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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행복한 책읽기

책에서 찾은 나의 꿈, 수화로 얘기하니 가슴 벅차요

“책에서 찾은 나의 꿈, 수화로 얘기하니 가슴 벅차요”
한겨레
 

 

제7회 장애아동ㆍ청소년 독후감 대회에 참가한 김진주(대전성세재활학교 고교1)양이 자신의 독후감을 발표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장애 아동·청소년 독후감 대회

독후감 대회 본선 진출자들
심사위원들 앞에서 소감 발표
시를 통해 장벽을 뛰어넘고
앞 못봐도 경찰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에 심사위원 감동

“‘내가 과연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내게 어떤 꿈이건 자유롭게 꿀 수 있고,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준 고마운 책이다.”

지난 22일 국립중앙도서관(관장 임원선)이 주최한 제7회 ‘장애 아동·청소년 독후감 대회’에 참여한 전북푸른학교 고등학교 과정 2학년 김성현군(지체장애)의 발표다. 김군은 시골의사 박경철의 에세이집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읽은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생각만으로도 떨리고 긴장이 많이 됐다”며 “말도 잘 못하고 다리도 불편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기회를 갖게 돼 좋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독후감 대회는 ‘글’만을 심사하는 다른 대회와는 달랐다. ‘독후감’ 심사를 통과한 56명의 본선 진출자들은 심사위원들 앞에 서서 자신들만의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읽은 소감을 발표했다. 청각장애 아동·청소년은 수화로, 나머지 학생들은 천천히 소리 내어 자신의 독후감을 발표했다. 대회는 초등부·중고등부 청각·시각·지체·발달장애별 총 8개 부문으로 치러졌다. 한국작가협회 소속 아동문학작가들로 구성된 16명의 심사위원단이 부문별로 2명씩 심사를 맡아 학생들의 글, 낭독 태도를 평가했다.

장애학생들에게 이런 대회 참여는 결코 흔한 기회가 아니다. 김군 말대로 장애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독후감 주제는 ‘책 속에서 만난 나의 미래’. 학생들은 책을 계기로 생각해보게 된 자신의 진솔한 고민을 이야기로 풀었다. 유창하게 말하지 못해도, 목소리 대신 손을 사용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만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떨리고 긴장되는 것은 당연지사. 참가 학생들은 “긴장되고 떨리지만 한편 설레기도 한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부 시각장애 부문을 심사한 박혜선 작가는 심사를 마친 뒤 “시각장애를 가진 이근철군이 ‘다른 사람들보다 소리를 잘 듣는다는 장점을 살려 경찰이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시각장애인이 경찰관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 비장애인인 내게 가르쳐 준 학생에게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스티비 원더 이야기>를 읽으며 미래를 그린 강원명진학교 초등학교 과정 3학년 이근철군은 이날 초등부 대상을 수상했다.

독후감 대회가 끝난 뒤 ‘꿈액자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장애학생들이 각자 만든 버스 모양 꿈액자를 들고 웃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심사를 마친 뒤 눈을 붉힌 것은 박 작가만이 아니었다. 발표가 진행된 8개의 세미나실에서 심사위원들은 행사 내내 울고 웃고를 반복했다. 지체장애 중고등부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연세대학교재활학교 고등학교 과정 3학년 차민호군은 <아침 하늘 달>이라는 시집을 펴낸 시인이다. 차군은 <어린 왕자>를 읽고 쓴 독후감을 발표했다. 지체장애 1급, 혼자서는 밥도 먹을 수 없고 말도 잘 못하는 그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가누며 10분이 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차군이 “나에게 사랑을 막는 가장 큰 벽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시를 써왔고, 시는 내 마음의 비를 막아주는 우산이자, 장애라는 족쇄를 풀어주는 열쇠였다”는 대목에서 심사를 하던 장지혜 작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차군의 발표가 끝나자 장 작가는 일어나 “너무 잘 쓴 글이다. 잘 들었다”며 상기된 목소리로 차군을 안았다.

올해로 7년째 열리는 이 대회에 5년 전부터 학생들과 참여했다는 청주맹학교 이보윤 교사는 “특수학교 학생들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계속 생활하다 보니 세상을 넓게 경험할 기회가 적다”며 “다른 학생들이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도 보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장애학생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고민할 기회를 주는 고마운 대회”라고 말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발표 대회는 8개 부문 모두 오후 1시께 끝났다. 점심을 먹은 학생들은 지하 2층 노트북 코너에 모여 ‘동화구연’, ‘꿈액자 만들기’ 등 독서체험 프로그램 활동에 참여했다. 4시에 열린 시상식에서 중고등부 대상은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을 읽고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기보다 주어진 삶에서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갈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발표했던 전북푸른학교 고등학교 과정 2학년 최호영군이 받았다. 국립중앙도서관 임원선 관장은 “장애학생들이 책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