리를 잘하는 40, 50대들이 딸과 함께 와서 자기 나이보다 열 살 어린 연령대의 옷을 고릅니다.”

그는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지금이 적기라고 말한다.

“K-팝의 인기와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디자이너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습니다. 미국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인기는 여기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뜨거워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는 이번 뉴욕 패션위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2012 콘셉트코리아’ 5인 디자이너로 이상봉·최복호·계한희·김홍범 등과 함께 한국 패션을 알리는 데도 앞장섰다. 오십이 넘어 새로운 도전에 뛰어든 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가 만든 옷들은 트렌드와 시대를 뛰어넘어 스타일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지방시나 가브리엘 샤넬, 크리스티앙 디오르처럼 디자이너는 죽어도 브랜드는 영속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