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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교사 된 것 후회” 20% … OECD 1위

“교사 된 것 후회” 20% … OECD 1위

29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서울 강서구 S중 수학교사 김모(55)씨는 최근 수업 시간에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한 학생이 “선생님이 푸는 방식과 다른 걸 학원에서 가르쳐줬다”고 말한 것이다. 김 교사는 “그럴 수도 있지만 이렇게 푸는 게 정석”이라고 설명했다. 며칠 후 해당 학생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면박을 주면 되느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김 교사는 “왜 교사를 하는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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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에서 교직은 안정성이 높고 퇴직 후 연금을 받는 선망의 직종이다. 그런데도 정작 교사들은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실제로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교사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결과는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가 OECD의 ‘2013년 교수·학습 국제 조사(TALIS·Teaching and Learning International Survey 2013)’를 바탕으로 회원국 중학교 교사 10만5000여 명을 분석한 것이다. 후회한다는 교사 비율은 한국이 20.1%로 가장 높았다. 회원국 평균(9.5%)을 크게 웃돌았다. ‘다시 직업을 택한다면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응답자 비율에서도 한국은 36.6%로 회원국 평균(22.4%)보다 높았다.

 한국 교사의 봉급은 OECD 회원국 평균임금보다 높다. 경력이 높아질수록 봉급 수준이 올라가 세계 최상위권에 든다. 최장 경력 중학교 교사를 보면 한국 교사가 독일 교사보다 많이 받는다. 미국 등 선진국 교사들과 달리 여름·겨울방학 기간에도 임금을 보장받는다. 이 때문에 이번 조사 결과를 놓고 교사집단이 집단적인 무력감에 빠져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한국 교사의 직업 안정성이 높은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건 자괴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교사의 권위와 재량이 줄어들고 학부모에게 무시당하는 일이 빚어지면서 가르치는 보람보다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과열된 사교육 때문에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점도 반영됐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교단에서도 이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생끼리 몸싸움이라도 나면 요즘은 대형 로펌에 의뢰해 소송을 하는 부모도 있다. 교장이 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한다”고 전했다. 서울 서대문구 D고교 장모(56) 교사는 “수업 시간에 ‘학원에서 배웠다’는 학생들을 통제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고 했다.

 교육부·교육청·교장 등 수직으로 이어지는 교육계의 경직된 문화가 ‘우수 자원’인 교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금중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부 등 상급 기관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오는 관료적인 교직문화 때문에 교사들이 행정 업무에 맞춘 낭비성 일을 많이 한다. 그러다 보면 스승으로서의 의미를 찾기 힘들어진다”고 우려했다.

 서울 동작구 B중 1학년 담임인 이모(53) 교사는 수업 준비보다 행정 업무 처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그는 “학기가 시작되면 행사만 10개 넘게 준비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부담”이라며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공문을 처리하고 회의에 참석하다 보면 ‘왜 교사가 됐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서울 P중 남모(33·여) 교사도 “교사들도 수업보다 행정 업무를 잘 처리해야 승진에 유리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양정호 교수는 “교육부와 교육청이 교사의 사기를 올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교직에 만족하지 못하는 교사가 정년까지 머물면 학생에게도 안 좋은 만큼 3~10년마다 교사 자격증을 갱신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업 잘하는 교사에게 확실한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기환·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