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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행복기행] (4) 스톡홀름 가족의 ‘피카’

[행복기행] (4) 스톡홀름 가족의 ‘피카’

ㆍ가족과 차 마시고 대화…저녁 있는 삶에 “피카, 빠질 수 없죠”
ㆍ“오후 5시면 퇴근해 6시엔 도서관…여가시간 많은 내 일이 좋아”

“우리의 삶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피카(fika)예요.”

토요일인 지난 1월9일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 남부 쇠데른말름 주택가에 있는 베이글 스트리스 카페는 ‘피카’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무로 된 탁자와 밝은 조명, 전면 유리로 된 인테리어와 카페라테·에스프레소 등의 메뉴는 서울의 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연인, 친구뿐 아니라 엄마, 아빠, 아이들로 이뤄진 가족 손님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맞벌이 부부 칼레(38)와 오사(37)도 7살 아들과 5살 딸, 갓 백일 된 막내아들을 데리고 카페에 왔다. 마틴(42), 신미성씨(38) 가족들과 피카를 즐기기 위해서다.

 

100일 된 아가도, 딸 친구 가족도 다함께 ‘피카’ 지난 1월9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남부 쇠데른말름의 한 카페에서 이웃 사이인 마틴(왼쪽)과 칼레(가운데)·오사(오른쪽) 부부가 주말을 맞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맞벌이 부부인 칼레와 오사는 100일 전 태어난 셋째 아이 요스타를 데리고 나왔다. 스톡홀름 | 박은하 기자


피카는 커피에 빵과 과자를 곁들여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일을 말한다. 스웨덴어로 커피(kaffi)를 뒤집어 말하던 직장인들의 속어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커피를 마시면서 숨 돌리며 쉬는 ‘문화’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친한 직장 동료나 친구 사이에 “차 한잔 하면서 쉴까”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에는 “피카?”라고만 하면 된다. 커피를 마시는 일 자체보다도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쉰다는 데 핵심이 있다. 회식도 대부분 피카로 진행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행복한 피카는 주말이나 퇴근 후에 가족과 함께 나누는 피카다.

마틴과 신미성씨 부부의 딸 노바(왼쪽)와 칼레·오사 부부의 딸 에디스(오른쪽). 다섯 살 동갑내기 단짝인 노바와 에디스는 1살 때 어린이집에서 만났다. 온 가족이 두 딸들 덕분에 서로 알게 돼 친구로 지내고 있다.


“요즘 몇 시간 자느냐고요? 갓 태어난 아기 키우는 엄마들은 정확히 가늠할 수가 없죠. 오늘은 주말이라 남편도 있고 해서 조금 많이 잤어요.” 오사가 커피를 한 모금 가볍게 마신 뒤 막둥이가 잠들어 있는 유모차를 앞뒤로 가볍게 밀어주며 말했다. 은세공 디자이너인 오사는 출산 전에는 동료 예술가 네 명과 작업장을 빌려 일을 했지만 지금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짬짬이 일한다. 곧 전시회가 있어 아이가 자는 틈에 홈페이지 작업을 한다.

오사는 인터뷰 내내 환한 웃음을 띠었고 표정은 밝았지만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앉고 조금 피곤해보였다. 7살 사내아이 둘과 5살 여자아이 둘, 오사네와 마틴네 아이들은 카페 주변 놀이터에서 눈을 헤집으며 뛰놀았다. 밖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아빠들 몫이었다. 칼레와 마틴이 교대로 나가 아이들을 지켜봤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인구 1000명당 8.19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미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한국보다 1000명당 출산율이 낮은 나라는 모나코(6.65명)와 일본(7.93명), 유럽의 작은 공국 안도라(8.13명)뿐이었다. 북유럽도 인구증가율이 낮은 축에 끼지만 한국보다는 높다. 스웨덴에서는 1000명당 11.99명이 태어났다. 물론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한국의 워킹맘이나 스웨덴 사람들에게나 똑같이 힘든 일이다.

오사는 나이 서른에 첫 아이를 낳았다. 스톡홀름의 3년제 전문학교와 4년제 예술학교를 마치고 이제 막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딜 때였다. 첫 아이를 서른 살에 갖는 건 스웨덴에서도 빠른 편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어느 직장이나 1년간 육아휴직을 필수로 쓰게 돼 있다. 육아휴직으로 불이익을 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아동수당 제도도 잘 갖춰져 있어 돈 때문에 굳이 직장에 나올 이유도 없다. 이 때문에 ‘경력단절’이란 말은 없지만, 1년 동안 커리어에서 뒤처진다는 건 이곳 여성들에게도 불안한 일이었다.

오사는 회사에 소속돼 있지 않고 혼자서 작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프리랜서여서 더욱 불안했다. 일하는 입장에서 그 불안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육아휴직 중인 많은 선배들이 “회사에서 잊혀지는 것 같다. 내가 복귀해서 잘할 수 있을까?”라며 불안해했다. 나 역시 회사 내에서 부서를 결정할 때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이 일은 못할 테니까 결혼 전에 해봐야 하나’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스웨덴 여성도 마찬가지라니 위로 아닌 위로가 됐다.

그런데도 오사는 “셋째를 낳는 것은 첫째를 낳는 것에 비해 결심하기 훨씬 쉬웠다”고 말했다. “칼레나 나나 아이를 많이 원했고,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이 커요. 1년 늦게 커리어에 뛰어들어도 괜찮더라고요.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셋째는 더 용감하게 낳을 수 있었죠.” 1980년대에 태어난 친구들은 이전 세대보다는 결혼을 많이 하는 추세고, 1970년대에 태어난 친구들 사이에서도 요즘 셋째 낳기가 은근히 유행이라고 오사는 덧붙였다. “칼레의 역할이 큽니다. 아빠가 적극적으로 육아를 함께하니까 가능했어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의 저녁 지난 1월13일 오후(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스톡홀름시립도서관에서 시민들이 책을 찾거나 읽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도서관에는 평일 오후에도 책을 읽으러 방문한 시민들이 많았다. 오후 6시가 가까워지자 직장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도서관을 찾아 책을 반납하거나 새로 대출하기 위해 줄을 이었다. 스톡홀름 | 박은하 기자


오사 가족과 마틴 가족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서로 친해진 덕에 모두 친구가 됐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은 보통 칼레가 한다. 오전 8시에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9시까지 회사로 출근한다. 칼레는 한국의 코이카(KOICA)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공기업 시다(SIDA)에서 감사 업무를 한다. 오후 4시에 퇴근해 다시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점심시간을 빼면 하루 8시간 근무에서 1시간30분이 부족하다. 모자라는 업무시간은 아이들이 잠든 뒤 재택근무로 채운다. 한국에서 ‘노동유연화’라는 말은 회사 측이 노동자들을 자르거나 직무 배치를 마음대로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스웨덴에서는 노동자가 원하는 시간에 일한다는 개념부터 떠올린다. 아이가 있건 없건 마찬가지다. 오후 11시면 잠이 든다. 물론 셋째가 깨면 어쩔 수 없이 함께 깬다. 부모들의 숙명이다.

칼레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지만 정보기술(IT)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1999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기업의 서버 관리업무 컨설팅을 시작했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에요. (아이를 낳기 전) 5시에 퇴근하면 시간이 남잖아요. 그 시간에 스포츠클럽에 가는 사람도 있고 책 읽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이걸 하는 거죠.” 아이를 낳고 보니 돈이 필요해 취미로 하던 일을 1인 기업으로 등록했다. 1인 기업은 모두 회사와 정부에 정식으로 등록하도록 돼 있다. 기업 운영의 투명성과 과세를 위해서다. 자격증이나 학벌을 따지지 않고 일을 시켜봐서 잘하면 계속 맡기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IT 전공자도 아니고 외부 투자도 받지 않은 칼레가 1인 기업을 운영하는 데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

칼레는 “1인 기업 운영은 기본적으로 취미생활이다. 조직에서 일을 하는 것도 보람 있지만 혼자서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성취감이 주는 재미가 크다”고 말했다. 소득에도 쏠쏠한 도움이 되지만 좋아하는 일, 자부심 같은 것들이 중요했다. 시다에서 하는 일도 조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라 보람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가족이다. 막내가 태어난 후에는 잠시 사람을 고용해 1인 기업의 관리를 맡겼다. 육아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오사 부부는 셋째를 낳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아이가 늘면서 고민도 늘었다. 오사는 “아이들이 크면 옷값이나 식비도 더 든다. 나중에는 영화 보거나 놀러가고 싶다고 할 테고. 그래서 좀 더 안정적인 일자리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교육비, 병원비는 걱정거리 목록에 없었다. 저축은 따로 하지 않지만 노후연금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보험도 든 것이 없다. 그러나 좀 더 여유가 생기면 저축을 할 계획을 갖고 있다. 가족여행을 가거나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옷을 사주기 위해서다. 교육비와 노후 대비 부담에 짓눌린 한국의 부부와 비교했을 때 젊은 부부의 어깨에 얹혀진 짐의 무게가 달랐다. 대학 등록금만 없어도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앞 세대가 뒤 세대를 위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지출하고, 이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같은 짐을 져주는 과정이 몇 세대에 걸쳐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1시간쯤 지나니 밖에서 놀던 칼레의 딸 에디스가 시린 손을 비비며 들어와 아빠의 무릎에 앉았다. 초콜릿볼을 하나 집어 마틴의 딸 노바(5)와 나눠 먹고 휴대폰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 다시 나갔다. 다른 테이블의 아이들도 끊임없이 카페 안팎을 들락거렸다.

오사는 유리문 밖으로 같은 작업장에 있던 동료가 지나가는 걸 보고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프리랜서이다 보니 일감이 불규칙하게 들어오고, 계약상 불리한 경우도 많습니다. 스웨덴에서도 이케아나 에릭손 같은 대기업에 다니면 사람들이 부러워해요. 하지만 저처럼 독립적인 예술가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오사는 “남을 부러워해본 적은 없고, 내 일이 재밌다”고 말했다. 자신이 매일 매만지며 섬세한 디자인으로 완성해나가는 보석만큼이나 단단한 자부심이 있었다.

자부심을 행복으로 이어주는 것은 일과 가정이 양립하도록 하는 환경이다. 칼레와 오사는 평일 오후 6시 이후와 주말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칼레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직장에서 회식을 하지만 오후 8시면 끝난다. 그렇다고 아이를 돌보는 데에 여가시간을 몽땅 쏟아부을 생각은 없다. 이들은 초밥을 사들고 마틴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어른들끼리 보드게임을 할 예정이다. 이날 보드게임은 밤 11시, 아이들이 참다 못해 보챌 때 끝났다는 이야기를 며칠 뒤 전해들었다.

5시 전에 집에 가는 아이들 지난 1월13일 오후 5시 무렵(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이 남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아이들은 대부분 5시 전에 부모와 함께 집에 가고, 어린이집은 5시30분에 문을 닫는다.


칼레와 오사에게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3가지씩 꼽아보라고 했다. 칼레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 ‘1인 기업이 돌아갈 때’를 꼽았다. 오사는 ‘디자인 아이디어가 잘 떠오를 때’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라고 답했다. 세 번째는 부부가 대답이 같았다. “요즘 이사한 집 인테리어를 온 가족이 함께하고 있어요. 그게 잘될 때죠.”

주말이 지나면 다시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 일상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하루 8시간씩 어린이집에서 보내게 된다. 수요일인 13일 오후 마틴의 아내 신미성씨가 일하는 스톡홀름 베가4어린이집을 방문했다. 스톡홀름 아이들은 겨울에 스키복을 입고 다닌다. 복도에 걸린 알록달록한 아이들 스키복이 마치 누에고치 같았다. 오후 4시가 되자 학부모들이 줄줄이 찾아왔다. 절반은 아빠들이었다. 교사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품에 뛰어드는 아이들을 높이 한 번 안아주더니 능숙하게 옷을 갈아입혔다. 5시 무렵,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아이의 엄마가 도착했다. 장난감을 갖고 놀던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엄마 품으로 뛰어든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아이의 표정이 너무 밝아서 짠했다.

아이들은 보통 오후 9시에 잔다. 부모의 일 때문에 스웨덴에서도 아이들과 부모가 평일에 함께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하루 4~5시간뿐이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설명했다. “아이들은 처음 어린이집에 오면 당연히 보채요.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하죠. 하지만 엄마가 밖에서 일하는 것처럼 나도 여기서 일하는 거야라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노는 것이 일이니까요. 그러면서 부모와의 분리를 받아들여요.” 스웨덴 유아교육계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시간의 절대량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의 질(質)’을 강조한다. 함께하는 시간이 짧더라도 아이에게 행복하고 인상적인 경험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베가4어린이집 부모들 중에는 곧바로 집에 가는 대신에 아이와 놀이터에서 눈싸움을 하는 아빠도 있었다. 퇴근 후와 주말의 피카도, 아빠의 눈싸움도 아이와의 행복을 키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려면 ‘저녁이 있는 삶’은 필수적이다. 오후 5시30분에는 어린이집 교사들도 모두 퇴근했다. 교사들 역시 푹 쉬고 다음날 또 아이들을 돌볼 것이다.

베가4어린이집 근처에는 스톡홀름시립도서관이 있다. 높은 천장에 빽빽하게 책이 꽂힌 2층 원형 서가의 모습이 웅장하고 우아했다. 도서관이 문을 닫기 1시간 전부터 책을 빌리거나 반납하러 온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1월의 스톡홀름은 오후 3시부터 하늘이 청회색이 되고 저녁노을이 지다가 4시면 캄캄해진다. 누군가는 집에서 책을 읽으며 긴 밤을 보낼 것이다.




스웨덴은 ‘독서왕국’이다. 서울의 홍대 주변처럼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곳인 쇠데른말름, 관공서와 오래된 명소가 즐비한 외스턴말름, 강남처럼 대형 쇼핑몰과 사무실이 입점한 노르말름, 주택가가 많은 바사스탄 등 어디에든 눈에 제일 잘 띄는 곳에는 큰 서점이 있다. 스릴러 소설과 여행 관련 서적이 인기가 좋다. 스웨덴 국민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타킹>은 출간된 지 70년이 넘었으나 여전히 뜨겁게 사랑받는다. 스톡홀름중앙역 복합문화단지 쿨투어후셋에 입점한 서점에는 인류의 미래를 논한 철학서 <사피엔스>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었다. 인구가 1000만명이 채 못되는 나라에서 기자 출신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70만부 넘게 팔렸다.

스톡홀름에 있는 한국학교에는 매달 15~20명의 수강생이 온다. K팝 스타들의 춤을 따라 하고 싶은 10대들이나 한국에 관한 일을 하는 이들뿐 아니라,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찾아온 30~50대 직장인들도 제법 된다고 한다. 서점을 둘러보고 한국학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배우려다 포기한 여러 가지 것들을 떠올려봤다. 언제나 시간과 달리기 경주를 하듯 살아가는 서울의 직장인, 파김치가 되어 밤늦게 퇴근해 쓰러지는 사람들,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저녁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취미는 사치다. 시간이 있다면 자기계발에 투자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배우고 나면 재무제표 읽는 법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헬스, 요가, 수영을 비롯한 운동에도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따라붙는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만화 <미생>의 대사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이조차 사치스러운 고민일 터다.

칼레는 “여기서도 직장에서 경쟁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퇴근하면 다 같이 쉰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간과 경쟁하는 대신 시간의 품 안에서 사는 것이다. 행복을 품어주는 시간, 시간과 경쟁하며 살지 않도록 하는 사회를 스톡홀름에서 봤다.



특별취재팀

구정은 김세훈 장은교 김보미 박은하 정희완 김정근 기자


<스톡홀름 | 글·사진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