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진로체험학습

나무에 사포질·톱질하며 ‘살아가는 힘’ 다진다

나무에 사포질·톱질하며 ‘살아가는 힘’ 다진다

등록 :2015-04-06 20:12

[함께하는 교육] 강원 공현진초의 ‘노작교육’

 

지난 3월27일 공현진초 목공실에서 6학년 정세진(왼쪽)양과 한채리양이 목공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미래에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학교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들은 아이들에게 가만히 앉아 수업만 들으라고 한다. 시험 문제 풀이는 잘하지만 삶의 문제는 풀지 못하는 아이들이 나오는 이유다.

강원도 고성군에는 ‘일하기 교육’으로 불리는 ‘노작’을 하며 몸과 가슴으로 삶을 만나고, 스스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찾게 해주는 학교가 있다.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에 있는 공현진초등학교다.

머리로만 지식 주입하는 아이들에
가슴과 몸으로 삶 만나는 기회줘
나무숟가락 만들기·집짓기부터
뜨개질에 텃밭가꿔 수확까지
공교육 통해 노작교육 실천
긴 시간 공들여 작업물 완성한 아이들
끈기·협력 생기고 자기 진로 찾기도

작은 컨테이너 목공실서 집중력·협동심 길러

“어? 비뚤어진 것 같아. 톱밥이 잘 안 빠져.”

지난 3월27일 오전 11시10분. 학교 뒤뜰에 있는 작은 컨테이너 안에서 드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세로 3미터, 가로 9미터, 높이 2미터짜리 이 공간은 이 학교의 목공실. 6학년 학생들이 손드릴을 이용해 연필꽂이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2인 1조를 이뤄 한 사람은 나무토막을 잡고, 한 사람은 손드릴을 조작하며 나무토막에 연필 꽂을 구멍을 여러 개 뚫고 있었다. 구멍이 수직으로 매끈하게 뚫리지 않아 아이들이 낑낑거리자 김용근 교감이 시범을 보였다.

“자! 나무토막은 이렇게 꽉 잡고, 드릴은 이렇게 반듯하게 세워서 수직으로 구멍을 내는 거예요. 이건 두 사람의 호흡과 집중력이 중요한 작업이에요. 구멍 사이에서 나오는 톱밥도 잘 빼야 구멍이 안 비뚤어집니다. 천천히 다시 해볼까?”

일반적으로 초등 고학년 실과 시간 목공 수업은 거의 완성된 재료를 사서 조립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이 학교 학생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다. 아이들은 재료가 되는 나무를 학교 뒤편 산에서 구하거나 학교에서 나눠준 가공 안한 나무토막에 사포질을 하며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목공 틀을 직접 만든다.

지난 2013년. 학교 쪽은 목공실을 비롯해 학교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활용해 수공예실을 만들었다.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시키자 처음에는 당황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죠?”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조급해하고 불안해하던 아이들에게 교사들은 “꾸준히 하면 된다” “천천히 완성할 거니까 다시 해보자”고 했다. “이쪽은 왜 이렇게 기울어졌을까?” 시간이 지나 목공 작업이 1차 마무리됐을 때 이렇게 질문하자 아이들은 스스로 찾은 문제의 원인과 해답을 말했다. “수평이 아니라서 그래요. 사포질을 더 했어야 해!”

점심시간. 한채리양이 학교 뒤뜰에 있는 닭장으로 가서 닭에게 물을 주고 있다.
노작활동하는 공교육 최초 발도르프 학교

속초에서 북쪽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 공현진. 공현진초는 이곳에 있는 전교생 40명(초등학교와 통합 운영하는 유치원의 원생까지 합치면 총 58명) 규모의 작은 학교로 전 학교 차원에서 노작교육을 한다. 공교육에서는 드문 사례다.

학교는 2012년 강원도형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공교육 최초로 발도르프 교육을 도입했다. 발도르프 교육은 독일의 인지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가 창안한 교육 방식으로 인지 영역에만 치우친 교육에 반대해 의지·감각·사고의 조화로운 발달을 돕는 교육을 강조한다.

환경교육 등에 관심을 기울여오던 김 교감은 1993년께 이 교육철학을 접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교육과정에 맞춘 공부’가 아니라 ‘아이들 삶을 위한 교육’을 실천하는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우선 꽉 짜인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내려놓고 교육 내용을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교육 내용을 재구성할 때는 아이들 발달 단계에 맞춰야 한다는 점도 원칙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사춘기가 시작되는 6학년은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파내기 작업’ 등을 주로 한다. 서로 다른 교과들이 연계돼야 한다는 점에도 방점을 찍었다. 2013년 가을. 학생들은 한 달 동안 ‘벽돌 집짓기’도 했다. 집의 치수와 각도를 재는 일은 수학, 집을 꾸미는 일은 미술, 집의 쓰임을 생각하는 일은 실과 등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활동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일상의 삶을 깊이 있게 고민해보는 ‘인문학 수업’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든 이 집이 약간 기울어져 있어. 어떻게 하면 땅과 수직이 될 수 있을까?” 학교 쪽은 노작활동을 하고 이런 식의 일상 연계형 문제도 낸다. 김 교감은 “목공을 하면서 이런 문제를 풀면 과학에 나오는 ‘수평잡기’ 개념을 접하는 셈”이라며 “요즘 융합인재교육(STEAM)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런 수업이야말로 융합적인 인재를 배출하는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런 방식의 교육으로는 진로직업 교육도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덧붙였다. “집 한 채를 함께 지어보면 건축가·화가·과학자·수학자 등 다양한 직업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일회성 직업체험과는 다르죠.”

학교 곳곳에는 ‘삶을 위한 교육’에 바탕을 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환경이 구축되어 있었다. 복도에는 아이들이 직접 만든 옷걸이가 걸려 있었다. 교문 앞에는 밀밭이 있었다. 2주 전, 아이들은 직접 ‘밀밭밟기’를 했다. 아이들은 여기서 나온 밀을 이용해 빵을 만들어 먹고, 빵이 어디서 왔는지 공부한다. 닭장에는 닭이, 텃밭에는 채소가 있어 생태 경험도 할 수 있다. 점심시간. 아이들은 학교 곳곳 바닥에 그려진 미로 그림틀 속에 들어가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놀이를 했다. 김 교감은 “‘거기서 못 나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텐데 이 놀이야말로 자기수양을 도와주는 인성교육”이라고 설명했다.

교사들 멀티자료 대신 직접 그린 그림으로 수업

학교의 노작활동에는 교사도 참여한다. 교사들은 수업에 쓰는 그림 등도 직접 그린다.

2학년 교실에는 담임 김지연 교사가 옛이야기 ‘여우와 두루미’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김 교사는 “그냥 말이나 글로 ‘배려해야 한다’는 덕목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실제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교사가 직접 자연과 가장 가까운 색으로 그린 그림을 펼쳐 보여주면서 생생하게, 아날로그 방식으로 ‘배려’라는 개념을 접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교실에 있는 컴퓨터·텔레비전은 천으로 가려놨다. 아이들을 ‘빨리빨리’만 강조하는 기계문화에 길들지 않게 하려는 뜻이다. 교사들은 가급적 아이들이 하교한 뒤에 컴퓨터를 사용한다. 6학년 담임 이경목 교사는 “멀티미디어 교수학습 자료로 수업을 하면 편할 수 있다. 근데 이런 자료들을 너무 활용하다 보면 아이들이 화면에 띄운 이미지 한 장만 기억할 뿐 그 속에 숨은 이야기나 맥락을 잘 이해하거나 오래 기억하진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저학년 학생들이 학교 바닥에 그려진 미로 그림 속으로 들어가 여기서 빠져나오는 놀이를 하고 있다.

프로그램 소문나 전교생 70% 외부서 와

최근에는 이 학교만의 특별한 교육과정이 알려지면서 학교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현재 전교생 가운데 70%는 속초시를 비롯해 서울·경기·인천 등에서 전학 온 학생들이다. 3학년 때 인천에서 이 학교로 전학을 왔다는 한채리양은 이 학교에 와서 직접 나무 숟가락·젓가락, 손뜨개 양말을 만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왜 이런 걸 하는 것 같냐고요? 손으로 작업을 하면 나무 냄새가 나서 좋아요. 근데 기계로 하는 것과 달라서 시간이 의외로 많이 걸리거든요. 끈기도 있어야 하고, 친구랑 협동할 일도 많아요. 그게 공부가 되는 거 같아요.”

이경목 교사는 “내겐 이 학교가 교직 생활 첫 번째 학교인데 그전에 교생실습을 나갔던 학교들과는 차이점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학교생활을 잘 해나가는 아이’, ‘그냥 따라가는 아이’, ‘학교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아이’ 등 다양한 아이들이 보여서 고민이 많이 됐거든요. 근데 학생 수가 적고, 뭐든지 천천히, 길게 몸과 감성을 깨우며 수업하는 이곳에서는 낙오하는 아이가 안 보입니다. 저도 노작교육 등을 따로 접해본 적은 없었는데요.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고 가슴으로 느끼는 공부를 하면서 협력·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집중력 등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결국엔 ‘살아가는 힘’을 키워주려고 하는 활동인 것 같습니다.”

김 교감은 “다른 학교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수업하기 때문에 중학교 수업에 적응할까 걱정할 수도 있는데 아이들이 자신감·의지력 등을 기르고 진학하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면 공부를 할 때도 그 의지력과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포질, 톱질 한 번 안 해보고 건축학과 지망하는 학생들도 많잖아요. 아마 집 만드는 것만큼은 우리 학교 아이들이 건축학과 학생들보다 잘할걸요. 이 학교에서 6년을 보내면 경험치가 풍부한 아이들로 자랄 겁니다. 학교가 시골에 있어서 이런 게 가능하다는 시선도 있을 텐데요. 도시에서도 교실 하나만 있으면 목공 수업이 가능합니다. 의지의 문제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유럽식 교육을 많이 따라 하잖아요. 그곳 교육과정을 보면 1학년 때부터 노작활동을 해요. 근데 왜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이런 수업이 없을까요? 외국 좋은 사례를 ‘머리로만’ 받아들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교실·가정서 머리-가슴-손 쓰는 교육 해봐

노작교육 도움 주는 책

학급 차원에서라도 노작교육을 해보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난다? 지난해 공현진초등학교 김용근 교감이 낸 <선생님은 살아 있는 교육과정이다>(물병자리)는 이런 고민을 하는 교사들이 참고하면 좋을 책이다. 김 교감은 “손과 발, 가슴을 움직이기보다는 머리 쓰는 것만 강요하고, 프로젝트 화면을 앞에 놓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식으로 수업을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감각을 깨우고,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전인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교과서라는 틀에 아이들을 가둔 채 수업하는 지금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살펴보면서 초등 6년 동안 국어·수학·과학·도덕·사회·음악·미술·체육·실과 등 9과목에 대한 대안적인 교육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11장 실과-머리, 가슴, 손을 연결하라’에서는 목공·수공 등 노작교육의 의미와 실천 방법 등을 상세히 담았다. 참고로 공현진초는 이 학교 교육과정에 관심 있는 교사들 등을 위해 7월에 누리집에서 신청을 받아 학교 개방도 한다. 그냥 휙 둘러보고 가는 건 안 되고, 김 교감이 진행하는 발도르프 교육 철학과 노작교육에 대한 강의를 듣고 가야 한다.

노작교육이 학교 차원에서만 가능한 건 아니다. 텃밭을 배경으로 가정 안에서도 이를 실천할 수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 사는 신동섭씨와 조민희씨는 2012년부터 2013년까지 1년 동안 은지(석곶초 2년)와 민수(7살) 등 남매와 매주 텃밭을 찾아가 놀았다. 텃밭은 이 가정의 아이들에게 노작교육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배움터이자 놀이터 구실을 했다. 아이들은 텃밭에서 계절과 자연이 변화하는 걸 느끼며 직접 흙을 만지고 씨를 뿌리고 수확의 기쁨을 맛봤다. 텃밭의 작물과 주변 자연물을 이용해 다양한 놀잇감도 만들었다. 신나게 논 뒤 허기가 느껴지면 제철에 거둔 작물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 이렇게 1년을 보내며 아이들은 많이 달라졌다. 텃밭에서 만난 곤충·풀·꽃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꽃과 풀의 특성을 알고,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장난감을 쥐여주지 않아도 땅파기, 곤충찾기, 나뭇잎콜라주 등 창의적인 놀이를 하며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신씨는 “첫째는 소심한 면이 있는 아이인데 노작활동을 하며 성격이 바뀐 것인지 주변에서 ‘아이가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다른 아이들은 ‘새학기 증후군’ 등을 겪는다는데 우리 아이는 학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정도로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활동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했다. 신씨는 “많은 부모들이 초등학교 아이들의 집중력·학습 능력 등을 위해 사교육 시장을 기웃거리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효과적인 게 일하는 경험을 해보는 ‘노작교육’이라고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가정에서 할 만한 텃밭 노작교육 사례는 신씨의 책 <가족텃밭활동백과>(들녘)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