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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발명은 ‘왜?’란 의문이 ‘새로운 생각’으로 바뀌는 것”

“발명은 ‘왜?’란 의문이 ‘새로운 생각’으로 바뀌는 것”
[함께하는 교육] 교육 정보

서울 성원중 토요발명동아리
한겨레
 

 

지난달 12일 성원중 토요발명동아리 학생들이 골드버그 장치를 이용해 롤러코스터를 만들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 교육 정보

서울 성원중 토요발명동아리

“왜 자꾸 구슬이 떨어지는 거야?”

“레일이 너무 수직이니까 그냥 뚝 떨어지겠지.”

“그럼 좀 더 곡선으로 만들어보자.”

“레일을 이렇게 감으면 어때?”

“안 될 거 같긴 한데…일단 한번 해보자!”

지난달 12일 서울 성동구 성원중. 토요일 오전 10시임에도 과학교실 앞 복도가 왁자지껄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15명의 토요발명동아리 학생들이 바닥에 삼삼오오 앉아 골드버그 장치를 이용해 롤러코스터를 만들고 있었다. 골드버그 장치는 미국의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가 고안한 것으로 매우 복잡한 기기들을 다양하게 조합해 단순한 일을 처리하는 기계장치다. 골드버그 장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창의성을 기르는 게 목적이다. 이날 활동은 롤러코스터의 기본 골격을 주고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중력가속도의 법칙,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 등의 과학 원리도 깨닫게 된다.

2년째 동아리 지도를 맡아온 이혁 서울동부교육지원청 발명교실 전담교사는 아이들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오늘의 미션은 다들 알지? 360도 회전하는 롤러코스터를 만든 뒤 그 위에 쇠구슬을 굴려 미리 설치된 종을 치게 하고, 아래로 떨어진 쇠구슬이 바닥에 만들어놓은 도미노를 쓰러뜨려야 해. 너희들이 직접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가정하고 스릴있고 재밌는 코스를 만들어봐.”

학생들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롤러코스터를 만들었다. 수직으로 거의 90도에 가까운 롤러코스터를 만들거나 “세상에 이런 롤러코스터는 없었다”며 뱀이 똬리를 트는 모양으로 만든 학생도 있었다.

이 교사는 중간중간 아이들이 원리를 체득하도록 조언해줬다. “레일이 거의 수직이잖아. 중력가속도가 너무 커도 구슬이 중간에 선로를 이탈해버릴 수 있어. 높이를 조절하지 않으면 구슬이 튕겨 나가버린다.” “너희들은 옆 팀과 반대로 회전력이 너무 작으니까 구슬이 그냥 떨어지고. 레일이 어느 정도 높은 곳에서 시작해야 구슬이 가속도를 가지지.”

3년째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김다미군은 호기심에 발명을 시작했다. 지금은 과학 분야로 진로를 생각할 정도로 발명동아리 활동이 재밌고 관심이 크다.

“처음에는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창의력도 더 생기는 거 같고 주변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발명거리를 찾기 위해서죠. 오늘 만든 롤러코스터도 처음 해보는 거지만 만들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같이 머리를 쓰면서 후배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계기도 됐고요.”

교장 앞장서 발명마인드 교육
전교생 대상 월간지 발간하고
여름방학땐 발명캠프도 운영
3년 동안 80명 실용신안 출원

아이들은 이 활동을 통해 발명에 필요한 아이디어도 얻고 실제 제품을 구현할 때 필요한 과학적 지식도 쌓는다. 성원중은 토요발명동아리 외에도 여름 발명캠프, 교내 발명품 경진대회, 월간지 <새 생각> 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새 생각>은 발명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으며 학생과 학부모에게 배포한다. A4 두쪽짜리 지면이지만 각종 발명 관련 전시회 소식이나 발명품 대회 수상작, 커피믹스와 위쪽 입구를 펼치는 형식의 종이우유팩 등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발명품 등의 정보를 담았다.

여름방학 때는 희망 학생을 모집해 ‘1학생 1출원 발명캠프’도 연다. 충북 영동대 왕연중 발명특허학과 교수와 재학생들이 멘토로 참여해 특강도 열고 학생들과 짝지어서 브레인스토밍을 한다. 안정선 교장은 “생활 속에서 불편한 점을 서로 이야기하며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아이디어를 끄집어낸다. 이 캠프를 통해 실용신안(특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발명에 주는 것으로 물품의 형상, 구조 또는 조합에 관한 기술적 창작을 인정하는 지식재산권의 일종)을 출원한 학생만 8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성원중에서 3년 내내 발명활동을 했던 강나영(한양대부속고등학교 1년)양은 중학교 시절 밑바닥에 천으로 된 덮개를 탈부착할 수 있는 가방 디자인을 고안해 실용신안을 출원했다.

“책가방에 책이 많아서 교실 책상 손잡이에 걸어두면 가방 손잡이가 찢어지는 경우가 있었어요. 바닥이 더러워서 그냥 내려놓기 싫었는데 가방 밑바닥에 덮개를 씌워보자 싶었죠. 사실 단순하지만 이런 가방은 없잖아요. 요즘에도 사물을 볼 때 뭔가 불편한 게 없나 살펴보고 발명 아이디어랑 어떻게 연결지을지 고민해요.(웃음)”

과학실 한편에는 얼마 전 열린 교내발명품대회에서 입상한 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종이로 만든 견본은 거창하진 않지만 꽤 기발했다. ‘돌려쓰는 치약’은 딱풀처럼 밑에서 돌리면 압력을 받아서 치약이 나온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짜서 쓸 수 있고 안 남기고 끝까지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돼지저금통은 동전을 넣는 구멍 안쪽에 플라스틱 솔을 달아 돈을 뺄 수 없게 만들었다. 저금통이 가득 차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자꾸 돈을 꺼내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생각해낸 물건이다.

이 교사는 “발명도 학습처럼 ‘왜?’라는 의문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 속 사소한 불편함이나 의문점에서 발명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실제 물건으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아이디어 자체도 발명이 된다”고 얘기했다.

안 교장의 발명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처음 교직을 맡았던 1980년부터 시작됐다. 그는 근무하는 학교마다 발명반을 만들어 운영해왔다. 수십 년의 발명교육 활동으로 그는 지난해 대한민국발명교육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저는 발명가가 아니고 발명교육가예요. 아이들에게도 발명가가 되라는 게 아니라 발명마인드를 심어주는 거죠. 학생들이 자기 진로에 맞춰 살아가되 남이 하는 걸 모방하기보다 늘 ‘새 생각’을 하면서 앞서가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우리 눈에 비치거나 사용하는 거 가운데 발명품이 아닌 게 없어요. 그걸 보면서 불편한 건 없는지, 수정·보완·발전·개선시킬 의지가 있는 사람, 늘 깨어 있으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조직에서도 리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