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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만남

그가 겨우 움직이는 건 얼굴·손뿐… 혼자 겨우 밥 먹는 18개 과목 올 A+의 수석장학생, 비법은

그가 겨우 움직이는 건 얼굴·손뿐… 혼자 겨우 밥 먹는 18개 과목 올 A+의 수석장학생, 비법은

 

안병철 도우미 - 안병철씨를 도와주는 일등공신들. 왼쪽부터 박창원 학생복지처 차장, 어머니 전경희씨, 수업 도우미 최현명(역사문화학과 10학번)·김균태(경영학과 08학번) 학생, 교직원 조승현씨. /허영한 기자
연세대 원주캠퍼스 안병철씨 '휠체어의 기적'

근육 점점 굳어가는 병… 책 못 들어 낱장 찢어서 공부

4시간 공부, 40분 쉬며 근육 풀어… 쉴때도 영어CD 들어

학교 '안병철 책상·주차장' 만들고 학생은 '안병철 도우미'

친구들 과제복사 등 도와… 올해 심장근육 굳어 포기할 뻔


연세대 원주캠퍼스 영어영문학과 11학번 안병철(25)씨. 그는 입학 후 3학기 동안 수강한 18개 과목에서 모두 A+를 받았다. 매 학기 수석이다. 하지만 이 최고 우등생이 사용하는 근육은 얼굴과 손 일부뿐. 그나마 그 일부도 점점 굳어가고 있다.

선천성 진행성근이양증. 안씨가 일곱 살 때 진단받은 병명이다. 근육 세포가 점점 소멸되는 난치병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다리까지 굳어져,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합병증인 고관절염이 생겨 학교마저 그만뒀다. 양쪽 허벅지 근육과 근육 사이의 연골이 없어져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뼈끼리 충돌했다. 그는 당시 고통을 "꽃꽂이 할 때 꽂는 큰 침이 있는데 그 침으로 마구 찌르는 것 같다"고 했다. 매일같이 울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너무 고통스러워 한때 모르핀 처방으로 버티면서 7년간 투병 생활을 하던 안씨는 2010년 5월 검정고시, 그해 11월 수능시험을 보고 연세대 원주캠퍼스 11학번이 됐다.

"원래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어요."

안씨의 어머니 전경희(48)씨는 이렇게 말했다. 안씨가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는 심폐 기능을 높여주기 위해서, 소리 내서 책을 읽으라고 시켰다. 이 과정에서 안씨는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오히려 다리가 굳어지던 중2 때부터 성적이 올랐다. 초등학교 때는 반에서 36명 중 33등. 하지만 중2 때 5등, 중3 때 1등, 고등학교 1학년 때 전교 1등을 했다. 안씨는 이후 고관절염으로 학교를 그만뒀다.

안병철 강의실 - 지난 4일 연세대 원주캠퍼스 강의실 맨 앞줄, 안병철씨가 휠체어가 들어가는 ‘안병철 책상’에 앉아 ‘미국 소설 특강’을 듣고 있다. 책상에 놓인 3색 볼펜은 매번 필통에서 볼펜을 꺼내고 넣기가 힘든 그가 제일 좋아하는 필기도구인데, 연필보다 힘을 덜 줘도 필기가 잘 된다고 했다. 안씨는 허리를 구부리거나 펴지는 못하지만, 조금 남은 근육으로 앉은 자세는 유지할 수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안씨가 지금 쓸 수 있는 근육은 팔꿈치를 책상 위에 지지한 상태에서 손을 책상 바닥에서 입 정도 높이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수준.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밥 먹기, 기본적인 필기, 컴퓨터 타자치기뿐이다.

입학 후 올 A+ 성적에 자신도 놀라, 교수들에게 "좋은 성적을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혹시 제가 장애인이라 점수를 잘 주신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는 메일까지 보내기도 했다. 교수들은 "대학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성적에 따른 공정한 평가였다" "너는 수업 시간에 내가 아는 학생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적극적이었다" "논리력이 좋아 글로써 생각을 풀어내는 게 탁월하다"는 답신을 보냈다. 한번은 안씨의 장애 사실을 모르는 신임 교수가 안씨의 리포트만 보고 "안병철 학생이 누구냐. 굉장한 리포트다"라고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안씨는 주변에서 "어떻게 몸도 불편한데 성적이 좋으냐"고 물어볼 때마다 자신의 '찢어진 책'을 보여준다. 그의 집에 놓인 책들은 대부분 3∼5장씩 묶음으로 찢어져, 틀만 남은 책 꺼풀에 쌓여있다. 사라지는 근육 때문에 무거운(?) 것을 들 수 없어서다.

안씨는 영문학 작품을 공부할 땐, '샤프펜슬 뒤쪽'이 필수품이다. 영어 단어를 찾느라 컴퓨터와 책을 동시에 꺼내놓는데, 책을 볼 땐 손이 자판까지 잘 닿지 않아 샤프펜슬 뒤쪽으로 자판을 누르기 때문이다.

안씨는 근육이 굳어지는 걸 막기 위해, 4시간 공부하고 40분 휴식을 취한다. 원래 3시간 공부하고 1시간 쉬었지만,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어머니를 졸라서 공부는 1시간 늘리고, 휴식은 20분 줄였다. 이 휴식시간에도 안씨는 미국 ABC방송에서 자신이 잘 안 들리는 부분을 따로 녹음해 만든 CD를 듣는다.

안씨의 입학 후, 학교엔 '안병철 책상'이 생겼다. 안씨의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넓고 큰 책상이다. 학교는 이 책상을 안씨가 수업을 듣는 7개 강의실에 비치했다. 학교 주차장엔 '안병철 구역'이 생겼다. 휠체어를 내릴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있다. 안씨 어머니는 1400만원을 들여 개조한 차량으로 매일같이 안씨를 등하교시킨다. 학교 안에는 안씨를 돕는 '도우미' 친구 2명이 있다. 안씨 대신 무거운 책을 들어주기도 하고, 화장실까지 휠체어를 밀어주기도 하고, 과제물 복사를 해준다.

안씨는 사실 이번 여름 공부를 다시 못 할 뻔한 위기도 있었다. 갑자기 심장 주변 근육까지 굳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100m 달리기를 한 것처럼 심장이 뛰다가 어떤 때는 혈압이 80까지 확 떨어졌다. 그래서 여름 내내 책을 한 글자도 보지 못했다. 다행히 개학 날이 되니 다시 혈압이 오르고, 심박 수도 안정이 됐다.

"봄의 노래에 대해선 생각지 말라. 너에겐 너의 음악이 있다."안씨가 가장 좋아하는 영문학 작품인 영국 시인 존 키츠(John Keats)의 시 '가을에(To autumn)'의 한 구절이다.

[원주=남정미 기자 nj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