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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학교평가가 집어삼킨 ‘행복 교육’

학교평가가 집어삼킨 ‘행복 교육’
한겨레

울림마당

대전의 일부 전문계고등학교가 ‘방과후학교’를 정규수업 중간에 실시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이 학교들은 일과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5교시에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한다. ‘일과 중 방과후학교’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셈인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친 유치환 시인의 역설을 능가하는 희대의 코미디가 연출되었다고나 할까.

방과후학교는 말 그대로 정규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이 자신의 특기·적성을 계발하는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학교들이 정규수업 시간에 방과후학교를 운영했다면 필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정을 알아보니 학교 평가 점수가 원흉이었다. 현재 대전시교육청의 학교 평가 지표를 들여다보면, 방과후학교 참여율이 초등은 15점, 중등은 10점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학교들이 ‘학교 평가 최우수학교’ 명예에 눈이 멀어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전문계고 중 한 곳은 취업률 1위를 자랑하는 명문 사학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런 화려한 학교 명성이 비교육적 불법 학사운영의 결과물이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길거리에 나부끼는 학교 자랑 펼침막이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러한 비정상적 학사운영을 바라보는 교육당국의 시선이다. 대전시교육청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학교가 정규수업을 침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주의를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토록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대전의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신정섭/전교조 대전지부 대변인
방과후학교 수강 여부는 어디까지나 학생 및 학부모의 순수 희망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적잖은 학교에서 신청서를 나눠준 뒤 곧바로 ‘참가’에 동그라미 하도록 하고, 학부모 서명마저 학생이 대신 하도록 종용한다고 한다. 양심과 도덕, 민주시민의식을 가르쳐야 할 배움터에서 관행처럼 이런 일이 지속되고 있고, 지도·감독 의무가 있는 교육당국은 시·도교육청 평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

시·도교육청 평가 및 학교 평가가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교육’을 집어삼키고 있다. 제발 양심과 도덕을 회복하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도 아니한가.

신정섭 전교조 대전지부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