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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일방적인 훈계는 그만! 배려와 존중, 가슴으로 느껴요

일방적인 훈계는 그만! 배려와 존중, 가슴으로 느껴요
한겨레
 

 

대구 월서중 김동우 수학교사가 ‘삼각형의 결정조건’을 주제로 진행한 수업에서 학생들이 모둠활동을 하고 있다. 김동우 교사 제공

[함께하는 교육] 인성교육 어떻게 할까?

“점마(저 녀석) 표정 봐라, 똥 쌀 것 같다.” “○○이 너 왜 저기 있어?” “젓가락 위에 연탄 달린 거 같다.”

수업시간에 어린이 노동력 착취에 대한 동영상을 본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영상속에는 빼빼 마른 흑인 아이가 무거운 짐을 낑낑대며 나르는 장면이 나왔다. 영상을 본 몇몇의 말에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웃었고 수업 내용에 집중하지 못했다. 배혜선 교사(대구 다사중)는 충격을 받았다. 흑인 아이의 어려움을 마음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해 말 국회는 인성교육진흥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올해 7월부터 유치원과 초·중·고 학교장은 매년 인성교육과정을 편성해 운영해야 한다. 교육부는 학교 밖 인성교육을 위한 프로그램과 교육과정 인증제를 실시하고, 교사들에겐 일정 시간 인성교육 연수를 실시할 예정이다. 또 사범대와 교대 등 예비교사의 인성교육 역량을 위한 과목도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인성 덕목을 평가해 수치화하는 건 난센스”라며 “인성은 지식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므로 아이들이 바뀌기 위해서는 어른들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며 학교 교육 과정에 인성교육 요소를 자연스럽게 접목한 사례를 만나봤다.

수업중 대놓고 낮잠자며
‘깨우지 말라’고 무시하는 학생 늘어
‘교실붕괴’로 고민하던 교사들
수업속에 인성 관련 활동 접목
머리로 배우는 도덕수업 대신
미술작품 보며 덕목 끌어내
자연스레 배려하는 교실로 변화

경쟁 속 정서 메마른 학생 보며 모임 꾸린 교사들

학교 현장의 인성교육은 대부분 일회성으로 이뤄진다. 예절교육이나 독서교육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인성 덕목을 가르치거나 교사가 인성교육 단기 연수를 받는 정도다. 그러다보니 교사나 학생 모두 짧은 시간에 형식적으로 인성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준별 영어 수업 중 성적이 낮은 반을 맡았어요. ‘북’(book)이라는 단어 스펠링을 못 쓸 정도로 학습 부진이 심각한 아이도 있었어요. 아이들은 제가 수업을 하면 얼마나 잘하나 보자 구경하는 수준이었어요. 수업에 전혀 흥미가 없으니 당연히 참여도 안 했고요.”(배혜선 교사)

“책상 위에 ‘수능 포기, 건들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적어서 푯말을 세우고 잠을 자는 학생이 있었어요. 제가 깨우려 하자 나머지 학생들이 그 아이가 깨면 수업에 방해된다며 오히려 깨우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고. 어휴.”(김동우 월서중 교사)

지난해 대구 교사들이 꾸린 ‘마중물인성교육연구회’(이하 마중물). 이른바 ‘교실 붕괴’로 수업과 생활지도에 힘들어하던 교사 5명이 모여 서로의 고민을 나누었다. 그들이 낸 결론은, ‘아이들의 인성이 바로 서면 수업이나 학생지도의 어려움도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는 데 있었다.

보통 인성은 도덕이나 국어 과목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어, 수학, 가정을 담당하는 마중물 교사들은 수업방식을 바꿔가면서 학생들의 변화를 꾀했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기존 수업이 아닌 모둠활동 위주로 수업을 바꿔 배려, 존중, 칭찬 등 인성적 요소가 배어나오게 했다. 학생 스스로 좋은 품성이나 태도를 익히도록 한 것이다.

대구 다사중 배혜선 영어교사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지문에 나온 ‘부모님과의 갈등’을 주제로 각자 적은 영어문장을 붙이고 있다. 배혜선 교사 제공
수학을 가르치는 김동우 교사는 “공부 잘하는 애들은 혼자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문제를 내달라고 했다. 문제 푸는 방법을 알아도 친구에게 설명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며 “수업시간에 잘하는 아이만 돋보이지 않게 모두 힘을 합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내줬다”고 말했다.

가령, ‘학교 건물 3층부터 4층까지의 높이 구하기’, ‘교실 넓이 구하기’ 등 단순 계산으로 나오지 않는 문제를 모둠별로 해결하라고 했다. 아이들은 30㎝ 자만 갖고 층간 높이를 재기 위해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다 복도에 나가 계단 한 칸의 길이를 재기 시작했다. 교실 넓이를 구할 때는 팔을 벌린 채 서로 손을 잡고 벽을 둘러싸며 나란히 서거나 각자 책상을 붙여 교실 한쪽 벽면의 길이를 재기도 했다.

“경쟁은 심하고 동기부여는 안 된 채 공부하다 보니 아이들 스트레스가 심해요. 하지만 같이 모여 활동하니 웃고 장난치고 하면서 자연스레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더라고요. 당연히 수업에 참여하는 태도도 달라졌어요.”

배 교사는 휴대폰 때문에 부모와 아이가 싸우는 내용의 영어 지문이 나오자 학생들에게 자신과 부모의 뇌구조 그림(뇌의 영역을 나눠 자신의 속마음을 적어보는 것)을 그려보도록 했다. 이후 부모와의 갈등이 뭔지 이야기한 뒤 각자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영어로 적도록 했다. 배 교사는 “영작을 하는 30분 내내 아이들이 모르는 단어를 물어봐서 교실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며 “몸은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구경꾼’에서 ‘주도자’로 수업에 참여하는 걸 보니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서로의 갈등 상황을 공감하거나 혹은 걱정했다.

매호중 이근희 가정 교사는 모둠별 발표가 끝날 때마다 돌아가면서 무조건 칭찬을 하게 한다. “요즘 아이들은 악플에 익숙해서 ‘지적질’은 정말 잘하지만 칭찬하는 것에는 민망해하며 ‘오그라든다’고 표현해요. 하지만 칭찬받는 아이를 보면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어요. 긍정적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서로 친해지고 교실 분위기도 좋아져요.”

아이들은 직접 결과물을 만들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자존감도 높아지고 의견을 조율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마중물 교사들은 “인성은 따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바른 인성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림 보고 이야기하며 교사와 학생 ‘감성 소통’

서울 장평초 남순임 교사는 영어 전담교사다. 2011년 영어교과 시수가 부족해 우연히 도덕 수업도 맡게 됐다. 학생들은 남 교사의 영어 수업보다 도덕 수업을 더 기다리고 좋아한다.

“아이들이 도덕을 재미없어해요. 글을 읽고 답을 쓰려고만 하고, 저도 낯간지러워서 교과서를 못 읽겠더라고요. 무조건 ‘정직하게 삽시다’라고 말하는 게 너무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기존 도덕 교과서는 국어 교과서처럼 주어진 제시문에 맞는 덕목을 정답으로 찾거나 ‘바른 태도란 이런 것이다’라며 기계적으로 덕목을 끌어내는 활동을 유도하는 게 많았다. 남 교사는 지루한 교과서 대신 그림을 먼저 보여줬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작가의 의도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며 교과서에 나오는 덕목과 연결 짓는 식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투르의 <속임수>라는 그림을 본다. 세 사람이 카드놀이를 하며 서로 눈치를 보는데 두 사람은 상대를 속이거나 남의 카드를 엿보기 위해 눈을 한껏 흘기고 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 채 카드 게임에 집중하고 있다. 남 교사는 “아이들에게 ‘사람들은 왜 정직하지 못하고 남을 속이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이후 과거 자신의 정직하지 못했던 행동에 대해 털어놓는다”고 얘기했다.

중국 화가 인쥔의 <우는 아이>는 콧물을 흘리면서 목젖까지 다 보이며 우는 아이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학생들은 이 그림을 보며 이렇게 운 적이 있는지 이야기해보고 서로의 감정에 공감하며 같이 울어주는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남 교사는 “아이들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본인이 상처받았던 이야기를 다른 이가 공감하고 위로해주면 치유되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인성이 좋은 사람이 되라는 걸 강조할 필요는 없어요. 아이가 그림을 보고 자연스럽게 감정을 이입하게 하면 돼요. 아이는 간접적으로 그림 속 상황에 공감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생각해보게 되죠. ‘무조건 정직해라’가 아니라 ‘어떤 것이 정직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게 중요해요.”

그는 “교사나 부모가 자신의 잣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일방적으로 주입하지 말고, 일단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스스로 생각할 틈을 줘야 한다”며 “요즘 교육환경이 너무 폭력적이고 경쟁적이어서 힘겨워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학교든 가정이든 어느 한곳에서라도 어른들이 아이들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존중해줘야 좋은 성품을 지닌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성실·정직 등 ‘미덕 카드’ 뽑아 일주일씩 실천

가정 내 인성교육 사례

김인영씨 가족은 지난해 마지막날 다같이 모여 ‘2015 우리 가족의 다짐’을 적었다. 김씨의 자녀 하늘양과 가온군이 종이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인영씨 제공
인성교육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인성은 가정에서부터’라며 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와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이 많은 가정에서 따로 시간을 내 인성교육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인천에 사는 김인영씨는 초등학생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그는 지난 2008년 ‘버추프로젝트’를 우연히 알게 됐다. ‘버추’는 미덕이라는 뜻으로 버추카드는 성실·정직·용기 등 52가지 미덕을 적어놓은 카드다.

김씨 가족은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에 버추카드를 한 장씩 뽑는다. 자신의 책상 앞 메모꽂이에 각자 뽑은 카드를 놓고 일주일 동안 카드에 적힌 미덕을 실천한다. 김씨는 “‘한결같음’이라는 카드를 뽑았다면 그 미덕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뭔지 생각하고 한주일 동안 내 안에 한결같음이라는 가치를 되새기며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해 마지막날에는 다음 한해 지켜야 할 대표 미덕도 뽑는다. 2014년에는 ‘상냥함’과 ‘배려’라는 버추카드를 뽑았다. 김씨는 “버추카드에 적힌 미덕들을 가훈처럼 큰 종이에 적어 벽에 붙여 놓고 우리 가족에게 그 미덕이 왜 필요한지 생각해보고 꼭 실천하자고 다짐한다. 지난해에는 올해 각자의 미덕에 대한 다짐과 그에 대한 세부계획을 적기도 했다”고 말했다.

버추프로젝트는 1970년대 중반 북미에서 학교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개발됐다. 풀뿌리 형태로 퍼져 현재 세계 100개국에서 활용하고 있다. 김영경 한국버추프로젝트 대표는 “버추프로젝트의 기본철학은 ‘모든 사람의 인성의 광산에는 모든 미덕의 보석이 박혀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버추’는 미덕이라는 뜻으로 버추카드는 성실·정직·용기 등 52가지 미덕을 적어놓은 카드다.
“문제는 원석의 상태인 보석을 꺼내 어떤 보석인지 알고 연마하지 않으면 빛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미덕일지라도 습관처럼 항상 염두에 두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아침 5~10분 정도 시간을 내서 버추카드를 뽑아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처음에는 언어가 바뀌고 생각이 바뀝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행동이 바뀌고 가정문화도 바뀌게 됩니다.”

김인영씨의 아내 김상순씨는 옳고 그름, 바른 행동을 말로만 해서는 안 되고 부모가 본보기를 보여줘야 아이가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울 거라고 했다.

“여행 갈 때 아이들이 떠들고 다투면 저도 예민해지고 짜증을 부리게 됐어요. 그때 버추카드를 한 장 뽑아서 그 미덕을 생각하며 목적지까지 가자고 하면 싸우지 않고 조용히 합니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따라줘서 저도 놀랐어요.”

가끔 아이들이 거꾸로 엄마를 다독이기도 한다. 김씨는 “마음이 급해서 내가 일을 서두르거나 남편과 교육문제로 다툴 때면 아이들이 나서서 타이른다. 좀 차분해지라거나 ‘사랑’의 미덕을 떠올려 서로 화해하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최화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