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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대전과학고, KAIST 교수와 과제연구…현직 연구원이 일대일 멘토

대전과학고, KAIST 교수와 과제연구…현직 연구원이 일대일 멘토

 

[대전과학고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면 과학 실습실에 모여 R&E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거나, 수업 내용 중 궁금한 내용을 실험을 통해 확인한다.]


2016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에서 과학고 졸업생의 합격률은 4.37%로 전년도(7.2%)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반면 영재학교 졸업생의 합격률은 1.6%포인트 상승한 8.41%를 기록했다. 과학분야 영재들이 과학고 대신 영재학교를 선택하는 추세다.

대전과학고는 2014년 과학고에서 영재학교로 전환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포함해 대덕연구단지 등 과학 연구 인력이 몰려있는 지역적 특성을 십분 활용해 과학 인재를 양성한다는 게 목표다. KAIST 교수들이 매달 찾아와 최신 연구 주제와 트렌드를 알려주고, 지역의 유명 과학자와 대전과학고 재학생을 일대일 멘토링으로 맺어주는 등 교육과정도 지역의 이점을 적극 반영해 개선했다. 영재학교 2년차를 맞은 대전과학고의 변화를 교육과정을 통해 살펴봤다.

기본 원리부터 철저히 가르치는 강의

대전과학과 학생들은 가장 힘든 과목으로 ‘수학’을 꼽았다. 서동한(2학년)군은 “워낙 중요한 과목이기도 하고 수업 시수도 가장 많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재학교 학생들의 수학 수업 분위기는 어떨까. 어지간한 대학 강의 수준을 웃도는 고난도 문제 풀이가 이어질 것이라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서군은 “어려운 문제도 다루지만 평소 당연하게 써왔던 공식을 증명하거나, 하나의 정의가 도출되는 원리와 조건을 꼼꼼하게 따져보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함수의 극한이라는 개념은 어딘가에 한없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만약 a는 2에, b는 3에 가까워진다고 가정하면 a+b는 5에 가까워진다고 가정할 수 있다. 대전과학고의 수업 시간에는 이런 당연한 가정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을 하나하나 따져본다. 박미소(2학년)양은 “미분이 가능한가, 연속인가, 불연속인가 등의 다양한 조건을 가정하고, 대학 수학에서나 쓰는 엡실론-델타 등을 활용해 하나하나 증명해나간다”고 설명했다.

박양은 “처음에는 이런 방식의 수학 수업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어려운 문제를 남보다 빨리 풀어서 답을 찾는 방식으로 공부했는데, 답만 찾던 사고 과정을 완전히 뒤집어 수학이 성립되는 기본 원리와 개념부터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보는 작업이 당황스러웠다”는 것이다.

원리 중심의 수업 방식 때문에 대전과학고 학생들은 “선행학습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학교 수업에 적응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박양은 “학원에서 선행하기보다 수학자들의 사고방식이나 아이디어 발상을 엿볼 수 있는 전기나 연구 논문을 읽는 게 훨씬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규수업에서는 기본 원리와 개념을 다지고 규명하는 데 집중한다면, 방과후수업에서는 다양한 심화 문제를 다룬다. 대전과학고의 수학 방과후수업은 ‘챌린지 과정’과 ‘인텐시브 과정’으로 나뉘는데, 챌린지 과정에서는 교과 내 심화를, 인텐시브 과정은 교과 수준보다 확장된 내용까지 짚어준다. 서군은 “기본적으로 수학을 좋아하고 재능 있는 학생들이 많아, 정규수업만으로는 갈증을 느낀다”며 “방과후수업에서 다양한 문제를 풀며 재미를 찾는다”고 얘기했다.

기초부터 한 단계씩 차근차근 공부하면서도 진도는 일반 학교의 2배 이상 빠르다. 1학년 때 고교 3년 과정에 해당하는 내용을 전부 배우고, 2학년 때는 ‘미적분학과 선형대수학’ 등 AP(대학과목선이수제) 과목을 듣는다. 박양은 “학습량도 많은 데다 다루는 내용의 깊이도 만만치 않다”며 “틈만 나면 친구들끼리 기숙사 세미나실에 모여 못다 한 공부를 서로 알려주고 요점 정리도 같이 한다”고 말했다.
[기숙사에서 취침시간(자정)이 넘어서까지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세미나실에서 자습을 이어간다.]

과학단지 연구원과 ‘학문적 대부’ 맺어

대전과학고는 1학년과 2학년 전교생이 R&E(Research and Education·과제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문경호 교무운영 부장은 “R&E는 연구 주제가 비슷한 학생 2~3명이 팀을 이뤄, KAIST 교수에게 직접 과제연구 지도를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군은 뇌의 신경전달 물질인 ‘아스트로사이트’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지금까지 뇌 연구 동향을 보면 뉴런에 집중돼 있는데, 아스트로사이트라는 물질이 뉴런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며 신경전달체계에 무슨 영향을 주는지 알아봤다”고 말했다.

이런 R&E 활동은 대전과학고뿐 아니라 모든 영재학교와 과학고, 몇몇 자사고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그중에 대전과학고의 R&E가 특히 주목받는 건 KAIST와 도로 하나를 두고 나란히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서군은 “수시로 KAIST를 방문해 교수님에게 연구 과정에서 떠오르는 궁금증을 묻고, 대학 실험실 기자재를 활용한 완성도 높은 실험에 자주 참여할 수 있어 제대로 된 연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양도 “R&E를 하며 연구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R&E를 하며 유전자를 핵 안으로 전달하는 운반체를 디자인하는 연구를 했는데, 50회 정도 실패를 거듭했다”며 “그 과정에서 교수님이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연구자의 정신력과 자세에 대해 깨닫는 바가 많았다”고 했다.

대전과학고 학생을 돕는 지역 인사는 KAIST 교수뿐 아니다. 과학연구단지의 여러 과학자가 학생들과 ‘학문적 대부’(代父)라는 이름의 일대일 멘토로 맺어졌다. 서군은 “대부는 연구뿐 아니라 인생의 멘토”라며 “선배 과학자인 대부에게 연구 과정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조언을 받기도 하고, 사춘기 시절 겪는 여러 고민에 대해 인생 상담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양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데, 가까운 곳에 언제든 찾아뵐 수 있는 대부가 있다는 게 심리적으로 큰 위안이 되고 든든하다”고도 했다. 1, 2학년 때는 R&E로 과제연구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면, 3학년이 되면 자신의 연구논문을 완성해야 한다. 서군은 “R&E 경험은 물론, 대부와의 교류를 통해 연구 주제를 잡고 논문의 완성도를 높여나간다”고 말했다.

김종헌 교육과정 부장은 “대전과고를 영재학교로 전환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과제연구”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한국과학영재학교나 경기과학고 등 이미 연구 분야에 특화된 영재학교의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며, KAIST와 과학연구단지가 위치한 대전의 이점을 살려 연구의 전문성과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게 가다듬었다”고 밝혔다.

영어·봉사…글로벌 과학 리더 양성

수학과 과학 수업이 기존 영재학교와 비슷하면서도 특화된 형태라면, 대전과학고만의 특별한 수업도 있다. 스피치와 영어 프레젠테이션 등이다. 스피치 수업은 발표와 의사소통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외부의 스피치 전문가 12명을 초빙해 한 학기에 총 7회 진행한다. 1회 2시간 수업으로 한 학기에 14시간 스피치 수업을 받는 것이다. 스피치 수업을 마치면 발표회도 한다. 박경철 교장은 “과학기술분야 연구는 여러 전문가의 협업이 필수고, 또 전문가가 아닌 대중에게도 자신의 연구 주제와 성과를 효과적으로 알릴 줄 알아야 한다”며 “전문 연구자들 간에 필요한 효과적이고 정확한 의사소통 능력과 대중에게 자신의 연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스피치 수업을 개설했다”고 말했다.

영어 프레젠테이션 수업의 목적도 비슷하다. 박 교장은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어로 자신의 연구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전달하는 것은 기본 소양”이라고 했다. 대전과학고는 수학·과학 못지않게 영어 수업도 강조해 졸업할 때까지 18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박 교장은 “7개 영재학교 중에 한국과학영재학교와 대전과학고가 영어 이수학점이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영어전용교실, 원어민 교사 등 외고나 국제고 못지않게 외국어 학습 시설도 갖췄다.

대전과학고의 특징으로 봉사도 빼놓을 수 없다. 김 부장교사는 “1학년은 3월 입학한 주 수요일에 꽃동네 봉사 활동을 다녀온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몰려와 서먹서먹한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계기로 학교 적응도 빨라지고 교우관계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서군은 “꽃동네에 봉사하면서, 처음 만난 친구의 좋은 모습을 먼저 보게 돼 정이 빨리 들었다”고 말했다.

인근 중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학습 지도를 해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교육 봉사도 유명하다. 대전과학고 1, 2학년 학생이 주말을 활용해 수업을 개설하고 커리큘럼을 짜면, 인근 중학교에서 그 수업이 필요한 학생 1~2명씩 추천해 보내주는 것이다. 박양은 “우리도 R&E나 학문적 대부제를 통해 선배의 보살핌을 받듯,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통해 중학교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중학교 후배와 함께 대전과학고의 실험 기자재를 이용해 여러 실험을 해보기도 하고, 입시에 대한 조언도 해주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독서와 철학 등 인문학 교육도 한다. 방과 후 자율학습 시간을 활용해 국어 교사들이 ‘부엉이 독서 교실’이라는 책 읽기 수업을 매 학기 개설한다. 교사가 지정한 책을 같이 읽고 토론하며 인문·사회과학 영역에 대한 상식과 사고력을 키우는 수업이다. 박양은 “정원 40명이 순식간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박 교장은 “과학자로 성장할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은 필수적인 덕목”이고 강조했다. 그는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가 초래할 결과에 대한 고민, 연구자 윤리 등 매 순간 철학적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며 “이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과학 리더를 기르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대표 비교과 활동-창의공학
KAIST 교수진 매주 방문해 연구 동향 특강

대전과학고는 KAIST와 과학연구단지 인근에 위치해 수준 높은 과학자와 연구 시설을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게 큰 이점이다. 과학분야 인재로 성장할 학생들에게 연구자의 삶과 연구의 방법을 알려주는 기회가 많아 구체적인 진로 탐색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대전과학고는 학생들은 기숙사 내의 휘트니스센터와 골프장 등에서 수시로 건강을 관리한다.]

창의공학은 대전과학고가 KAIST와 연계해 마련한 12회차 명사 특강 프로그램이다. KAIST의 12개 전공 학과의 담당 교수가 매주 1명씩 대전과학고를 찾아와 자신의 전공 분야 연구 최신 트렌드와 연구 동향에 대해 알려주고 학생들의 질문에도 답한다.

지난해에는 KAIST 신소재공학과 김일두 교수가 ‘사물인터넷 기반 유해환경 검출과 헬스케어용 초정밀 나노센서’라는 주제로, 백세범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착시현상과 뇌과학’에 대해 강연을 했다.

서동한(2학년)군은 “1학년 때 창의공학 프로그램을 통해 과학 분야의 다양한 전공 학문과 연구 분야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 알게 돼 전공을 찾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중 하나만 택해 파고들 것이 아니라 2~3개의 전공을 융합해 통섭적인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도 특강을 통해 깨닫게 됐다”고 했다. 박경철 교장은 “응용과학 분야의 최신 연구 트렌드를 듣다 보면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우는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수학 지식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지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 연구에 대한 비교과 활동 외에 학생들의 예술·체육 분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1인 2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전과학고의 특성상 토요일에 골프·요가·배드민턴·탁구·축구 등 체육활동과 통기타·수묵화·공예 등 예술활동 관련 수업을 한다. 박미소(2학년)양은 “기숙사에 피트니스 센터와 골프장이 갖춰져 있다. 체육 시설이 탁월해 1인 2기 시간이 아니어도 항상 체력관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숙사에서 취침시간(자정)이 넘어서까지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세미나실에서 자습을 이어간다.]


대전과학고 진학하려면
총 3단계 전형 ? 1단계 서류 평가서 50% 걸러


영재학교는 4월에 서류 접수를 시작으로 6월이면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 외고나 자사고보다 이른 시기에 전형을 마친다.

대전과학고는 총 3단계의 전형을 거친다. 1단계는 학생기록물 평가다. 자기소개서, 추천서, 학교생활기록부를 검토한다. 학교생활기록부는 수학과 과학 내신 점수를 주로 살핀다. 김낙진 입학담당관은 “전 과목에 A를 받은 학생만 선발하는 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 대전과학고 합격생 가운데, 수학·과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에서 B나 C를 받은 학생도 적지 않다. 김 입학담당관은 “수학·과학 과목은 중학교 교육과정에서의 성취도를, 다른 과목은 학교생활에 대한 충실도와 성실도를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대전과학고 전형의 특징은 1단계 전형에서 50%가량을 거른다는 점이다. 김 입학담당관은 “선발권을 가진 학교들 가운데 상당수가 1단계 전형을 유명무실하게 운영하며 90% 이상 합격시키는 데 반해, 대전과학고는 이때 면밀한 평가를 거쳐 50%의 인원으로 압축한다”고 말했다.

2단계는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검사다. 문제는 대전과학고 교사들이 직접 출제한다. 중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기본 개념과 창의력을 묻는다. 김종헌 교사(물리)는 “한 문제를 출제하는 데 일주일 이상 고심한다”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다. 출제가 끝나면 출제위원들이 모여 문제의 오류를 검토하고, 국어과 교사가 문장 표현 등에 오해의 소지나 해석의 오류가 있는지 꼼꼼히 따진다. 김 교사는 “교사가 일상생활을 하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교과 내용을 접목해 출제하기 때문에 사교육으로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미리 풀어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3단계는 1박2일간 치러지는 인성면접 및 과학영재캠프다. 박 교장은 “수학의 경우는 면접관이 묻는 문제에 대해 학생이 구술로 풀이과정을 설명하기도 하고, 과학은 면접관이 준 문제와 관련된 실험을 즉석에서 설계해 주어진 실험 도구로 실험을 시연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장은 “모든 문제는 중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출제되기 때문에 선행학습은 별로 필요없다”며 “기본기가 탄탄하면서 창의적 문제해결력이 있는 학생이 유리한 시험”이라 강조했다. 선발 인원은 학년별 정원 90명에 사회적배려자 9명까지 추가로 뽑힐 수 있어 최대 99명이다.

대전=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박형수.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