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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의정부 마을교육 1년…청소년들 “없던 꿈이 생겼어요”

의정부 마을교육 1년…청소년들 “없던 꿈이 생겼어요”

ㆍ공동체 ‘꿈이룸 학교’ 성공기
“학교도 제대로 안되는데 무슨 마을이야?” ‘마을학교’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대개 이런 반응을 보인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학교와 학원을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에게는 거리가 먼 얘기다. 그러나 경기도 의정부시에서는 지난 1년 동안 의정부 마을교육 공동체 ‘꿈이룸 학교’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꿈의 학교’는 어떤 모습이고 그 성공의 열쇠는 무엇이었을까.

지난해 11월21일 경기 북부 청소년 토론회 ‘비몽사몽’에서 아이들이 ‘나에게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꿈이룸학교 제공


■아이들에게 맡기니 아이들이 찾아왔다

의정부시청과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011년부터 5년간 ‘행복동네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청소년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의정부 중·고교 동아리연합회장들이 모여 캠프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에 마을학교의 필요성을 체감했던 혁신학교 의정부여중과 대안학교 ‘꿈틀 자유학교’ 선생님들이 변화의 불씨를 댕겼다. 혁신학교나 대안학교에서 자존감을 살리는 교육을 해서 졸업을 시켜도 다시 경쟁교육 속으로 들어간 학생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혁신학교가 극소수인 상황에서 학교를 넘어서는 보편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고민하던 두 학교 선생님들은 마을학교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원할까’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먼저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처음엔 30명 규모의 작은 토론회를 꾸몄다. 그 자리에서 ‘비몽사몽’ 기획단을 만들어서 토론회 규모를 키웠다. 많은 아이들이 모이면 더 좋은 의견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다음 토론회에 모인 학생 수는 자그마치 250명. 아이들이 토론회를 준비하고 스스로 홍보를 하더니 아이들이 아이들을 모은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그저 신기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이들도 마을학교를 원하고 있구나.’

그렇게 지난해 11월 의정부여중에서 경기북부 청소년 토론회 ‘비몽사몽’이 열렸다. 주제는 ‘내게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마을에서 뭘 하고 싶을까?’였다. 토론회가 끝나고 아이들이 먼저 ‘계속 하고 싶다’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보였다. 때마침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가 이전해 구청사가 비어 있었다. 선생님들이 그 공간을 쓸 수 있는지 알아보는 동안 아이들이 그 공간에 들어가 장판을 깔고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네팔 지진 피해 주민 돕기 프리마켓’을 열어 물건을 팔고 있다.


아이들은 제각기 ‘마을’이라는 대주제 아래 공간, 길, 사람이라는 3가지 소주제를 구상했고 그 안에서 자그마치 23개 프로젝트가 만들어졌다. ‘공간’ 프로젝트는 구청사를 자기들의 공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 ‘길’ 프로젝트는 의정부 곳곳의 길을 다니며 유적지를 탐방하겠다는 프로젝트였다. ‘사람’ 프로젝트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을 만나 진로를 고민하겠다는 뜻이었다. 아이들은 구청사를 안락한 공간으로 만들기, 청소년 영화관 운영, 꿈 카페 기획 및 운영, 공간 방음시설 실험, 공정여행으로 도보여행, 길거리 버스킹 음악회, 마을 책 만들기, 익명 우체국, 소식지 발간 등 23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3월25일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오리엔테이션을 열었다. 원래 이날은 매년 동아리연합회 네트워크가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날이었다. 매년 260개 동아리 회장단을 모으는 자리였지만 이 행사에 ‘꿈이룸 배움터 프로젝트’를 곁들여서 발표하기로 했다고 홍보했다. 260명 회장단이 오던 행사에 550명이 모였다. 이중 360명이 23개 프로젝트를 각각 신청했고 나머지 190명은 원래 하던 동아리를 계속 하기로 했다. 서우철 의정부지원청 혁신교육팀장은 “예상을 못한 숫자여서 처음엔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자발성이 참 기뻤다”고 말했다. 이후 팀별로 월별 계획을 세워 4월9일 ‘해오름제’에서 프로젝트를 팀별로 발표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믿어주면 된다

학생들의 힘이 가장 중요하지만 길잡이 교사 15명의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선생님, 대안학교에서 이미 비슷한 프로젝트를 해본 선생님, 평범한 지역 주민, 상담사 선생님 등 다양한 선생님들이 모였다. 서 장학사는 “1년 동안 주말마다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가능했다”고 말했다.

마을 서포터스도 모집하기로 했다. 5월 첫 모집 때 아이들을 돕고 싶어 하는 88명이 지원했다. 교사부터 대학교수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런데 어른들이 아이들 프로젝트에 개입하자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이 직접 토론해서 결정하는 대원칙에 어울리지 못한 탓이었다. 그렇지만 마을 서포터스는 10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결합하며 또 다른 시너지 효과를 냈다. 4월 초에는 경기도교육청에서 ‘꿈의 학교’ 정책이 발표됐다. 그 예산을 받으면서 마을학교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사회적 협동조합 ‘꿈이룸 배움터’ 창립총회에서 한 학생이 발언하고 있다.


여름방학에는 ‘쉼표를 통한 물음표 만들기’라는 방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이들은 3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를 얻었고 진정한 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10월 말에는 23개 프로젝트 마무리 발표회를 의정부 전체의 온마을 잔치 형식으로 열었다. 아이들이 직접 축제 준비를 해서 어른들을 초대한 것이다. 박진웅군(15·의서중 3학년)은 “영상을 만들면서 미래에 대한 꿈이 확실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겨울방학에는 ‘아무거나 프로젝트’를 할 예정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나눌 수 있는 프로젝트다. 벌써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힐링 프로젝트부터 폐휴대폰을 모아서 응용하는 프로젝트 등이 아이디어로 나왔다.

꿈이룸배움터 협동조합은 마을학교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교육청의 예산이 끊기면 마을학교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고 구청사 자리도 언제든 다른 장소로 바뀔 수 있다는 고민도 있었다. 협동조합으로 수익을 내 아이들의 교육비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고 10월 창립총회를 열었다.

마을학교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은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고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서게 됐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한 아이는 마을학교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몇몇 고3 아이들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겠다고 생각을 굳히고 관련 대학을 찾아 입시 준비 중이다. 이제 이 마을학교는 청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비춰주는 것으로 확장하려 한다.

서 장학사는 “진정한 꿈의 학교는 마을 안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되며 더불어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학교 밖 학교’가 ‘꿈의 학교’의 목표”라고 말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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