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가 클까 2x가 클까?" 답을 찾는 힘, '인문적 사유'
청소년을 위한 행복한 인문 이야기 ①
15.05.17 15:57
최종 업데이트 15.05.17 15:58 박재범(gapoe)인문적 사유는 주어진 현실과 인간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꿈꾸는 깊고 높은 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문적 사유는 인간의 본래 가치를 지켜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고양시키며 살아갈 수 있는 미래 지향적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인문적 소양과 사유의 힘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인간적 가치가 무시되고 재물과 권력이 앞서 사회가 사람답게 사는 일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교육 또한 학력과 학벌 위주의 극심한 경쟁으로 청소년들이 좀처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소양을 키워나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메마른 인문적 사유, 어떻게 키울까
그래서 더욱 미래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이 성장 과정에서 인문적 사유의 힘을 키우고 다지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청소년들에게 인문적 감수성과 소양을 키워줄 수 있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는지요? 국어 교과 속의 문학이나 사회 교과 속의 철학 아니면 어려운 인문학 텍스트를 읽게 하는 접근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인문적 관심과 학교 생활을 통해서 볼 때 이런 방식의 접근은 성장기를 통해 꼭 지녀야 할 인문적 소양의 바탕을 키워주기보다, 오히려 처음부터 인문적 영역에 대해 강한 거부감과 부담감을 갖게 만들어버리기 십상이지요. 교과서는 어디까지나 공부에서 시작해 공부로 끝나기 십상이고, 대부분의 인문학 서적은 어렵고 딱딱합니다.
이제 인문학은 그 본질적 가치인 '인문 정신'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들의 실제 삶 속에, 바로 내 삶의 일상 속으로 좀 더 깊고 가깝게 들어와야 합니다. 인문 정신은 우리의 현실적 삶과 좀 더 밀착되어 삶의 방향성과 시대의 문제에 대하여 주체적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가치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인문적 소양과 정신을 키우기 위해서 물론 인문학 저서들이 매우 유용하겠지요. 그러나 보다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이 본질인 인문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서 처음부터 반드시 어려운 인문학적 독서에 의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삶 가운데에서 인문적 요소들을 경험하고 느끼고 사유하면서 점차 체화해가는 일이 중요하고 또 가능합니다.
인문적 독서 이외에도 좋은 영화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신문의 사건 기사나 칼럼 등을 통해서도 인문적 소양을 키울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와의 대화, 특별한 정서적 체험들, 내 주변 사람들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 자연의 섭리와 아름다움 등에서도 우리는 인문적 감수성을 풍요롭게 해 주는 교감이나 감동을 경험하면서 우리 삶을 보다 인간적으로 가꿔 가고자 노력하는 인문적 사유의 힘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고, 마음을 향하게 해 주는 일입니다.
'청소년을 위한 행복한 인문 이야기'는 기존의 인문학 개념의 한계를 극복하고 청소년들이 인문은 곧 학문이라는 개념에서 탈피해 어렵지 않게 인문적 소양을 키우고 인문 정신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 현장 체험적 글입니다.
청소년 인문과 인문 정신에 대한 생각과 실제 수업 사례들을 현장 강의 형식의 기본 틀에 담은 이 글을 통해 청소년들은 지금까지의 어려운 '인문학'에 대한 개념을 넘어 우리 삶 속의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에 대한 인문적 성찰의 과정을 흥미롭게 경험해 감으로써 인문적 사유의 힘과 인문 정신을 키워갈 수 있도록 기획하였습니다. 또한 교사와 학부모와도 공유해 청소년 인문학과 인성 지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인식, 그리고 적용의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Х가 큰가, 2Х가 큰가?
이제 질문을 하나 던지면서 '우리들의 행복한 인문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Х와 2Х 중 어느 쪽이 더 크지요?"
저는 해마다 첫 수업 시간에 이렇게 아이들에게 'Х와 2Х 중 어느 쪽이 더 큰지, Х와 -Х 중에서는 어느 쪽이 더 큰지'를 묻습니다. 아이들의 답은 어떨까요? 많은 아이가 "2Х가 Х보다 더 큽니다", "Х가 -Х보다 더 큽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당연한 걸 왜 물어보나', '국어 시간에 웬 수학?' 하며 자신 있게 답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결과는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이 답은 틀렸습니다. 만약 Х의 값이 -2라면, Х보다 -Х가 더 크고, 2Х보다 Х가 더 큽니다. 그리고 만약 Х가 0이면 둘의 값은 똑같습니다. 그러니 위의 답은 분명히 옳은 답이 아니지요. 2Х가 더 크다는 답은 겉으로 보이는 대로만 판단한 결과입니다.
"알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거나, "선생님, Х의 값이 뭡니까?"라고 물어야 맞는 것입니다. 상식적 수준의 수학적 개념이지만, 의외로 잘못 답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내가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새로 만나게 되는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그만큼 청소년들이 이 답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짧은 문답은 청소년들의 잠들어 있는 인문적 감수성을 깨워 의미 있는 자신의 삶과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첫 발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Х, Х, 2Х'라는 수학적 기호를 통과해 인문적 사유의 세계로 발을 내디뎌 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인간적 삶의 가치들을 추구하고 또 펼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대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진정한 인간적 가치들을 내면화할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걸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 청소년들의 교육 환경은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일은 고사하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키우기에도 너무나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진실이 가려지고 왜곡되는 일이 참 많이 생겨납니다. 심지어 세상을 바로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존재들도 분명히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진실(Х의 진짜 값)은 교묘히 가린 채 그냥 2Х가 큰 것처럼 믿게 하는 누군가, 무언가가 틀림없이 있다는 얘기지요. 물론 그 누군가, 무언가는 자기 안에 있기도 합니다.
만일 성장하면서 내가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키워놓지 못한다면, Х의 값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인생의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 채 진정한 내가 아닌 가짜 인생, 바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냥 Х보다 2Х가 크다고 알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생은 결코 다시 살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생각하면 참으로 허망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Х가 큰지 2Х가 큰지를 바로 아는 일은 이제 수학 문제 풀이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한 삶의 문제 풀이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것들, 겉으로 보이게 내놓는 것들이 결코 다가 아닐 수 있음을 알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의도에 의해 오히려 실체가 가려지거나 숨겨질 수도 있고, 적어도 다른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일에 대해 '내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언가의 다른 모습 또는 그것의 진짜 모습을 보려고 노력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직 생활을 하며 인생을 좀 살아 보니 교과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Х와 그 옆에 붙어 있는 겉 숫자만 보지 않고 그 전체가 가지고 있는 참 값까지를 제대로 보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다운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정말 해야 하는 공부는 바로 이런 눈과 정신을 키워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더군요.
프랑스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폴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는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며 잘 보이지 않거나 가려지는 Х의 참값을 제대로 보려는 생각과 고뇌, 이것이 바로 인문적 사유입니다.
따라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인문적 소양과 사유의 힘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인간적 가치가 무시되고 재물과 권력이 앞서 사회가 사람답게 사는 일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교육 또한 학력과 학벌 위주의 극심한 경쟁으로 청소년들이 좀처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소양을 키워나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메마른 인문적 사유, 어떻게 키울까
▲ 인문학적 삶, 왜 배워야할까 | |
ⓒ pixabay |
그래서 더욱 미래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이 성장 과정에서 인문적 사유의 힘을 키우고 다지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청소년들에게 인문적 감수성과 소양을 키워줄 수 있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는지요? 국어 교과 속의 문학이나 사회 교과 속의 철학 아니면 어려운 인문학 텍스트를 읽게 하는 접근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인문적 관심과 학교 생활을 통해서 볼 때 이런 방식의 접근은 성장기를 통해 꼭 지녀야 할 인문적 소양의 바탕을 키워주기보다, 오히려 처음부터 인문적 영역에 대해 강한 거부감과 부담감을 갖게 만들어버리기 십상이지요. 교과서는 어디까지나 공부에서 시작해 공부로 끝나기 십상이고, 대부분의 인문학 서적은 어렵고 딱딱합니다.
이제 인문학은 그 본질적 가치인 '인문 정신'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들의 실제 삶 속에, 바로 내 삶의 일상 속으로 좀 더 깊고 가깝게 들어와야 합니다. 인문 정신은 우리의 현실적 삶과 좀 더 밀착되어 삶의 방향성과 시대의 문제에 대하여 주체적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가치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인문적 소양과 정신을 키우기 위해서 물론 인문학 저서들이 매우 유용하겠지요. 그러나 보다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이 본질인 인문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서 처음부터 반드시 어려운 인문학적 독서에 의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삶 가운데에서 인문적 요소들을 경험하고 느끼고 사유하면서 점차 체화해가는 일이 중요하고 또 가능합니다.
인문적 독서 이외에도 좋은 영화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신문의 사건 기사나 칼럼 등을 통해서도 인문적 소양을 키울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와의 대화, 특별한 정서적 체험들, 내 주변 사람들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 자연의 섭리와 아름다움 등에서도 우리는 인문적 감수성을 풍요롭게 해 주는 교감이나 감동을 경험하면서 우리 삶을 보다 인간적으로 가꿔 가고자 노력하는 인문적 사유의 힘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고, 마음을 향하게 해 주는 일입니다.
'청소년을 위한 행복한 인문 이야기'는 기존의 인문학 개념의 한계를 극복하고 청소년들이 인문은 곧 학문이라는 개념에서 탈피해 어렵지 않게 인문적 소양을 키우고 인문 정신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 현장 체험적 글입니다.
청소년 인문과 인문 정신에 대한 생각과 실제 수업 사례들을 현장 강의 형식의 기본 틀에 담은 이 글을 통해 청소년들은 지금까지의 어려운 '인문학'에 대한 개념을 넘어 우리 삶 속의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에 대한 인문적 성찰의 과정을 흥미롭게 경험해 감으로써 인문적 사유의 힘과 인문 정신을 키워갈 수 있도록 기획하였습니다. 또한 교사와 학부모와도 공유해 청소년 인문학과 인성 지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인식, 그리고 적용의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Х가 큰가, 2Х가 큰가?
이제 질문을 하나 던지면서 '우리들의 행복한 인문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Х와 2Х 중 어느 쪽이 더 크지요?"
저는 해마다 첫 수업 시간에 이렇게 아이들에게 'Х와 2Х 중 어느 쪽이 더 큰지, Х와 -Х 중에서는 어느 쪽이 더 큰지'를 묻습니다. 아이들의 답은 어떨까요? 많은 아이가 "2Х가 Х보다 더 큽니다", "Х가 -Х보다 더 큽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당연한 걸 왜 물어보나', '국어 시간에 웬 수학?' 하며 자신 있게 답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결과는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이 답은 틀렸습니다. 만약 Х의 값이 -2라면, Х보다 -Х가 더 크고, 2Х보다 Х가 더 큽니다. 그리고 만약 Х가 0이면 둘의 값은 똑같습니다. 그러니 위의 답은 분명히 옳은 답이 아니지요. 2Х가 더 크다는 답은 겉으로 보이는 대로만 판단한 결과입니다.
"알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거나, "선생님, Х의 값이 뭡니까?"라고 물어야 맞는 것입니다. 상식적 수준의 수학적 개념이지만, 의외로 잘못 답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내가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새로 만나게 되는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그만큼 청소년들이 이 답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짧은 문답은 청소년들의 잠들어 있는 인문적 감수성을 깨워 의미 있는 자신의 삶과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첫 발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Х, Х, 2Х'라는 수학적 기호를 통과해 인문적 사유의 세계로 발을 내디뎌 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인간적 삶의 가치들을 추구하고 또 펼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대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진정한 인간적 가치들을 내면화할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걸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 청소년들의 교육 환경은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일은 고사하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키우기에도 너무나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진실이 가려지고 왜곡되는 일이 참 많이 생겨납니다. 심지어 세상을 바로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존재들도 분명히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진실(Х의 진짜 값)은 교묘히 가린 채 그냥 2Х가 큰 것처럼 믿게 하는 누군가, 무언가가 틀림없이 있다는 얘기지요. 물론 그 누군가, 무언가는 자기 안에 있기도 합니다.
만일 성장하면서 내가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키워놓지 못한다면, Х의 값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인생의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 채 진정한 내가 아닌 가짜 인생, 바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냥 Х보다 2Х가 크다고 알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생은 결코 다시 살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생각하면 참으로 허망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Х가 큰지 2Х가 큰지를 바로 아는 일은 이제 수학 문제 풀이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한 삶의 문제 풀이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것들, 겉으로 보이게 내놓는 것들이 결코 다가 아닐 수 있음을 알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의도에 의해 오히려 실체가 가려지거나 숨겨질 수도 있고, 적어도 다른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일에 대해 '내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언가의 다른 모습 또는 그것의 진짜 모습을 보려고 노력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직 생활을 하며 인생을 좀 살아 보니 교과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Х와 그 옆에 붙어 있는 겉 숫자만 보지 않고 그 전체가 가지고 있는 참 값까지를 제대로 보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다운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정말 해야 하는 공부는 바로 이런 눈과 정신을 키워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더군요.
프랑스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폴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는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며 잘 보이지 않거나 가려지는 Х의 참값을 제대로 보려는 생각과 고뇌, 이것이 바로 인문적 사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현재 국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최고의 걸작을 지키는 힘, 인문적 사유
청소년을 위한 행복한 인문 이야기 ②
15.05.24 15:54
최종 업데이트 15.05.24 15:54 박재범(gapoe)'청소년을 위한 행복한 인문 이야기'는 청소년들이 인문은 곧 학문(인문학)이라는 개념에서 탈피해 좀더 쉽고 흥미있게 인문적 소양을 키우고 인문 정신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 현장 체험적 글입니다. 또한 교사와 학부모들과도 공유하여 청소년 인문학과 인성 지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인식, 그리고 적용의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청소년을 ~ ②'는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신문 매체의 짧은 만화를 통해서도 그것을 응용하여 관련 자료를 접목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인문적 소양을 키워갈 수 있는 좋은 인성 지도 자료를 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기자 말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구성 요소
다음 글을 읽으면서 빈 칸을 채워볼까요?
------------------------------------------------------------------------
4~5L의 ( )과, 25조개나 되는 ( ), 250억개의 ( )가 있고…, 6000㎡의 들판을 덮을 정도의 모세혈관과 40L의 ( ), 비누 7개에 해당하는 ( ), 2.5㎝ 못에 해당하는 ( ), 한 숟가락 정도의 유황과, 30g정도의 비철금속, 206개의 ( )와, 600개 정도의 ( ), 100개 이상의 ( ), 500만개의 ( )과, 900개의 미각기관, 400만개의 감각수용기, 2㎡의 ( )….
탄소, 질소, 칼슘, 인, 칼륨, 나트륨, 염소, 마그네슘, 아연, 망간, 구리, 요오드, 니켈, 브롬, 불소, 규소, 코발트, 알루미늄, 몰리브덴, 바나듐, 납, 주석, 티탄, 붕소….
이 세상 최고의 걸작, 바로 ( )!
-------------------------------------------------------------------------
이 글은 홍승우의 짧은 만화(『비빔툰』2, 문학과지성사, 2000. 중에서)를 바탕으로 하여 내용과 형식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 글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읽어가는 과정에서 곧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글은 우리 인체의 구성 요소들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보통 사람들이 알기 쉽게 풀어놓은 것입니다. 빈 칸의 답은 순서대로 혈액, 적혈구, 백혈구, 물, 지방, 철, 뼈, 근육, 관절, 털, 피부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몇 개나 맞추었을까요?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해 본 결과로는 지금까지 다 맞춘 개인이나 모둠은 없었고, 9개가 가장 높은 기록입니다.
물론 몇 개를 맞추었는가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여러분도 충분히 짐작을 하겠지만 중요한 건 마지막 문장과 그 문장 안에 비어 있는 괄호이지요.
그러니 마지막 괄호만큼은 꼭 여러분들이 스스로 채워 넣어보기 바랍니다. 그 답이 나오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들이 참 소중합니다.
오래 전 위 내용의 일부가 담겨 있는 만화를 한 일간지에서 처음 대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나와 함께하고 있는 내 곁의 사람들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아, 한 인간의 존재가 이토록 귀하고 신비로운 것이었구나,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대해야 하겠구나,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결코 쉽게 무너질 존재도 아니고, 그래서 결코 나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쉽게 포기해서도 안 되는 거였구나, 진정한 '이 세상 최고의 걸작은 바로 우리'였구나, 하는 생각에 오래 감동에 젖어 있었지요.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또 주변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신비롭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잘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고귀한 존재
다음의 글은 김승희의 시 '신이 감춰둔 사랑'(<냄비는 둥둥>, 창비, 2006.) 중 일부분입니다.
심장은 하루 종일 일을 한다고 한다
심장이 하루 뛰는 것이
10만 8천 6백 39번이라고 한다
내뿜는 피는 하루 몇천만 톤이나 되는지 모른다고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1억 4천 9백 6십만km인데
하루 혈액이 뛰는 거리가
2억 7천 31만 2천km라고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 두 번 갔다 올 거리만큼
당신의 혈액이 오늘 하루에 뛰고 있는 것이다
바로 너, 너, 너! 그대!
그렇게 당신은 파도를 뿜는다
그렇게 당신은 꺼졌다 살아난다
그렇게 당신은 달빛 아래 둥근 꽃봉오리의 속삭임이다
은환의 질주다
이 시를 읽으면 이런 혈액의 힘을 만들어내는 내 심장이 쿵쿵쿵쿵 뛰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지금 내 옆에 있는 이에게서도 똑같은 힘이 울림으로 느껴집니다. 언제나 기운이 없어 보이고 쓸쓸해 보이는 친구의 가슴 속에서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드신 어머님의 마른 가슴 속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도 그것이 쿵쿵거리며 뛰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 누구라도 심장이 있고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한 하나같이 고귀하고 하나같이 신성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힘없는 사람일지라도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들은 다 같이 '소중한 속삭임'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심장이 뛰는 고귀한 존재인 인간입니다. 항상 내 몸 안에 살아 있는 신비로운 구성 요소들을 생각하세요. 또 그 사람 안에서 쿵쿵쿵쿵 흐르고 있는 피를 생각하세요. 그 안의 열정과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려 노력해 봅시다. 그러면 언젠가 참 대단한 우리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최고의 걸작'은 지금은 아파하고 힘들어할지도 모르는 바로 '당신'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최고의 걸작'들의 가치와 삶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고자 하는 생각과 노력이 바로 인문적 사유입니다.
'청소년을 ~ ②'는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신문 매체의 짧은 만화를 통해서도 그것을 응용하여 관련 자료를 접목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인문적 소양을 키워갈 수 있는 좋은 인성 지도 자료를 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기자 말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구성 요소
다음 글을 읽으면서 빈 칸을 채워볼까요?
------------------------------------------------------------------------
4~5L의 ( )과, 25조개나 되는 ( ), 250억개의 ( )가 있고…, 6000㎡의 들판을 덮을 정도의 모세혈관과 40L의 ( ), 비누 7개에 해당하는 ( ), 2.5㎝ 못에 해당하는 ( ), 한 숟가락 정도의 유황과, 30g정도의 비철금속, 206개의 ( )와, 600개 정도의 ( ), 100개 이상의 ( ), 500만개의 ( )과, 900개의 미각기관, 400만개의 감각수용기, 2㎡의 ( )….
탄소, 질소, 칼슘, 인, 칼륨, 나트륨, 염소, 마그네슘, 아연, 망간, 구리, 요오드, 니켈, 브롬, 불소, 규소, 코발트, 알루미늄, 몰리브덴, 바나듐, 납, 주석, 티탄, 붕소….
이 세상 최고의 걸작, 바로 ( )!
-------------------------------------------------------------------------
이 글은 홍승우의 짧은 만화(『비빔툰』2, 문학과지성사, 2000. 중에서)를 바탕으로 하여 내용과 형식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 글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읽어가는 과정에서 곧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글은 우리 인체의 구성 요소들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보통 사람들이 알기 쉽게 풀어놓은 것입니다. 빈 칸의 답은 순서대로 혈액, 적혈구, 백혈구, 물, 지방, 철, 뼈, 근육, 관절, 털, 피부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몇 개나 맞추었을까요?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해 본 결과로는 지금까지 다 맞춘 개인이나 모둠은 없었고, 9개가 가장 높은 기록입니다.
물론 몇 개를 맞추었는가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여러분도 충분히 짐작을 하겠지만 중요한 건 마지막 문장과 그 문장 안에 비어 있는 괄호이지요.
그러니 마지막 괄호만큼은 꼭 여러분들이 스스로 채워 넣어보기 바랍니다. 그 답이 나오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들이 참 소중합니다.
오래 전 위 내용의 일부가 담겨 있는 만화를 한 일간지에서 처음 대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나와 함께하고 있는 내 곁의 사람들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아, 한 인간의 존재가 이토록 귀하고 신비로운 것이었구나,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대해야 하겠구나,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결코 쉽게 무너질 존재도 아니고, 그래서 결코 나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쉽게 포기해서도 안 되는 거였구나, 진정한 '이 세상 최고의 걸작은 바로 우리'였구나, 하는 생각에 오래 감동에 젖어 있었지요.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또 주변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신비롭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잘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고귀한 존재
다음의 글은 김승희의 시 '신이 감춰둔 사랑'(<냄비는 둥둥>, 창비, 2006.) 중 일부분입니다.
심장은 하루 종일 일을 한다고 한다
심장이 하루 뛰는 것이
10만 8천 6백 39번이라고 한다
내뿜는 피는 하루 몇천만 톤이나 되는지 모른다고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1억 4천 9백 6십만km인데
하루 혈액이 뛰는 거리가
2억 7천 31만 2천km라고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 두 번 갔다 올 거리만큼
당신의 혈액이 오늘 하루에 뛰고 있는 것이다
바로 너, 너, 너! 그대!
그렇게 당신은 파도를 뿜는다
그렇게 당신은 꺼졌다 살아난다
그렇게 당신은 달빛 아래 둥근 꽃봉오리의 속삭임이다
은환의 질주다
이 시를 읽으면 이런 혈액의 힘을 만들어내는 내 심장이 쿵쿵쿵쿵 뛰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지금 내 옆에 있는 이에게서도 똑같은 힘이 울림으로 느껴집니다. 언제나 기운이 없어 보이고 쓸쓸해 보이는 친구의 가슴 속에서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드신 어머님의 마른 가슴 속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도 그것이 쿵쿵거리며 뛰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 누구라도 심장이 있고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한 하나같이 고귀하고 하나같이 신성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힘없는 사람일지라도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들은 다 같이 '소중한 속삭임'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심장이 뛰는 고귀한 존재인 인간입니다. 항상 내 몸 안에 살아 있는 신비로운 구성 요소들을 생각하세요. 또 그 사람 안에서 쿵쿵쿵쿵 흐르고 있는 피를 생각하세요. 그 안의 열정과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려 노력해 봅시다. 그러면 언젠가 참 대단한 우리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최고의 걸작'은 지금은 아파하고 힘들어할지도 모르는 바로 '당신'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최고의 걸작'들의 가치와 삶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고자 하는 생각과 노력이 바로 인문적 사유입니다.
태그:청소년 인문, 최고의 걸작, 바로 우리
인문, '학'을 떼고 나서다
청소년을 위한 행복한 인문 이야기 ③
15.06.01 10:57
최종 업데이트 15.06.01 10:57 박재범(gapoe)'청소년을 위한 행복한 인문 이야기'는 청소년들이 인문은 곧 학문(인문학)이라는 개념에서 탈피해 조금 더 쉽고 흥미 있게 인문적 소양을 키우고 인문 정신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 현장 체험적 글입니다. 또한 교사와 학부모와도 공유해 청소년 인문학과 인성 지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인식, 그리고 적용의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 기자말
인문학의 '학'은 고상하고 높은 벽
인간적 가치가 무시되고 사람 사는 사회가 사람답게 사는 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현실을 생각할 때 인문 정신을 되살리는 일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특히 우리 청소년이 인간다운 한 사람으로 성장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인문적 사유의 힘이 그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인문적 사유의 기초가 허약한 그들에게 처음부터 인문학적 접근을 요구하는 방식 자체에 무리가 있음을 오랜 교직 경험을 통해 번번이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의 접근은 오히려 처음부터 인문적 영역에 대해 강한 거부감과 부담감을 가지게 만들어버리기 쉽지요.
인문적 소양과 가장 근접한 학문은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대표되는 인문학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청소년들이나 보통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너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낯선 여행지와도 같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 다녀오면 좋지만 그러기엔 너무 어려운, 그런 먼 나라 말입니다.
실제로 인문학이 우리 청소년이 접근하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얘기지요. 세계와 인간을 탐구한다고 하면서 정작 보통 인간으로서 인문학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면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이라고 하면 자꾸만 실질적인 일상의 삶과는 별로 연관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은 물론 대부분의 일반 사람이 '인문학' 하면 우선 '학(學)'자가 붙어 있어 머리 아프다고 합니다. 하기 싫은 공부인 것 같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분야인 것 같은 거부감을 유발하는 느낌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분명히 학문이고 공부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원론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문학'에서 '학'을 떼버려야 합니다. '학'이라는 글자가 일반인이나 청소년들이 인문의 실제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에게는 고상하고 높은 벽이 될 뿐입니다.
인문학, '인문 정신'으로 우리 삶 속으로 들어와야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을 추구하는 인문적 사유와 인문 정신은 학문 분야로는 인문학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곧 인문학은 아니며, 인문학을 통해야만 인문적 사유가 가능한 것 또한 아닙니다.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역사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분명히 다르지요.
역사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일의 유용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 한 인간으로서 역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으나 모두가 역사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인간의 역사 의식은 역사학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회 의식을 형성하게 되는 일도 같은 이치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인문적 사유와 인문 정신을 바탕으로 삶과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이를 위해 모두가 반드시 인문학에 대한 깊은 학문적 이해의 수준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인문 정신은 인문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인간다운 실제 삶을 위해 기능해야 합니다. 따라서 의학이나 과학, 이공 계열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도 인문적 소양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인문학'에서 '학'을 떼버리면 '인문'이 남습니다. 그 안에는 보다 나은 인간적 삶에 대한 지향이라는 인문의 힘과 정신이 오롯이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유와 정신은 비로소 인문학 책이나 강의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올 수 있게 됩니다.
그 동안 인문학은 인간들의 현실적 고통을 외면한 채 상아탑 속의 강단이나 책장도 넘기기 어려운 서적 속에 안주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반인들한테는 어렵기만 한 이론의 틀로 무장한 채 대중들로부터 외면 당하며, 인간을 위한 실제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 심하게 의심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사회가 살기 힘들어지고 인간적인 면이 점점 더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그런 책과 이론 속의 인문학은 당연히 제일 먼저 위기에 내몰리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이제 인문학은 그 본질적 가치인 '인문 정신'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사람들의 정신과 가슴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현실적 고통의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해결 방향을 모색하는 성찰과 실천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과 세계를 인문 정신을 바탕으로, 또 그 정신을 추구하는 관점에서 직면하고 생각하는 인문적 사유를 통해 보다 인간답게 변화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청소년들이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들 수준에 맞는 방법을 통해 먼저 인문적 소양을 쌓는 일의 중요함을 알고 인문적인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 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인문학'에서 '학'을 떼버리는 일인 것이지요.
인문학의 '학'은 고상하고 높은 벽
인간적 가치가 무시되고 사람 사는 사회가 사람답게 사는 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현실을 생각할 때 인문 정신을 되살리는 일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특히 우리 청소년이 인간다운 한 사람으로 성장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인문적 사유의 힘이 그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인문적 사유의 기초가 허약한 그들에게 처음부터 인문학적 접근을 요구하는 방식 자체에 무리가 있음을 오랜 교직 경험을 통해 번번이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의 접근은 오히려 처음부터 인문적 영역에 대해 강한 거부감과 부담감을 가지게 만들어버리기 쉽지요.
인문적 소양과 가장 근접한 학문은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대표되는 인문학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청소년들이나 보통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너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낯선 여행지와도 같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 다녀오면 좋지만 그러기엔 너무 어려운, 그런 먼 나라 말입니다.
실제로 인문학이 우리 청소년이 접근하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얘기지요. 세계와 인간을 탐구한다고 하면서 정작 보통 인간으로서 인문학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면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이라고 하면 자꾸만 실질적인 일상의 삶과는 별로 연관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은 물론 대부분의 일반 사람이 '인문학' 하면 우선 '학(學)'자가 붙어 있어 머리 아프다고 합니다. 하기 싫은 공부인 것 같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분야인 것 같은 거부감을 유발하는 느낌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분명히 학문이고 공부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원론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문학'에서 '학'을 떼버려야 합니다. '학'이라는 글자가 일반인이나 청소년들이 인문의 실제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에게는 고상하고 높은 벽이 될 뿐입니다.
인문학, '인문 정신'으로 우리 삶 속으로 들어와야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을 추구하는 인문적 사유와 인문 정신은 학문 분야로는 인문학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곧 인문학은 아니며, 인문학을 통해야만 인문적 사유가 가능한 것 또한 아닙니다.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역사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분명히 다르지요.
역사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일의 유용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 한 인간으로서 역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으나 모두가 역사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인간의 역사 의식은 역사학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회 의식을 형성하게 되는 일도 같은 이치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인문적 사유와 인문 정신을 바탕으로 삶과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이를 위해 모두가 반드시 인문학에 대한 깊은 학문적 이해의 수준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인문 정신은 인문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인간다운 실제 삶을 위해 기능해야 합니다. 따라서 의학이나 과학, 이공 계열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도 인문적 소양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인문학'에서 '학'을 떼버리면 '인문'이 남습니다. 그 안에는 보다 나은 인간적 삶에 대한 지향이라는 인문의 힘과 정신이 오롯이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유와 정신은 비로소 인문학 책이나 강의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올 수 있게 됩니다.
그 동안 인문학은 인간들의 현실적 고통을 외면한 채 상아탑 속의 강단이나 책장도 넘기기 어려운 서적 속에 안주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반인들한테는 어렵기만 한 이론의 틀로 무장한 채 대중들로부터 외면 당하며, 인간을 위한 실제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 심하게 의심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사회가 살기 힘들어지고 인간적인 면이 점점 더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그런 책과 이론 속의 인문학은 당연히 제일 먼저 위기에 내몰리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이제 인문학은 그 본질적 가치인 '인문 정신'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사람들의 정신과 가슴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현실적 고통의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해결 방향을 모색하는 성찰과 실천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과 세계를 인문 정신을 바탕으로, 또 그 정신을 추구하는 관점에서 직면하고 생각하는 인문적 사유를 통해 보다 인간답게 변화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청소년들이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들 수준에 맞는 방법을 통해 먼저 인문적 소양을 쌓는 일의 중요함을 알고 인문적인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 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인문학'에서 '학'을 떼버리는 일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