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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공부 못하는 아이는 있다

공부 못하는 아이는 있다

내 책,《공부 못하는 아이는 없다》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공부 상처와 그 원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간의 학습치료 경험에서 얻은 자녀의 학습에 대한 바른 양육태도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책이다. 또 공부의 견인차가 바로 마음근력인데, 이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아이들을 공부지옥으로 몰아넣는 부모들에 대한 냉정한 충고도 담고 있다. 어째서 많은 아이들이 어느 순간 더 이상 공부를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일까? 공부가 싫어져버리는 것일까? 영영 공부와는 멀어지고 마는 것인가?

답은 아주 간단하다. 마음근력이 훼손된 아이들은 공부를 할 수 없다. 마음근력이란 주어진 과제나 일을 해낼 수 있는 심리적, 정신적 에너지를 뜻한다. 또 공부는 많은 의욕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스마트폰 게임처럼 수동적이고, 애써 노력할 것이 거의 없는 일이 아니다. 공부에 필요한 막대한 노력을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이 약한 아이들은 공부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학습치료를 받으러 온 아이들 대부분은 무기력하고 인생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 오랫동안 아이들의 학습코칭과 학습치료를 해오며 나는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모의고사에서 전국 1, 2등을 다투는 아이들도 있었고, 공부라곤 1년이 가야 한 번도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막상 책상에서 몇 분을 버티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하루 10시간 넘게 공부몰입을 하면서도 전혀 지치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왜 어떤 아이는 공부를 잘하고 또 어떤 아이는 공부를 못하는 것일까?

부모들은 흔히 생각한다. 내 아이가 혹 좋은 학원, 좋은 강사를 만나지 못해서 공부를 못하는 것일까? 아이의 머리가 나빠서일까? 좋은 교재가 없어서, 좋은 학습지로 공부하지 않아서 공부를 못하는 것일까?

사실 흔히 부모들이 생각하는 공부 못하는 원인 가운데는 대단히 지엽적인 것이거나 아예 틀린 것이 많다. 일단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두뇌프로파일을 가지고, 특정 과목에 대한 이해능력이나 습득 속도에는 저마다 차이가 나지만, 아예 공부를 못할 아이는 없다. 거북이처럼 느려도 공부에 대한 열정과 배움에 대한 긍정감을 잃지 않는 경우를 나는 수없이 보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깊은 아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생각이 단단한 아이들은 공부를 잘한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에서 제시하는 자기성찰지능은 공부와 대단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자신의 인생목표, 가치관, 미래에 대한 비전이 뚜렷한 아이들은 이와 같은 자기성찰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공부를 잘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논리수학지능이나 자기성찰지능, 언어지능이 모두 높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공부를 잘하고, 또 열심히 하지만, 공부에 열의가 거의 없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자기성찰지능을 높여주는 상담과 독서치료를 진행했을 때, 공부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얼마든 변할 수 있다. 그들이 여전히 수학공부에서 논리수학지능이 높은 아이보다 더 빠르게 이해하고 습득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부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열정만은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자기성찰지능을 높이는 가르침과 공부에 대한 긍정적 관심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것이 학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내 아이가 단지 머리가 나빠 공부를 잘 할 수 없다는 편견만은 반드시 버려야만 한다. 심지어 심한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라고 해도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다만 그 속도에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물론 그 아이의 특성과 잠재력에 맞는 가르침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당연히 좋은 선생님이나 교재와 같은 환경적 요인 역시 절대적 이유는 못된다. 좋은 선생님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학습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이 명제는 맞는 것이지만, 단지 유명하고 강의를 재밌게 하는 사람만을 의미한다면 절대 이는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없다.

내 경험상, 오히려 좋은 선생님은 제자를 긍휼히 여기며, 제자의 학업성장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이지, 뛰어난 학습전문가나 강의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아이가 공부에서 열의나 의미를 찾지 못한 경우란, 대개 선생님에게서 이런 자애로운 가르침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 스승이 사라지는 현실은 아이들이 공부를 쉬이 포기하는 진짜 원인일 것이다.  

좋은 선생님 없이, 유명 인강을 듣지 않고도, 심지어 쓸 만한 자습서 몇 권도 없는 형편임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높은 학업성취를 달성하는 아이들은 얼마든지 많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많이 만났고, 어째서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들의 공부가 괄목상대하게 성장하는지를 탐색했었다.

예전 학습코칭을 했던 지은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당시 나는 그 아이의 학습을 아무 대가없이 도왔다.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이고 어머님은 노점상을 하는 어려운 처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도와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거의 완벽하게 자기조절학습을 하는 아이였다. 물론 아이는 나중에 최고 명문대에 진학했다.

지은이는 자기성찰지능이 뛰어났고, 낙관성 또한 높았으며, 특히 자기조절능력이 매우 출중했다. 게다가 학습에 대한 생각 역시 무척 바르고 지혜로웠다. 중학생 때 벌써 공부는 자기 인생의 성장을 돕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어서 부모에게 지극한 효심을 보이는 아이였다.

나는 좋은 참고서 하나 없이도 공부에 그토록 출중한 지은이를 보며 학업성취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아이의 공부를 좌우하는 것은 마음의 힘이다. 학습효능감, 낙관성, 자기조절능력, 회복탄력성과 같은 마음근력이 아이의 공부를 좌지우지하는 실질적 요인이라고 할 것이다.

학습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 아이들은 상담에 앞서 맨 먼저 낙관성 검사부터 진행한다.

그들의 낙관성 지수가 평균보다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결국 그들은 마음근력이 떨어져 공부를 못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모에게 아이의 낙관성 지수를 보이며 마음근력과 학습능력의 상관성에 관해 설명하고, 사태를 직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부모들은 수치화된 낙관성 지수를 보고난 후에야 자신의 아이가 이토록 공부와 멀어진 이유가 마음의 문제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많다.

어떤 아이가 공부를 전혀 하지 않거나 하기 싫어하는 것은 아이 마음에 공부할 마음이 제대로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동기’라고 한다. 정확하게 말해 학습동기가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에 학습에 대한 적절한 동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는 동기를 만드는 동인이나 동기로 작용하는 일정한 사고틀만의 문제는 아니다. 바람직한 목표, 마음가짐, 가치관과 의미 부여와 같은 동기 요인들이 제대로 성장할 때 학습 동기 역시 온전히 높아질 수 있다.  

왜 자신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 나름의 의도와 신념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공부는 즐기거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한낱 싫은 일이나 고역이 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내게 학습의 가장 중요한 요소 딱 하나만 꼽으라고 묻는다면 나는 도덕성을 꼽을 것이다. 단지 재밌어서, 지적 호기심 덕분에, 공부에 대한 긍정적 동기가 있어서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세상에 대한 바른 관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부족할 때, 아이의 공부 열정 역시 쉽게 사그라질 수 있다. 재미가 없어지면 공부를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뛰어난 저술가 말콤 글래드웰은 아시아계 미국 명문대생의 성적이 유독 높은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그들의 머리가 좋아서라고 믿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며 속사정을 밝힌다. 그 진짜 이유가 아시아계 미국 명문대생들이 대개 벼농사를 짓는 부모를 보며 자랐고, 부모가 새벽부터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또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인생에서는 우리 부모처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마음가짐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도 공부를 통해 자신이 성장하고, 사회와 타인들에게 도움을 주며, 가족과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지극히 평범한 도덕성일 것이다.

나는 도덕성을 길러주지 못한 채, 공부만 강요하고 시키다가 결국 아이를 망치고 만 부모들에게 이 냉엄한 진실을 알려줘야만 할 때가 많다.  

이런 마음의 힘, 마음가짐, 도덕성이 부족한 아이들은 결국 공부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여전히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넘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