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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행복한 책읽기

이제는 독서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할 시간

이제는 독서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할 시간

함께하는 독서는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

14.09.27 17:19l최종 업데이트 14.09.27 17:19l이상동(sd1209)

지식경영의 대가 중 한 명인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는 지식을 암묵지(暗默知)와 형식지(形式知)라는 범주로 정의한다. 암묵지란 인간이 자신의 머릿속에 담고 있는 지식이다. 즉 외부의 자극에 의해 만들어지는 내면의 지식이 된다. 반대로 형식지란 암묵지가 어떤 형태로든 외부로 표출된 지식이다. 즉 자신의 머릿속에 담고 있던 지식을 내부에서 외부로 끄집어 내 놓은 결과물이 형식지인 것이다.

인류의 문명은 인류가 가진 암묵지와 그것으로 인해 파생된 형식지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똑같은 형식지를 바라보지만 만들어내는 암묵지는 다르다는 것이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장자(莊子) 외편 천도(天道)에 보면 춘추시대 초기 패자로 이름을 날렸던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수레바퀴를 만드는 장인 윤편(輪扁)의 일화가 등장한다.

윤편이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환공에게 물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공이 읽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환공이 "성인의 말씀이다"라고 답했다. 윤편이 다시 물었다. "성인은 살아 있습니까?" "이미 죽었지"라고 환공이 답하자 윤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공께서 읽고 있는 것은 옛 사람들의 찌꺼기이군요."

너무 놀란 환공이 역정을 내며 말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수레바퀴 기술자 따위가 어찌 왈가왈부하는가? 나를 설득한다면 무사히 살려 두겠지만 설득하지 못하면 죽게 되리라,"
윤편이 대답했다.

"저는 제가 평소에 늘 하는 일로 살펴보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헐렁거려서 꽉 맞물리지 않고, 덜 깎으면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 깎지도 않고 덜 깎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 감각으로 터득하여 마음에 흡족할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으니 바로 그 사이에 비결(기술)이 존재합니다.

저도 이를 제 자식에게 일깨워 줄 수 없고, 제 자식도 저에게 그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나이가 70이 되었지만 늘그막에 아직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 사람은 전해줄 수 없는 것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군주께서 읽고 있는 것도 옛 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장자는 거침없이 형식지는 옛 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윤편을 통해 폭탄선언을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모두 책을 내려놓고 체험(體驗)과 경험(經驗)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런데 장자가 진정 그런 의미에서 이런 일화를 만들어 낸 것일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인류의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그것을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형식지들을 통해 우리 내면에 있는 암묵지를 더욱 크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 암묵지들이 다시 형식지가 되는 과정에서 형식지 자체도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럼 여기서 암묵지가 형식지로 가는 과정이 중요한가? 아니면 형식지가 암묵지로 가는 과정이 중요한가? 물론 둘 다 중요하지만 그래도 형식지가 암묵지로 넘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형식지를 어떻게 암묵지로 승화시킬 것인가에 있다.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고등학교 과정에 <고전 읽기>라는 과목을 만들고 독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초중고생들에게 그 나이에 맞는 필독서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 암묵지를 키우는 데 중요한 것인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의미다.

제환공과 윤편의 일화에서 윤편이 했던 말처럼 형식지를 만든 사람은 그 형식지와 함께 죽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형식지의 행간에 자신의 생각을 같이 묻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형식지가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本質)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같은 형식지를 바라보지만, 만들어내는 암묵지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최근 독서의 패러다임이 많이 바뀌고 있다. 커피문화, 소모임이 가능한 공간의 창출과 더불어 함께 모여 형식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자신만의 진정한 암묵지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즉 함께 모여 생각을 나누고 그런 생각들이 다시 형식지의 형태로 모아지고 그런 건전한 순환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讀書)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하는 것이다. 이런 독서문화가 가정이나 학교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널리 스며들어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자리매김 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