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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식상한' 보충수업,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식상한' 보충수업,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고흥 녹동고등학교의 보충학습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16.01.29 14:19l최종 업데이트 16.01.29 14:19l 글: 한아름(gksgod20)

지난 1월 4일부터 15일까지 2주간 녹동고등학교에서는 조금은 '특별한' 보충수업이 이루어졌다. 여름방학과는 달라진 운영방식이 돋보이는데, 선택형 수강신청제도나 스터디 그룹 활용 등 눈에 띄는 변화에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이었더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방학 중 보충수업. 대부분의 학교처럼 녹동고등학교 또한 그렇게 운영해왔다. 형식적인 참가신청서, 원하지 않는 수업 참가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지난 7월. 여름방학 보충학습에 참여하다 큰 문제가 있음을 느낀 몇몇 학생들이 발 벗고 나섰다. 직접 설문지를 만들어 보충학습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배부하고, 각자 한 명 한 명의 의견을 반영해 보고서를 작성, 교사에게 전달한 것(지난 기사 : 행복한 학교, 행복한 사회의 첫걸음은 '우리'로부터)

▲ 학생들이 설문조사 후 작성하여 전달한 보고서. 보충학습의 문제점을 깨닫고, 이를 고치기 위해 학생들이 발벗고 나섰습니다. 직접 설문조사를 한 후 학생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 한아름

드디어 학생과 교사가 뭉쳤다. 하지만...

학교 전체에 퍼진 공감과 지지에 학생들과 교사가 뭉쳤다.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에서부터 차근차근 최적의 방안을 모색했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는 법.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한민국 대학 입시 체제를 무시할 수가 없다'고. 이런 입장들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게 현실이니까.  

공부할 때, 주변 친구가 푸는 문제집을 나도 풀지 않으면, 저 친구가 공부할 때 나도 똑같이 공부하지 않으면 뒤처질까 불안해한다. 학교와 학교 사이도 그렇다. 인근 학교는 야간자율학습을 모든 학생이 참여하도록 한다던데, 우리 학교가 자율화를 하면 저 학교에 밀리는 게 아닐까.

저 학교는 방학 때도 모든 학생에게 밤까지 자율학습을 시킨다는데, 우리 학교는 방학 동안 5시까지만 하고 보내도 괜찮을까, 하며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게 주저하던 참에, 학생들은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학교는 특별한 학교다. 다른 인문계 학교와 우리 학교를 비교하며 맞추려고 하지 말고, 제도를 좀 더 유연하게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학교 측에서도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주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디 한 번 바꿔보자

새로운 보충수업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에게 자문하고, 다른 학교의 사례를 참고하며 열심히 고민했다. 학생과 교사가 자주 만나서 보충수업의 방향을 정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렇게 12월이 되었고, 학생들이 가장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다. 형식적인 참가 신청서가 아닌, 참가와 불참의 의견을 묻는 신청서가 배부되었던 것이다. 때마침 학교 예산으로 보충수업비 100%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것을 시작으로, 보충수업에는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 수강 신청 현황 중 일부. 학생들이 '직접' 듣고 싶은 강좌를 선택해 시간표를 꾸려나갔습니다. 세개의 칸 중 비어있는 시간에는 자율학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한아름

▲ 보충학습의 변화를 한 눈에. 여름방학 보충학습과 겨울방학 보충학습의 운영 상황을 비교한 표입니다.
ⓒ 한아름

2주간의 보충학습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학교 안에서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니 공부의 능률이 올랐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이것은 방학 중 2주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관한 아주 작은 변화일 뿐이었다. 그저 행복한 학생, 행복한 교사, 행복한 학교를 위해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야간자율학습 문제, 0교시 수업, 토요일 자율학습과 맞물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아주 많다. 이런 것들은 모두 대한민국 입시현장의 현실로 인해 만들어진 문제들이다. 시골의 작은 고등학교가 차근차근 변화해가는 과정에 생기는 잔물결이 큰 파도가 되어 대한민국 교육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날이 올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