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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만남

“고1 때 1년간 ‘왕따’ 겪으며 ‘단 한명의 친구’ 절실했기에”

“고1 때 1년간 ‘왕따’ 겪으며 ‘단 한명의 친구’ 절실했기에”

[한겨레] [짬] ‘왕따 상담’ 앱 만든 대학생 김성빈 양



 

김성빈양.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투명인간이 됐다. 같이 있지만 다른 세상에 살아야 했다. 학교에 가면 언제 집에 갈까 하는 생각뿐이었고, 집에 가면 제발 내일 학교에 안 갔으면 했다. 어김없이 밝아오는 아침이 야속했다. 명문고에 들어간 기쁨도 잠시였다. 이유도 몰랐다. 아마도 학기 초에 친구와 나눈 이야기 일부가 이상하게 퍼졌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었다. 처음엔 아이들의 눈초리가 이상하더니, 대놓고 수군댔다. 주변엔 아무도 안 왔다. 근거 없는 나쁜 소문들이 부풀려져 나돌았다. 학교는 다녔지만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갔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소문은 친구들을 빨아들였다. 지옥문이 열린 듯했다. 쉬는 시간엔 엎드려 자는 척했다. 이동 수업과 체육 수업, 점심시간 모두 혼자였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왕따’였다.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침마다 억지로 학교 가는 딸을 보며 울었다.

명문고 입학 기쁨 대신 ‘투명인간’ 취급
이유 몰라 “죽고 싶다” 자살 유혹도
피해사례 기록해 부모가 개별설득

고3 입시 대신 ‘왕따돕기’ 앱 몰두
개발비 3천만원·멘토들 재능기부 ‘기적’
‘홀딩 파이브’ 4천여명 고민 상담 활발


한번은 같은 반 아이가 욕을 하며 가위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다행히 피했지만 섬뜩했다. 부모가 학교에 와서 담임선생님과 상담하고 간 뒤엔 따돌림이 더 심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밤중에 거실을 불안한 몸짓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파트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잠시면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어머니는 밤마다 딸 곁에서 잤다. 창문 단속도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딸을 보다못한 아버지가 나섰다. 딸에게 피해 사실을 자세히 적으라고 했다. 피해를 당할 때마다 육하원칙에 따라 자세히 기록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학교에 와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친구들을 설득했다. 아버지는 “너희들을 용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왔다. 더 이상 괴롭히면 법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사과했다. 서서히 딸은 왕따의 짙은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성빈(19·사진·서울여대 기독교학과 1)양은 그렇게 고교 1학년을 지옥처럼 보냈다. 그때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내 편에서 들어주는 친구가 한 명만이라도 있었으면….”

지난해, 고3 때였다. 그는 고1 때부터 구상한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자신과 같이 왕따의 괴로움을 당하는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는 앱이다. “결국 우리 이야기를 우리끼리 서로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친구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만류하는 가족들에게 그는 “지금 10대니까 10대의 마음을 제일 잘 알아요. 대학에 진학하면 다른 관심사가 생길 텐데, 지금 열정이 있을 때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발비가 3000만원이나 필요했다. 선뜻 착수하지 못했다. 그때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어른들은 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정작 필요할 땐 옆에 없어요. 세월호 희생자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해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요. 앱을 만들어 한 명의 목숨이라도 구하고 싶었어요.”

이름을 정했다. ‘홀딩 파이브’다. 심리학 용어인 ‘홀딩 이펙트’(어려운 순간 껴안아 위로함)와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골든타임 5분’을 조합했다. 위기의 순간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5분간 껴안아준다면 많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앱 개발사 대표가 그의 뜻을 높이 사 재능기부로 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첫번째 조그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사연을 올린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줄 ‘해피인’(멘토)도 생겼다. 무작정 메일을 보내 도움을 청하자, 그룹 지오디(GOD)의 멤버 김태우씨를 비롯해 강지원 변호사, 성우 김종성·서혜정씨 등이 선뜻 받아주었다. 완성된 앱에 사연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미 회원이 4000명 가까이 된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최근 글을 올렸어요.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자해를 거듭하고, 마침내 이 세상엔 아무도 자신의 편이 없다고 생각했대요. 자살을 시도하려는 순간 이 앱에 글을 올리곤 ‘아! 세상엔 내 편도 있구나’ 하고 느끼고 세상에 맞서 싸우겠다고 결심했대요.”

그동안 수많은 사연이 홀딩 파이브에 올라왔다. ‘은따’(은근한 따돌림)나 ‘전따’(전교생이 따돌림)를 당하고 있다거나, 못생김에 대해 고민하거나, 말을 더듬거나, 틱 장애에 시달리거나, 가정불화로 고민하거나, 심지어 임신의 불안에 시달리는 여학생의 고민이 홀딩 파이브에 쏟아졌다. 멘토들은 직접 댓글을 달아주기도 하고, 미리 저장해놓은 멘토의 메시지를 상황에 따라 고민을 올린 이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은 비교적 빠른 시간에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욱하는 기질의 청소년들에겐 빠른 조언이 효과적이죠.” 최근 자신의 왕따 경험과 홀딩 파이브에 올라온 사연을 모은 책 <홀딩 파이브 도와줘!>(마리북스)를 펴낸 김양은 “혼자인 줄 알았던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지지자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친구 따돌림에 움츠렸던 나, 친구 위로할 앱 만들었죠

청소년 고민상담 앱 홀딩파이브를 만든 김성빈씨. 김씨는 이 앱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 김성빈]
‘눈빛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겠구나.’ 성빈이는 생각했다. 아이들의 차가운 눈초리가 성빈이의 심장을 콕콕 찔렀다. 늘 혼자였다. 쉬는 시간이면 일부러 엎드려 자는 척을 했다.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잠시면 끝이겠지?’ 그런 성빈이를 살게 한 한 마디가 있었다. “네가 설사 200% 잘못했더라도 아빠·엄마는 널 지켜줄 거야.”

 그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홀로 벼랑 끝에 선 기분이 들 때 ‘그럼에도 우린 네 편이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래서 김성빈(19)씨는 앱 ‘홀딩파이브’를 만들었다. 홀딩파이브의 ‘홀딩’은 아이가 울 때 엄마가 안아주면 안정을 얻게된다는 심리학 용어 ‘홀딩 이펙트(Holding Effect)’에서, ‘파이브’는 자살을 마음먹은 사람이 우연히 5분간 음악을 듣고 그 마음을 접었다는 이야기에서 따왔다. ‘위기의 순간, 엄마의 마음으로 5분만 안아주자’는 뜻이다.

 최근 김씨는 책 『홀딩파이브 도와줘!』를 펴냈다. 책에는 김씨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 과정과 또래 친구들에게 띄우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의 앱 홀딩파이브에는 매일 ‘친구들한테 은따(은근히 따돌림)를 당하고 있어요’, ‘소심한 성격이라 친구를 못 사귀겠어요’ 등 익명의 고민 글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각 글에는 또래 친구들이 위로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댓글을 달아준다. 지난해 8월 앱이 첫 문을 연 이후 회원 수는 4900명을 넘어섰다.

 고1 때 겪은 극심한 따돌림의 기억이 김씨가 홀딩파이브를 만든 배경이 됐다. “친구들과 생긴 사소한 오해가 소문을 타고 번져 저를 완전히 고립시켰어요. 따돌림은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구나, 싶었죠.”

그때 김씨의 편이 돼준 건 바로 부모님이었다. “상담 선생님도 찾아주시고, 가해 학생들과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도 알려주셨어요. 만약에 부모님이 ‘네가 조금만 참아’, ‘친구끼리 싸울 수도 있지’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버틸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1년여간 적극 대응한 끝에 김씨는 ‘왕따’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해가 풀리고 새 친구도 생겼다.

가슴 속엔 강한 목표 하나가 새겨졌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힘을 모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고3이었다. ‘대학생이 돼서 해도 늦지 않다’는 아버지의 만류에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 왜 어른들은 늘 모든 게 끝난 뒤에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죠? 정작 우리가 필요로 할 때는 옆에 없으면서 말예요.” 그해 4월,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학생이 희생됐다. 그 부모들의 눈물을 보며 아버지도 결국 딸의 손을 들어줬다.

 준비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재능 기부를 해줄 앱 개발업체를 찾아 무작정 구성안을 들이밀었고, 조언을 해줄 유명인사들과 만나기 위해 다짜고짜 방송사에 전화를 걸었다. 결국 뜻이 통한 많은 이들이 김씨의 손을 잡아줬다. 유명인사로는 강지원 변호사, 가수 김태우 등이 아이들의 ‘멘토’ 역할로 참여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11시. 새벽까지 일을 하다 소파에서 잠드는 날이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앱이 나왔고, 첫 질문이 올라왔다. ‘짜장면이 좋아요? 짬뽕이 좋아요?’

 어이없는 첫 질문을 시작으로 지금은 이성교제·가정사·학교폭력 등 다양한 고민들이 올라온다. 글이 올라오면 김씨도 댓글을 단다. 올해 서울여대 기독교학과에 입학한 김씨는 아직도 따돌림을 당하던 그때 기억이 남아있다. 마음 한구석에 작은 생채기를 품은 채 그는 오늘도 앱을 찾은 누군가에게 손을 내민다. 김씨가 꿈꾸는 홀딩파이브는 그런 곳이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