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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황 장관, "인문학이 성장동력" 대통령 말 무시하나

황 장관, "인문학이 성장동력" 대통령 말 무시하나

[주장] '인문계열 구조조정' 꺼내든 교육부... '창조적 해결책' 바란다

15.02.11 15:37l최종 업데이트 15.02.11 15:37l민경인(chillwall7)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교육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에 독어독문과가 49개 있다고 하는데, 졸업하고 취업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나?"

지난 달 23일 <연합뉴스>와의 신년인터뷰에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한 말이다. 황 부총리는 인터뷰 하루 전인 22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는 '산업수요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을 지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고, 이에 맞추어 학과개편과 정원조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소위 '인문계열 구조조정안'이다.

이러한 황 부총리의 발언에 대학가는 술렁였다. "대학이 취업학원이냐"는 비판부터 "인문계열을 무시한다"는 볼멘소리까지 터져나왔다. 여기에 지난 4일 대학생 대표자 10여 명과 한 간담회에서 황 부총리가 "인문학보다 취업이 먼저"라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논란은 가중되었다.

"인문학적인 상상력을 확산하는 것이 성장동력의 열쇠"라는 지난 8월 '대통령 말씀'에 따라,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7대 중점과제를 발표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황 부총리의 최근 발언과 '인문정신문화 진흥을 위한 7대 중점과제'를 비교해보면 황당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과제3'에는 '인문분야 학문후속세대 육성 및 학술역량 제고'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데, '대학이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인문학 관련 학과를 제일 먼저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교육부 장관이 인문학보다 취업이 먼저라며 구조조정을 하겠단다. 성공한 기업가들마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무슨 유행처럼 느껴지는 마당에 대체 이건 무슨 소리인가.

사실 황 부총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이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해 보인다. 높은 대학진학률과 이로 이한 사회적 비용에 대한 우려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고, 지금은 낮은 청년취업률로 사회가 진통을 앓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없애면 된다는 생각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즉 독어독문과를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되니 독어독문과를 없애면 된다는 논리인데, 그 발상이 순진하고도 위험하다.

먼저 지금의 청년취업문제를 대학 구조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황 부총리는 마치 인문계열 학생들이 취업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제의 핵심은 구직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의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파이는 작은데 경쟁자는 많다. 작은 파이를 두고 서로 싸우다 보니 제 몸집을 불릴 수밖에 없다. '스펙경쟁'이다.

교육부 중점과제도 6개월 만에 뒤집어

파이의 크기가 작을수록 도태되는 사람이 늘어나고 불만은 쌓여간다. 더 이상의 교육도 받지 않고 취업도 포기한 대졸 니트족이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세대갈등론이 고개를 내민다. "경제성장기에 '운이 좋아서' 쉽게 취업했던 기성세대가 지금의 우리와 경쟁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도발도 튀어나온다.

그런데도 황 부총리는 '취업 못하는 인문계열 학생 탓'을 하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이 겪은 끔찍한 재난들과 그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긴 우리의 대처가 떠오른다면 지나친 반응일까? 우리 사회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데 너무나도 익숙하다.

대학을 취업을 위한 학원쯤으로 여기는 것도 문제다. 이는 단지 취업률이 낮은 일부 학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교육 전반과 관련된 문제인데, 이러한 인식하에서는 어느 대학, 어느 학과라도 자본논리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학이 연계하여 동반성장을 이루어내는 것과, 학문이 자본의 시녀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미 대학교육이 자본에 종속되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정부가 앞장서 산업수요 운운하며 지원금이라는 칼을 휘두른다면, 어떤 우수한 학생이 소신껏 학문에 매진하겠으며 어떤 대학이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투자를 하겠는가. 이 상태라면 경제성장과 학문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것 같아 보인다.

누구라도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창조경제를 부르짖을 수 있다. 하지만 진정 '인문적 소양'이 우리 사회의 토양이 되기를 원한다면, 교육부의 계획처럼 '교육한류'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보다 깊은 고민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해 보인다. 청년 취업난이 문제고, 나라 살림이 어렵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장기적 안목으로 나라에 보탬이 되고 인류사회에 기여할 교육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근사한 말로는 부족하다. 창조경제니 융합형인재니 하는 말들이 무슨 뜻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나, 확신하건대 이것들이 산업수요에 맞춘 대학 구조조정으로 달성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49개의 독어독문과가 있다면, 이들을 어떻게 필요한 인재로 길러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보다 도움이 되지 않을까.