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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역주행’…중3·고교 인문계 수학 학습량 10% 늘려

교육부 ‘역주행’…중3·고교 인문계 수학 학습량 10% 늘려

등록 :2015-05-28 21:51수정 :2015-06-01 14:21

 

‘6개국 수학 교육과정 국제 비교 콘퍼런스’가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수학 고통 줄이자 ①
수학 교육과정 개정 시안 살펴보니
수학 교육과정과 교과서, 교수 학습법은 “해방 이후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시대착오적이다. 오는 9월 교육부의 2015 교육과정 개정 총론·각론 고시를 앞두고 ‘수학 교육 개혁’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이유다. 이에 수학 교과 내용을 줄이고 세계적 추세에 맞춰 ‘사고력 수학’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한겨레>는 한국 수학 교육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바꿔야 할지 점검하는 기획기사를 싣는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분석
“초등·중1~2는 현재와 비슷하고
고교 자연계는 5%가량 줄어”
교육부 20% 감축 ‘헛구호’ 돼

“학습량 부족 아닌 과다가 문제”
학생·학부모 입모아

‘성적’ 좋아도 흥미·자신감 낮아
수학 포기자 낳는 단원 조정 필요

“수: 수학 때문에, 학: 학교 가기 싫어요.” “중2 수포자 74%.”

학생들이 교육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사교육걱정)의 ‘수포자(수학포기자) 없는 입시 플랜’에 참여해 메모로 남긴 ‘수학을 줄여달라’는 호소가 애잔하다. 이에 아랑곳없이 교육부는 2018년부터 도입되는 ‘2015 교육과정’ 개정을 강행하면서 오히려 수학 부담을 5~10%까지 늘게 해 교육계의 반발이 크리라 예상된다. 교육부는 애초 ‘학습 부담 20% 감축’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사교육걱정은 28일 “‘2015 수학 교육과정 개정 시안’을 분석했더니 중3과 고교 인문계 수학 교육과정이 10%씩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다만 “초등과 중1·2는 현재와 비슷하고, 고교 자연계만 5% 정도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2015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 학습량 증감
2015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 학습량 증감
교육과정 개정 연구진으로 참여한 전인태 가톨릭대 수학과 교수는 “고1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수열과 지수·로그 단원 등을 삭제했고, 고교 인문계 학생들은 수Ⅰ, 수Ⅱ, 확률과 통계 세 과목 중 두 과목만 선택하게 돼 학습량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수일 사교육걱정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수능에서 실제로 두 과목을 선택하게 될지는 2018년이나 돼야 확정되는데 그걸 근거로 학습량이 줄었다고 설명하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시안 분석 결과, 고교 인문계의 경우 수Ⅰ에서 지수함수와 로그함수, 삼각함수와 그 활용 등 대단원 2개가 늘었다. 중학교는 이차함수 최대값과 최소값, 상관관계 부분이 추가되는 등 중단원 2개가 증가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수학 교육의 문제가 ‘학습량 부족’이 아닌 ‘학습량 과다’에서 발생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학 공부에 주당 노동시간인 40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들이는 ‘수학 노동’ 문제가 심각하고, 학습 부담 탓에 아예 수포자가 되는 비율도 높다. 사교육걱정은 일부 교과 항목을 상급학교로 올려 어린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자고 제안한다. 가령 대부분의 나라에선 ‘비례식과 비례부분, 정비례와 반비례’ 등을 중학교에서 배운다. 한국은 이를 초등학교에서 가르치지만, 학생들이 따라잡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를 고려해 중학교 교육과정에 포함하자는 제안이다.

이번 개정 시안에서 이런 취지가 반영된 건 초등학교 과정의 ‘원기둥의 겉넓이와 부피’를 중학교로 옮긴 게 유일하다. 사교육걱정은 중학생 수포자 양산의 큰 원인인 기하 증명을 고교로, 어차피 대학에서 다시 배우는 고교 이과 미적분Ⅱ는 대학 교양과정으로 올리자고 주장한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에서 “수학을 포함해 각 교과목의 학습량을 현재의 80% 선에서 적정화하라”고 제시했다. 개정 연구진한테 ‘교과 내용 20% 축소’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셈이다. 한국 학생들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등 국제 비교 학력평가의 수학 성취도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는 반면, 흥미·자신감 측정에서는 일관되게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고교 수준을 넘어서면 수학 성취도가 급격히 낮아지기도 한다. ‘사고력 수학’을 강조하는 세계적 추세와 동떨어진 ‘지식·암기 위주’ 수학 교육 탓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많이 들더라도 기본 원리 및 개념 이해를 중심으로 교육과정과 수업 및 평가 방식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수학 수업만 무작정 늘릴 수 없으니, 배워야 할 내용의 양을 줄여 제대로 가르치자는 취지다.

사교육걱정은 “교육과정에 특정 항목이 추가되느냐 삭제되느냐에 따라 해당 세부 전공 교수들의 입지가 달라진다. 이런 수학계의 이해관계 탓에 20% 학습량 축소라는 목표가 실종됐다. 개정 연구진과 수학계가 다시 한번 2015 교육과정 개정의 근본 동기를 이해하고 총론의 학습 부담 경감 의지를 구현하라”고 촉구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