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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금수저 입시’ 벗어나려면…‘3포’가 필요하다④ 대안은 학교에 있다

‘금수저 입시’ 벗어나려면…‘3포’가 필요하다

등록 :2016-03-31 22:16수정 :2016-04-01 09:05

[학생부의 배신ㅣ불평등 입시 보고서]
④ 대안은 학교에 있다
<한겨레>가 2013~2016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3월17일치 1면), 특목고·자율형사립고 출신의 비중이 2013학년도 42.0%에서 2016학년도 49.1%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계층 쏠림 현상의 배경에 이명박 정부 때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한 수시모집과 박근혜 정부의 ‘학생부종합전형’이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학생부 중심 입시’의 본래 도입 취지인 ‘공교육 정상화’를 달성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전문가, 교사, 입시 관계자 등의 의견을 모아 정리했다.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 내용 변천 과정

1. ‘사교육 주범’ 비교과
“비교과 축소하고 교과수업 위주로 평가해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주요한 두 요소는 교과활동과 소논문 쓰기(R&E),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등 비교과활동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비교과활동의 교육적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현재 학교 현장에서 비교과활동이 이뤄지는 방식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출신 학교, 사교육 등에 의해 좌우될 위험이 크고, 학생과 학부모의 입시 부담을 높이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입시에서 비중을 축소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은 “학종 때문에 겪는 학부모들의 고통이 너무 심각하다”며 “학종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진 지금이 개선을 위한 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시절부터 입시제도와 계층 격차의 문제를 연구해온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기초교육학부)는 “교과만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지식을 비교과로 반영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부모의 네트워크나 경제적 비용이 요구될 가능성이 있는 비교과활동을 입시에 반영하면 계층 대물림을 부추길 수 있다”며 “비교과활동은 학교 수업과 연계해 수행평가나 방과후학교 중심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도 최근 학종의 비교과 비중을 축소하겠다는 방향을 밝히기도 했다. 서울대 입학본부가 지난 2월 발간한 ‘학생부 정보의 재구조화’ 보고서는 학종을 위한 제언 중 하나로 ‘학교 내 수상 실적과 창의적 체험활동의 비중 축소’를 제시했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동아리·봉사·리더십·진로 활동 등을 기록하는 것으로, 흔히 ‘비교과 스펙’이라 일컫는 영역이다. 서울대 입학본부 관계자는 “학교 현장은 너무 바빠서 이것저것 할 여유가 없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뭘 더 하라고 하는 방식은 고등학교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교과활동을 축소하면서 학생부 기록의 방향도 교과수업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천 경기도교육청 정책기획관실 장학사는 “고등학교 수업을 팀 프로젝트로 운영하면서 토론하고 질문하는 능력, 협업하는 능력 등을 교사가 평가하고 학생부에 기록한다면 부모나 사교육이 관여할 여지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 부소장도 “현재 학생부 교과 항목은 점수와 세부능력·특기사항을 적는 것이 전부다. 교과 성적을 교사가 제대로 해설할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입학본부 관계자는 “비교과 스펙의 경우 특목고 학생들은 학원 가서 준비해 오는데 일반고 대부분은 최상위권 학생 한두 명에게 몰아주거나 제대로 준비를 못 해준다”며 “하지만 수업은 어떤 학교든 다 한다. 수업을 통해 1등부터 꼴등까지 골고루 정보가 기록되면 우리가 정말 꼴등을 뽑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1등부터 꼴등까지 고르게 학교의 교육 기회가 가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가 대학이 고등학교의 수업을 중요하게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고교 체제 현황
전국 고교 체제 현황

2. ‘고교 서열화’ 자사고
“고교때 교육격차 확대…비평준화도 걸림돌”

전문가들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시행에도 일반고가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기보다, 소수의 최상위권 학생에게 스펙을 몰아줘 입시 실적에 매달리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자율형 사립고나 비평준화 고교 같은 ‘고교 서열화 체제’ 탓이라고 진단했다.

성열관 경희대 교수(교육학)는 “외국어고는 학교에 다니면서 비용이 더 많이 들 수는 있지만 입학 단계에서부터 돈이 없다고 차별하지는 않는다”며 “반면 등록금이 일반고의 3배로 책정된 자사고는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은 학생의 접근 기회를 아예 차단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제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을 모아놓은 교육환경 자체가 미래 역량을 키우는 데 적합하지 않은 모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래 핵심 역량으로 ‘여러 도구를 상호적으로 활용하는 능력’, ‘자율적인 행동능력’과 함께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집단에서의 상호작용능력’을 들고 있다. 성 교수는 “자사고가 생기면서 부모의 경제적 지위와 학생이 다니는 고교의 종류가 통계적으로 일치하는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다”며 “사회 통합, 사회적 연대를 위한 시민교육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자사고 도입을 강행했던 당시 전국 자사고 희망 학교를 조사했고, 최근까지도 자사고 운영 평가를 위해 해마다 전국 자사고를 방문하고 있는 김경근 고려대 교수(교육학)는 “2009년 조사 당시 새로운 교육적 시도 등 자사고를 해야 할 이유가 있는 학교는 3~4곳에 불과했고, 대다수는 입시 명문고가 되겠다는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자사고 교사들조차 자사고가 아이들 교육 측면에서 별 효과가 없는 잘못 만들어진 제도 같다는 얘기를 하는 실정”이라며 “미래에 가장 희소한 가치는 인성과 공감능력이 될 텐데, 그런 측면에서 자사고가 특별한 강점이 있는 게 없고 어느 시점이 되면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몰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고보다 훨씬 더 뚜렷한 서열화 구조를 지닌 비평준화 체제가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점도 학종의 정착을 막는 걸림돌로 지적됐다. 전국 232개 시·군·구 가운데 비평준화 지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 135곳이나 된다. 시·도 가운데 비평준화를 채택하고 있는 시·군·구가 한 곳도 없는 곳은 서울·대전·광주뿐이다.

백병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등학교 체제가 서열화돼 있는 상황에서 일반고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스펙을 몰아주는 방식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더구나 내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대개 사회경제적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기 때문에 결국 수시 확대를 함에도 불구하고 교육 격차가 유지되거나 확대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백 연구위원은 “자사고나 비평준화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고의 스펙 몰아주기를 비판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불리함을 모른 척하는 부당한 요구”라고 말했다.

입시제도 변천사
입시제도 변천사

3. ‘SKY’ 쏠린 고소득층
“소외계층 입학 확대위해 계층 할당제 도입을”

현재 학생부종합전형을 중심으로 하는 수시모집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해소하고, 대학교육이 실제로 계층 격차 완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대학입시에서 소외계층에 입학 기회를 확대하는 ‘계층 할당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기초교육학)는 수시모집에 대한 두 가지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목고 아이들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수시모집 비율을 늘린다는 인식과 복잡한 전형으로 인해 정보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학생·학부모가 불리하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뛰어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환경 때문에 학생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사교육에 접근하지 못해 대입에서 실패하는 것은 국가나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며 “사교육 등으로 조련된 아이들을 받는 것보다 불리한 환경에 있지만 잠재력을 가진 아이를 발굴해내는 것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인식을 대학들이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시제도 개선으로는 고소득층의 쏠림현상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아예 일정 비율 이상을 교육 취약계층에 할당하는 ‘계층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기 위하여 소득·지역 등의 차이를 고려’해 모집정원의 11%까지 도서·벽지의 학생, 기초생활수급권자 및 차상위계층 등을 선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16학년도 기준 서울대(5.2%), 고려대(7.2%), 연세대(5.9%) 등 대다수 대학에서 11%를 채우지 않고 있다.

성열관 경희대 교수(교육학)는 “미국의 주립대 가운데는 부모가 고졸 이하이고, 학생이 자기 집안에서 최초로 대학에 진학한 경우 전형에서 좀더 유리하게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며 “현재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은 결국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을 뽑는 전형으로 변했지만, 미국에는 어느 고등학교든 그 학교에서 가장 성적이 높은 학생을 무조건 합격시키는 주립대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의 입시 결과를 계층별로 좀더 세분화해서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2013년 ‘대입 전형 간소화 방안’을 연구한 강태중 중앙대 교수(교육학)는 “미국 대학이 입시 결과에 대해 흑인 비율 등을 공개하는 것처럼, 대학별로 불리한 여건에 있는 학생의 비율이 몇% 정도 되는지, 그 비율은 어떻게 변해가는지 등을 공개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며 “현재까지는 지역별 균형 정도만 있는데, 경제적 균형 지표를 만들어 의무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