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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

매봉산 거친 바람에 농부는 철학자가 되었다

매봉산 거친 바람에 농부는 철학자가 되었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태백 매봉산과 농부 이정만

"능력? 견디는 게 바로 힘… 배추를 보니 그렇더라

하늘을 기다리면 되는데, 그걸 모르고 사십년을 살아"

그림이나 그리며 살려고 귀향했다가 농부가 되었고, 농부는 철학자로 변해갔다

석탄으로 큰돈 벌었던 태백… 폐광으로 부귀영화 사라진 곳에 잊혔던 보석들이 드러났다

물이 산을 뚫은 '구문소', 비현실적으로 맑은 '황지 연못'

푸른 배추밭 40만평과 거인처럼 버티고 선 풍차는 봄부터 가을까지 관광객 불러

강원도 태백 매봉산은 배추밭이 넓다. 40만평이다. 400평도 4만평도 아니고 40만평이 해발 1250m 고산에 펼쳐져 있다. 산꼭대기 높이는 1303m다. 산으로 운무가 올라오면 천지 사방이 반짝이는 잿빛 장막 속에 숨는다. 장막 위로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돌아간다. 산 아래 고개에 빗물이 떨어져 북으로 흐르면 한강, 동으로는 오십천, 남으로 흐르면 낙동강과 만난다. 고개 이름은 삼수령이다. 주변은 자작나무 숲이 하얗다.

그 거대한 풍경 속에 집이 한 채 있다. 농부이자 철학자요 화가인 이정만과 한 살 아래 아내 최진영, 딸 곤지(11)와 아들 바우(9)가 사는 집이다. 가족은 매봉산에 사는 유일한 주민이다. 해마다 인구가 빠져나가는 이 작은 도시로 이정만은 귀향을 감행했다. 그 도시, 그 사내 이야기다.

▶광산촌과 막걸리 집 정병운

농부이자 화가이자 철학자 이정만.

낙동강과 한강 발원지가 태백에 있다. 한강이 시작하는 샘물 이름은 검룡소다.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낙동강 발원지 황지(黃池)는 비현실적으로 맑다. 거대 하천 발원지를 소유한 도시지만, 태백은 삼척시에 속해 있었다. 태백은 1981년에야 황지읍과 장성읍이 떨어져나와 시로 독립했다.

매봉산 아래 삼수령은 피재라고도 했다. 곤궁하던 옛날, 삼척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인 황지를 찾아 넘었다고 해서 피재다. 전설은 일제강점기 이후 태백에서 석탄이 발견되면서 현실화됐다. "지나가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니는" 석탄 부자의 시대가 온 것이다. 1960년대 대한민국이 성장을 시작하면서 태백은 자본주의적인 이상향이 되었다. 목숨을 걸었으되, 자식새끼들 다 키우고 큰돈 거머쥐던 그 검은 시대가 태백을 관통했다. 피재에서 갈라진 세 줄기 강물은 1960년대 이후 온통 검디검었다. 도심을 흐르는 골지천도 검었고 태백을 빠져나가는 강물은 모두 검었다. 태백이라는 도시를 잉태했던 석탄 산업이 만든 풍경이었다.

황지동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정병운(52)은 기억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집에서 막걸리 직매소를 했다. 똥 푸는 차와 똑같이 생긴 막걸리 차가 큰 호스로 막걸리를 부어놓으면 짐 자전거에 막걸리 통을 싣고 술집과 식당으로 배달했다. 막걸리 상했나 본다는 핑계로 한두 잔씩 먹는 재미로 친구들도 신나게 같이 다녔다."

그 막걸리, 광부들이 다 먹었다. 그 돈으로 병운네 집이 먹고살았고, 병운도 제대하고서 1년 동안 광부로 일했다. 술집, 식당, 살림살이, 여행, 사랑, 이별. 어떤 방식으로든 태백의 삶은 석탄과 관계가 깊었다.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과 함께 잿빛 이상향 시대가 끝났다. 탄광은 모두 문을 닫았다. 부귀영화는 가뭄 때 갈라진 논바닥처럼 사라졌다. 10만5000명이 넘던 인구는 순식간에 5만명으로 급감했다.

▶농부 이정만, 고원(高原)에서 깨닫다

2005년, 쇠락할 대로 쇠락한 그 도시에 이정만이 돌아왔다. 원래 집은 태백 화전동에 있었다. 이정만이 말했다. "울 아버지가 절대로 땅속에서는 죽지 않겠다고 목재소를 차렸다. 그러고 내가 열두 살 때 서울로 떠났다." 이정만은 사춘기 동안 김소월을 읽었고 그림을 그렸다. 마흔이 될 때까지 이정만은 서울이며 포천에서 사업을 했다. 이유는 몰랐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대신 서울 인사동 화랑에서 화가 김점선의 작품을 보고선 "열 달 할부로 살 테니 돈 다 치를 때까지는 다른 데 팔지 말라"고 큰소리치며 살았다. 화랑은 "장사 방해하지 말고 가지고 가라"며 그림을 싸 줬다. 그렇듯 근본이 도시 생활과 거리가 먼 사내였다.

농부 이정만이 아침 햇살 속에 배추밭을 거닌다. 이달 안으로 배추 수확이 마무리되면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는 짙은 황토가 드러나고, 그 위로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올 터이다. 렌즈=canon EF 24-70mm, 셔터스피드=1/60초, 조리개=f13 /박종인 기자

그러다 2004년 아내와 함께 매봉산을 찾았다가 정주를 결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풍광 좋고 물 좋은 곳은 많은데, 매봉산처럼 모기 없는 곳은 없더라." 부동산업자는 헛소리를 들은 줄 알았다. 이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조리 집을 팔겠다고 내놓은 사람들밖에 없었다. "정말인가." "정말이다. 나, 여기 살 작정이니 집 내놔라." 본인이야 그렇다고 쳐도 아내 최진영에게는 날벼락이었다. "울 엄마가 그러더라. '억지로 서울 여자 만들어놨더니 네가 촌년이 돼서 거기까지 기어들어가겠다고?'" 세월이 흘러 2015년 9월 현재 이정만은 매봉산 마을 영농회장이다. 딱 한 집 사니, 그러할 수밖에. 배추밭에 남아 있던 유일한 집주인을 설득해 집을 샀고, 이듬해에 두 아이를 끌고서 산으로 들어왔다. 마구간을 고쳐서 거실로, 창고를 고쳐서 부엌을 만들고, 남들 하듯 텃밭에 배추를 심었다.

여름 한 철이야 그림 같은 풍경에 날씨까지 선선하지만, 겨울에는 영하 20도요 물 구하기도 힘든 고산이다. 눈이 쏟아지면 집 앞 돌배나무까지 100m 눈 치우는 데 3시간이 걸린다. 한동안 아내 최진영은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내가 첫사랑에 실패해서 너랑 만났으니 행복한 줄 알라"고 큰소리치는 남편이 기가 막혔지만, 어찌 하겠는가 살아낼 수밖에.

첫해 농사, 완전히 망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 해에 두 번째 추수를 했더니 마을 노인이 말했다. "팔 거 아니지?" 또 망했다. "내가, 머리만 쓸 줄 알았지 농사에 관해서는 불구자였던 거다. 그때 알았다. 내가 재능만 믿고 최선을 다했다고 깝죽대봤자, 우리 위에는 '하늘'이라는 섭리가 있음을."

그림이나 그리며 살려고 들어왔다가 농부가 되었고, 농부는 그 와중에 철학자로 변해갔다. 폭설이 내린 아침 문을 열면 건너편 설산에 나목(裸木)이 보였다. 눈밭 위에서도 나목이 또렷하게 보였다. "흰 눈 속 흰 나무들…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 도시에서 못 본 풍경이 집 앞에 있었다." 섭리를 의식하며 농사를 짓고, 낯선 풍경에서 대장엄을 찾아 그림을 그리다 보니 또 깨달았다.

이정만이 그린 매봉산‘바람개비’.

"능력? 견디는 게 바로 힘이더라. 호랑이가 사람 됐나? 곰이 됐지. 곰이 능력자다. 남이랑 비교 않고 스스로 견뎌야 능력이 생긴다. 때를 기다리며 견뎌야 한다. 뱀이 때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승천하려다가 용이 되지 못하고 이무기가 되는 거다. 매봉산에서 배웠다."

적응이 되고 나니 행복이 찾아왔다. 아내 최진영도, 딸 곤지와 아들 바우도. 이정만이 말했다. "토끼는 토끼답게 거북이는 거북이답게 살아야지, 세상에 토끼와 거북이가 어떻게 경주를 하나. 설정 자체가 모순이다. 우리는 매봉산에서 우리답게 산다. 배추를 보니 그렇더라. 돌을 다 골라내면 배추가 죽는다. 돌이 있어야 고산지대에 이슬이 맺히고 그걸 배추가 먹고산다. 막말로, 그냥 놔둬도 잘 사는 생명체들이다. 때를 기다리고 하늘을 기다리면 되는데, 그걸 모르고 사십년을 살았다." 힘들었던 지난 가뭄 때, 이정만은 배추밭에 물을 대지 않았다. 배추가 말라 죽지 않을 정도로 물맛만 보여줬다. 몇 주 늦긴 했지만, 배추는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예년과 똑같이 잘 자랐다.

이정만이 사는 매봉산은 바람의 언덕이라 부른다. 태백시와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풍력발전기 열일곱 대가 능선에서 돈다. 푸른 배추밭 40만평과 거인처럼 버티고 선 풍차는 봄부터 가을까지 관광객을 부른다. 능선에서 보면 배추밭 한구석에 오렌지색 지붕이 보인다. 철학자 가족이 사는 집이다. 겨울이면 철학자의 언덕은 은빛 적막에 싸인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정만은 배추를 선물하고, 철학을 선물하고, 때로는 잠자리도 선물한다. 그리고 잊지 않는다.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하자"고.

▶잿빛 시대의 종언과 근원의 부활

그 태백에 지금 사람들이 몰려온다. 잿빛 코팅이 벗겨지고 민낯을 드러낸 낡은 도시 태백이 잊혔던 보석들을 찾아냈다. 검룡소. 한강 발원지가 삼수령 너머 숨어 있다. 동쪽으로 가니 골지천이 바위를 뚫어 거대한 통문(通門)을 만들어놓았다. 구문소다. 물이 산을 뚫다니. 황지에서 솟은 물이 남쪽으로 흐르다 석회암 절벽을 뚫어버린 구멍이다. 구문소는 천연기념물이 되었고 검룡소도 당연히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목숨 걸고 땅을 파서 먹고살았던 태백 사람들은 그저 일상적 풍경이지만, 외지인에게는 진귀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다.

물이 산을 뚫은, 구문소.

고단한 옛 기억들도 태백을 총천연색으로 색칠했다. 막걸리를 광부들에게 팔았던 정병운은 동료와 함께 상장동 광부 사택촌을 재현했다. 6·25전쟁 때 상장면 중학생 124명은 양구 피의 능선과 가칠봉, 김일성 고지와 건봉산에서 학도병으로 싸웠다. 그리고 고도성장 시대, 상장동은 광부들 사택촌으로 변했다. 정병운은 짐 자전거에 실려간 추억들을 담벼락에 그렸다. 배추 잎을 물고 있는 강아지, 막장 광부들과 생사를 함께한 쥐들, 진폐를 안고 하늘로 간 노(老)광부, 출근하는 남편 등을 바라보는 여인들의 눈망울까지, 샛노란 담장에 녹아 있는 옛 추억 앞에서 외지인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숨 가쁘다.

*

구문소 통문 아래 반석에는 정감록을 인용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五福洞天子開門(오복동천자개문).

"낙동강 위에 오르면 더는 갈 수 없는 석문이 나온다. 자시에 열리고 축시에 닫히는데,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이 없으며 병화도 없고 삼재가 들지 않는 이상향이 나타난다."

어찌 보면 정감록은 바로 2015년 지금을 예언했는지도 모른다. 고단한 잿빛 시대가 각인된 우리네 삶이 어느덧 그 시대를 추억하는 시대가 되었다.

매봉산 철학자 집에서 대화가 끝났다. 마구간이던 거실에는 고서(古書)가 쌓여 있고 100호짜리 대형 캔버스가 포개져 있다. 나와 동갑내기인 이 농부가 권하는 녹차 향을 음미하는데, 현관문 밖으로 운무가 피어오르는 것이다. 온 천지가 찬란한 잿빛이었다.

[태백 여행수첩]

1. 매봉산 농번기에는 산 아래 삼수령에서 셔틀버스나 택시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이정만의 집은 배추밭 오른쪽 끝에 있다. '바람의 언덕'이라는 풍력발전 단지까지 택시가 올라간다. 수확이 끝날 때까지 이정만은 배추 체험 행사를 한다. 착한 사람은 식사도 할 수 있다.

2. 만항재 함백산 중턱에 있는 고개. 야생화와 낙엽송 단지가 조성돼 있다. 조망이 훌륭하고 트레킹 코스도 만점.

3. 삼탄아트마인(samtanartmine. com)과 정암사 폐탄광을 개조한 예술 공간과 석가모니 진신 사리가 있는 적멸보궁이 근접해 있다.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 삼탄아트마인은 숙박, 식사도 된다

낙동강 발원지 황지의 물빛.

4. 검룡소와 황지, 구문소, 상장동 벽화 마을 내비게이션에 이름을 치면 검색 가능. 검룡소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숲길 2km.

추천 맛집 윤가네 한우마을(033-592-2920) 한우 등심 3만원. 약산정(033-591-2024) 곤드레밥 1만원.

추천 숙소 오투리조트(www.o2resort.com), 카스텔로 호텔(www.castellohotel.co.kr)

태백시문화관광과 tour.taebaek.go.kr

[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