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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뜻을 품고 다시 공부하니 ‘이게 진짜 공부구나’ 생각이 듭니다”

“뜻을 품고 다시 공부하니 ‘이게 진짜 공부구나’ 생각이 듭니다”

등록 :2015-12-28 20:14수정 :2015-12-29 18:45

 

 
이승수씨는 지난 4월 네팔 지진 참사 구조 활동에 참여했다. 방송대에 다니면서 드론을 이용해 새로운 시각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도 품게 됐다. 이승수씨 제공
방송대 ‘샐러던트’ 재학생을 만나다
샐러던트란 ‘직장생활을 하며 공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로 ‘샐러리맨’과 ‘스튜던트’를 합친 말이다. 최근 자신의 직무 전문성 강화 또는 직업 전환, 자기계발 등을 이유로 직장생활을 하며 대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립 원격교육대학인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에는 2015년 기준 총 재학생 13만3385명 가운데 28.68%인 3만8258명이 직장생활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직장·공부 병행하는 샐러던트
방송대 재학생 중 약 28%
4년제 졸업 후 입학했거나
직장 다니다 꿈 찾으려 진학

‘혼자 공부하는 학교’는 옛말
전국 1700여개 지역 스터디 모임
‘제대로 공부하자’ 의지 끌어내

컴퓨터과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김태산(29)씨도 샐러던트다. 그는 현재 앱 개발 전문회사인 ㈜와콘에 다니고 있다. “대학에선 실내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졸업한 뒤에도 실내디자인 일을 했는데, 자꾸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평소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로 옮겼지만, 일을 하면서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론을 배우기 위해 2014년 방송대 컴퓨터과학과 3학년에 편입학한 그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디자인 공부를 할 때는 열등생이었지만, 지금은 우등생이 된 것 같습니다. 다시 공부하며 ‘이게 진짜 공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니 성과가 있었다. 지난 2년간 등록금은 모두 장학금으로 해결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왕 시작한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대학에서는 현재 필요한 공부를 했으니, 미래를 위해서 대학원에 가려 합니다.” 김씨는 “지난 2년이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공부를 했고, 스스로 많이 성장했던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한성진씨는 “수업시간에 들었던 교수님들 말씀이 좋았다. 계속 열심히 공부해서 그분들처럼 방송대에서 강의를 하고 싶다”고 했다.한성진씨 제공
한성진씨는 “수업시간에 들었던 교수님들 말씀이 좋았다. 계속 열심히 공부해서 그분들처럼 방송대에서 강의를 하고 싶다”고 했다.한성진씨 제공
대학 전공을 바꿔보고자 방송대에 온 김씨와 달리 고교 졸업 뒤 일을 하다가 방송대를 선택한 경우도 있다. 청소년교육과 3학년 한성진(23)씨는 항공고를 졸업한 뒤 경남 사천에 위치한 항공기부품 제조회사에 다니다 방송대에 입학했다. “철이 좀 일찍 들었었나 봅니다. 혼자 저를 키우시느라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며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그러나 꿈이 아닌 생계를 위해 선택한 직장생활은 회의감만 안겨줬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기 위해 평소 흥미를 느꼈던 분야에 하나씩 도전했다. “기타도 배웠고, 노래학원도 다녔어요. 헬스도 해봤는데 막상 직접 접해보니 생각만큼 열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텔레비전에서 문제 청소년을 변화시키는 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고, 예전에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칠 때 성취감이 컸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가 청소년교육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다.

여러 대학 가운데 방송대를 선택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김수미(47)씨, 2001년 방송대 유아교육과 입학)가 방송대에서 공부를 한 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직업을 전환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청소년지도사’ 자격도 취득하고 계속해서 청소년 관련한 일을 할 생각이다. “아무리 목표가 뚜렷해도 혼자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다행히 저는 처음부터 스터디 그룹에 참여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올해는 일 때문에 소홀했지만 내년에는 다시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입니다.”

현재 방송대에는 전국 지역별로 총 1731개의 스터디 그룹이 운영 중이다. 진주 방송대에 적을 두고 있는 한씨도 사천지역 동료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함께 모여 공부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학과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성취포상제’에도 참여하고 있다. ‘청소년성취포상제’는 멘토와 함께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해가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제가 세운 목표는 지리산 반야봉 등반, 노인복지시설 봉사, 독서와 독후감 작성 등이었습니다. 다른 건 다 달성했지만, 지리산 반양봉 등반 목표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네요.” 주·야간 근무를 돌아가며 일을 하면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은 건 같이 공부하며 만난 선후배들 덕분이다. “방송대에는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저도 대충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제 최종 목표는 공부를 계속해 방송대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겁니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교수님들의 말씀이 그 자신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방송대는 전통적으로 교육학과, 유아교육과, 청소년교육과 등 자격 취득과 관련된 학과들이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엔 직장인들을 위해 별도로 만든 ‘프라임칼리지’(금융서비스학부, 첨단공학부)와 중어중문학과 등의 인기도 매우 높아졌다. 이승수(36)씨가 다니는 미디어영상학과는 언론인, 프로듀서, 영화제작자 등 영상콘텐츠 분야의 전문가를 길러내는 곳이다. 이 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이씨는 지난 4월 일어난 네팔 지진 참사 당시 그 현장을 찾아갔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아찔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지만, 드론 촬영 전문가로서 네팔 지진의 참상을 전세계에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그는 현재 부산의 항공촬영 전문 솔루션 기업 ‘드론프레스’에서 테크니컬매니저로 일하며 영상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에선 로봇공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에는 전공과는 무관한 외식프랜차이즈 업체에서 점장으로 10년간 일을 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접한 한 장의 사진 덕분에 드론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다니던 회사를 무작정 그만두고, 드론 전문기업의 문을 두드렸죠.”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드론 촬영기법을 익혔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는 “드론이 우리에게 시각의 확장을 가져다주었듯, 방송대에서의 공부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꿈은 항공촬영 관련 일과 미디어영상 공부를 접목해 새로운 시각의 멋진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은철 '함께하는 교육' 기자 lee@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