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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가슴이 터질 듯 스트레스 받고 화가 난다" 분노의 주말//“박근혜 뽑아 애들에 미안” “최순실 농단 화나 첫 집회”

"가슴이 터질 듯 스트레스 받고 화가 난다" 분노의 주말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박근혜는 하야하라.”

쌀쌀한 날씨에도 주말 내내 전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규탄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야’ ‘탄핵’ ‘퇴진’ 등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박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구호가 전면에 등장했다.

첫 테이프는 청소년들이 끊었다. 지난 29일 오후 2시 청소년단체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회원 20여명은 서울 종로구 북인사마당에서 중고등학생 149명이 서명한 시국선언문 ‘박근혜가 망친 민주주의 청소년이 살리자’를 발표했다. 이들은 “지금 시험기간인데도 이 자리에 나왔다. 나라가 망해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우리는 과거 항일운동·민주화 운동에서 싸운 청소년들이 민주시민으로서 당당하게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쳐온 역사를 기억한다”고 밝혔다. 청소년들은 ‘꼭두박씨 행진’ ‘쇼미더 순실’ 등 퍼포먼스와 행진을 진행했다. 박지수양(16)은 “우리 조상들이 열심히 세우신 이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가 더 이상 열심히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 50분쯤 광화문 광장엔 높이 4m 상당의 단두대가 등장했다. 단두대는 18세기 프랑스혁명 당시 부패하고 무능력한 왕과 귀족들을 참수하는 데 사용된 ‘민중혁명’의 상징이다. 이는 실제 칼날이 있는 단두대가 아닌 단지 조형물이었지만 10여분만에 경찰에 의해 급히 치워졌다.

시민 2만여명이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주 시위 무대였던 청계광장과 광화문 일대에선 촛불 2만여개가 타올랐다. 29일 오후 6시쯤부터 청계광장 주변엔 당초 3000~4000명이 모일 것이란 경찰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인파가 운집했다. 한 이화여대 학생은 “학교에 대단한 공주님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빙산의 일각이었을 줄 몰랐다”며 “최순실씨 실체와 그를 둘러싼 커넥션은 대한민국 심장부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최고지도자로서 해온 악행들을 모두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고모씨(26)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집회에 처음 나왔다. 고씨는 “대통령이 주어진 권한을 스스로 행사하지 못하고 아무 상관 없는 일반인한테 줬다. 국가시스템이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 지지자였던 김모씨(75)는 “박 대통령이 정말 진실하게 양심적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국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도 지지자였지만 이제 돌아섰고, 요즘 잠도 못 자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시민이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시위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하고 있다. 박광연기자
‘비선실세’에 좌지우지되는 박 대통령을 꼬집는 퍼포먼스도 눈에 띄었다. 최순실씨 얼굴 가면을 쓴 시민은 ‘오늘은 빨간 옷 입힐까?’라는 피켓을 들고 나왔다. 박 대통령의 가면을 쓴 시민은 최씨의 팔짱을 끼고 섰다. 그 옆으로는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말을 탄 모습을 흉내내며 ‘이모, 잘 좀 끌어봐’란 피켓을 든 참가자가 따랐다. 한 시민은 ‘최순실의 나라, 박근혜 하야’라는 문구가 적힌 부적을 말 모형에 부착하고 거리행진을 했다.

지역에선 ‘경적 시위’도 부활했다. 전북 전주 시내버스 기사들은 지난 29일 오후 4시부터 3분여동안 시내 곳곳에서 일제히 경적을 울렸다. 앞서 버스기사들은 이날 오전 버스 앞유리창에 ‘박근혜 대통령 퇴진에 동의하는 뜻으로 3분 정도 경적을 울립니다.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란 공지문을 붙였다. 경적 시위는 1987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 발표후 전국적으로 확산돼 6월항쟁을 이끌어 낸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29일 서울 청계광자에서 열린 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이 ‘최순실 구속’‘박근혜 하야’‘새누리당 해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이유진 기자
최순실씨가 비밀리에 입국한 30일에도 박 대통령 규탄 집회가 이어졌다. 청년참여연대는 이날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신문 한번 읽어보자. 나라가 얼마나 개판으로 돌아가는지’란 취지로 ‘침묵의 책읽기’ 퍼포먼스를 펼쳤다. 김주호 사무국장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순실 게이트 관련 진실을 밝혀야 한다. 박 대통령이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수사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될테니 빨리 하야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가자 한용헌씨(72)는 “가슴 터질 듯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난다. 집에 있으니 답답해서 나왔다”며 “최씨가 귀국했다는 사실 자체가 걱정스럽다. 모든 진실을 밝히고 양심선언하는 게 아니라 변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분노한 시위는 이번주에도 전망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는 31일 ‘비선실세 최순실 개입 사태에 대한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동해안 별신굿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2016민중총궐기 당일인 다음 달 12일까지 매일 저녁 ‘비선 실세 의혹’을 규탄하는 집회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전국 국·공립대학생연합회도 11월 12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연합 시위를 예고했다.
<김서영·허진무·박용근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박근혜 뽑아 애들에 미안” “최순실 농단 화나 첫 집회”

[한겨레] 촛불집회 광장에 모여든 시민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주최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근처에서 경찰과 대치 하고 있다.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9일 서울 청계광장과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_박근혜 시민 촛불' 집회에는 최대 3만여명(경찰 추산 1만2000명)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 하야’, ‘거국내각 구성’ 등을 요구했다. 시위에 처음 나오는 중고등학생부터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엄마,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는 장년층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왔을까?

■ “정유라 부정입학 가장 화나” 이날 집회에는 분노의 목소리보다 절망의 목소리가 컸다. 부인, 초등학생 딸과 함께 집회에 나온 이상래(48)씨는 “일단은 집회에 참여해야 할 것 같아서 나왔다. 대학교 졸업 이후 처음이다. 황당하고 화가 많이 난다. 밀실에서 측근들과 마음대로 휘두르라고 국민이 준 권력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이 잘못됐다고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을 집회에 나온 이유로 꼽는 이들도 많았다. 성남에서 온 고교생 윤종화(16)군은 “최씨의 딸은 말 같지도 않은 리포트로 학점을 땄다. 우리는 아무리 공부해도 그가 들어간 대학에 못 갈 텐데 공부하는 의미가 없다는 허탈감이 들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실체가 발견됐다. 불의가 법이 되면, 투쟁은 의무다”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40대 양아무개씨도 “집회라는 데 처음 나와 봤다.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태가 가장 많이 화가 난다. 부모들이 맞벌이하면서 열심히 벌어 아이들 가르쳐도 취직조차 안 되는데, 최씨는 학칙까지 개정해 딸을 이대라는 좋은 학교에 부정하게 입학시켰다”고 말했다.

■ “박근혜 뽑아 자식에 미안” ‘박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컸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정다운(34)씨는 “오죽했으면 애들까지 데리고 나왔겠느냐. 분노와 실망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한 감정들을 마음에 담아둘 수가 없어서 나왔다. 국가가 비선 실세 통치 아래 있었다. 정책과 인사, 문화콘텐츠까지 모든 게 조정받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범죄의 선봉에 섰다. 하야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자녀들과 함께 온 이지수(40)씨는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을 뽑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잘해줄 거라 믿고 뽑았는데, 이번 일로 모든 믿음이 깨졌다. 청와대 비서진만 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연관돼 있다. 하야해야 할 시점이다. 일산 엄마들 카페 회원이 20만명이 넘는데 모두 집회에 나오고 싶어했고, 단 한 명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아들 부부, 초등학생 손녀와 집회에 나온 이은미(60)씨는 “나는 박근혜 대통령 응원하는 사람이었는데 후회를 넘어 배신감을 느낀다. 아이들한테 정말 미안하다. 꼬박꼬박 세금 내고 있는데, 그 세금으로 비선 실세라는 분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썼다는 것 아니냐. 이렇게 국민을 기만할 수가 있냐”고 말했다. 이씨는 ‘박근혜 퇴진’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흔들었다.

■ 경찰 “시위대에 감사” 집회에 대응하는 경찰 태도는 한껏 달라졌다. 경찰은 집회 다음날인 30일 ‘시위대에 감사드린다’는 요지의 보도자료를 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9일 집회에 대한 경찰의 입장’이란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어제 행진 중 신고된 코스를 벗어나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하면서 일반 시민 등 참가 인원이 증가하였고, 이를 차단하는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와 경찰 간에 몸싸움도 있었다”면서도 “시민들께서 경찰의 안내에 따라주시고 이성적으로 협조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린다. 향후에도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준법 집회시위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보도자료에서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이 전날 시위대를 향해 “나라를 걱정하는 만큼 집회시위에서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달라”고 방송했던 사실도 언급했다. ‘불법 집회’ 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감사드린다’는 보도자료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던 지난해 11월 14일 민중 총궐기 직후엔 “도심 불법 폭력시위 주동자 등을 전원 사법처리하고, 엄중한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 청와대가 시위 대응 지침을 명확히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집회 관리 책임을 진 서울청장 입장에서는 강경대응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집회에 애매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날 시위현장에서 경찰 저지선은 시위대에 무력하게 뚫렸다. 현장에 있던 한 경찰관은 <한겨레>에 “우리도 사람인데 당연하지 않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다음달 5일과 12일에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경찰 대응이 주목된다.

김지훈 박수진 고한솔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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