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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학교생활기록부 만들어 드립니다” 교육업체 강사의 양심고백

“학교생활기록부 만들어 드립니다” 교육업체 강사의 양심고백

교사 업무량으로 감당 불가… 학생들에게 떠넘기는 경우 많아


 

2015학년도 입시부터 학생부종합전형이 본격화되면서 학생부 작성에 개입하고 학교생활 자체를 조언하는 ‘컨설팅’ 업체가 등장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학입시의 핵심으로 학교생활종합기록부(학생부)가 떠오르고 있다. 2017학년도에는 7만2101명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한다. 2018학년도 수시모집에서는 1만1130명 더 많은 8만3231명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교육부와 각 대학 당국은 교과활동(내신성적),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교우관계 및 인성 등 고등학교 생활 3년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부’를 대입의 중심에 둠으로써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인성과 교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학생부를 교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작성한다. 그 누군가는 ‘대필’이 아니라 ‘컨설팅’의 형식으로 ‘학생부’에 개입한다. ‘서류상’으로는 학교 교육이 정상화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생, 교사, 사교육업체 강사 등이 탈법의 경계에서 서류를 만든다. 학생들은 인간관계와 개성도 ‘입시자원’으로 동원하는 법을 배우며 새로운 불안에 눈뜬다. 불평등과 불신이 싹튼다. 서울의 한 교육 벤처기업에서 1년 가까이 학생부 전형 대비 전문강사로 일하는 ㄱ씨가 <주간경향>에 양심고백이라며 전한 내용이다. 다음은 ㄱ씨와의 인터뷰 결과를 1인칭 서술로 재구성한 것이다.



“선생님, 오늘 밤 10시에 화상 첨삭 부탁드립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3시간쯤 걸리겠구나’ 어림짐작이 들었다. 강사로 일한다고 국어, 영어, 과학 등 특정 교과목이나 논술만을 떠올린다면 현행 입시제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직장에서 ‘전문강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린다. 내가 담당하는 학생은 20명 남짓이다. 그러나 내 직장부터가 흔히 생각하는 ‘학원’의 개념과 다르다. 나는 스타트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은 ‘강의’라기보다 ‘컨설팅’과 유사한 듯하다. 내가 오늘 밤 첨삭해야 하는 내용은 이 학생의 2017년도 2학기 학생부다.

학생부라고 하면 연말에 담임교사가 학생의 1년 동안 학급생활과 성적을 기록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강사인 내가 학생부에 손댈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학생부를 작성하고, 이 과정에 내가 첨삭 및 지도를 하는 것이다. 학생이 써온 대로 교사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입력한다. 즉 내 일은 일선 교사의 직무유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교사가 ‘지금의 학생부’를 꼼꼼하게 작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학생부가 ‘옛날의 학생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우미양가 등의 평가와 신체발달 상황, ‘성실하고 맡은 일을 묵묵히 해냅니다’ 등의 짤막한 평이 담긴 예전의 학생부를 상상해서는 안 된다. 요즘처럼 학기말, 학생부 작성 시즌이 되면 학생들은 A4 2장 분량의 백지를 들고 온다. 까맣게 이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든다.

일을 시작할 때 업체에서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 하달한 ‘학생부 작성 지침’을 나눠줬다. 교육부는 NEIS를 구축하면서,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을 확대하면서 학생부의 기입 양식을 세밀하게 규정했다. 입시의 근거가 돼야 하니 내용 자체가 방대하고 풍성하면서 객관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학생 인적사항 및 교과발달상황, 자율활동, 독서활동, 창의적 진로체험활동, 봉사활동, 인성발달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 항목은 10가지에 달한다. 교과발달상황은 개별 교과 교사가 쓰고 나머지는 담임교사가 쓴다. 교육부는 “학교생활기록부에는 학생의 다양한 창의적 체험활동(진로정보탐색활동, 봉사활동 등) 실적만을 나열하기보다는 꿈과 끼 탐색활동을 통해 학생이 변화되어가는 모습이 전체적으로 잘 드러나도록 충실하게 기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허위사실을 적으면 안 된다. 교육부 지침에는 학생부에 기재된 내용에 증빙서류 등이 누락돼 있는 등 사실과 불일치할 경우 ‘불이익’을 준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또한 교외 수상실적은 적지 않는다.

“농구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드리블 실력이 크게 늘었다.”

‘구체적이고, 충실하게’ 작성해야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취미생활도 ‘운동’이라고 적으면 곤란하다. ‘농구’, ‘복싱’ 등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장래희망도 ‘디자이너’가 아닌 ‘그래픽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적어야 한다. 체계적인 진로상담을 통해 진로희망을 탐색하도록 하되, 학생이 진로희망을 정하지 못한 경우 ‘현재 진로희망 없음’으로 기입해야 한다. 또한 이유도 적어야 한다. 하지만 진로희망이 없는 경우는 없다. “선생님, 저 정말 하고 싶은 거 아직 모르겠는데 어떡하죠?”, “야, 1·2학년 때 진로희망이 없다가 3학년 때 생기면 1·2학년 때부터 있는 학생들과 비교해서 불이익당해.” 이런 식으로 뭐든지 만들어서 낸다. 그리고 다른 학생보다 길고 내용이 많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농구동아리 활동을 했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리블 실력이 크게 늘었다”라고 써야 하는 것이다. 경기 중 불리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역전승을 해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자세의 소중함을 배웠다”는 문구까지 있으면 더욱 좋다.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대입 전형에 그대로 반영되며 면접질문일 수 있고, 입학사정관들의 눈길을 끌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 ‘자기주도적’, ‘적극적’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 내성적이고 소극적 성격을 있는 그대로 진술해 수시모집에 합격했다는 말을 거의 들은 적이 없다. 교육부 지침에서도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고 있다.

“광고 관련 전시회를 통해 광고가 단순히 상품판매의 목적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창조작업임을 인식하고 광고디렉터가 되기 위해 관련 도서는 물론 전문가 인터뷰 영상 등을 찾아보며 좀 더 구체적인 탐색과 노력을 하고 있음.”

“교내 꿈 UCC 만들기 대회에 참가하여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연출과 촬영을 주도하여 작품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갖게 됨.”

‘주도적 드리블 실력’에 대해 쓰면서 쓴웃음이 나온다. 담임교사가 혹은 동아리 지도교사가 농구동아리 활동까지 알아도 이 대목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지금 이 학생도 내가 계속 6~8차례 면담하며 집요하게 물어보면서 튀어나온 말들을 문장으로 엮은 것이다. “아니 선생님, 이런 것까지 써야 해요?”라는 질문을 학생이 먼저 한다. 나중에는 스스로 자신의 사소한 경험에 ‘자기주도적’, ‘자율적’, ‘최고의’ 등등의 수사를 넣어서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학생부 문체라고 이해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행동발달 및 종합평가다. 말 그대로 한 사람의 내밀한 인간관계와 고민, 가치관 등을 종합해서 써내야 하는데, 입시를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는 ‘쌍둥이’다. 대학교육협의회는 자기소개서 공통문항으로 규정한 3개 요소를 규정하고 있다. 각 문항을 분석해보면 자기주도학습, 창의적 진로체험활동, 핵심 인성요소와 연관된다. 대교협은 인성의 핵심 요소로 배려, 나눔, 협력, 공동체 의식 등을 규정했다. 이 항목은 학생부의 ‘행동발달 종합평가’에 담아야 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나중에 자기소개서를 쓸 때 학생부에 기재돼 있지 않은 내용을 쓰면 사실과 다른 것으로 여겨져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또 염두에 두고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 학교생활을 물어봐서 이런 경험들을 적는다.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작성하면서 우정을 다졌다.”, “또래상담 동아리에서 따돌림 현상으로 괴로워하는 친구를 위로해주었다.”, “다쳐서 목발을 짚고 다니는 친구가 계단을 오르는 것을 도왔다.” 학생부 항목 설계가 애초부터 잘못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교사 업무량을 감안했을 때 이런 사실 하나하나 다 파악해서 적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교사 업무량이 줄어들어 이런 사실 하나하나를 파악해 학생부에 적을 수 있게 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교사가 학생들이 누가 누구와 친하고, 누구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까지 파악하고 ‘나눔’, ‘배려’ 등의 잣대로 이를 평가해 기록하는 것은 일종의 감시 아닐까. 학생부 전형은 ‘금수저 전형인가’, 즉 상류층에 유리한 전형인가에 대한 논쟁은 있어도 이 관점에서의 논쟁은 크게 벌어지지 않는 듯하다. 내가 취업 자소서를 쓰면서 느낀 ‘길들여진다’는 감각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훈련시킨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교육부가 2015년 일선 학교에 배포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의 한 대목. 교육부의 지침은 총 249쪽에 달한다. / 교육부 배포자료 화면


학생부와 관련해 교사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는 듯하다. 우선 직접 쓰는 교사들이다. 가장 원리원칙에 충실한 부류지만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다. 잘 쓰면 좋겠지만 잘못 쓰면 학생들로부터 “학생부 테러당했다”, “학생부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교사의 업무요건과 학생부 자체의 특징으로 잘 쓰기는 쉽지 않다. 오랜만에 상담한 학생에게 안부를 물었더니 “담임에게 학생부 테러당했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특정과목 교과 교사와 사이가 나빠서 학생부 전형을 걱정하기도 했다. 어떤 교사는 “너희들 태도가 좋지 않아 학생부 기록했다가 삭제했다”는 말을 했다고도 한다. 학생들에게 교사는 인생을 움켜쥐는 ‘갑 중의 갑’이 돼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학부모는 “교사가 쓴 학생부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 교사에게 항의할 것이니 괜찮게 고쳐줬으면 한다”고 부탁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학생들더러 직접 쓰라고 떠넘기는 교사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컨설팅 업체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컨설팅 업체를 모르거나 컨설팅 받을 경제적 능력이 안 되는 학생들은 대체 어찌해야 하나 싶다. 세 번째는 수업시간을 할애해 학생부를 어떻게 작성하는지 알려주고 학생들이 써오도록 하는 부류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쓴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타협책인데, 어쩌면 이 부류의 교사들이 양심적으로 가장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교사도, 학생도, 강사도 모두 이 전형에서 학교 행정질서를 어지럽히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학생들도 크게 세 부류다. 하나는 일찍부터 학생부 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찾아오는 우등생들이다. 내신등급도 1·2등급에 해당한다. 이런 친구들이 백지상태 학생부를 채워 달라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동아리 활동이나 독서활동도 충실히 갖췄고, 쓸 내용도 많다. 이들은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확인받고 싶어서 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런 이들의 표정에는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 성적이었다면 나는 그저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 것인데. 춤추는 것이 너무 좋아서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는 진희(가명)가 그런 학생이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이번 학기는 됐고, 내년에는 고2니까 과학과 관련한 동아리를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지금 동아리는 전공하고 직접적 상관이 없으니까. 직접 네가 동아리를 하나 만드는 것도 좋고. 기존 동아리에 들어간 것보다 없던 동아리를 새로 만드는 게 더 평가가 좋거든.” 이런 말을 해줘야 진희의 불안이 풀린다. 내가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 우리도 내신, 수능, 논술전형 모두를 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죽음의 트라이앵글’ 세대라 불렸다. 그래도 동아리는 일주일에 한두 번 숨을 쉬러 가는 곳이었다. 지금은 동아리 활동마저 입시를 위한 수단이 된다. 숨통은 없다.

두 번째는 특출난 구석은 없어도 성실하고 평범하게 학교생활 잘하는 친구들이다. 이 경우 학생부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성실해서 시키는 것은 잘 해온다. 천문학과에 가고 싶어하는 성우(가명)가 자신이 작성한 문장을 보여줬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우주에 대한 상상력을 키웠고, 칼 셰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천문학과에 진학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진로활동을 위한 행동으로 천문 동아리에 가입했고, 지난 10월 천체망원경 조립을 직접 해봤습니다.” ‘너, 이 자식, 망원경 조립은 개뿔. 매일 게임만 하고 노는 거 다 아는데.’ <코스모스>는 내가 읽으라고 해서 읽은 책이다. 생물학과에 가고 싶어하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정치외교학과를 지망하면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을 미리 읽어보게 한다. 그래야 나중에 학생부에 쓸 것이 생긴다. 학생부에 기록되는 내용은 단순한 현재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미래의 진학에 도움되는 정보로서 ‘스토리’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이렇게 학생들이 미리 컨설던트를 찾는 것이다. 서류만 보니 완전한 ‘우주학도’가 만들어졌다. 이 학생이 우주에 호기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게임하고 노는 걸 훨씬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게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학생부를 만들다보니 왠지 평범한 학생이라는 사실이 나쁜 것처럼 되고, 보다 진지한 우주학도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 학생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대학이 원한다. 다음 역시 교육부의 학생부 작성 예시다.

“○○교육청에서 실시한 ○○조리실습 체험을 하는 과정에서 호텔 관련 산업의 다양함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평소 관심과 소질이 많았던 요리와 연결하여 최고의 호텔조리사가 되는 꿈을 갖게 됨.”

세 번째는 단연 부모의 손에 이끌려온 학생들이다. 이 일은 하면 할수록 환멸감이 커지지만 이 학생들의 텅 빈 학생부를 보면 괜히 내가 위기감이 든다. 1·2학년 때 멍하게 살다가 3학년 때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간다거나, 계속 진로에 대해 방황하다 대학 이후 진로를 탐색하는 것은 현 교육체제에서 불가능하다. 그런 답답함에 무언가를 해오라고 시키지만 잘 해오지 않는다. 학생부 기록 마감에 임박해 간신히 내용을 짜내서 채워준다. 그래서 오후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이런 학생들의 학생부를 만들어준 적도 있었다. 업체에 등록된 학생들은 학원별로 분류돼 있다. 업체가 일선 학원을 상대로 마케팅을 하고 학생부 전형에는 대비 못하는 학원들이 학생들을 소개한다. 일선 학교에서는, 교육부에서는 이런 업체의 실태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학생부를 만들어주면서 가장 서늘한 순간은 서울과 지방 학생들의 격차를 느낄 때다. 섬뜩하게도 내가 분류한 세 종류의 학생들 중 첫 번째, 모든 정보를 꿰뚫고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전부 서울 출신이다. 부산 출신도 없었다. 애초에 그들에게 필요한 교내대회, 동아리, 직업 체험활동 등이 서울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지역의 학교들은 입시정보를 빨리 손에 쥐고 교내 대회를 일부러 만들고 각종 체험활동에 학생들을 내보낸다. 지방은 학교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는 실정이고, 이런 입시전형이 계층불평등을 더 심각하게 만들어낸다는 것에 대해서 논란은 되고 있지만, 학생부 전형은 확실히 ‘지역’이라는 단위를 불평등으로 묶어내는 듯했다. 어느 학교에 입학했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가 결정적 변수가 되는 입시제도는 대체 어쩌다 탄생했을까. ‘교육기득권층’이 지방을 통째로 배제시키려는 걸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의도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 제도는 학생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학생, 교사, 학부모, 강사가 조금씩 불·탈법을 저지르게 하고 있다. ‘농구 한 판, 친구들과의 수다’마저도 스펙이 되어 스토리를 만들고 인식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뚫고 대학에 들어온 내가 보기에도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너무나 불쌍하다. 나 역시 한국 교육에 큰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부모 77.6% “학생부 전형은 상류계층에 유리”


학생부종합전형은 내신성적과 면접을 중시하는 ‘비(非)수능 전형’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수능은 국가, 대입 논술고사는 각 대학 당국이 평가자의 역할을 맡는다. 학생부 전형은 각 학교 교사들이 평가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2009년 도입된 입학사정관제와 다른 점은 ‘스펙 경쟁’을 부추기는 대외활동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의 수시모집과 다르게 성적뿐 아니라 소위 ‘인성발달 사항’도 학생부의 중요한 일부로 평가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기도 한다. 서울대는 2015학년도부터 수시모집을 100%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했다.

학생부전형은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불신도 상당하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송기석 의원(국민의당)이 지난 9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초·중·고교생과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8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6%가 ‘학종은 상류계층에 더 유리한 전형’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3월 발표된 ‘대학입학전형 선발 결정요인 분석’(고려대 이기혜·최윤진) 논문에 따르면, 정시가 수시보다 부모의 교육수준과 가구소득이 높을수록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학생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수시모집보다 정시모집이 오히려 학생의 계층 수준을 반영한다는 내용이다.

학생부전형이 일상의 모든 행위를 대입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비판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학교 간 격차가 큰 상황에서 입시는 어떤 형태로든 학생 간 경쟁을 가속화시킬 수밖에 없으니, 경쟁은 단순할수록 좋다는 의견도 있다.(이범, <교육특강>)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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