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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체험학습

청소년 스스로 학술대회 열고 논문 발표

청소년 스스로 학술대회 열고 논문 발표
[함께하는 교육] 교육 정보
한겨레
 

 

3월29일에 열린 제1회 한국청소년사회과학학술대회에서 청소년들이 ‘세션 프로젝트 활동’을 한 뒤 한 팀당 한 편의 대표 연구계획을 발표하는 모습이다. 한국청소년사회과학연구소 제공

[함께하는 교육] 교육 정보

바야흐로 스펙 시대다. 대학에 제출하는 자기소개서 등에서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과 관련 활동 등이 중요해지면서 논문을 쓰려는 청소년도 많아진다. 하지만 특목고 아닌 일반고에 다니는 학생일 경우 논문 쓰기 교육을 받는 게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건당 200만~300만원을 내면 청소년 논문 컨설팅을 해주는 곳도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생 스스로 논문을 쓰고, 다른 학생들에게 논문 작성법도 제공하며 사회과학 연구활동, 학술대회 개최 등도 하겠다며 만들어진 단체가 있다. 지난해 5월11일에 설립된 ‘한국청소년사회과학연구소’(SPREAD·spread.re.kr·이하 ‘연구소’)다.

“더 많은 청소년들이 사회과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학술활동을 할 순 없을까? 청소년들 누구나 사회과학 학술 교류 및 연구활동을 해보도록 플랫폼을 만들어보자.”

연구소를 설립했고 현재 소장으로 있는 이세영(경기 군포고 3학년)군의 말이다. 이군은 중학교 시절, 과학고 진학을 꿈꾸던 전형적인 이과형 학생이었다가 중2 때 다문화 관련 봉사 활동을 하고, 관련 논문을 쓰면서 자신이 사회과학 분야에 흥미와 적성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연과학 분야와 달리 사회과학 분야에는 청소년들이 참여할 만한 학술대회, 모임, 프로그램 등이 없었다. 사회과학 분야에 관심이 두터워지면서 국회도서관 등을 찾아 관련 논문을 찾아보며 공부하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어졌다. 결국 고교 2학년이던 지난해 3월, 교내에 사회과학 학술 동아리 스프레드((Social Problem Research And Debate)를 설립했고, 더 여러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어 같은 이름의 연구소를 꾸렸다.

여기저기 홍보를 하자 여러 청소년들이 모였다. “사회 소수자 문제 등에 관심이 있고, 출판 분야로 진출을 꿈꾸던 차에 연구소 출판팀에서 활동하고 싶어서”(경기 화성고 3학년 차인해양), “창의 인성교육, 양성평등 관련 논문을 써봤지만 자료 위주로 써온 것 같아 더 발전하고 싶어서”(한양대 사범대 부속고 3학년 고유진양) 등 참여 이유들은 다양했다. 서울 자운고 3학년 이하정양은 “자연과학 분야 탐구 보고서 등은 여러 번 써봤지만 사회과학 분야 논문은 써본 적이 없었다. 연구활동 등을 해보려고 왔는데 연구소를 계기로 문과로 전향도 했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전반적인 연구소 운영을 맡는 운영실, 전국에서 선발된 청소년 연구원들이 모여 연구활동을 하는 연구실, 스프레드 클럽 등으로 나뉜다. 현재는 연구소 이름으로 4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활동중이다. 스프레드 클럽은 연구소 승인을 받은 고교 학술동아리들이다. 연구소에서 제시한 각종 캠페인 등을 진행하면 승인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에는 ‘질문 없는 교실에 질문을 살리자’, ‘스마트폰을 절제하자’ 등의 캠페인 주제가 주어졌다. 현재 용인외고, 서울 자운고, 미림여고 등 18개 고교 동아리가 승인을 받고 활동중이다.

지난해 9월7일부터 올해 2월28일까지 ‘연구소 시즌1’ 기간에는 세미나(지난해 10월26일), 콘퍼런스(지난해 11월30일)도 열었다. 연구소의 첫 연구 결과물이었던 ‘학생 자치법정의 교육적 효과와 문제점’이라는 논문은 제4회 국제청소년학술대회에서 우수청소년학자상을 받는 성과도 거뒀다. 이 논문 집필에 참여한 이세영군은 “학생 자치법정이 의미는 있지만 실제로 한계가 있어 지역에 배치돼 있는 멘토 변호사들이 자치법정에 참관해 피드백을 해주면 좋겠다는 대안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왼쪽부터 한국청소년사회과학연구소 소속 한국외대부속 용인외고 이승준군, 경기 군포고 국서현양, 용인 수지고 정누리양, 경기 군포고 이세영군, 경기 화성고 차인해양, 한양대사범대부속고 고유진양, 서울 자운고 이하정양이 회의를 하다 자세를 잡았다. 김청연 기자

한국청소년사회과학연구소
군포고 이세영 학생이 설립
전국에서 선발된 400여명 활동
국제청소년학술대회 상도 받아
청소년 논문쓰기 매뉴얼 계획
“조언 주실 교수님 안계시나요”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은 다양한 학교에 다닌다. 한국외대 부속 용인외고 2학년 이승준군은 “특목고의 경우, 특목고생들만 참여하는 대회나 활동 등이 많아서 일반고, 특성화고와 함께할 기회가 적은데 ‘사회과학’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좋다”고 했다. 군포고 2학년 국서현양은 “보통 교내 동아리 활동을 하면 담당 교사가 생활기록부에 활동 사항을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게 경쟁하는 분위기가 생기기도 하지만 연구소 활동에는 경쟁 문화가 없다”고 소개했다.

청소년 논문에 대한 철학도 뚜렷하다. 차인해양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논문을 쓴다고 하면 너무 대단하게만 생각하는데 내 또래 청소년 누구나 어떤 분야이든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활동을 할 수 있다. 학술활동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생각부터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논문’은 “15페이지 소논문 분량 선에서 연구 방법론이 분명하고, 논리적 글쓰기를 시도했고, 청소년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논문”이다.

올해 3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지속되는 시즌2를 여는 의미에서 큰 행사를 3월29일 열었다. 연세대 위당관 대강당 및 강의실에서 개최한 ‘제1회 한국청소년사회과학학술대회’다. 심리학, 사회학, 교육학, 경제학 등 8개 세션으로 나눠 청소년들이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식의 비경쟁 학술대회였다. 2부에서는 ‘세션 프로젝트 활동’이라고 해서 심리학, 법학, 역사학 등 각각 다른 세션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룹을 이룬 다음 100분의 시간 안에 연구활동을 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했다.

이런 학술활동 개최부터 연구소의 전반적인 운영 등 모든 일은 어른들 도움 없이 청소년들 스스로 한다. 시즌1에서는 아름다운재단의 2013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돼 여기서 받은 사업 기금으로 연구소를 운영했다. 운영실 학생들은 “대개 청소년 단체나 동아리를 보면 어른들이 프로그램을 짜는 경우가 많은데 연구소에서는 청소년 스스로 주체가 되어 내 생각을 반영한 프로그램을 마음껏 만들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았다.

오는 5월 연구소는 ‘청소년 논문쓰기 매뉴얼’도 개발할 예정이다. 이세영군은 “앞으로 사회과학 분야 학술활동과 관련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회적 기업의 기능을 하면 좋겠다”고 연구소의 미래를 그렸다. “재정적 지원보다도 사회과학 학술활동, 논문쓰기 등에 대해 조언을 주실 만한 교수진 등 멘토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