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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정부가 나서서 수학과외?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정부가 나서서 수학과외?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오마이뉴스 사랑해여수 기자]

요즘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하이틴 드라마'라고 불리는 미국 고등학생들의 생활을 담은 드라마가 인기예요.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현실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는 매일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아침 일찍 등교해 밤늦게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무거운 발걸음은 보이지 않아요. 대신, 방과 후에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평소에 원하던 여가활동을 즐기며 서로 어울리는 우리 또래의 친구들이 등장하지요.

이런 드라마들을 보면서 우리는 대리만족이나 부러움, 더 나아가서는 동경까지 품게 되었는지 몰라요. 그러면서 '근본적으로는 왜 이렇게 다른 걸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미국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있을까?', '가방 안에는 무거운 책들이 아닌 무엇이 들어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커지기도 했어요. 그러다 미국의 '수학'과 우리나라의 수학을 짧게나마 비교해 보게 되었고, 결과는 놀라웠어요.

▲ 미국 유학생을 인터뷰하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하는 언니를 수차례 설득했어요. 미국과 견주어 바라본 우리의 수학교육, 많이 안타까웠어요.
ⓒ 김나경

"뭐,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다고요?"

말로만 듣던 미국 수학교육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우리는 미국에서 공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았어요.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는 한 언니를 만날 수 있었지요.

- 미국에 있을 때 애들이 수학천재라 그랬다면서요?(웃음)
"그랬지.(웃음) 하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잘하지는 못해. 1학년 때는 두 번 다 2등급이다가, 2학년 때 와서야 겨우 1등급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아직도 우리나라 수학이 너무 어려워. 미국하고는 비교할 바가 아니야. 한국에서 중간 정도만 해도 미국 가면 중상위는 될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은 수학이 쉬워."

- 미국에는 수학을 흥미로워하는 애들도 있어요?
"아, 진짜 좋은 질문이다. 우리는 '수학 좋아하세요?' 물어보면, 좋다는 애들이 거의 없잖아. 심지어 이과생들도 수학 좋아한다는 애들은 별로 없어. 그런데 미국 애들은 수학 좋아하는 애들이 은근히 많아. '흥미로운 과목'이 뭐냐고 물으면 수학이라고 대답하는 애들 꽤 많거든. 왜냐면 쉽대, 이유가. 쉬우니까 자기는 수학이 좋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수학 교육제도가 다르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미국은 일반적으로 '알지브라(Algebra)1→지오메트리(Geometry)→알지브라2→프리 칼큘러스(Pre Calculus)→칼큘러스(AB)→AP칼큘러스(BA)' 식으로 진도가 나가는데, 미국은 보통 9학년(중3)이 알지브라1, 10학년(고1)이 지오메트리, 11학년(고2)이 알지브라2를 듣는데, 이 단계는 우리나라의 중학교 1~3학년 수준과 비슷하지요. 그러다 보니 수학이 쉽다고들 한대요.

 

 

▲ 미국의 수학교과서와 한국의 수학교과서 미국 교과서의 챕터마다 포함되어 있던 computer exercise, 다양한 방법의 활동을 권장하는 미국의 수학 문제들은 정말 흥미로웠어요.
ⓒ 김혜연

"정말이지, 미국의 수학교과서는 정말 쉬웠어요."

미국 수학이 얼마나 쉬운가를 확인하고 싶어서, 우리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미국 11학년이 공부하는 교과서인 '알지브라2'의 문제와 우리나라 고등학교 1학년이 공부하는 고등수학 익힘책을 비교해 보았어요. 내용은 같은 '원의 방정식'이었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의 비중이나 문제의 난이도 면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였어요.

먼저 우리나라의 익힘책은 크게 개념 문제인 기본 다지기와 응용문제인 실력 높이기로 나누어진 반면, 미국의 수학 교과서는 개념을 자세하게 다룬 후 문제 난이도에 맞춰 A, B단계, 그리고 서술로 이루어진 C단계로 나뉘었어요.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 교과서에서 제일 높은 난이도의 C단계의 수준이 우리나라 교과서의 기본 다지기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미국 교과서 C단계의 문제 "원이 (3,0), (-3,0), (0,9)의 세 점을 지날 때 원의 방정식을 구하여라"는 문제는 우리나라 기본 다지기 3번에 있는 "세 점 P(O,-1), Q(3,0), R(-1,2)를 지나는 원의 방정식을 구하여라"는 문제와 숫자만 다르고 아예 같은 문제로, 기본 개념을 통해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예요.

반면, 우리나라 교과서의 실력 높이기의 문제 중 수준 높은 문제들을 풀려면 원의 방정식의 기본 개념들뿐만 아니라 판별식 공식, 원의 할선 정리, 탄젠트 공식 등 복합적인 공식을 응용할 수 있어야 해요. 미국보다 더 난이도 있는 사고를 요구하는 거죠.

또한 일반적으로 정답이 정해져 있는 우리나라의 문제들과 달리, 미국의 수학 교과서에는 증명 문제, 그래프 그리기, 그리고 Computer excercise를 비롯한 학생들의 유연한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들이 매우 많았어요.

▲ 미국의 수학시험 문제 공식을 못 외우면 문제에 손도 댈 수 없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공식도 적어 주고 시험을 본대요.
ⓒ 조민희

"뭐, 미국에는 '공식적'인 커닝페이퍼가 존재한다고?"

미국의 수학 교과서를 보고 나니, 미국의 시험 제도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언니를 다시 찾았지요.

- 미국의 시험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큰 시험이 있어. 파이널이라고. 그것 통과하지 못하면 서머스쿨을 듣거나 다시 공부해서 메꿔야 해. 하지만 미국에서 좋았던 게, 중간에 네가 지금 어느 정도 성취(achieve)해 놓았으니 어느 정도 하면 A를 맞을 수 있다고 알려주는 거야. 선생님이 한 명씩 불러서 무엇을 얼마만큼 더 해야 하는지를 알려줘서 참 좋았어. 그냥 맞은 점수만 발표하고 끝나는 우리와는 많아 달라."

- 우리나라와는 다른 미국 시험만의 특별한 점이 있나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 우리나라에서는 중학생 때부터 피타고라스 공식을 외워서, 문제 풀 때 적용하지. 못 외우면 시험 망치는 거고. 하지만 미국은 학생들의 편의를 생각해 줘. 암기도 중요하지만 그게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거야.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시험을 볼 때는 치트시트(Cheat Sheet)라는 일종의 커닝페이퍼를 만들어서 시험 시간에 보는 것도 허용해. 조금의 오차도 없이 등수를 매기다가 뒤처지면 그만인 우리와 달리, 어떻게든 낙오자 없이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가려고 애를 쓰는 게 미국 교육 같아."

▲ 너무너무 어려운 수학 수학이 어려워지면 학교생활이 어려워지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생활하기 어려워지면 나라도 결국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 채지원

"뭐, 미국에는 학원이 없다고요?"

인터뷰하면서 "수학은 단순히 문제를 신속 정확하게 푸는 능력에 있지 않고, 한 문제를 놓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풀어 보면서 얻어지는 사고력에 있다"는 언니의 말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수학마저 암기 공부가 되어, 누군가가 만들어준 '정리된 공식'을 외워서 문제만 지치도록 푸는 그런 교육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많이 아팠어요.

- 미국에는 학원이 없어요?
"학원?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웃음) 미드 보면 나오듯이, 개인적으로 가정교사(tutor)를 붙여서 공부하는 건 있어.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체계적으로 건물 지어놓고 강의실도 있고 학교처럼 운영되는 그런 학원은 없어. 아니, 내가 본 적은 없어. 그리고 내 주변 친구들 중에서 tutoring하는 애도 없었어."

- 수학을 학교에서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가요?
"물론이지. 그러라고 만들어 놓은 게 학교잖아. 나도 들은 말인데,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배우는 수학이라는 거, 논리적 사고력만 갖추어져 있으면 대학교 들어가서 1년이면 모두 배울 수 있대. 수학에서 중요한 건 '문제 푸는 기술'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이래. 그런데 우리는 어때? 출판사 이름만 달랐지 교과서도 거의 똑같잖아. 그러고 전국 단위로 똑같은 시험 범위를 주고, 같은 날 전국모의고사도 보고. 그러다 한 문제 삐끗해서 틀리면 등급 하나 날아가고."

- 우리가 미국과 가장 다른 게 뭐던가요?
"우리나라에서 놀라운 점은 정부에서까지 나서서 수학과외를 하는 거야. EBS? 그런 건 미국에 없어. EBS 인강에서 '잘 가르치는' 우수강사 보다가 학교 선생님 보면 조금 우습잖아. 그렇게 '문제만 빨리 푸는 능력을 가르치는' 게 교육의 전부가 아닌데 말이야. 특히, 수학은 어떤 문제를 놓고 친구들하고 같이 토론하며 이렇게도 풀고 저렇게도 풀어나가며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건데 말이야. 정부에서조차 학교 교육을 삐뚤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

▲ 사랑해여수 “수학이 쉬워서 나는 수학이 좋아!” 우리나라 학생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백형민

(기사 작성 : 동아리 <사랑해여수> 5기 고은비, 김나경, 김혜연, 조민희, 채지원, 박상욱, 백형민, 조은준, 하지우 기자)

덧붙이는 글 | 유학 다녀온 언니를 인터뷰하면서 기억에 남은 이야기 한 가지는, 미국의 교육방침은 '누구 하나 뒤쳐지는 학생 없이 이끌어 가는 것'이라는 말이었어요. 상위권 학생들만을 이끌어 가는 수업 위주인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죠. 물론 미국의 교육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본받을 점은 본받아서 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언젠가는 수학이 성적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아닌 진정한 ‘학문’으로 거듭나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요? (여수지역 고등학생 연합동아리 <사랑해여수> 5기, 팀장 : 고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