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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쌓기’ 그늘… 학부생 줄어드는데 박사 신입생 10년새 2배로

스펙쌓기’ 그늘… 학부생 줄어드는데 박사 신입생 10년새 2배로


 


■ 취업난에… 몸값 높이려… ‘학력인플레이션’ 심화

[동아일보]

서울 A대 공대 대학원에 재학하는 이모 씨(26). 국내 최고 명문으로 손꼽히는 대학의 학부를 2011년 졸업한 뒤 대학원으로 직행했다. 해외유학 생각이 없는데도 4년 이상 걸리는 석박사 통합과정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학위를 따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 씨는 “박사학위를 갖고 취업하면 기업에서 전문 분야를 살릴 수 있다. 선배들을 보니 과장급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사회 진출이 조금 늦더라도 박사학위로 증명되는 학력이 근무여건과 임금을 결정하는 데 유리하다는 말이다.

○ 고등교육 수요 늘어 학력인플레

이 씨처럼 박사과정에 등록하는 학생은 지난 10여 년 동안 2배 가까이로 늘었다. 학부 신입생은 상대적으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취업난 속에서 고등교육을 통해 스펙을 쌓으려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자기계발 욕구가 커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많다.

24일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에 따르면 대학 학부 신입생은 2000년 31만8135명에서 2006년 25만4433명을 거쳐 지난해 23만8952명까지 줄어들었다. 12년 동안 25% 가까이 감소했다. 전반적인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조정의 여파다.

반면에 박사과정 입학생은 2000년 1만1705명에서 2006년에 1만7005명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2만3328명까지 증가했다. 12년 사이에 2배 가까이로 불어난 셈이다. 전국의 박사과정 학과 수 역시 2000년 2412개에서 지난해 4465개로 늘었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줄어드는데도 최고학위인 ‘박사’를 따려는 학생은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올라가면서 학사나 석사학위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교육학과)는 “학사나 석사학위만으로도 학력(學歷)이 돋보이는 시절이 있었다. 최근에는 고등교육이 일반화되면서 박사학위까지 따려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취업과 자기계발이 가장 큰 이유

서울의 초등학교 교사인 정모 씨(30)는 2006년 교사로 임용됐지만 3년 뒤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방학 기간을 이용해 석사과정을 모두 마쳤다.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계획이다.

정 씨는 “학부에서 전공한 도덕교육 분야를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었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박사학위를 목표로 짬짬이 공부하는 교사가 주변에 많다”고 전했다. 정 씨처럼 석사나 박사학위를 받은 교사는 승진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사회에 진출했다가 다시 학위를 취득하려고 대학을 찾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는 점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으로 직행한 학생은 2000년 5387명, 2006년 4413명, 지난해 4452명 등으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박사 입학생의 대다수가 취업하면서 학교를 떠났다가 다시 진학하는 사례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1∼2012년 전국의 박사과정 졸업생 6891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52.6%는 직장을 다니며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런 ‘학력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상당수 대학이 등록금 수입을 늘리고 학교 위상을 높이기 위해 박사과정을 경쟁적으로 운영하면서 부실한 교육이나 논문 표절 같은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 일반대학과 대학원대학 232곳 중 박사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는 80.6%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2189개 대학 중 박사과정을 개설한 곳이 12.3%뿐이다.

송창용 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박사과정을 내실화하기 위해 대학원의 교육여건, 연구성과, 학위논문 전문(全文)을 공개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