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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교사가 써야 할 학생부, 학생이 입맛대로 代筆

교사가 써야 할 학생부, 학생이 입맛대로 代筆



부정적으로 썼다간 항의만 "대학 떨어지면 선생님 책임"… 교사들 "아예 시키는 게 편해"

학생부 大入 전형 비중 늘어 내년 대필 현상 더 심해질듯


'평소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은 다른 친구들까지도 잘 배려하고, 수업 시간뿐 아니라 학급 단체 활동에도 근면 성실히 임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해 최선을 다하고…'

서울 목동에 사는 고1 학부모 A씨는 최근 딸과 상의해 학생부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써서 학교에 냈다.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써서 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A씨는 "내가 봐도 너무 자화자찬으로 써서 민망하고, 교사가 학생부를 애들한테 써오라니 처음엔 이상했다"면서도 "그래도 나쁜 내용이 들어가는 것보다는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는 교사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인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상급 학교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활용하게 하는 것이 목적(교육부의 학생부 기재 요령 지침)인 서류다. 그러나 일부 교사들은 이런 학생부를 '평가 대상'인 학생에게 써오게 해서 참고하거나, 아예 학생이 쓴 내용을 그대로 학생부에 옮겨 써주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대학 입시 때 제출하는 '교사 추천서'를 학생들이 대필해 논란이 됐는데, 이제는 학생부까지 학생이 대필하는 상황인 것이다.

◇"교사가 힘이 있나… 항의 듣느니 그냥 써오라는 수밖에"

교사들은 "이런 상황은 3~4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대학 입시에 입학사정관제도가 도입되어 학생부가 중요해지자, 교사가 쓴 학생부 내용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가 늘어났다. 처음엔 교사가 다 쓴 뒤 학생의 확인을 받다가, 이제는 아예 학생들에게 써오라는 교사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북 지역의 고3 담임 박모씨는 "지각을 수십 차례 하는 학생이 있어서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항목에 '준법 의식이 다소 결여돼 있다'고 썼다가 학생이 펄펄 뛰어 결국 고쳐준 적이 있다"며 "학생들이 '내 인생 망치려고 작정했느냐'고 항의하는데, 교사가 무슨 힘이 있느냐. 이제는 아예 학생들한테 써오라고 해서 참고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2011년 학생부를 수정해준 고등학교들이 대거 적발된 후 심해졌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학생부는 매 학기 마감 뒤엔 원칙적으로 수정이 불가능한데, 당시 적발된 고교들은 "고 1·2 때 쓴 학생부 내용을 고쳐달라"는 고3 학부모·학생들의 요청으로 수정해줬다. 이 때문에 "한 번 쓰고 나면 수정하기 어려우니 애초에 학생들한테 보여주고 확인받자"는 분위기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써오라고 하는 부분은 주로 ▲진로 희망 ▲창의적 체험 활동 ▲독서 활동 등이다. 그러나 일부 교사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항목까지도 학생들에게 써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부 영향 커져…갈수록 심해질 것"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런 상황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입시에서 학생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2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2015학년도 입시에서는 학생부를 보고 뽑는 선발 인원이 전년보다 4만명이나 늘어난다. 고려대부속고 박진훈 생활지도부장은 "교사는 성심성의껏 학생부를 쓰고, 학생과 학부모도 교사의 권한을 존중해줘야 한다"며 "학생부 중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만큼은 교사들이 소신껏 쓸 수 있도록 학생들이 열람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