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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공부는 어떻게?

학원 안가요, 대신 저녁은 꼭 온 가족이 함께 먹어요

학원 안가요, 대신 저녁은 꼭 온 가족이 함께 먹어요

 

이효진양은 잠이 오거나 집중이 안되면 책상 옆 유리 문을 칠판 삼아 일어서서 문제를 푼다.

김포고 2학년 이효진(16)양의 교과서와 문제집을 보는 순간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새 책이나 마찬가지였다. 노트필기는 물론 모범생이라면 으레 만드는 오답노트도 만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사교육 경험이라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2년 동안 다닌 영어회화 학원이 전부. 그럼에도 김포고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효진양 책상엔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그래도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 아니냐고 주변 사람들이 다들 묻는데, 정말 비결이라고 말할 게 없어요. ” 효진양 어머니 김연희(46)씨 말이다. 효진양에게는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김포고 선배다. 올 3월 서울대 신입생이 됐다. 오빠는 서울대 진학, 동생은 전교 1등. 이러니 김포고 학부모들 사이에 이 남매가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둘 다 사교육 없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루 두 끼는 온 가족이 같이 식사하고, TV 보고, 대화를 많이 하는 게 전부에요. ”

① 효진양 책상은 별로 특별하지 않다. 다만 계획표가 눈에 띈다. ② 사교육 도움없이 혼자 공부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다잡는 의미에서 계획을 세우는 거다.
  효진양 가족은 아침과 저녁은 늘 함께 식사한다고 한다. 효진양 야간자율학습이 있는 날은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먹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바로 집으로 와서 가족 저녁상에 낀다. 약속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학 간 오빠도 대부분 함께다. 말은 쉽지만 사실 요즘같은 세상에 온 가족이 두 끼를 같이 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최근 중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는 밥상머리 교육 하나는 확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남다른 집안 분위기는 또 있다. 바로 TV다. 공부를 이유로 집에 아예 TV를 없애는 집도 많지만, 효진양 집은 TV가 거실과 안방에 각각 하나씩 있다. 밤 9시 뉴스 시간대에는 거의 틀어놓고 있다.  

 효진양은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주3회 야간자율학습이 의무더라”며 “집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던 습관이 몸에 배 솔직히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불편하다”고 말했다. 엄마 김씨도 “아이들이 갇힌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에 공부하는 것에 대해 편안해 하지 않는다”며 “큰애가 고 3때 가장 힘들어했던 것도 공부 자체가 아니라 학교에 반드시 남아 공부해야 하는 야간자율학습이었다”고 한다.

 모범생의 특성이 잘 짜여진 계획에 맞춰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인데, 정해진 시간에 공부하는 게 어려웠다니.

 그래서 다시 물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전교 1등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독서 덕을 봤죠.”

 독서의 힘. 이건 다른 모범생이 흔히 말하는 공부 비법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답은 전혀 달랐다.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도 물론 중요했겠지만 그보다 한번 든 책은 반드시 끝까지 읽어내는 습관이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효진양은 초등시절부터 김포시에서 주최하는 책 100권 읽기 행사에 여러 번 참가했다고 한다.

  “100권을 다 읽는 순간 큰 성취감을 느꼈어요. 아, 내가 100권을 이 기간 안에 다 읽을 수 있구나, 라는 뿌듯함이 계속 책을 찾게 했죠. 독서 기록장은 따로 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손에 한번 든 책은 언제나 끝까지 읽었고, 틈날 때마다 여러 번 다시 찾아 보는 습관도 생겼어요. 그런 습관이 자연스레 공부로 이어진 것 같아요.”

 학습과 연관해 다양한 장르를 읽은 것도 아니다. 어쩔 땐 소설만 1년 내내 읽은 적도 있고 작년에는 과학책에 6개월 동안 푹 빠진 적도 있다.

 독서가 자연스럽게 공부 습관을 들였다면 그만의 공부법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노트 필기를 하지 않는 공부법 말이다.

 효진양은 “노트 필기보다는 눈으로 보면서 자연스레 익히는 공부가 더 잘 맞는다”고 말한다. “뭘 쓰다 보면 적는 데 신경이 쓰여서 집중이 안돼요. 수업 중 반드시 적으라는 부분만 적고 그 외에는 열심히 듣는 편이에요. 혼자 공부 할 때도 마찬가지에요. 수학문제 풀 때만 간략하게 문제집에 적고, 그외 다른 과목은 눈으로 읽고 풀어요.”

 눈으로 읽는다고 요령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효진양만의 노하우가 있다. 첫째,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그 흐름을 기억하며 다시 읽고 모르는 부분은 체크한다. 몰랐던 부분을 다른 참고자료를 통해 확인한 후 다시 읽는다. 이렇게 한 후 반복해서 외워질 때까지 본다. 이게 효진양만의 ‘눈으로’ 공부법이다. 그는 “읽고 또 읽다 보면 자연스레 출제자의 의도가 보이고 다른 부분과 연관되는 부분도 찾을 수 있다”며 “쓰는 행위 자체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론 눈으로만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수학이 그렇다. 재밌는 건 손을 사용해야 하는 수학을 가장 좋아한다는 거다. 초등학교부터 EBS교재로 개념을 공부하고 쉬운 문제집부터 시작해 비슷한 수준의 문제집을 5권씩 풀었다. 어려운 경시대회 문제집에 연연하지 않고도 초등학교 때는 김포교육청 영재교육원, 중학교 때는 경기도교육청 영재교육원에 거뜬히 입학했다. 또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장려상을 타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수학 올림피아드 여름학교(카이스트)에도 들어갔다. 무슨 비결이 있을까.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저 “매일 수학 한 단원씩 푸는 습관이 도움이 됐다”고만 말했다.

QR코드를 찍으시면 이효진양이 소개하는 공부법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사교육 도움없이 힘들다는 영어 공부는 어떻게 했을까.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선생님이었다. 엄마 김씨가 효진양 4살 무렵부터 디즈니 만화영화를 계속 보여줬다. 김씨는 “한글 자막 나오는 부분에 종이를 붙이고 보여줬다”며 “요즘은 해리포터 원서를 영화와 함께 본다”고 말했다. 사실 영어는 이 남매가 유일하게 사교육을 받은 과목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다른 학생에 비하면 미미하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4학년까지 다닌 회화학원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효진양은 정해진 틀 속에서 공부하는 게 싫다지만 사실 공부습관이 이미 몸에 잘 배어있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잠이 오거나 집중이 되지 않으면 일어서서 큰소리로 읽고 또 읽는다.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셈이다. 이 습관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져 왔다. 그는 “설명하듯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잠이 사라져버린다”고 말했다.

 또 스트레스가 쌓이면 줄넘기를 한다. 이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30분씩 줄넘기를 한다. 중학교 때 새로 들인 습관은 신문과 독서평설 읽기다.

 늘 습관대로 잘 할 것 같지만 효진양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중학교 3학년 1학기 때였다. 중학교 때 서울과학고등학교(서울영재학교)를 목표로 공부를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불합격이었다. 그때까지 한번도 실패를 겪어보지 않았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중간고사 국어 시험에서 60점을 받은 거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낯선 숫자였다. 특히 독서량에 자신이 있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처음으로 우등상을 놓쳤다. 그 길로 문학Ⅰ·Ⅱ 교재를 사다가 모조리 풀었다. “정신을 놓고 있으면 상상도 못 하던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웃었다.

 효진양 공부 습관은 사실 아버지 역할이 컸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는 회사에서 돌아오면 문제집을 일일이 채점했다. 틀린 문제는 스스로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 답을 쉽게 알려주지 않았다. 스스로 문제를 풀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마침내 문제를 해결했을 때 느꼈던 성취감이 동력이 돼 공부 습관으로 이어졌다. 효진양은 “수학 증명 문제를 하루가 꼬박 걸리도록 푼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아참, 책상. 효진양 책상은 모범생 효진양을 닮아있을까.

 들여다봤더니 계획표가 먼저 보였다. 매년 1월이면 부모와 상의해 반드시 성취해야 할 큰 목표를 세운다. 이렇게 세운 계획을 효진양은 대일정이라고 부른다. 올해의 대일정은 화학 올림피아드 참가와 텝스 900점, 모의고사 만점이다. 대일정을 다시 6개월(1학기) 단위로 나누는데, 이건 중일정이라고 정했다. 중일정은 대일정과 조율해 학교행사(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일정을 세운다. 마지막으로 매일매일의 계획을 담는 소일정이 있다. 소일정은 미진한 부분이나 갑자기 돌출되는 일정을 1개월 단위로 수정하는 것이다.

 “학원이나 독서실을 다니지 않기 때문에 공부할 때는 확실히 집중하고 그 외에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충분히 쉬어요. 잠을 굳이 줄이지 않아도 이렇게 하면 내 속도로 공부할 수 있어요.”

 다른 전교 1등과는 다른 점도 많지만 공통점도 있다. 휴대폰이다. 휴대폰이 없다는 얘기다. 한 번도 휴대폰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예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학원에 다니면 위치나 일정을 엄마한테 알려줘야 할 일이 생기니까 휴대폰이 필요하겠지만 늘 집에 있으니 따로 휴대폰이 필요하지 않아요. 또 휴대폰으로 친구들이 자꾸 불러내면 거절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물론 친구들은 연락하기 불편하니 하나 사라고 하죠. 그럼 답은 항상 똑같아요. 집에 있으니까 집으로 전화해.”

글=김소엽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책상 위 교재
국어 : EBS 포스 화법과 작문 / 수학 : EBS 포스 기하와 벡터, 블랙라벨(진학사), 자이스토리(수경출판), 개념원리 미분과 적분(개념원리), 일등급 수학(수경출판), 개념원리 RPM(수경출판), 수학의 정석-실력편(성지출판) /과학 : EBS 탐스런 화학Ⅰ·Ⅱ, EBS 탐스런 지구과학Ⅰ, EBS 탐스런 생명과학Ⅰ, HIGH TOP 화학Ⅰ·Ⅱ(두산동아)/ 사회 : 학교 프린트 / 영어 : 맞수 수능유형 심화편(능률교육), VOCABULARY WORKSHOP 1(거로출판사), MD GRAMMAR(지수), 해리포터 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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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터넷 문고) 외에 학습 정보는 잘 찾아보지 않는 편. 책이나 교재 선택시 인터넷 서점 댓글을 참조한다. 상위 1% 카페(cafe.naver.com/mathall). 아들이 고3이었을 때는 오르비(orbi.kr) 참조.

김소엽.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