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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래는?/직업관련

“선망직업 체험한 뒤 공부이유 찾았어요”

“선망직업 체험한 뒤 공부이유 찾았어요”
“뭔가 준비해야겠다” 위기의식 느끼게 해줘
‘직업인 연결 프로그램’ 교사·사회 역할 중요
한겨레 김청연 기자
» 직업인과 함께하는 직업체험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생활하는 학생들의 일상에서 공부의 의미, 꿈의 의미를 알려주는 자극제가 된다. 사진은 하자센터의 찾아가는 일일직업체험 가운데 ‘명함디자인하자’ 체험을 해본 백석중 학생들. 하자센터 제공
귀한 자식일수록 멀리 내보내라고 하지만 ‘진학 교육열’만 높은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의 행동반경은 짧다. 집·학교·학원을 오가며, 만나는 사람도 부모·교사·친구로 정해져 있다. “제일 익숙한 직업이라 골랐다”며 많은 학생들이 희망직업으로 ‘교사’로 꼽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그나마 체험학습, 수행평가 등이 학교 밖 세상을 만날 틈을 주지만, 이도 단순 견학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직업체험’은 소외 분야다. 학부모들은 종종 “어떤 효과가 있느냐, 공부에 집중만 안 되지 않겠느냐”는 반문으로, 직업체험을 강조하는 교사들의 기를 꺾는다.

직업인을 만난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서울 백석중 허은영 교사(도덕 담당)는 이런 의문이 정말 잘못된 것임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7년 전, 경인중 재직 시절부터 지금까지 허 교사는 우리나라 특별활동반(CA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반을 만들어 운영해왔다. 바로 진로탐색 체험반이다. 그는 일상적으로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학생들과 직업인의 만남을 주선해왔다. “맨땅에 헤딩했던” 초기에는 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에서 운영하는 연계 프로그램 도움을 톡톡히 받았는데, 곧 스스로넷, 하자센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에서도 관련 프로그램이 생겨 지금은 특별활동반 운영이 훨씬 수월해졌다.

허 교사가 직업체험에 관심을 쏟은 이유는 이 체험으로 “공부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다.

허 교사는 “직업체험은 ‘나도 뭔가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한다”며 “이것이 학습 동기 유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학생들은 관심 있는 직업군의 직업인이 공부를 왜, 어떻게 했는지를 알려줄 때 유독 귀를 기울이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 사실 학생들은 시청각 자료로 간접체험만 해도 반응을 보인다. “2학년 도덕 시간에 영상물 활용 수업을 했다”는 백석중 3학년 황윤희 양은 “교과서만 보다가 청소년 창업에 대한 영상물을 보니 직업이 대체 어떤 개념이고, 왜 중요한지 그때 정말 실감이 났다”고 말했다.

진로교육에서 직업체험 등의 효과는 아일랜드의 ‘전환학년’(transition year) 프로그램이 증명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은 중학교 졸업 뒤 고등학교 진학 전 1학년을 직업체험, 교내기업 운영 등 교내외 현장수업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아일랜드 교육청은 전환학년을 거친 학생들이 2년 뒤 그러지 않은 학생들보다 고교졸업 자격시험에서 더 높은 평균점수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업체험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2006년 한국고용정보원 진로교육센터 박가열, 노경란 부연구위원은 ‘청소년 직업체험 학습프로그램의 효과성 검증 및 개선 방안’이라는 논문에서 “직업체험을 한 학생들이 자기효능감, 즉 자신감 부분에서 향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고등학생보다는 중학생에게, 실업계 고교생보다는 인문계 고교생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공부는 안 하고 직업체험을 간다고?”라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던 학부모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물론 이는 제대로 된 직업체험 시스템이 마련돼야 가능한 얘기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진로정보센터 최동선 부연구위원은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직업인과 학생 양자 사이를 연결해주는 교사의 몫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 견학 차원에 머물지 않도록 교사가 사전에 직업인과 접촉해 단계별 프로그램을 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허 교사가 지도하는 백석중 진로탐색 체험반의 12명 학생들은 격주로 특별활동 시간에 ‘직업인과의 만남, 체험, 체험 뒤 개인별 정리’ 순으로 체계적인 직업체험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하자센터의 ‘찾아가는 일일 직업체험’ 가운데 ‘게임하자’ 체험을 한 3학년 허태훈 군은 “게임 하면 싸우는 것만 생각했는데 게임의 역사와 유래, 원리, 직업인이 된 이유 등 설명을 충분히 들으니 확실히 진지하게 체험다운 체험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교사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제대로 된 직업체험을 하기란 힘겨운 일이다. 특히 기업체 즉, 사회의 협조가 가장 절실하다. 4월23일 열린 한국진로교육학회 춘계학술대회 주제 발표 가운데 ‘직업세계 체험주간 운영의 실태와 과제’에서도 이런 사회의 인식과 배려는 중요한 논의 과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 진로교육 담당 이기봉 장학관은 “5월 셋쨋주에 있는 직업세계 체험 주간의 성패는 기업체의 적극적인 참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