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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만남

중국산 싼 물건 넘치는 시대... 대장간에선 뭐 팔아요?

중국산 싼 물건 넘치는 시대... 대장간에선 뭐 팔아요?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불을 다루는 아버지와 쇠를 다루는 아들이 있는 부자 대장간
ⓒ 김종성

"깡, 깡, 깡 ♪"

아침 10시,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조용하고 평범한 골목길에 희귀한 '소음'이 울려 퍼진다. 동네 주민이 아니라면 누구나 어디서 나는 소린가 하고 저절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쇠가 내는 소리는 둔탁한 게 보통인데, 이곳에서 나오는 쇠망치질 소리는 경쾌하다. 이곳은 부자(父子)가 운영하는 동네의 명물 '불광 대장간'이다. '소음'의 정체는 쇠를 두드리며 모양을 만드는 단조 작업 소리.

반짝이는 은빛 머리카락의 할아버지는 6·25 전쟁이 끝나고, 14살 어린 나이에 먹고 살기 위해서 을지로에서 처음으로 대장간 일을 배우기 시작했었다. 이후 몇 년간 청계천 부근에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이동형 대장간'으로 일을 하다가 성남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이게 불광 대장간의 시초인 셈이다.

그 후 대장장이 할아버지의 아들이 군 제대 후 20대 젊은 나이에 대장간을 이어받았다. 벌써 20년이 다 돼간다고.

74세 대장장이 아버지에게 꾸중 듣는 40세 대장장이 아들

 수도권 전철 3호선 불광역에서 내리면 생각도 못한 곳이 나타난다. 서울시에서 인증한 새간판을 달았다.
ⓒ 김종성

아버지는 원조 대장장이답게 무뚝뚝하고 묵묵하게 일만 하시고, 아들 대장장이는 신세대답게 사근사근하게 손님을 응대도 하고, 전화도 받고, 가게 홍보에 신경을 쓴다. 전혀 다른 성격인 부자는 시뻘건 화덕에서 쇠막대를 꺼내 노루발 (건설현장에서 목재에 박힌 못을 빼는 데 쓰는 연장)을 만들 땐, 손발이 척척 맞는다.

커다란 쇠망치로 망치질하던 아들이 그 와중에 잠시 딴생각을 했는지, 실수라도 하면 74세의 아버지 대장장이는 "거기다 망치질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엄하게 지적하신다. 20년 경력의 아들 대장장이는 아직도 스승에게 단련 중이다.   

 기계화된 화덕이나 프레스를 쓰지 않는 불광 대장간
ⓒ 김종성

대장간 작업 공간은문이 따로 없다. 작업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고, 작은 선풍기가 바깥바람을 가져와 열기를 식혀주고 있다. 세평 남짓 좁은 작업 공간에 있는 화덕과모루(대장간에서 불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에서 나온 각종 연장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대단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불광 대장간은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알려졌나 보다. 주변 사람들은 이 대장간이 각종 언론 매체에도 많이 나온다고 한다. 대도시 서울에 이런 곳이 아직도 존재하는데다, 그 아들이 힘들고 하기 어려운 가업을 이어받았다는 게 보기 드물고 반가워서 그랬을 게다.

더구나 요즘 지방의 대장간에서도 많이 쓰고 있다는 기계화된 화덕과 단조 작업용 프레스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오로지 대장장이 두 분의 힘과 기술만으로 쇠를 녹이고, 형태를 잡아 연장을 만든다. 이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장인정신의 가치가 더욱 높아짐을 느낀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장간에서 살 물건이 있을까?

 세밀한 작업은 아직도 일흔이 넘은 아버지 대장장이의 몫.
ⓒ 김종성

이곳에서 만든 연장과 도구에는 '불광'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글귀에서 자부심과 책임감이 느껴진다. 이번에 만든 물건은 지방에서 주문했는지, 연장들을 박스 포장하여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작업하는 중간에 동네 주민인 듯한 손님이 찾아왔다. '무엇을 주문하는 것일까?' 궁금하여 귀 기울여 보았다. 마당 안 맨홀 뚜껑, 정원 가꾸기 용 호미와 꽃삽, 요즘 유행하는 캠핑에서 필요한 손도끼와 나이프 등등 인테리어용 '작두' 제작까지 주문 내용이 다양하기도 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장간에서 살 게 있을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손님이 찾아와 주문한다. 대장간을 찾은 한 손님은 "마트에서 파는 중국산 공산품이 가격은 싸지만, 몇 번 사용하고 나면 금방 고장이 나서 이렇게 수제품을 사러 오게 된다"고 말했다. 싼 물건을 사서 쉽게 버리는 '심각한 쓰레기 양산' 시대에 '이런 대장간이 좋은 대안이 되겠구나'는 생각이 든다. 

 손님이 요구하는 각종 수제 도구들을 만들어 내는 대장장이의 손때 묻은 연장들
ⓒ 김종성

이런 더운 여름날에도 뜨거운 화덕 앞에서 경쾌한 망치질 소리를 내며 일하는 두 부자. 순수한 노동은 보기 드물다. 그래서 도시인의 눈에 귀하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불과 쇠 그리고 사람의 힘만으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불광 대장간의 '신성한 노동'을 보고 싶다면 한번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단, 전날에 확인 전화를 하고 오전 11시 전후로 찾아가면 된다. (더운 여름에는 이렇게 오전에만 작업한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 불광 대장간 위치 ; 은평구 대조동 80-7번지 (3호선 전철 불광역 7번 출구 도보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