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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의 이야기

할머니의 부엌, 그곳엔 자식들보다 귀한 것들이 그득했다

할머니의 부엌, 그곳엔 자식들보다 귀한 것들이 그득했다

[포토에세이] 물골 할머니네... 시골 고향집 가시면 부엌 한번 들여다보세요

[오마이뉴스 글:김민수, 편집:박혜경]

 

▲ 물골 강원도 갑천 하대리 물골 할머니의 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서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고 계신다. 굴뚝으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고 마실을 가셨는지 할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 김민수

설명절이 다가오니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다. 고향길 가는 차량들이 몰리기 전에 어머니 산소를 다녀오는 것이 좋을 듯해서 금요일 오전(5일) 다녀오는 길에 물골로 향했다.

긴 겨울, 홀로 그곳에 계셨을 할머니에게 드릴 사과도 한 박스 샀다. 용돈을 드릴까 생각하다가 사과 한쪽이라도 할머니가 드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용돈을 드리면 보나마나 설날 손주들 세뱃돈으로 다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 물정 모르는 소리겠지만 산골생활에 돈보다 더 필요한 것은 먹을거리일 터이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돈이 있어야 든든하지"라며 물골에 간다면 다른 것 사가지 말고 조금이라도 용돈을 드리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셨다. 어른들 말씀이 틀린 것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그곳에 가는 주목적이 어머니 산소에 가는 것이므로 나 편한대로 생각했다.

▲ 할머니의 부엌 문을 열고 부엌에 들어서자 아궁이의 장작은 거의 탔고, 부뚜막 가마솥에는 뜨거운 물이 펄펄 끓고 있다. 옛날에는 겨울이면 가마솥에 물을 데워 부엌에서 목욕을 하곤 했다.
ⓒ 김민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그래서 계시겠거니 했는데 방으로 통하는 부엌문이 닫혀있다. 부엌문을 여니 가마솥에는 물이 끓고 있고,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다. 그리고 장독대로 통하는 부엌 뒷문은 열려있다. 아궁이의 장작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니 출타하신 지 두어 시간은 되는 듯하다.

할머니를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휴대폰도 없으시니 그냥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방문도 열려있긴 하지만 주인도 없는 방에 들어가는 것이 실례인듯하여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쬐며 이전에는 대충 보았던 할머니의 부엌을 살펴본다.

▲ 가마솥 무쇠로 만든 가마솥은 요즘 오일장에서도 구경하기가 쉽지않고 구하기도 쉽지 않다. 아궁이가 있는 집 부뚜막에는 무쇠 가마솥이 제격이다.
ⓒ 김민수

할머니가 계실 때에는 할머니라는 주인공에 가려 보이지 않던 부엌, 할머니의 물건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할머니와 동고동락을 하는 것들이고, 자식들보다도 더 가까운 것들이며, 때론 자식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이것들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살림살이 아니런가?

조금 과장해서 '할머니의 부엌엔 자식들보다 귀한 것이 그득했다'라고 말하고 싶다.

▲ 목장갑 부뚜막 위에 목장갑이 놓여있다. 가마솥 뚜껑을 열고 닫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 김민수

가마솥과 목장갑, 그리고 부엌 뒷문으로 들어온 햇살에 가마솥의 한 면이 빛나고 있다,

빛이로구나, 햇살이로구나.
아직 동토지만, 입춘지절을 보낸 햇살은 역시 따스하구나.

햇살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아마도 곧 봄을 불러올 기세였으며, 햇살은 부엌에 있는 할머니의 물건들을 바랄볼 수 있을만큼의 밝음을 선물해주었다.

▲ 세숫대야 함주박과 세숫대야, 요즘은 플라스틱에 밀려 스테인레스로 만들어진 세숫대야를 보는 일도 쉽지 않다. 부엌으로 한 줌 햇살이 들어오고 잘 딱여진 세숫대야에 햇살이 반사되어 눈부시다.
ⓒ 김민수

세면대에 눌려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스테인레스 세숫대야다. 무겁기도 하지만 층간소음문제로 쇳소리나는 세숫대야를 사용하는 집이 도심에서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사는 집에서도 스테인레스 세숫대야가 종적을 감춘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옛날 것이 전부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저런 세숫대야는 한 번 사면 평생을 사용할 수 있으니 아마도 십수년간은 할머니와 함게 했을 터이고, 어느 겨울날에는 가마솥에서 데워진 뜨끈한 물을 받아 할아버지의 발을 씻어 드리기도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물골은 더욱더 쓸쓸하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곳이 좋다고 하신다. 그리고 지금껏 잘 살아오고 계신다. 무엇이 할머니를 그곳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

▲ 화로 부엌 한 켠에는 빗다루와 화로가 놓여있다. 빗자루는 부엌을 정갈하게 청소할 때 사용했을 것이고, 화로는 추운 겨울 방 공기를 따스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할머니의 물건들은 자식들보다 훨씬 더 귀한지도 모르겠다.
ⓒ 김민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마도 부엌에 있는 물건들도 한 몫을 하겠다 싶었다. 닳아버린 수수빗자루, 아직은 생나무인 듯한 불쏘시개, 추운 겨울 방안을 훈훈하게 해줄 화로 등 부엌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할머니와 하나되어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 자개찬장 부엌 한 켠에 놓여진 자개찬장, 할머니가 시집 올 때에 가져온 것인지 큰며느리가 시집올 때 가져온 것인지 모르겠다. 찬장에는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가득하고, 찬장 아래에 장화와 낫과 개밥통(노란통) 등 자주 사용하는 것들이 놓여있다.
ⓒ 김민수

▲ 할머니의 물건 아무렇게나 놓여진 것들같지만 다 필요한 것들이다. 부엌에 있는 것치고 쓸모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 듯 했다.
ⓒ 김민수

문득 부엌에 있는 물건 중에서 이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자개찬장이 보였다. 지금이야 싱크대가 대세지만, 옛날 부엌살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찬장이었다. 그릇도 넣어두고 부엌살림살이도 넣어두는 곳이었다.

자개장 곁에는 우산을 위시하여 개밥그릇, 개밥을 담아놓은 노란 통, 신발, 낫, 장화 등등 할머니의 일상과 관련된 물건들이 즐비하다.

자개장의 역사가 문득 궁금해진다. 할머니가 시집올 적에 가져온 것일까, 큰며느리가 시집올 적에 혼수품으로 해온 것일까?

▲ 장작 부엌 한 켠에는 잘 쪼개어진 장작이 그득하다. 장작이 가득 쌓여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따스하게 느껴진다. 이곳 물골은 아직 산골이므로 화목에 의존하여 난방을 한다.
ⓒ 김민수

부엌 한 켠에는 장작이 그득하다. 어릴적 월동준비를 하면서 연탄광에 연탄이 가득하면 든든했던 것처럼, 산골에서는 이렇게 부엌과 담장 한 켠에 장작이 가지런하게 쌓여 있으면 든든했다.

쌓여진 장작은 예술이다. 그리고 자식들의 정성이 담겨있다. 지난 가을, 아들과 손주가 장작을 패서 열심히 쌓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을 따스하게 할 때마다 할머니는 혼자가 아니다. 자식들과 떨어져 살지만, 혼자 외로이 사는 것은 아니다.

설날이 되면 자식들과 손주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잠시 잠깐의 만남이지만, 그 짧은 시간들은 음식을 장만하는 할머니의 부엌으로부터 가장 많은 정이 오가지 않을까 싶다.

▲ 굴뚝 부엌의 뒷뜰로 난 굴뚝, 부엌 뒤뜰에는 장독대에 장독이 가득하고 장독마다 장이며 장아찌 등이 그득하다.
ⓒ 김민수

끝내 할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물골을 나섰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드리니 설날을 앞두고 목욕도 할 겸 마실을 다녀오셨단다.

사람이 그리우신 게구나. 내일(6일), 아들과 며느리들이 물골에 들어와 설준비를 한다고 하니 그래도 사나흘은 물골이 시끌벅적하겠다. 그리고 좋으시겠지.

할머니의 부엌, 할머니의 물건, 뭐 우리네 눈으로 보면 별 것 없지만, 별 것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그들이 있어 할머니가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으니, 그들이 곧 할머니의 벗이요, 자식들 보다 차라리 더 나은 존재들이 아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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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2016/02/07 06:1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