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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자살공화국 오명 벗은 핀란드…우리와 무엇이 달랐나?

자살공화국 오명 벗은 핀란드…우리와 무엇이 달랐나?

◆ 소녀에게 손을 내민 뉴욕의 버스기사

지난달 미국의 뉴욕 버팔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다리 위를 지나던 버스 운전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운 뒤 내렸습니다. 다리 난간을 넘어 위태롭게 서 있던 소녀를 발견하고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겁니다. 삶을 포기하고 투신하려던 소녀에게 말을 건네고 손을 내민 겁니다. 버스기사는 그렇게 경찰이 올 때까지 소녀 곁을 지켰습니다. 오랜 시간 버스 안에서 기다렸던 승객들은 버스 기사가 돌아오자 그를 박수로 맞았습니다.

 



외롭고 절망에 빠졌을 때 누군가 옆에 있다는 걸 알려준 이 버스 기사의 이야기를 접하고, 지난 여름 핀란드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례를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핀란드 정신건강협회 자살예방 SOS센터 담당자의 말도 떠올랐습니다.

"자살자는 사실 죽고 싶은 게 아닙니다. 다만 심한 고통을 멈추고 싶을 뿐입니다. 그 순간 도움을 주고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해 주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은 사라지고 삶의 의지가 다시 생기게 됩니다.“

◆ 북유럽 복지국가 핀란드, 한때는 ‘자살공화국’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북유럽 국가, 핀란드 하면 '산타의 나라', 행복지수 높은 복지국가를 먼저 머리에 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과거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로 한때는 자살공화국이란 오명까지 썼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핀란드 국민들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자살을 핀란드 사회 전체의 위기로 인식하고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지금은 자살을 획기적으로 줄인 성공적인 모범 국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 핀란드의 어제는 한국의 오늘?



핀란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1960년대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됐습니다. 또 이 때부터 자살이 큰 사회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1970년대 20명을 넘더니 1980~90년대에 들어서는 30명을 웃돌면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겁니다. 급기야 핀란드 정부가 직접 나섰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가 주도의 대규모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시행했습니다. 높은 자살률이 국민건강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생산 노동인구를 감소시켜 국가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겁니다.

① 대규모 자살예방 프로젝트 세계 최초 국가 주도 시행



헬싱키 도심을 조금 벗어나면 핀란드 국립보건원이 있습니다. 1986년부터 무려 10년 동안 자살 예방 프로젝트가 기획되고 진행된 곳입니다. 지금도 건물 지하에는 당시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연인원 5만 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자살자에 대한 이른바 '심리 부검'이 실시됐습니다.

전국 21개 지역에서 자살자 한 명 한 명의 자살 전 행동에서부터 의료와 사회보장지원, 경찰기록 등이 모두 수집되고, 가족과 친구, 동료 등 주변 인물과의 심층 인터뷰가 진행됐습니다.

자살자 1,397명의 분석 자료는 성별, 연령별, 지역별, 유형별로 정리돼 자살 예방에 활용됐습니다. 지금은 상식처럼 들리는 이야기지만 극단적인 자살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우울증의 위험성과 관리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된 겁니다. 당장 우울증 등 심리 불안을 관찰하고 관리할 시스템이 마련됐습니다. 학교와 의사, 경찰과 관공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이 시작되고 자살 위험 감지와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뉴얼이 완성된 겁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즉각적이고 효과적이었습니다. 1990년을 전후해 천 5백여 건까지 치솟던 한해 자살 건수가 증가세가 한풀 꺾이더니 반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대규모 프로젝트는 모두 끝났지만, 이제 자살 관련 상담과 지원 업무는 SOS센터가 맡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계속됐고 지난해부터는 자살 시도자를 돕는 일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자살이란 그릇된 선택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피트니스 강사처럼 개개인에 맞는 맞춤식 관리를 해주는 겁니다.

② 노키아 사장의 자살사례로 본 보도 원칙



1988년 당시 노키아 사장의 자살은 핀란드 사회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핀란드의 경제 성장이 점차 가시화돼 가던 시점에서 터진 충격적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론 기사는 간결했고 자살 방법 같은 건 다루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 미칠 파장을 고려해 자극적인 내용은 철저히 배제한다는 언론 자율 보도 지침에 따른 이례적인 자살 사건 보도였습니다. 극단적인 행동의 전염성을 경험을 통해 알았고 핀란드 언론은 이를 간과하지 않은 겁니다. 가수나 배우 등 연예인일지라도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모를까 자살 보도는 금기시하는 게 핀란드 언론의 전체적인 분위깁니다. 자살 보도는 관련 통계 기사 아니면 인터넷 검색조차 쉽지 않고, 다큐나 대담을 통해 심층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접근합니다.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논쟁의 장을 만들거나 자살 충동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만 기사나 프로그램의 주제로 다루는 겁니다.

핀란드는 이렇게 높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사회 전체가 고민했고 그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면서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으로 삼았습니다. 나아가 아직 낮다고 할 수 없는 자살 건수를 더 줄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살을 막기 위해, 일찍이 유례 없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행한 핀란드가 주는 교훈입니다.

◆ 한국사회 자살률 이대로 괜찮을까?



세계보건기구, WHO가 최근 세계 각국의 자살 증가율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중해의 키프러스에 이어 불명예스럽게도 2위에 올랐는데요. 2000년 이후 12년간, 2배 이상 증가한 28.9명이었습니다. 1위 키프러스의 자살 증가율이 가장 높다고 해도 5명이 채 안 되니 사실상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한 셈입니다. 올해 초 OECD 발표에서 10년째 1위에 오른, 한국의 높은 자살률이 또 확인된 겁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독과 절망, 심지어 자살 충동까지. 이런 심리적 불안은, 어쩌면, 필연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 성장 속에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우선 저 스스로에게부터 묻게 됩니다.

유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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