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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인성이 꽃피는 나라"는 없다

"인성이 꽃피는 나라"는 없다


지난 12월 말, 국회 여야 102명이 공동 발의해 199명 전원일치로 통과시킨 인성교육진흥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 2015년 7월부터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 인성교육 교과목 수업시간이 법으로 정해지고 학교는 총 예산의 일정 비율을 인성교육에 써야 한다.
▶ 교육감은 기본계획에 따라 자체 세부계획을 세우고, 학교장은 매년 학기초 인성교육 계획을 교육감에게 보고한 뒤 이를 연말에 평가받도록 한다.
▶ 교사들은 인성교육 연수를 의무화해서 관련 연수를 강화하고, 교원 양성 기관에서는 인성교육 필수과목을 개선한 뒤 임용시험에서 검증을 강화하도록 한다.
▶ 가장 혁신적인 점은 미국처럼 인성교육 예산을 정부정책과 예산으로 뒷받침되도록 의무화


최근, "인문학", "창의력", "창조경제" 등과 함께 "인성" 또한 강한 드라이브가 걸린 주요 정책적 키워드가 되었다. 교총과 같은 보수적 교육단체에서는 위와 같은 골자의 인성교육진흥법을 '세계 최초'라며 극찬하고 있는 반면, 전교조와 같은 진보적 단체에서는 '또 하나의 관제교육일 뿐'이라며 강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분명, 국가적 차원에서 아이들의 인성함양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 이와 같은 "정책적 드라이브"에 대한 강한 불신과 불안감 또한 존재하고 있다.


■ 여전히 '교육'과 '생산공정'을 혼동하는 정치권과 교육계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르면, 인성교육을 교과목화하여 법으로 정해진 바에 따라 수업시간의 일부분을 할애해야 하며, 교육감은 인성교육 계획을 세운 후에 그에 대한 보고 및 평가를 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불안감을 지피는 것은 바로 이 "계획" 및 "평가"라는 문구가 된다.

여러 차례 지적된 바와 마찬가지로, 한국 교육계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할 권한을 지닌 행정권력이 "교육"에 대해 매우 시대착오적 감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교육시스템은 근원적으로 일제시대 일본의 교육시스템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졌으며, 일본의 교육시스템은 19세기 프로이센(Preussen: 오늘날 독일의 전신인 여러 국가 중 하나. 1918년까지 존속하였다)의 것을 모방하였다.

이 계통의 교육이념은 대체로 "교육"을 철저한 국가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 간주한다. 서유럽의 강국들과 경쟁하기 위하여 빠른 산업화를 이루고 강한 군대를 양성하기 위하여 학교는 마치 군대나 공장처럼 운영이 되며, 선생의 강한 지도력 아래 철저한 상명하복을 실행할 수 있는 순종적인 인재를 대량으로 양산하여 사회의 중간계층, 관료, 군장교 등으로 사용하기 위한 권위주의적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로부터 백 년이 지난 후, 오늘날에는 어떤 현대적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낡고 폭력적인 이념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군사정권 및 독재를 경험하며 비교적 최근까지 그와 유사한 시스템이 존재하였다.



▶ '교육'과 '생산공정'이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체벌과 폭력을 통해서라도 학생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학생 개인의 희망사항, 여가시간, 유희 등을 철저히 억압하여 오로지 책상머리에서 공부만을 주입시켜 그 중 많은 수를 대학에 입학시키는 "계량적 실적"을 올리는 것이 학교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학생들의 부모부터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결국, 이러한 교육이념에서는 '교육'과 '생산공정"이 구분되지 않는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일정 재료와 노동을 투입하면 생산벨트의 끝에 완성품이 조립되어 있을 것이라는 태도로 교육을 바라 본다.

그러나, "인성"이라는 것이 그러한 식으로 교육되는 것이던가? 윤리와 도덕과 관련된 과목을 일정 시간 이상 수강을 하면 학생들의 인성이 바로 잡힐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규 교과목에 도덕이나 윤리 과목이 개설된지 이미 수 십년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 도덕과 윤리 교과목의 수강시간이 부족하여 학생들의 인성 문제가 나타났다는 말인가? 그것을 게획에 따라 일정 시간을 투자하여 몇 배로 늘림으로써 '주입의 빈도'를 늘리면 그와 비례하여 인성이 보다 많이 함양될 수 있을까?

지금 이 지경에 와서도, 정치권과 교육계는 여전히 '창의성', '인성', '윤리', '도덕'과 같은 정신적 가치가 어디에서 함양되는지 그 근본적인 작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관제교육의 위험성

현재 보수단체들에서는 "인성이 꽃피는 나라를 만들자"라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인실련)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인성교육'을 경계하는 태세를 보이고 있는데, 인성교육의 필요성과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으나, 그 전반적인 실행의 방식이 사실상 옛 '유신교육'의 재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사실, 오늘날 시점에서 국가의 주도로 특정한 가치관 및 "학생, 교사, 학부모의 모범"을 선택하여 그것을 일괄적으로 교육한다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비판을 면하기가 힘들다. 그것은, 보수단체들이 주장하는 '인성교육'에서 '인성'이 '충성'과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군대, 기업, 학교 세 곳에서의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군대, 기업, 학교 세 부분에서 그 구성원들에게 절대적 충성 및 복종을 요구해온 권위주의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성'은 '충성'과 별개 되는 개념이라는 점에 있다. 보수단체들이 요구하는 관제교육으로서 인성교육이 서는 경우, "인성이 바로 선" 사회의 구성원은 모두 동일한 지향점과 동일한 가치관, 동일한 사상과 이념을 지닌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떠한 의미에서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서로의 사상과 이념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며, 때로는 충돌과 대립을 반복할지라도 서로 간의 존재를 용인하고, 서로의 차이를 배려하며, 충돌과 대립 이후에 반드시 화해와 용서가 오갈 수 있는 대범한 인간상이 '인성' 본연의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관제교육의 일환으로서 동일한 '인성의 모델'을 제시하여 그것을 그대로 모방하고 따를 것을 요구하는 방식은 오히려 지금까지 학생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성을 파괴해온 요소를 확대재생산시키고, 사회의 가치관과 시민들의 의식수즌을 수 십년 전인 70년대 수준으로 퇴화시킬 우려가 있다.



▶ 관제교육으로는 인성을 기를 수 없다

■ 인성을 기르는 최고의 방법

묘하게도, 인간됨을 설파 한 동양과 서양의 두 성인은 서로 거의 같은 말을 남겼다.

공자는 "기소물욕 불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이라 했으니,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이라면 남에게도 그것을 시키지 말라"라는 말을 남겼고, 예수는 "황금률(golden rule)"로 알려진 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신약, 마태 7:12)"라고 가르쳤다. 인성의 출발점은 국가에 대한 충성도, 상관에 대한 복종도, 사실은 사회의 상식도 아니다. 인성은 가장 기본적인 단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출발한다. 타인을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는 기본적인 배려에서 인성이 진정 꽃피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성은 확장된 개념으로 나아간다. 나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남에게로부터 가치판단을 강요받지 않을 자유가 있으니, 나 또한 남에게 내 가치를 강요하지 않는 것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인성은 확장되어 나가며, 이는 근본적으로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신념의 자유 등 여러가지 민주적 가치들과 맞닿아있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들이 있으니, 남 또한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마음은 인성이 정의감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것이며, 이는 사회적 정의와 의로움에 대한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의식으로 발전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사실, 국가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성교육을 일괄적으로 실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인성' 그 자체를 모독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 인성은 자유로운 생각에서 출발한다

인성을 기르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것은, 반대로, 오늘날 사회가 각박해지고 아이들의 인성이 부실한 것은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반항심과 분노가 마음 속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나라에서 정한 '인성교육'으로 아이들의 인성을 함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몰이해가 상존하는 이상, 아무래도 당분간은 "인성이 꽃피는 나라"가 되는 것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주니어헤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