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

1등급 대 나머지…일반고 내에서도 ‘흙수저’ 차별

1등급 대 나머지…일반고 내에서도 ‘흙수저’ 차별

등록 :2016-03-23 19:19

[학생부의 배신ㅣ불평등 입시 보고서]
③ 비교과 스펙도 1등급 몰아주기
올해 수도권 지역 일반고를 졸업한 주수희(가명·19)양은 꿈이 작가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부모의 지원을 충분히 받기 힘든 ‘흙수저’ 주양이 대학 지원 과정에서 의지할 곳은 학교뿐이었지만, 그는 “작가라는 꿈을 키우는 데 학교에서 받은 지원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에 중요한 ‘비교과 스펙’에서 내신 4등급인 주양은 늘 뒷전이었다. 백일장이나 맞춤법 대회처럼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에 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교내경시대회에 나가고 싶었지만, 1·2학년 때는 담임교사의 추천이 없어서 기회를 얻을 수가 없었다. 담임교사 추천은 늘 1등급 친구들의 몫이었다. 소논문 쓰기 대회(R&E) 출전 기회는 전교 30등까지를 모아 별도로 만든 ‘심화반’ 친구들에게만 주어졌다.

“선생님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도 1등급 아이들만 써주셨어요.” 사회 수업 시간에 토론에 참여하면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에 관련 내용을 써준다고 했던 교사는 학생부 기재가 이뤄지는 학기 말, 주양에게 “시간이 없어 다 써줄 수가 없어서 1등급까지만 써주기로 했다. 미안하다”고 말을 바꿨다. 세특은 과목 수업 시간에 보인 학생의 태도나 특성 등을 기록하는 학생부의 한 항목으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중시된다고 여겨진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주요한 평가요소인 비교과 활동이 ‘금수저 학교’ 출신이나 고소득 계층 학생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일반고 안에서도 기회가 고르게 주어지지 않는 불평등과 차별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소위 ‘명문대’ 입시에서 우수한 실적을 내기 위해 학교 쪽에서 동아리, 경시대회, 봉사활동 등 비교과활동의 기회를 1등급(상위 4%) 정도의 소수 상위권 학생들에게 몰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등생에 지원 쏠림
비교과 ‘스펙’ 기회 몰아줘
학생부 20장 넘게 써주기도

다른 아이들은 소외
내신 안좋아 주요대 못 간다고
경시대회 추천서도 못 받아

스스로 써낸 학생부를 가지고 지원한 수시모집 4곳에서 모두 탈락한 주양은 정시모집으로 경기도의 한 대학 야간과정에 합격했다. 주양은 “가정 형편 때문에 근로장학생을 해도 좀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야간과정에 지원했다”며 “작가의 꿈은 나중에라도 꼭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ㄱ고는 서울대 수시모집에 4명의 합격자를 내, 지역 내 72개 일반고 가운데 1등을 했다. 하지만 이런 ‘모교의 성공’은 주양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학생부 종합 전형(학종) 준비한 일반고 학생들의 차별 경험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상위권에 스펙 몰아주기

수시모집 확대로 비교과 활동이 중시되고 있지만 과거 수능 성적 등으로 ‘한줄 세우기 교육’을 할 때 있었던 ‘우열반’ 체제는 ‘심화반’, ‘특별반’, ‘정독반’ 등으로 변형돼 여전히 건재하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사는 “스펙 쌓아주려고 프로그램들도 많이 생기는데, 자격을 성적으로 제한한다. 결국 서울 시내 대학에 갈 만한 40~50명 학생에게 집중된다”고 말했다. 그는 “똑같은 학생들이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집중적으로 참여하고, 스펙을 쌓아서 학생부종합전형에 합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화반 안에서도 서울대에 지원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누리는 ‘특권’은 남다르다. 자녀가 고등학생인 울산의 한 학부모는 “정독반 안에서도 전교 1등 하는 아이가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썩 잘하지 못했는데도 1등을 한 적이 있다”며 “그 아이는 1학년 때부터 학교가 ‘서울대 밀어주는 아이’로 특별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다 안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에는 정독반 안에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밀레니엄 정독반’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학교에 지원해주는 예산이 이런 심화반을 위해 쓰이기도 한다. 서울의 한 일반고는 기초자치단체가 지원한 3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전교생(300여명)의 10%도 안 되는 20여명 정원의 심화반에 쓴다. 이 학교 교사는 “다른 학생들은 방과후학교나 보충수업비를 내는데, 심화반 학생들은 지자체 예산으로 수업비가 모두 면제된다”고 말했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현행 학종은 기본적으로 내신 성적을 중시하기 때문에 내신 등급이 좋아야 비교과 스펙도 의미가 있다”며 “학교 입장에서는 내신 최상위 학생들에게 스펙을 몰아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상담을 해보면 1등급 수상 실적은 50회 안팎이지만 3~4등급 이하 학생들은 10회 안팎에 그친다. 3등급 이하는 내신 성적도 밀리는데 비교과까지 밀려서 수시모집으로 가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내신 등급별 학생들의 수상실적 격차 사례
내신 등급별 학생들의 수상실적 격차 사례

고교들, 내신등급 높은 학생에게
경시대회·봉사활동 기회 몰아줘
학생부 종합전형서 상대적 유리
상위권 학생부만 교사가 쓰기도

심화반·정독반 이름으로 특별관리
“정독반 안엔 또 밀레니엄 정독반”
독서실마저 성적따라 ‘지상·지하’

고교마다 학종 대비반 ‘우후죽순’
소논문쓰기 등 대학 교양 수준
일반 학생들은 접근하기 어려워

■ 학생부 기록도 상위권만

심화반 학생들의 수시모집 대비를 해주는 과정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학생부 작성을 맡기거나, 학생부 기록을 과도하게 수정하는 일도 벌어진다.

지방의 한 일반고를 졸업한 고도연(가명·19)양은 “내 학생부는 내가 다 썼다”고 했다.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학생부를 써오라고 하는데 심화반 애들은 싹 손을 봐 주지만, 나머지 애들은 저희가 써온 그대로 학생부에 올라가요. 선생님이 써준 학생부를 보면 20장이 훌쩍 넘어가는데 문체, 단어가 달라요. 그런 학생부에 비하면 내 학생부는 진짜 초라하죠. 3년 동안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가 있나 싶었어요.”

비수도권 비평준화 지역의 한 교사는 “서류만 갖고 1차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학기가 끝나면 학생부 기록을 전담팀을 꾸려서 점검을 한다. 조작은 아니지만 몇몇 교사가 성적 상위자들의 학생부를 집중 관리하는 것”이라며 “학생이 중심이 되고 주도를 해서 자기 진로와 적성을 고려한 대학 진학을 하는 게 아니라, 학교가 주도해서 진로를 정하고 이에 맞춰 동아리나 봉사, 자치활동을 다 몰아 쓴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진보 교육감 지역에서도 인권 침해 수준의 차별이 버젓이 이뤄진다. 한해 평균 4~5명의 서울대 수시모집 합격생을 내는 서울 강남구의 한 일반고는 심화반 학생의 독서실을 지상에 배치한 반면 다른 학생들이 사용하는 독서실은 지하실에 있다. 한 학부모는 “아이가 지하에 가보니 냄새도 나고, 친구들이 기침을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거다. 의자와 조명도 다르다”며 “심화반 학부모들만 따로 입시설명회를 열어 ‘독서활동 기록을 학부모가 대신 적어주라’는 식의 안내도 한다”고 말했다.

송화원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줄세우기 방지 캠페인 팀장은 “성적 우수자에게만 자원이 집중되면서 대다수 아이들이 받아야 할 교육적 혜택이나 자원이 형평성 있게 분배되지 못하고 왜곡되고 있다”고 말했다.

■ 대학 눈높이 맞추느라 흙수저들 뒷전

학종에 대비하기 위해 학교가 개설하는 프로그램이 고등학교 수준을 뛰어넘고 있는 것도 중하위권 학생들의 기회를 간접적으로 박탈하는 행태로 지적된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사는 “상위권 대학에 초점을 두다 보니 모든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소수 학생만 따라갈 수 있는 대학 교양 수준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일반고들 사이에 영재학급 개설이 유행하고 있는 것 역시 수시모집 대비 전략 가운데 하나다. 영재교육종합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영재학급 개설 일반고가 2013년 72곳에서 2015년 91곳으로 크게 늘었다.

영재학급이 개설돼 있는 강남구의 한 일반고 학부모는 “영재반에서 엄마들끼리 팀을 만들어서 토론대회나 논문 쓰는 비교과 활동을 하는데, 가정통신문을 통해서 영재반 애들이 상을 받은 연구 주제들을 보면 고등학생 수준에서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며 “1년에 오는 가정통신문 200여장 가운데 중위권 대상 프로그램 안내는 1~2건뿐이었다”고 말했다.

김동춘 전 전국진학지도교사협의회 공동대표(대성여중 교사)는 “교육부가 고교 교육을 정상화한다며 대학들한테 ‘고교 정상화 지원 사업’ 예산을 지원해 학생부종합전형을 장려하는데, 실제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입시에 종속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학종이 교내활동을 다양하게 만드는 등 학교 현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긴 하지만, 소논문 쓰기 등 고등학교에서는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치도 않은 형식적인 스펙쌓기가 일어나는 것은 보완해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