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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팔봉 선생 장항선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팔봉 선생 장항선
 
배역없어 밀항까지 결심했던 '조연 名人'

팔봉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인생은 겪는 것"이라는, "나쁜 일도 겪고 슬픈 일도 겪고, 좋은 일도 겪고 기쁜 일도 겪는 것"이라는 마지막 교훈을 남기고, 제빵실의 의자에서 눈을 감았다.

이젠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더 이상 팔봉 선생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그것은 '어르신'이 사라져 버린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겐, 비록 드라마 속 캐릭터이긴 하지만 커다란 상실감이자 아쉬움이다.

배우이자 탤런트 장항선(63·본명 김봉수)을 만나기 위해, 그가 운영하는 천안의 음식점으로 내려갔던 날은 마침 드라마 소품으로 쓰일 영정 사진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죽는 역할을 여러 번 했지만, 이번처럼 고심한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대본을 읽으면서, 안갯속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팔봉 선생의 모습을 봤어요." 그리고 그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사실 장항선은 강한 이미지의 배우였다. 그 때문에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팔봉 선생은 이례적이면서도 놓칠 수 없는 역할이었다. "사실 '제빵왕 김탁구'와 주말 드라마 하나를, 같이 섭외 받았어요. PD들은 두 작품 다 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연기가 허술해질 수밖에 없어요." 결국 선생은 '제빵왕 김탁구'를 선택했다. 어눌해 보이지만 결단력 있는 캐릭터와 특히 대사의 '맛'에 끌렸다. "과거에 강한 이미지의 역할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팔봉 선생을 하면서 연기 인생 40년 동안 이렇게 맛있는 대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연기 인생 40년. 1970년에 KBS 탤런트 9기로 입사했다. 어려서부터 배우의 꿈을 지녔지만, 인생을 바꾼 건 한순간의 무모한 용기였다. 1969년에 제대한 그는 먹고살 일이 막막했다. 운전병이었던 특기를 살려 택시 운전을 하려고 버스를 타고 다니며 서울 지리를 익히던 시절. 버스가 스카라 극장 앞을 지나는 순간, 그는 창 밖으로 영화배우들이 걸어가고 있는 광경을 봤다. 버스에서 뛰어내려 무작정 따라갔다. 그렇게 충무로의 스타 다방이라는 곳에 입성했고, 다음 날부터 출근하다시피 하며 어느 조감독과 친구가 되었다. 신성일의 운전사로 출연했던 '언제나 타인'(1969)은 그의 첫 영화. 이후 대여섯 편의 영화를 했지만,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단역이었다. 그는 탤런트가 되겠다고 생각했고, 두 번의 낙방을 경험한 후 70여명의 합격자 중 한명이 되었다.

"사실 제가 배우 얼굴은 아니죠. 그 당시엔 배우의 기준이 신성일씨였으니까요." 대사 없이 단역을 전전하던 가난한 시절, 배우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밀항도 시도했다. '집에 큰 배가 있어서 외국을 드나든다'던 군대 친구의 이야기를 믿고 무작정 속초로 달려갔지만, 작은 오징어 배 한 척이 있을 뿐이었다. "이왕 간 김에 오징어잡이를 나갔죠. 끝난 후에 친구가 3만원을 쥐여 주더라고요." 500원이 하루 용돈이던 시절, 그 돈을 밑천으로 버티며 다시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탁구에게 '너 자신에게 묻거라. 모든 것은 네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 대사를 하거든요? 흔한 대사지만 가장 맛있는 대사였죠.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그러면 좌절감도 지워버릴 수 있다는 의미인데, 과거의 제 다짐과도 일맥상통해요." 그때 만난 드라마 '전우'(1973)의 장 하사 역은, 액션에 자신 있었던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작품이었다.

"재미를 느낄 만큼" 굴곡이 많았던 연기 인생은 마흔 즈음에 서서히 빛을 발했고 '여명의 눈동자'(1991) '마지막 승부'(1994) '모래시계'(1995) '용의 눈물'(1996) 같은 흥행 드라마의 한 자리엔 그의 이름이 있었다.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자신을 중용한 영화 '살어리랏다'(1993)를 통해 영화배우로서 본격적으로 물꼬를 텄고, 김기덕 감독의 '파란 대문'(1998) 이후엔 PD들에게 "드라마에서도 그런 연기를 보여 달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랬죠. 당신들이 나한테 그런 배역 준 적 있냐고."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텔 미 썸딩'(1999)은 아들(김혁)의 진로를 바꾸어놓기도 했다. "난 그때 5부 능선도 아니고, 3부 능선쯤에서 바동거리며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배우였어요. 그런데 아들이 '텔 미 썸딩'에서 내가 절절하게 죽는 장면을 보면서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거예요." 여러 차례 말렸지만, 현재 아들도 아버지의 길을 잇고 있다.

부모님의 냉면집을 이어 현재 장항선 철도 인근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장항선 본가'를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식당은 흔히 생각하는 '연예인 부업'이 아니라 '가업'이다. 살짝 맛보았던 황태 냉면의 독특한 맛도 직접 개발한 것. "연기도 모방의 창조요, 음식도 모방의 창조"라고 말하는 그에게, 그렇다면 팔봉 선생이 아닌 배우 장항선이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무엇인지 묻자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대본엔 이렇고 저렇고 답이 나와 있는데…. 단순합니다. 많이 먹으면 배부른 거죠. 허허허."



강산이 4번 변하는 동안 연기를 했던 배우 장항선. 팔봉선생 그가 운영하는 천안의 한 식당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신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