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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학생부 종합전형 탓 ‘내신 사교육’마저 과열 / ② 격차의 핵심은 비교과

학생부 종합전형 탓 ‘내신 사교육’마저 과열

등록 :2016-03-23 19:35

전국 4년제 대학의 수시모집 비중은 꾸준히 늘어 2017학년도 입시에서는 전체 모집정원의 69.9%를 수시모집으로 선발한다. 사진은 지난해 7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주최한 ‘2016 수시대학입학정보 박람회’에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전국 4년제 대학의 수시모집 비중은 꾸준히 늘어 2017학년도 입시에서는 전체 모집정원의 69.9%를 수시모집으로 선발한다. 사진은 지난해 7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주최한 ‘2016 수시대학입학정보 박람회’에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학생부의 배신ㅣ불평등 입시 보고서]
③ 비교과 스펙도 1등급 몰아주기
“10여년 학원을 하면서 이렇게 내신 대비 사교육이 과열된 적이 없다.”(대치동 한 학원 원장)

대학 전형의 대세로 자리잡은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이 비교과활동을 중시하면서 이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그런다고 대학들의 교과성적에 대한 요구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학종으로 합격하려면 내신 성적도 좋고 비교과 스펙도 좋아야 한다’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정설로 굳어져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 사이에서 내신 성적을 위한 사교육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23일 서울 강남구와 송파구 학원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1학기 중간고사가 한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학원마다 학교별 내신 대비반이 개설되고 있다. 송파구 학원의 ㅇ고 내신 대비반의 경우 5~6회짜리 한 과목 수강료가 42만원이다. 중간고사를 치르는 국·영·수·사·과 5과목을 모두 수강할 경우 한 차례 중간고사에만 200만원에 이르는 사교육비가 들어간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장은 “지난해 10월 고려대가 학종으로 전체 모집인원의 50%를 선발하겠다고 학종 확대 방침을 밝힌 뒤 기존의 수능 학원들이 경쟁적으로 내신 전문반을 개설하고 있다”며 “10년 넘게 학원을 하면서 이렇게 내신 대비 사교육이 과열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ㄷ외고와 같은 최상위권 외고의 경우 과목별로 ‘족집게 강사’가 유명세를 타고 있다.

비교과스펙도 내신 안좋으면 무의미
시험전 5~6회 강의 과목당 40여만원
강남 학원장 “10여년간 이런적 처음”

현장 교사들은 특히 내신은 갑자기 성적이 상승하는 일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사는 “일반고에서도 성적 상위 10명 정도는 특목고에서 떨어진 애들이 오거나 전략적으로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에 지원하기 위해 온 학생이 다수”라며 “이런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선행학습을 받은 경우가 많다. 일반고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선행학습 등으로 다져지지 않으면 1등급 받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일반고를 졸업한 ㄱ군(19)은 “고3 때 수능 모의고사에서는 전교 1등을 했는데, 내신은 20등 안으로 올리기 힘들었다”며 “수능은 학원 안 다니고 인터넷 강의와 이비에스(EBS) 강의만으로도 성적을 올릴 수 있었지만, 내신은 학원을 다니기 전까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학교 심화반에 있는 내신 1등급대 친구들 20여명은 모두 학원에 다녔다. 나는 30만~40만원 정도 내고 다녔는데, 100만원씩도 내고 다닌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더구나 입시 실적에 신경을 쓰는 고등학교의 경우 시험 난이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시험문제를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하는 것도 문제다. 상위권 대학들은 지원 학생의 출신 고등학교의 내신성적을 평가할 때, 시험문제가 어렵고(평균이 낮음), 응시 집단의 수준이 균질(표준편차 작음)한 경우 좀 더 높은 환산 점수가 산출되는 방식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입시 실적이 가장 좋기로 손꼽히는 일반고에 다닌 ㄴ양은 “선생님들이 대학의 평가 때문에 시험문제를 어렵게 출제하시는 바람에 나한테는 수능이나 내신 시험이나 마찬가지로 어려웠다”며 “집안 형편 때문에 학원에 다니지 못했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신 등급이 3등급 이상은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파구의 한 학부모는 “아이가 비행기를 너무 좋아해서 사교육 안 시키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줬다.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와서 보니 그런 게 다 필요가 없고 그냥 국·영·수 내신 등급이더라”며 “서울 안에 있는 공대 가려면 내신 1~2등급을 받아야 한다는데, 선행학습으로 다져진 애들이 전교 상위권에 포진돼 있다. 이것저것 하고 싶어 하는 거 많을 시기니 일본어도 하고 싶다 하는데, 수학·영어 해야지 시간이 없어서 하라고 못했다. 내가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학생부 전형, 현실은 ‘학생배경 전형’

등록 :2016-03-20 20:53수정 :2016-03-20 21:23

[학생부의 배신ㅣ불평등 입시 보고서]
② 격차의 핵심은 비교과

부모의 경제력·정보력 따라
‘비교과 스펙’ 양과 질 달라져
금수저 학교 뒷받침도 한몫
“학생부 비교과 ‘스펙’을 쌓는 과정에서 제가 흙수저 출신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올해 경기도의 한 일반고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입학한 유시열(가명·19)군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한부모가정 출신이다. 과학고를 지망했지만 실패해 일반고에 진학했다. 올해 대학 입시에서 서울대 수시모집 일반전형에 지원했지만 1단계 서류 평가에서 탈락했다.

중3 때 시작한 대학 산하 영재교육원에서 만난 친구들 중 상당수는 과학고, 외국어고, 국제고 등 특수목적고에 진학했다. 부유한 집안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각종 대회나 활동에 대한 정보를 구걸하다시피 할 때가 많았어요. 국제고 친구들은 과제 연구를 위해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가기도 했어요. 3학년 때는 자개소개서, 학생부 등 학생부 종합전형을 위한 서류 준비를 패키지로 몇백만원 주고 하는 경우도 봤어요.” 유군은 “한국 사회에서 ‘기회의 균등’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날 한 친구에게 이런 현실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써서 대학 가는 게 이상한 일이냐’고 하더라고요.”

학교의 뒷받침도 달랐다. “도교육청이 주관하는 과학경시대회에 나갈 때 과학 선생님을 통해서 서류를 보내야 했어요. 제가 서류를 좀 늦게 제출했더니 선생님이 약간 힘들어하시면서, 선생님이 ‘네 일 말고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다’며 업무 목록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일반고에서는 대회 나가고 이런 게 중시되지 않잖아요. 그 선생님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걸 그때 알았죠.” 학생 스스로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하며 논문까지 쓰는 과학고를 벤치마킹해 ‘과제 연구 동아리’를 직접 만들었지만 학교 예산이 부족해 대기업의 사회공헌사업에 직접 계획서를 내고 예산을 받은 적도 있다.

대부분의 주요 대학 입시에서 ‘대세’로 자리잡은 학생부 종합전형에는 동아리·봉사·진로·독서 활동 같은 비교과 활동이 주요한 요소로 들어간다. 애초에는 학생 개개인의 ‘꿈과 끼’를 반영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비교과 활동에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출신 고교는 이제 큰 변수가 되어버렸다. 사교육업계의 새로운 사업영역이기도 하다.

“다 돈으로 만든 스펙인데 대학이 실정 너무 모른다”

동아리·봉사·진로·독서활동 등
비교과, 학생부종합전형 주요 요소
사회경제적 배경·출신고가 변수로

특목고 학부모들 사이 ‘정보경쟁’
교내경시대회에도 개인과외 붙여
‘비교과 코칭’ 2시간에 20만원

강남 3구 일반고 ‘교내비교과활동’
전문가 학부모 섭외 과제연구 진행
일반고에서는 따라하기 힘들어

■ 정보가 생명…부모들의 ‘장외경쟁’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학부모 ㄱ씨의 딸은 올해 외고를 졸업하고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합격했다. 그는 딸의 외고 재학 시절, 동료 학부모와 팀을 꾸려 아이가 다닐 학원의 ‘커리큘럼’을 짰다. 아이를 서울대에 보낸 선배 엄마가 팀장 구실을 하며 자신이 검증한 교과·비교과의 사교육 정보를 전수했다. ㄱ씨는 “북한에서 김정은이 명령하면 다 따라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 엄마가 하자는 대로 다 했다”고 말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도입으로 입시 제도가 한층 복잡해지면서 부모의 ‘정보력’은 점점 당락을 가르는 주요한 변수로 자리잡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의 ‘정보전’도 함께 치열해지고 있다.

학부모 ㄴ씨(대치동)는 “특목고에 조카가 다닌다. 엄마들이 팀을 짜서 레슨을 돌리는데, 전화번호를 다른 학부모한테 노출한 엄마가 매장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 ㄷ씨(대치동)는 “엄마들이 낮에 왜 바쁘겠냐. 누가 대학 잘 갔다는 얘기가 들리면, 직접 연락해서 정보를 얻는다. 학원에서 얻는 정보보다 실질적으로 진학에 성공한 엄마한테 가서 물어보는 게 제일 진솔하고 정확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자식들을 대학에 다 보내고 ‘손을 턴’ 집이면 관계가 없는데, 아직 보낼 아이가 남아 있으면 중요한 정보는 말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 비교과 스펙도 사교육 딸이 서울의 한 외고 2학년에 재학 중인 학부모 ㄹ씨는 이번 새 학기부터 자녀가 참가를 원하는 교내 경시대회가 있으면 개인과외를 붙이기로 했다. 중간·기말고사 대비를 위해 월평균 200만원을 쓰는데, 추가 항목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 혼자 준비해서는 입상을 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철학 경시대회라면 철학 개인과외를 붙여서 준비를 해요.” ㄹ씨는 “학교에서 학생부도 애들한테 써오게 해요. 그러면 사교육 컨설팅을 받아서 쓴 다음에 제출하는 거예요. 그 내용이 한 자도 안 틀리게 (나이스 등에) 올라가요. 다 돈으로 만든 스펙인데, 대학이 고등학교 실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돈을 써서 좋은 대학에 간들, 그게 내 능력이지 얘 능력이냐”며 한숨을 쉬었다. 학부모 ㄱ씨는 “우리 아이도 3명이 팀을 짜서 어학사전을 만드는 교내활동을 했는데 학원에서 150만원 정도 받고 도와줬다”며 “비교과는 교과보다 금액이 세다”고 덧붙였다.

대치동에 있는 ‘ㄷ입시전략연구소’라는 이름의 학원은 고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생활기록부 프로그램’을, 3학년을 대상으로는 ‘컨설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생활기록부 프로그램은 비교과 코칭, 독서 코칭, 학습법 코칭의 세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어 비교과 코칭은 120분에 20만원으로 ‘학생부 구성과 작성 시 유의사항, 서술식 기재항목 평가요소와 기준, 진로에 맞는 활동 정리와 기재 연습, 학교별 교내 대회 조사, 희망 대학·학교 부교재’ 등으로 구성된다. 대치동에서 10년째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요즘 학원업계는 (영어 절대평가 등의 영향으로) 영어학원은 다 망하고, 수학학원과 학생부 종합전형 컨설팅학원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부 컨설팅은 학생부 작성부터 교내 경시대회 준비, 소논문 작성까지 다 한다. 소논문 하나를 지도하고 완성하는 데 편당 800만원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 금수저 학교만 가능한 고급 스펙 학교에 따라 학생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의 질이나 양도 큰 차이가 난다. 특히 고소득계층 출신이 많은 강남 3구 일반고나 특목고·자사고는 일반고에서는 따라 하기 힘든 프로그램도 만든다.

강남구에 있는 일반고인 ㅇ고는 교수 등 전문가와 함께 연구를 수행하고 소논문을 쓰는 과제연구(R&E: Research and Education) 프로그램을 ‘교내 비교과 활동’으로 운영한다. 연구를 지도해줄 전문가들을 구하는 데 큰 힘이 들지 않는다. 재학생 학부모나 동문 가운데 섭외할 수 있기 때문이다. ㅇ고는 매년 학기 초 ‘대학, 정부기관 및 기업체 등에서 근무하며 전문가적 역량을 가지신 학부모’를 모집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낸다. 지난해엔 17명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지도교수로 참여해 ‘빅데이터 분석 사례 연구’ ‘폐암 진단을 위한 흉부 시티(CT)에서 대사증후군 여부 예측’ 등의 주제를 학생들과 연구했다. 이런 활동은 ‘교내 활동’이기 때문에 학생부의 ‘세부능력·특기사항’에 학생의 학업 능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과제연구는 학생부에 기록될 경우 수시모집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수험생들이 믿고 있는 ‘고급 스펙’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학교의 역량만으로 지도교수를 섭외할 수 없는 대다수 일반고의 학생들은 전교에서 경쟁을 통과한 한두 명만 시·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대회에 나가 과제연구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마저도 ‘교외 활동’으로 간주돼 학생부에 수상 경력은 못 쓰고 참가 사실 정도만 기록할 수 있다. 올해 서울대 수시모집에 합격한 ㅇ고 출신 조현재(가명·19)군은 “원래 동대문구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부모님이 내 교육을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를 하셨다”며 “학원 같은 다른 요소보다 과제연구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